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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현지의 미식 요리가 입안에서 녹는 듯한 느낌을 맛보고, 마음속 주름을 간지럽히는 여성들의 깊은 관계에 몸부림치고, 경쾌하고 묘한 대화에 가슴이 뛰는 사이사이로 대만 역사의 심연이 보인다.
대만의 소설가 양솽쯔(楊双子)의 작품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1938년, 일본 식민지배 하의 대만을 무대로 일본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대만의 통역사 첸허가 대만 종단철도로 여행하며 미식 요리에 입맛을 돋우는 『대만 만유철도의 두 사람』(미우라 유코 역, 주오코론샤, 2024. 한국에는 “1938 타이완 여행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됨).
또, 신작 『사유가(街) 1호에 사는 다섯 사람』(미우라 유코 역, 주오코론샤, 2025. 한국에는 “쓰웨이가 1번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됨)은 식민지배 하에 세워진 일본식 건물의 셰어하우스에 다섯 명의 현대 여성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발견한 백 년 전 대만요리 레시피 책을 재현하면서 마음을 터놓게 되는 내용이다.
『대만 만유철도의 두 사람』에서 치즈코는 첸허와 깊은 사이가 되길 바라지만, 둘 사이에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가져온 뛰어넘기 힘든 거리가 있다. 또 다양한 소수민족 그룹과 다른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유가 1호에 사는 다섯 사람』 속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특히 양 작가와 같은 세대인 셰어하우스 집주인의 이야기는 “우리 세대가 느끼는, ‘대만인이란 대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모순과 갈등”을 투영하고 있다.
여성 주인공이 여성들과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백합’
양솽쯔 작가가 ‘소설로 먹고 살겠다’고 생각한 것은 열네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양 작가는 쌍둥이 여동생 양루오와 함께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열네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집을 나가면서 뒷바라지를 해줄 어른이 사라졌다.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으니, 소설을 읽거나 쓰는 일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처음에 쓴 것은 이성애 로맨스 소설. 저와는 상관없는 엘리트 간의 연애 이야기를 많이 썼어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비슷한 시기, 자매는 책 대여점에서 일본의 BL(Boy’s Love) 만화를 접하고 빠져들었다. 그리고 20대 초반, 여성들 간의 연애를 그린 ‘백합’을 만난다. “BL의 독자는 거의 이성애자 여성이었기 때문에 저 역시 이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처음으로 여성과 사귀고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한 후에는 저와 가까운 백합을 쓰게 됐죠.”
1980년대부터 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며 다수의 성숙한 작품을 배출한 ‘여성 동지문학(레즈비언문학)’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백합’. ‘쌍둥이식 백합’이란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과 여성의 사이에 다양한 그라데이션이 있는 관계와 인연 가운데 각자가 성장해나가는 것’.
“그때까지는 남성이 주인공인 성장 이야기밖에 없었어요. (여성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가) 없다면 내가 쓰자, 했죠. 저보다 어린 세대 독자들이 읽게 하고 싶었어요.”
양 작가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대를 포함한 ‘대만의 역사’도 쓴다. “1945년에 대만에 국민당이 들어온 후부터 학교에서는 ‘중국의 역사’만 가르쳤기 때문에 부모 세대는 일본 식민지배 시대를 몰라요. 2000년 정권교체 후,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간신히 대만의 역사를 배웠죠. 그리고 2014년의 ‘해바라기 학생운동’(대만 학생들이 주도하여 중국과의 무역협정 강행에 반대하며 벌인 대규모 시위로, 대만 민주주의와 시민참여의 전환점으로 이야기된다)의 영향도 받아 대만의 이야기를, 대만의 역사를 쓰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양 작가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대만 요리와 미각도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열다섯 살 때부터 대만식 닭튀김집과 빵집에서 일하며, 식재료가 ‘음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쭉 봐왔기 때문에 동 세대보다도 먹거리에 관해 잘 아는 데다가 흥미가 있어요. 소설가가 되면 써먹어야지 했었어요.”
사실 ‘양솽쯔’(楊双子)라는 이름은 한자로 ‘양 쌍둥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여동생 우루와의 공동 필명이다. 동생이 역사 고증과 일본어 문헌의 번역을 맡았고, 언니인 루오즈가 스토리를 담당하며 함께 ‘역사백합소설’을 창작했었다. 하지만 2015년에 여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동생이랑 같이 창작을 하고 있어요. 동생이 만들어둔 일본 식민지배 시대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는데, 거기에 당시의 복장이나 식문화 자료를 참고하죠.”
올해 1월, 뒤죽박죽 상태인 대만의 국회에서 최대 야당인 보수계 국민당이 문화예산의 대폭삭감과 동결안을 가결했다. 양 작가는 3월에 국회의원의 파면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대만 만유철도의 두 사람』이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얻게 된 저의 지명도를 이용해 대만 문학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38년간 이어진 계엄령(1949년~1987년 세계 최장기간 계엄령으로 기록됨) 동안, 작가가 정치에 관해 쓰는 데는 리스크가 있었죠. 이번에 국회의원을 파면시키지는 못했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1,043명이나 되는 작가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 사실은 대만 문학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계엄령이 해제된 지 38년이 된 올해, 우리가 계엄령의 그림자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번역-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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