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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 이 마을이 특별한 주인공이 되어 회자된 날이 있다. 2025년 2월 4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특별디딤돌상으로 삼태마을과 담양인권지원상담소에 시상했다. 특별디딤돌상은 성폭력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이번 삼태마을의 수상은 ‘마을’이 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그런데 이 마을은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시 마을 전체가 남다른 행보를 보인 것뿐 아니라, 마을 내 ‘성차별 임금 폐지’를 선언, 남녀 인건비를 차별 없이 지급하고, 공유농장, 공동밥상 등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삼태마을의 활동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박진숙 농민(죽곡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인터뷰해 나눈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기획의 말]
마을활동의 중심인 죽곡함께마을교육협동조합이 품고 있는 것들 농민도서관, 공유농장, 목공교실, 생태텃밭정원 수업, 마을빵집카페…
죽곡에는 죽곡함께마을교육협동조합이 있다. 모든 마을활동의 중심이다. 여기에는 농민들이 만들고 농민들이 운영해온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있다. 한국에서 유일한 농민 도서관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협동조합의 산실이다. 도서관 앞에는 공유냉장고가 있는데, 철 따라 옥수수, 상추, 청호박, 콩 등이 놓인다. 주민들은 나누고 싶은 생산물을 내놓고, 필요한 이가 가져간다. 누가 내는지, 누가 가져가는지 알 수 없다.
또 협동조합에는 목공교실이 있어 할배, 할매들이 쉴 의자를 만들어 마을 입구 곳곳에 가져다 놓았다. 요즘은 공유 작업실 테이블도 만든다.
죽곡에는 목요일마다 빵 굽는 꼬순내가 마을에 퍼진다. 마을빵집카페를 조합에서 만든 것. 이 빵집은 빵과 차를 팔고, 지역아동센터나 노인주간보호센터, 반찬나눔에 빵나눔도 한다.
협동조합에 함께하는 죽곡면 주민자치회는 명실상부한 주민 자치의 장이다. 주민들이 다양한 위원회를 꾸려서 마을의 일을 결정한다. ‘마을 119’를 꾸려 노인들의 선풍기나 보일러를 고쳐드리고 병원에 동행한다. 아이들이 마을의 농민에게 농사를 배우고, 선주민들이 귀농귀촌인으로부터 도예와 수지침, 국선도와 태극권, 요가를 배우는 장면은 일상이다.
협동조합과 마을자치회가 함께 가을에 여는 마을잔치, ‘토란도란 마을축제’에는 토란깍기 대회, 할매들의 출렁다리 걷기, 농민들이 손수 요리하는 음식 경연 등이 펼쳐진다. 죽곡에서는 예술을 누리러 외부로 나가지 않는다. 예술단이 각 마을을 돌며 공연한다. 이름은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지만 자그마치 노인부터 초등학생까지 50~60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대형 예술단이다.
농한기가 되면 ‘농민 인문학’이 열린다. 밀양할매들의 송전탑 싸움을 이야기하고, 인공지능시대를 논한다. 죽곡초 아이들과 생태영상 수업에서 출발한 ‘섬진강마을 영화제’는 사람과 사람, 비인간 동물을 잇는 연결망을 영화로 조명해왔다. 올해로 4회차인 영화제는 전국 각지에서 1천 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드는 영화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주민자지회, ‘마을119’ 꾸려 선풍기‧보일러 고치고 병원도 동행 토란도란 축제, 예술단, 농민 인문학, 섬진강마을 영화제…북적이는 마을살이
호미: 아무리 기후위기 같은 상황에서라도 농사는 그래도 결실을 내는데, 농촌에서 그것도 인구도 적고 궁벽한 마을에서 마을활동하는 건 쉽지 않지요?
잎싹: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냥 그때그때 만족해요. 단순해서 아주 작은 데 만족하니까. 일희일비해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그게 성공한 거 아니에요? 오늘도 반찬 나눔하는데, 다들 되게 좋아들 해요. “오늘도 참 재미있게 잘했어!” “우리 척척 잘 맞아.” 하면서요. 1년에 한두 번, 몇 번은 할 수 있지만, 4년 동안 매주 안 빠지고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같은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다는 거, 나한테는 그게 제일 큰 거지요.
찾아가는 마을 음악회도, 한 달에 한 번 지역을 돌거든요. 이게 지역마다 이슈가 돼요. 벌써 16회째 하니까, 음악회가 오면 우리 마을에서는 뭘 해야 되는가 고민하는 마을 이슈가 됐다는 것만도 큰 거지요. 작은 죽곡이라는 지역에, 음악회 참여자만 50~60분이 움직이는 것도 대단하잖아요. 공연자, 할매들, 강빛마을 중창단, 풍물패, 죽곡초 아이들까지 하니까요.
호미: 죽곡 인구가 2천 명이 안 되고, 65세 이상 비율이 40%가 넘는 초고령화 지역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대규모 음악단이로군요.
잎싹: 지역에서 예술단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조직되어있는 건 쉽지 않지요. 연습도 열심히 하세요. 평소 개별적으로 연습하다가 음악회를 갈 때는 이제 싹 모여서 연습하죠. 동아리 활동만 했던 팀들이니까 자유롭게, 편하게 하시더니, “이제 우리는 무대 서는 거야.” 하면서 약간씩 전문가적 마인드들이 생기셔서, 공연비 조금씩 받으신 걸 모아가지고 의상들도 쫙 맞추시고. 이제 무대가 굉장히 고급져졌어요.(웃음)
호미: 죽곡에 빵팀도 있더라고요? 잎싹 페이스북 보니까 설날에 “조합원에게 좋아하는 빵 두 가지 얘기하라”고. 그렇게 선물하기 전에 미리 좋아하는 빵을 물어서 만들어서 선물하는 모습 보고 흐뭇했어요.
잎싹: 빵팀은 독립해서 새로 마을기업을 할지, 협동조합을 할지, 그걸 어떻게 책임질지,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도 좋아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는 게. 다른 팀들이 헐거운 조직이라면, 빵팀은 촘촘한 조직이에요. 여기는 서로 잘 알아야 되고 굉장히 잘 준비해야만 실수 없이 가는 거니까. 지역에 그런 여러 가지가 얽혀 있죠.
호미: 다양한 모습으로 얽혀 있다는 게 마을을 만드는 힘이네요. 이분들이 이곳저곳에서 꾸준히 활동하시는 동기가 뭘까요?
잎싹: 봉사하는 게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처음에 협동조합원으로 참여했다가 ‘나는 여기 조합하고 안 맞아’ 하고 나간 부부도 반찬나눔은 계속 오셔요. 생활개선회나 의용소방대 이런 데서도 함께 하시는데요. “오늘은 생활개선회가 하는 날이에요” 하면, 다 같이 오세요. 단체 조끼 입고 모두 오셔서 반찬 같이 만들고, 밥 먹고, 배달까지 하셔요. ‘지역 안에서 우리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하는, 자기 조직에 대한 자부심, 성취감 같은 걸 느끼세요. 뭔가 대단한, 촘촘한 구속력은 아니지만, 함께한다는 마음은 갖고 싶은 것 같아요. 헐겁고 느슨한 소속감 같은 걸 공유하고 있지요. 편해요.
잎싹: 난 사실은 풀뿌리, 풀뿌리 하는데 풀뿌리가 무서워요. 어떨 때는 농사지어 보면 풀 뽑아봤잖아요. 특히나 바랭이 같은 이런 뿌리들은 이게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촘촘하고 섬세하고 그렇거든. 그냥 강한 게 아니에요. 어떤 의미로 보면 더 약하지요. 그게 무서운 거지. 엄청나게 촘촘하게 나 있거든요. 우리 옷감 짜는 거는 저리 가라니까. 이건 질서도 없이... 근데 그게 흙을 꽉 쥐고 있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인 거잖아요. 풀뿌리라는 말,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게 참 무서운 힘이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사는 게 그런 거 같아요. 경제적인 효율의 개념으로 보면 농촌에 살 이유가 없잖아요. 근데 그 땅하고 사람의 관계는 그 효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성이 있어요. 오전에 잠깐 밭 매는 게 시간당 만 원의 가치 절대 안 나오지요. 그렇지만 이 작물하고 나와는, 내가 생명을 심은 거고, 이 생명을 잘 키워낼 의무가 있고, 경제적 가치가 있건 없건 서로 이렇게 키워내 주고 돌봐주는 관계가 있는 거지요. 지금 농촌에 사는 이 사람들이 물론 못 떠난 사람도 있지만, 떠나지 않고 그런 마음으로 지켜온 거지요.
호미: 땅과의 관계성이 농촌마을활동의 가장 중요한 공유지점이네요. 도시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기도 하고요.
잎싹: 그래서 농촌마을운동이 ‘농(農)’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농 중심이라고 볼 수는 없고, 농사를 안 지어도 활동의 중심에 농을 두고 있으면 농 중심의 삶이라고 봐요. 공모사업을 하다 보면 이게 운동이고 동시에 사업이거든요, 운동과 사업이 경계가 모호한데, 중심에 농적 가치가 없으면 순간 다른 데로 훅 가버려요. 활동가가 아니라 사업자가 돼버리는 거죠.
사회적 농업이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보자고 하는 거거든요. 농업이 우리 먹거리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먹거리 안에도 다양한 사회성이 있고, 땅과 생태계를 보존하고, 농촌 자체를 지속가능하게 하거든요. 씨앗 하나 안에 엄청난 공동체가 들어있듯이, 농은 그 자체가 공동체예요. 그걸 기본으로 삼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죠. 농촌에 의료, 복지, 문화, 교육 등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 농사가 있다는 거죠. 농사를 짓는 사람이, 꼭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 중심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교육, 문화, 복지 모든 영역에서 견인해 가는 거죠.
농업은 먹거리 생산만이 아니야…씨앗 안에 공동체가 들어있다 농촌이 식량기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사업가 아닌 활동가’ 필요해
호미: 사회적 농업의 핵심에 농(農) 중심 가치가 있군요.
잎싹: 그래요. 사회적 농업이 어려운 누군가를 돕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이 농촌의 구성원이고, 우리 지역과 농촌을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게 애쓰면서 살아온 사람이야. 이 사람을 내가 조금이라도 돕는 것은 이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일이야.’ 그런 소속감 같은 것들이 조금이라도 몸에 배어들면, 이건 그냥 뚝 뽑히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삶들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관계와 시간들, 고민들 이런 게 다 들어있는데, 그 삶들을 자로 재고 줄 세울 수 없지요.
지금도 현재 곡성군의 인구 중에 읍 인구는 안 줄어들어요. 오히려 늘어요. 면 단위 인구가 확확 줄지요. 면 인구가 읍에 아파트가 생기면 거기로 다 들어가요. 면 단위 학교가 학생이 없으니 열악해지니까 다 읍으로 가요. 읍에 갔던 사람들이 이제 조금 더 지나면은 인근 도시로 가고… 이게 순서에요.
호미: 지역소멸, 생활사막, 이런 담론을 마을에서 절감할 수밖에 없겠네요.
잎싹: 농촌이 공동체의 원형이고 자치경험도 축적되어있지만, 이게 너무 오래전 일이고 좌절감들이 너무 커서, 누군가 좀 먼 데를 가리키면서 끌고 가야 되죠. 끌고 가는 사람들도 다 지쳐버리고 나가떨어지고 하는 판국이에요. 우리 이장님 말이, 공동체는 허상이라고, 지금 만들어내야 되는 거라고…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어요. 농촌의 문제를 멀리 보고 함께 해결해낼 수 있는 활동가가 있어야 돼요. 마을에 사는 마을활동가, 촉진자가 꼭 있어야 돼요. 그게 누구든 간에. 그냥 둬서는 자치력과 공동체성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건 없어요. 제도적으로 지원 안 하면… 지금이 마지막 시기라고 봐요. 그것조차 없으면 여기는 그냥 무력하게 무너지는 거죠.
기득권, 자본 세력은 농촌 공동체가 유지되는 거 원치 않아요. 계속 효율성을 기준으로 통합해 나갈 거고, 농촌은 그냥 식량기지가 되어버리겠지요. 그거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제시하고 끌어갈 수 있는 걸 지금 만들어야 하는 거죠. 자치다, 돌봄이다, 교육으로도 보기도 하고… 다양하게 얘기는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의 중심은 사람이죠. 사람이 있어야 되죠.
활동할수록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거에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돼요. 나 혼자서 내가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서 그걸 만들어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누구도 혼자서는 절대 안 돼요. 우리 면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는 도서관하고 강빛마을에 있어서 가능했다고 봐요. 강빛마을에 귀농하신 분들, 정상희 쌤, 고광덕 쌤, 고진석 쌤, 이분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잘 연결됐던 거지요.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가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지요. 가면서 만난 사람들과 연결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호미: 잎싹의 이야기를 들으니, 선주민들이 농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또 농적 가치를 가지고 내려오려는 귀농귀촌인 한 분 한 분도 소중하게 여겨져요. 그런데 귀농귀촌인들은 ‘돈 없이 내려가지 말라’는 조언을 받고 있어요. 잎싹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잎싹: 돈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돈 가지고 와도 괜찮죠. 근데 그 돈 지키려고 하고, 성공 사례들을 찾아다니면 농촌에 와도 귀농을 못하는 거지요. 돈이 없거나, 경험이 없다고 두려워할 일은 없다고 봐요. 귀농까지 감내할 사람이면 못할 건 없지 않을까요?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 지원하는 지자체의 제도가 마중물 돼
호미: 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줄탁동시(啐啄同時) 해야겠어요. 안에서는 알을 깨려는 노력을, 관계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고, 밖에서는 알을 톡톡 두드려 줄 어떤 공적 지원들이 같이 돼야 하고요.
잎싹: 독일에서 농업회의소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했어요. 귀농인이 오면 그 사람에게 농부가 될 수 있는 여러 조건, 농지뿐 아니라, 사람들하고 관계 맺고 살게끔 1, 2년 동안 지원을 해 준다고 해요. 그 사람이 잘 정착해서 관계를 맺고 농부로서 연착륙을 하면 농부 자격증을 준대요. 자격증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마을살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업들도 필요하지요.
또, 청양군 사례도 멋있는 게, 마을만들기 주민자치회, 마을공동체, 마을 교육공동체까지 다 통합해서 지원을 해요. 통합지원센터를 민간에 위탁해서 민간이 운영해요. 그래서 마을 만들기를 하겠다 하면, 그걸 기반으로 해서 다른 것들도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마을은 활동가를 파견해 마을자치할 여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하거든요. 군의회에서는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군에서는 예산을 배정해 주민자치회나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가 마을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보통 1억2천 정도씩 면 단위에 세워주니까 그걸 가지고 우리 면을 위해서 우리는 뭘 할까 논의하죠.
내가 본 시스템 중에서는 청양의 시스템이 가장 멋있어요. 마을 안에서 마을 주민에게 위탁한 센터를 통해, 마을로 연결해 주는 통로를 만들어낸 거죠. 그래서 읍면 단위 자치와 공동체 돌봄에 대한 논의들이 3~4년 전부터 많이 확산되고 있어요. 그걸 우리가 ‘풀뿌리 공동행동’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저도 처음 귀농했을 때 나름 스스로 잘 짜여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왔거든요. 나는 어느 정도 농촌사회도 이해하고 있고, 이걸 어떻게 꾸려 변화시켜야 될 거라고 나름대로 이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촌은 그런 걸 대입해서 딱딱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곳이 아니에요. 농촌사회라고 하는 거는 언제든 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고 또 새로 만들어지고 할 수 있는… 생물이에요. 도서관이 생물이듯이요. 토양에 따라, 어떤 씨앗이냐,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게 자라고 농민이 거기에 맞춰 작물을 길러내는 것처럼요.
호미: 나도 역시 농촌을 시스템화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하는 게 훨씬 더 많은데 말이죠. 제도나 정책들이 생물인 농촌을 쫓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잎싹: 그렇죠. 하지만 사회적 농업이나 농촌경제사회서비스 같이 사회적 의제를 만들고, 그에 맞춰 공모사업이나 프로젝트가 제도화되어서 우리를 성장할 수 있었던 마중물이 되었죠. 그런 틀이 어느 정도 방향을 잡게 해줬고, 먼저 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서 따라해보기도 하고, 우리에 맞게 바꾸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고요. 때로는 시스템이 갑자기 붕괴돼버리기도 했죠. 윤 정부 시절이 그랬던 것 같고… 그래도 이미 생물들이 이렇게 촘촘히 연결돼 있으면 밑이 붕괴되더라도 바로 무너지지 않고 흔들흔들하면서 위에 떠 있듯이 부유하기는 하니까요. 이제 다시 좀 뭔가 판을 짜려고 하는 시기인 것 같고요.
호미: 마을활동하면서 목표가 있다면요?
잎싹: 어떤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니까 오늘도 그냥 같이 시시덕거리면서 별 시덥지 않은 농담도 하고, 만나면서 “아이고, 저 사람 저런 면도 있네, 참 괜찮은 사람이네.” 하고, 같이 밥 먹고, 연결하고, 필요하다면 자원을 찾아 매칭하고, 특별한 사업이나 기획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에요.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 평화로운 것만도 아니고, 싸우기도 하고, 진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도 또 만나면 응, 왔어, 어째… 하면서 밥 먹고 이게 삶이에요. 작년에도 그렇게 살았고 올해도 그렇게 살고 내년에도 별일 없으면….”
[필자 소개] 호미. 한국양성평등교육원 농촌성평등 강사,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에서 영감을 얻었다) 드러내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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