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었을까?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6.3 지방선거 이후 다시 묻는 참정권

장혜영 | 기사입력 2026/07/08 [09:39]

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었을까?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6.3 지방선거 이후 다시 묻는 참정권

장혜영 | 입력 : 2026/07/08 [09:39]

질문: 6.3 지방선거 이후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해 불거진 일련의 상황을 보며 참정권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선거권,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었을까요?

 

장혜영: 많은 사람들이 여당의 압승으로 지루하게 끝날 거라고 예측했던 6.3 지방선거 이후 ‘참정권’이 우리 사회의 핫이슈가 되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런 사태가 다수 발생한 서울 잠실 지역의 올림픽공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며 이른바 ‘재선거’를 요구하는 올림픽공원 시위, 약칭 ‘올공 시위’의 시작입니다. 시위는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고 약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위의 양상은 ‘재선거’만을 외치던 초기와 상당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구호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단순히 침해받은 나의 참정권 회복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다른 시민들을 사적으로 검열하고, 경기에 나가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장내 입장이나 필요 물품 반출을 방해하는 한편, 현장을 지키는 경찰들을 모욕하거나 압박하는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에 입각한 것으로 도저히 볼 수 없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공 시위’는 이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선관위의 무능과 무책임부터 법치의 기술과 시민들의 원초적인 정치적 요구 사이의 긴장까지,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다양한 주제에 맞닿아 있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글에서는 질문자 님이 질문해주신 주제, 즉 우리 사회의 참정권 가운데 선거권이 얼마나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참정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투표할 권리’

 

선거권, 쉽게 말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참정권의 대표주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정권’이라는 단어에서 곧바로 선거권을 떠올립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공직선거법 제15조 ‘선거권’ 조항은 18세 이상의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합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인 1948년 5.10 총선거는 미 군정이 정한 법령에 의거해 이미 보통·평등·비밀·직접의 4대 원칙에 입각한 선거였습니다. 선거권은 만21세에 달한 모든 국민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민주주의 후발국가인 한국은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통선거권이 모든 시민에게 부여된 상태로 출발한 셈입니다. 이것은 국적은 다르지만 민주주의와 차별 없는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해 피땀 흘려 싸워온 세계의 민주주의자들에게 물려받은 귀중한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선거권은 참정권의 대표주자이지만, 유일한 주자는 아닙니다. 선거권뿐만 아니라 출마할 권리인 피선거권도 대표적인 참정권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대의제 민주주의 안에서 기능하는 간접적인 참정권입니다. 직접적인 참정권도 있습니다. 바로 ‘국민투표’입니다. 우리 헌법은 헌법을 개정할 때 국회 의결 이후 30일 이내에 반드시 국민투표로 찬반을 묻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금 국내에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자주 이야기되는 직접적 참정권은 ‘국민발안제’나 ‘국민소환제’가 있습니다.

 

국민발안제는 지자체로 따지자면 주민발안조례처럼 대리하는 정치인을 통하지 않고 국민들이 직접 법안을 발의하는 제도입니다. 국민소환제는 선출직 공직자들을 일정 수 이상 국민의 동의를 통해 임기 중에 파면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다양한 참정권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지만, 오늘의 테마는 선거권이니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정부 수립 직후부터 주어진 보통선거권, 형식과 실질 사이의 괴리는?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정부 수립 당시부터 친일에 부역했다든가 하는 예외를 빼고는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국민들에게 원칙적으로 보통선거권이 주어졌습니다. (친일 부역자에게 선거권을 박탈하는 조항은 나중에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은 과연 명목상 평등하게 주어진 선거권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모든 시민들에게 보장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이상적인 선거라면 선거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이 100%일 것입니다. 하지만 2024년 OECD 리포트를 보면 총선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평균 투표율은 약 65%이고, 한국은 그보다 조금 높은 67%입니다.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낮게 시작해서 조금씩 올라왔을까요?

 

▲ 1948년부터 2024년까지 국회의원선거 투표율.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원선거 투표율 분석」)


역대 국회의원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는 1948년의 첫 국회의원선거로 투표율이 무려 95.5%에 달합니다. 90%가 넘는 투표율은 1960년 총선 이후 빠르게 70%대로 떨어지고, 1985년에 잠깐 84.6%로 치솟은 뒤 1987년 이후 2000년까지 하락 일변도로 변화합니다. 2000년 총선에서 투표율은 57.2%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50%대를 기록합니다.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총선은 2008년 총선으로 투표율이 46.1%입니다. 1948년 총선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이 난 셈이죠. 당시 이렇게까지 투표율이 낮아진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누구를 뽑아도 거기서 거기’라는 정치 불신을 꼽습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로지 공천을 둘러싼 거대 정당 내부의 계파 싸움만 두드러진 정치 상황이 이어지며,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 자체가 크게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선거권을 ‘못’ 행사한 것이 아니라 ‘안’ 행사했다는 것인데요. 다행히 바닥을 친 이후로 지금까지 투표율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입니다. 추세가 반등하게 된 여러 요인 가운데 공통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사전투표제의 도입입니다.

 

한국의 사전투표제는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그 해 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은 약 11.5%였고 이는 전체 투표율의 20.2%에 육박했습니다. 선거마다 등락은 있지만 12년이 지난 22대 총선의 사전투표율은 무려 31.3%에 달하고, 이는 전체 투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전국에 설치된 사전투표소 어느 곳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고 평일과 토요일을 포함해 선거일을 사실상 3일로 늘린 사전투표제도는 유권자들의 투표 편의를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사전투표 도입 이전의 부재자 투표 과정은 훨씬 복잡합니다. 사전에 부재자 신고를 하고, 투표용지를 등기우편으로 받아서, 읍면동이 아닌 시군구 단위의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해야 했죠. 이러한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개선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보다 원활히 자신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정권 보장을 확대해 온 사전투표 제도가 최근에는 오히려 시민들의 참정권을 침해한다는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공권력에 의한 장애인 참정권 침해

 

보통선거권의 형식과 실질 사이를 가늠하는 또 다른 방법은 차별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제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 빠짐없이 참석하던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의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입니다.

 

▲ 2020년 4월, 서울 청계천에서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피켓 시위가 진행됐다. (출처: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최근에는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뜨겁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 투표용지를 제공하듯 발달장애인에게 출마자들의 사진이 포함된 그림투표 보조용구와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공직선거법에 나와 있는 투표보조를 발달장애인에게 허용해달라는 내용도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공직선거법 157조 6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조항을 가능한 좁게 해석하여 발달장애인들에게 투표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손이 떨린다든가 신체적 협응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선거 때만 되면 투표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지원인력이 선거관리인과 옥신각신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손이 떨리냐고 반복적으로 물어보거나, 가족이 아닌 사회복지사나 활동지원사는 지원할 수 없다며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혼자서 무리하게 기표소에 들어가게 하거나, 처음 보는 선거관리인들이 멋대로 투표를 보조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투표관리인의 ‘아량’에 따라 투표보조의 여부와 방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일이 반복됨에 따라, 발달장애인들은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2심을 모두 승소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관위의 선거 지침에 정신적 장애인들에게도 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이 따를 경우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라고 권고했지만, 선관위는 이를 무시하고 상고했습니다. 법원뿐만 아니라 6.3 지선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구체적인 시정 권고를 내렸지만, 선관위는 형식적으로만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권고를 불이행하였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이번 지선에서 겪은 투표보조 차별 사례를 온라인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점자용 투표 보조용구를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한 선관위 관계자는 대선과 총선에 비해 지선은 투표용지가 기본 7장이나 되는 복잡한 선거이기에 지선에서는 보조용구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조치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황당합니다. 만일 이 나라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다수가 장애를 가졌다면, 선관위원장이 발달장애나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도 선관위는 같은 답을 내놓았을까요? 선관위의 구조적 부실과 직무유기가 국정조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는 지금, 헌법이 명시하는 모든 시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개혁이 시급합니다.

 

▲ 2020년 5월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진행된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장애인 참정권 침해, 선관위는 책임져라” 기자회견 모습 (출처: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투표소에서 기표할 권리’를 넘어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권리’로서의 선거권

 

한 가지 논점을 더 제시하고 싶습니다. 앞서 예시로 든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모든 선거권 행사 제약의 요소들을 선관위 개혁을 통해 시정한다 하더라도, 과연 우리의 선거권은 참정권으로서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거권이란 단순히 누구의 외압도 받지 않고 투표소에서 기표하고 이를 투표함에 넣을 물리적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투표소에서 무사히 기표할 수 있었다 해도, 투표 전후로 어떤 사람들의 표를 아무렇지 않게 ‘사표’ 취급하는 우리의 정치 세태를 생각한다면, ‘원하는 후보에게 마음껏 투표할 권리’로서의 선거권이 과연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표란 단순히 물리적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투표에 참여한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실질적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결선투표제 없는 단순다수대표제는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최대한은커녕 최소한으로 반영하는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해 당선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표는 아무 의미 없는 ‘사표’로 취급됩니다. 당선자가 과반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않는 한,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지역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 주민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셈입니다.

 

그 어떤 시민의 표도 ‘사표’로 취급받지 않고 온전히 포함되는 다양한 투표 제도가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국회의원을 전부 비례대표로 뽑는 완전 비례대표제, 후보 명단은 정당이 정하고, 정당만 고르는 비례제가 아니라 아예 후보에 대한 선호를 유권자가 직접 고를 수 있는 선호투표제…. 

 

‘내 권리’ 넘어 ‘모두의 권리’로 나아가는 참정권 논의를 위하여

 

여러 참정권 가운데 선거권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껴지셨을지 궁금합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참정권을 생각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의 권리’를 넘어 ‘모두의 권리’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신정과 왕정을 넘어 시민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민주공화국의 체제에서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동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침해받은 나의 권리’에 대한 분노를 ‘내 곁의 약자가 침해받은 권리’에 대한 분노로 확장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참정권 논의는 정말로 풍부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소개] 장혜영 :  21대 국회 정의당 국회의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이자 동명의 책을 썼다. 현재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자 비영리단체 ‘망원정x’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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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10 [15:50] 수정 | 삭제
  • 나도 사표될 거 아는 투표 하기 싫어서 마지못해 투표장에 간 적이 있는데... 투표할 수가 없어서, 하기가 어려워서 참여못하는 사람 입장은 생각도 못해봤네요..
  • 플리 2026/07/09 [15:27] 수정 | 삭제
  • 비례대표제가 확대되어야 사회격차를 줄이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전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투표 몇 번 해보니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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