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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치인들의 갑질, 부정청탁, 뇌물수수 등의 의혹과 비리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역시 저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와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면?’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나와 닮은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장혜영: “저랑 닮은 사람이 국회에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위로가 돼요.” 2019년 말, 30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된 후 시민들로부터 종종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슬아 작가가 저의 후원회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장혜영 의원 후원회장이 이슬아 작가라는 소식에 길길이 뛰며 신기해하는 중. 너무 좋다’, ‘이걸 지켜보면서 뭔가 굉장히 내 마음에 짜릿한 게 있다’, ‘의회정치가 가깝게 느껴진다’, ‘너무 신선한 콜라보다’… 대부분은 2030 여성들의 반응이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해하고 반가워했습니다. ‘SKY 50대 남성’으로 요약되는 대한민국 국회에 난데없이 등장한 2030 여성 흙수저 국회의원과 후원회장 콤비는 우리를 닮은 사람들을 술렁이게 했습니다.
‘나와 닮은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질문 앞에서 저는 이 술렁임을 떠올립니다. 이 술렁임을 이해하는 일은 곧 저에게 주신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일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럼 차근차근 접근해볼까요.
우선은 ‘나와 닮은 사람’이라는 말을 곱씹어보고 싶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과 제가 서로 닮았다면, 과연 무엇이 닮은 것일까요? 금방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특징들입니다. 성별, 연령, 학력, 학벌, 지역… 이런 특징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직관적인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낍니다. 같은 여성, 같은 2030세대, 같은 학교 혹은 출신지역…. 이런 공통점은 그 자체로 강력한 집단정체성이 되어 소속감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같은 2030 여성이라면 우리는 서로 닮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닮을 수 있는 것은 또 있습니다. 바로 정치적 의견과 관심사입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권리,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신념…. 이것들은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와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성별, 연령, 학력 같은 특성이 다르더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학교를 다니고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닮은 존재들이고, 그러므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치와 신념은 태어나면서 타고나는 특성들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굳건한 뿌리가 됩니다. 반대로 성별, 연령 등의 특성들이 비슷하더라도 세상을 대하는 가치관과 정치적 의제의 우선순위, 논쟁적 사안에 대한 의견에 따라 우리는 서로 닮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
우리가 서로 무엇이 닮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으니, 이제 ‘정치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볼 차례입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선거에 출마하는 것?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 여러 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 정치인이 되는 일의 핵심은 공적 대표성과 결정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힘, 정확히는 ‘결정하는 힘’에 관한 일입니다. 일본의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는 정치란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제가 무엇인지 정하고, 이에 관한 구체적 결정을 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한다는 것, 혹은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사람들을 대표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선거는 결정권과 대표성을 부여하고 획득하는 장치입니다. 정치인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외치는 사회적 변화의 내용이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를 위한 것임을 시민들 앞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변화가 공동체의 이익임을 설득하고 증명하여 실제로 그것을 결정할 힘을 획득하고 실행해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국민을 닮지 않은 국회
그러면 ‘나와 닮은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에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이미 나와 닮은 정치인이 다수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이것은 ‘SKY 50대 남성’의 국회를 바라보는 SKY 50대 남성의 관점이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아직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낙태죄 폐지 이후 대안 입법은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직접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제가 살면서 경험한 한국 정치 생태계에는 저와 비슷한 성별이나 연령을 가진 사람이나 저와 정치적 의제의 우선순위와 신념이 비슷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주위에 있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정치적 다수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이러한 정치적 환경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0대 남성 정치인이 국회에 많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늘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줄어든다면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나를 대표해 정치공간의 다수를 차지하며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이러한 상황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일상이고 보편이며 평범한 상태입니다.
나와 닮은 정치인이 아예 없거나 소수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은 다릅니다. 이런 관점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애초에 ‘정치’ 그 자체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도 나와 닮은 정치인이 소수이거나 없는 상태 그 자체에는 익숙합니다. 어차피 정치는 늘 그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정치는 힘이고 기득권입니다. 오랫동안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려온 사람들일수록 정치는 투쟁의 대상이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저는 이러한 체념과 분노, 자조의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감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 국회 정론관이 자기자신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단상과 마이크가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국민 안에 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살려달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거리에서 국회 밖에서 아무리 외쳐도 정작 국회 담장 안에서는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1대 국회의원선거에 나선 저의 출마선언문 일부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정치의 과소대표성’이라는 딱딱한 단어로 차마 다 표현되지 않는 정치적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이 사회에는 무수히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정치제도를 통해 대표성을 갖고 활동하는 정치인들은 그 다양성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국회는 ‘국민을 닮은 국회’가 아닙니다. 이 나라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22대 국회 내 여성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역대 국회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자신을 성소수자라 밝힌 국회의원은 헌정사상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등록장애인 기준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지만 22대 국회의 장애인 비율은 단 1%에 불과합니다.
존재의 다양성이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하는 현실은 곧 의제의 다양성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현실과 이어집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도에 정부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1차례나 발의되었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국회에서 법안심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22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비동의 강간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모두가 소리 높여 말하지만 국회는 신공항 특별법들을 속속들이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매년 예산 처리 시기마다 나라 곳간이 비었다고 언성을 높이지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공평과세의 원칙에 따라 모든 금융투자소득에 일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는 국회 문턱을 넘었다가 결국 도로 폐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철저히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소수에 대한 존중과 다수결이라는 두 바퀴에 의해 굴러간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수가 선’이라는 강변을 늘어놓으며 정치적으로 자신의 대표를 갖지 못한 시민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내 삶도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정치환경에서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들이 ‘나와 닮은 정치인’을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 그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를 닮은 정치인이 나타나 공론장의 마이크를 잡고 내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술렁입니다. 귀를 기울입니다. 당연합니다. 내 삶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 중에도 나와 닮은 사람이 있구나’라는 말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대표성의 불평등 문제를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이것은 과소대표되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대표라고 느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생경함과 반가움의 탄성이며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자각의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결정하는 것은 어차피 내가 아니라 남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애초에 내 삶의 문제는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없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그 향방을 결정하는 일에 나는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를 닮은 사람이 정치의 무대에 등장해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공적인 문제이며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변화를 향한 새로운 상상이 시작됩니다. 정말 그럴까? 내 삶도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을까? 정치를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까?
“저는 2024년 총선에 혜영님이 지역구로 출마하실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세를 들으며 우리를 신경 쓰는 정치인이 실존한다는 것이 그 때 확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이후 망원정x가 생기면서 ‘정치가 이렇게 일상에 가까이 들어올 수도 있는 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탄핵 정국에 비상행동의 주도아래 광장에서 어느 정도의 세이프 스페이스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어쩌면 실질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의 2026년 목표는 ‘와이프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세계의 도착을 앞당기기 위해’ 좀더 직접적으로 활동해보는 것입니다.
여전히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정치가 뉴스를 가득 차지하는 새해입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폭발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지금껏 정치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정치적 주체로 또렷이 호명하는 정치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일 수도, 망원정x에 그날 모인 사람들일 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정치인을 원하나요? 1992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술가이자 활동가인 조이 레너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하여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1992년 미국 대선에서 군소 후보로 출마한 아일린 마일스를 지지하기 위해 쓴 글 중 일부)
[필자 소개] 장혜영. 21대 국회 정의당 국회의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이자 동명의 책을 썼다. 현재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자 비영리단체 ‘망원정x’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내용에 관한 질문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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