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이 우리에게 남긴 한 마디,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다큐멘터리 〈남태령〉

권오연 | 기사입력 2026/06/16 [10:12]

남태령이 우리에게 남긴 한 마디,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다큐멘터리 〈남태령〉

권오연 | 입력 : 2026/06/16 [10:12]

6.3 지방선거가 막 끝났다. 대통령을 탄핵했던 겨울의 광장이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데, 그곳에서 우리가 꿈꾼 변화된 미래가 지금 이곳이었나 싶어서 씁쓸해졌다. 그러던 중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남태령〉을 만났다.

 

2024년 12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의 탄핵 집회는 더이상 ‘촛불 집회’로 불리지 않았다. 민주 시민의 상징이었던 촛불은 ‘응원봉’으로 바뀌었고, 민중가요와 투쟁가는 K팝 플레이리스트로 채워졌다. 집회 문화의 이 상징적인 변화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광장을 채웠던 2030세대, 여성, 성소수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낸 많은 이들의 등장에 기성 세대들은 신기해했고, 기특해했다. 하지만 변화의 의미가 고작 ‘기특하다’라는 말로 축약될 때, 응원봉과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집회를 꾸미는 장식에 불과한가 싶어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태령〉은 응원봉으로 상징되었던 광장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영화이다.

 

▲ 2025년 12월 21일 남태령 집회 현장의 모습. 영화 〈남태령〉 스틸컷.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연대

 

경남 MBC에서 제작한 〈남태령〉은 〈어른 김장하〉를 만든 김현지 PD가 제작한 두번째 극장 다큐멘터리이다. 〈어른 김장하〉는 윤석열 파면을 선고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문형배 판사가 출연했다고 알려지며 탄핵 이후 큰 인기를 얻었고, ‘좋은 어른’이라는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존재를 담담하게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김현지 PD는 영화의 인기를 지켜보며 ‘시청자들이 한 명의 위대한 인물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취재를 위해서 남태령 대첩의 밤을 함께 경험하게 되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연대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영화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요즘 사람들’의 연대를 통해서 세대, 계급, 젠더 등 다양한 정체성을 횡단하는 교차로로서의 광장에 주목한다. 실제로 광장을 채웠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익명으로 계정을 운영하는 것에 익숙한 트위터(엑스)의 방식을 존중하는 인터뷰 스타일과, 여론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금방 휘발되어 버린 140자의 트윗들, 그리고 집회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유발언 영상 등 흩어져버린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러모아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식적인 기록으로 엮어냈다.

 

▲ 다큐멘터리 〈남태령〉 (2026, 김현지) 포스터


동짓날, 가장 긴 밤의 남태령

 

그 잊지 못할 밤은 트위터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한창일 때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은 트랙터 대행진을 계획했다. 12월 16일에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트랙터들은 12월 21일 토요일에 서울로 진입해 예정되어 있던 윤석열 퇴진 비상행동 집회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랙터 대오는 서울로 들어가는 초입 남태령에서 경찰 병력에 의해 가로막혔다. 농민활동가 전주환 씨는 농민들이 식량주권과 농정 대개혁을 요구하는 트랙터 상경 투쟁을 할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또 잡혀가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전농의 스피커 역할을 해온 트위터 계정 “향연”은 경찰이 트랙터 유리를 부수고 전농 활동가들을 폭력 진압하는 상황을 공유했다. 그 트윗 하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스노우볼처럼 커지면서, 트랙터들을 지키러 남태령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에 열렸던 윤석열 퇴진 비상행동 집회가 명동에서 끝난 후, 사람들은 집으로 가는 대신 남태령으로 향했다. 이 사람들은 전농의 의제를 평소 거의 접해본 적도 없었던 2030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트위터 계정 “향연”의 주인인 김후주 씨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농민활동가들은 이 낯선 연대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모여드는지 영문을 몰라 했다고 말했다. 어떤 20대 여성 한 명이 농민 전주환 씨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그 말을 떠올리는 전주환 씨의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떨리고 있었다. 그날 밤 트랙터 안에서 많은 농민들이 엉엉엉 울었다고 한다.

 

▲ 농민 활동가 전주환 씨와 퀴어 페미니스트 활동가 황승유 씨가 악수를 하고 있다. 〈남태령〉스틸컷.


교차로에서 마주친 서로 다른 존재들

 

남태령의 기적, 그리고 탄핵 집회의 새로운 주체를 설명할 때 ‘2030 여성들의 등장’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2030 여성들은 그 때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그 집회에는 여성만 있었던 것도, 2030 세대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광장을 세대론이나 성별 갈등이 전제된 납작하고 상투적인 틀로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고자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계급, 지역, 성별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교차해서 들려주며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트랙터를 끌고 거리로 나온 농민, 트위터를 보고 남태령으로 달려간 사람들. 남태령의 소식을 트위터로 밤새도록 리트윗(공유) 하는 사람들. 지역에서 활동하는 퀴어 페미니스트 활동가. 일상에서는 만날 일이 없었던 사람들이 남태령에서 함께 하루 밤을 보냈다. 인터뷰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자 메세지, 트위터에 올라온 글, 스마트폰으로 기록한 영상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그날 밤 춥지만 뜨거웠던 남태령에서의 28시간을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남태령으로 가지 못해서 대신 따뜻한 음식부터 난방버스까지 수많은 물품을 후원한 시민들이 있었다. 새벽 늦은 시간에 고립된 남태령까지 그 물건을 배달해준 수많은 배달 노동자들도 그 광장의 일원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밤새 자유 발언을 했던 수십 명의 발언자들은 광장을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이 모든 것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면서 그날 밤의 광장은 서로를 ‘케어’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셰어’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공간이 되었다. 이 민주적인 공간에서 다양한 차이를 가진 존재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함께하는 진짜 연대의 경험을 나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연대가 가진 힘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 '내향인' 깃발의 기수가 트위터(X)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남태령〉 스틸컷.


남태령 코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밤새 남태령의 소식을 트위터로 지켜보다가 첫 차가 뜨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간 ‘용주’(트위터 계정) 씨는 그날 아침 남태령에서 들었던 한 마디가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어떤 아저씨가 “딸들 수고했어!”하시길래 “감사합니다! 근데 저희는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성별 정체성)에요. 딸들이 아니에요!”라고 외쳤더니 아저씨가 바로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라고 답해주었다는 것이다. 용주 씨가 겪은 일은 트위터에서 1만회가 넘게 공유되면서 남태령을 설명하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다름에 대한 배제와 혐오의 정치에 익숙해져 그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 단순한 인정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농민 전주환 씨는 발음조차 어렵고 뜻도 잘 몰랐던 페미니스트, 퀴어 등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솔직히 안 좋은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남태령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말과 모습을 보며 ‘새로운 세상은 저분들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자’라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마음의 변화야말로 진정한 사회 대개혁의 시작점이다.

 

▲ 고공 농성중인 현장. 〈남태령〉 스틸컷.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이 연대가 하룻밤의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날 밤이 우리에게 아직도 큰 감동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연대의 경험, 누군가에게 인정 받아본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모아서 만들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가 끝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공허함이 몰려오기도 한다. 연대의 고리는 너무 약하고, 실천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오는 것은 너무 멀게 느껴지고, 이건 그저 남태령에서 일어난 우연한 기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2011년 ‘희망버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그때 중학생이라서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 역사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큰 울림을 받았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서 1만명의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185대의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 일. 그때도 트위터를 통해서 소식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이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씨를 지키기 위해서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 버스 중에는 성소수자들을 태운 무지개 퀴어 버스가 있었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 집회에서 보기 드물게 “성소수자 동지 여러분”이라고 호명해 주었다.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몸을 갖고 크레인 아래 모인 사람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환대의 태도는  “웃으며 끝까지 투쟁!”할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관련 워커스 기사: 성소수자와 노동, 한층 더 진한 우리의 ‘프라이드’를 위하여)

 

2011년의 희망버스 이후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사회는 많이 바뀌었고 집회 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차이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기에 남태령에서 경험한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는 연대의 태도는 더욱 소중하다. 우리가 윤석열 퇴진 이후 꿈꿔왔던 사회 대개혁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당락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경험한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일상 속에 스며든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남태령을 기억하는 한,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가 바뀌었다”는 믿음을 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필자 소개] 권오연: 2024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X에 대하여〉와 한국과 일본에 사는 네 명의 페미니스트의 우정을 그린 〈순간이동〉을 공동연출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으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별은 알고 있다〉를 제작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다큐멘터리·극영화·웹 콘텐츠 등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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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2026/06/27 [16:47] 수정 | 삭제
  • 넘 익숙한 인물들이 나와서 신기했던 영화 ㅎ 기록해준 감독님에게 감사를
  • 하니 2026/06/19 [14:45] 수정 | 삭제
  • 알아두겠다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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