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상담 노동자, 3교대 ‘오프’가 쉬는 날인가요?

[나의 노동기]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자리에서

박은영 | 기사입력 2026/01/05 [10:52]

여성상담 노동자, 3교대 ‘오프’가 쉬는 날인가요?

[나의 노동기]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자리에서

박은영 | 입력 : 2026/01/05 [10:52]

“여성긴급전화1366 서울센터입니다.”

 

상담을 시작하면 하루에도 열 번에서 스무 번 이 문장을 반복해서 말한다. 그때마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담자에게 덜 다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살피면서 상담을 이어간다.

 

1366은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번호다. 전국 17개 지역에 19개의 센터가 있다. 나는 1366 서울센터에서 3교대 상담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시간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공기처럼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1366도 언제든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그 목소리에 답할 수 있는 한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자부심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가난’한 ‘여성’이라는 나의 사회적 소수자성은 나로 하여금 ‘괜찮은 사람,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탕씩 뛰며 버텼다. 몸은 점점 망가졌고, 그렇게 일해도 돈은 늘 부족했다. 피곤한 몸과 부족한 시간 속에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잠깐 멈춰서 돈을 벌고, 다시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일터를 찾게 되었다. 나에게 직장은 자아실현보다 생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첫 직장으로 얻은 곳이 장애 ‘인권’을 말하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활동가라는 이름을 처음 달았다. 활동가는 개인이 겪는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부적응을 탓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일을 함께 도모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의 당사자성에 관한 질문도 깊어졌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내 삶에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 2018년 수원여성의전화 활동 당시 ‘미투 집회’에 참가했을 때. (사진-박은영 제공)


성차별적인 사회를 인식하게 되고, 여성의전화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두 번째로 구한 직장이 수원여성의전화였다. 소수자로 살아온 경험,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인권 감각이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 입사 즈음 2018년 미투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이야기되고,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울려 퍼질 때, 나는 그 현장 한가운데 있었다. 그 시간은 내게 너무 소중했고,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의 의미와 무게를 온몸으로 배운 시기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늘 발목을 잡았다. 나의 삶의 주 터전은 서울이었는데, 수원까지 출퇴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를 감당하더라도 1인가구 여성으로 자립하여 살아가기에는 급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4년쯤, 건강과 생계를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다.

 

2022년 3월, 다음 선택한 곳이 지금의 1366 서울센터다. 수원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며 절감했던 ‘여성폭력의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1366이 현장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1366은 성평등가족부와 지자체가 위탁·운영하는, 공적 안전망에 가까운 기관이다 보니 인건비가 예산 기준에 따라 책정된다. 비교적 안정된 보수 체계를 갖추고 있어 나의 생계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365일 데이-이브닝-나이트-오프-데이 반복되는 시간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연속 휴일이 있었으면…”

 

잠을 자다 핸드폰을 본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악! 화들짝 놀라 급히 세면실로 향하는데 이상하게도 밖이 밝다. 다시 핸드폰을 확인한다. 오전 5시가 아니라 오후 5시다. 나는 혼자 쓴웃음을 짓는다.

 

1366 서울센터의 근무는 365일 데이–이브닝–나이트–오프(아침 퇴근)–데이…가 반복된다. 실질적 휴식은 없다. 피로 누적으로 잠을 자다 시간을 착각해 출근하려다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동료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웃프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1년 조금 넘게 3교대 근무를 버티다가 갑자기 하혈을 했다. 병원에서 심한 치질 진단을 받았다. 한 달에 7~8번 밤을 새는 무리한 근무 시간표가 만든 결과일까? 급하게 수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연속 휴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혹자가 듣기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절박한 요구였다. 지금의 오프는 ‘쉬는 날’이라기보다 밤샘 후 쓰러지듯 누워 있는 시간에 가깝다. 이틀만 온전히 쉴 수 있다면, 그 사이에 겨우 몸과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술 후 2~3일이 지났을까, 배가 아프고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다. 자궁내막증에 8cm짜리 혹까지 발견돼 난소와 나팔관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내 뱃속이 염증으로 차 있었다. 생애 첫 수술을 받고 2~3일 만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문제는 내 체력이 아니라 사람 몸을 갈아 쓰는 근무 구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급 병가가 없어서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한 뒤 무급 병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수술비와 생활비를 동시에 걱정해야 했다. 병가 이후, 그해 남은 몇 달은 연차 없이 매일 같이 출근하며 버텼다.

 

1인가구 여성인 나는,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연로한 엄마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하고, 월세를 내고, 먹고, 배우고, 내 몸도 돌봐야 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의 대가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 일의 가치만큼 처우가 따라오지 못한다. 돌봄과 생계를 함께 책임지는 여성의 삶이 구조적으로 저평가된 채, 늘 간신히 버티는 쪽으로만 밀려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일해도 소진이 먼저 찾아오는 이 자리에서, 도대체 언제쯤 나의 삶이 생계와 건강 문제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을지 자꾸 되묻게 된다.

 

▲ 여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은 정작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우리는 2025년 3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1366서울센터 분회장(오른쪽)과 함께 서울여성프라자에 붙어 있는 대자보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박은영 제공)

 

여성의 삶도, 노동도 ‘소모품’ 취급받지 않는 사회를

 

사실 1366 서울센터 상담노동자로 근무하며 건강권이 보장되지 않는 무리한 근무시간의 문제만 겪은 게 아니다. 센터장실 문을 두드려 인사를 해야 하는 반복된 예절 강요, CCTV를 통한 노동자 감시와 통제, 직장 내 괴롭힘을 눈감는 조직문화 등에 부딪혔다.

 

그러나 언제든 1년 단위 계약 만료를 통보받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그 부당함을 알면서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지만, 정작 나와 동료들의 몸과 권리는 늘 뒤로 밀려났다.

 

2025년 3월, 우리는 서로를 붙잡으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1366서울센터 분회를 만들었다. 9개월간의 교섭 끝에 지금은 쟁의권을 얻어 투쟁 중이다. “이제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는 대신,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함께 말해 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 2025년 12월 26일, 1366 서울센터 여성상담노동자들의 요구안을 피켓에 적어 거리 선전전을 했다. 가운데가 필자. (사진-박은영 제공)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키는 일을 하며, 정작 내 몸과 삶이 얼마나 쉽게 소모품 취급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노동을 값싸게 쓰고 침묵을 요구해 온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동료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말하고, 멈추지 않고 싸우기로 결심했다.

 

1366이라는 번호를 지키는 이들의 건강과 권리가 존중받는 순간부터, 비로소 이 사회는 여성의 삶을 진짜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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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부 2026/01/15 [14:45] 수정 | 삭제
  • 과거 1366 서울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입사 당일부터 이상했던 기억이 있네요. 센터장실 아침인사, CCTV감시는 그 당시에도 있었는데 기사에서도 언급되어서 놀랐습니다. 저는 이상함을 깨닫고 그만두었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할 생각은 하지 못했네요. 정말 힘들고 지난한 싸움이었을텐데 용기내신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누군가는 끊어야할 고리였지요. 비록 저는 하지 못했지만 그 시작을 하신 필자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호미 2026/01/08 [10:36] 수정 | 삭제
  • "이제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는 대신,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함께 말해 보자" 귀한 말씀과 실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에 꼭 안아봅니다.
  • 2026/01/06 [13:46] 수정 | 삭제
  • 일하는 사람의 근로환경이 존중되지 않는 곳에서 더 밀도있는 상담을 하기가 어렵죠. 갈아넣어 일하고 있는 환경 더이상은 안됩니다.
  • 이긴다 2026/01/06 [13:44] 수정 | 삭제
  • 3교대 근무...그거 정말 몸이 견디질못하죠. WHO에서 야간교대근무를 발암물질로 규정했다는 기사를 본적있어요. 열악한 환경에 부당한 조직 어떻게 이겨내야할까요... 응원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조금의 동력으로 쓰시길
  • 지누 2026/01/05 [20:49] 수정 | 삭제
  • 저도 아침에 퇴근해봐서 아는데 진짜 그날은 그냥 자는 거죠. 시간 개념이 깨져서 밤에 더 피곤해져요. 공기관이 여성들 갈아넣는 노동조건 만들지 못하게 해주세요.
  • 1366 2026/01/05 [20:17] 수정 | 삭제
  • 제2의 서울센터가 많아요.. 전국연합체가 되어야 이 제도가 바뀔것 같은데... 언론에 아무리 아야기를 해도 들어주지 않네요..ㅠㅠ
  • 210 2026/01/05 [16:42] 수정 | 삭제
  • 1366서울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저이기에 이글이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센터장님은 여전히 직원감시 그리고 1년단위로 직원 자르고 충원 못하는 것을 여전히 하고 계시는 군요. 야간근로에 대한 1.5배 휴식권이 주어줘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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