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도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기’ 가능할까?

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④ ‘미래 없음’과 주거

호랑집사 | 기사입력 2026/07/24 [12:03]

노년에도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기’ 가능할까?

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④ ‘미래 없음’과 주거

호랑집사 | 입력 : 2026/07/24 [12:03]

현재의 삶이 불안정할수록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 된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는 「‘미래없음’과 ‘생애부정의’: ‘퀴어-생애-정치’의 대안적 미래 만들기」(『한국여성학』, 2025) 논문에서 ‘미래 없음’의 감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은 사회가 특정한 생애 경로를 중심으로 미래를 약속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이라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시간이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그 미래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단지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거 또한 마찬가지다.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고, 익숙한 장소에서 관계를 이어가며, 나이 든 이후의 삶을 계획하는 일은 개인이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미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미래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거 불안은 현재의 불편함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가능성 자체를 흔드는 경험이 된다.

 

예비할머니모임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며,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에서 소개하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의 ‘함께주택’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달팽이집’ 사례를 함께 살펴보았다. 그리고 독일의 퀴어·여성 공동주거 프로젝트를 브리핑하면서 노후의 주거에 관한 답을 탐색했다.

 

▲ 독일 베를린 미테 지구에 위치한 다세대 통합형 레즈비언·퀴어 여성 주거˙문화 프로젝트 RuT - Frauen Kultur & Wohnen 홈페이지. RuT(Rad und Tat)의 공동주거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행사 사진으로, 현수막에는 “RuT 주거 프로젝트와 연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https://rut-wohnen.de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다’는 욕구의 전제가 차별적일 때

 

노년기의 주거 문제는 단순히 어떤 집에 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관계와 삶의 방식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국토연구원(2024)은 ‘지역사회 계속거주’(Aging in Place, AIP) 개념을 중요한 방향으로 제시한다.

 

‘지역사회 계속거주’(AIP)란 “고령자가 스스로 선택한 거주지에서 기존의 익숙한 관계를 유지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거의 범위는 물리적 공간인 집을 넘어 지역사회(동네)로 확장된다. AIP를 지원한다는 것은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중심에 두고, 주거뿐 아니라 지역 내 관계와 돌봄 및 생활 기반을 함께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AIP는 모든 고령자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라기보다, 안정적인 주거 기반을 가진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가능한 삶의 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도연은 「고령자의 지역사회 계속거주 의향 결정요인 분석」(한국주거학회 논문집 제37권 제2호, 2026)을 통해, 주거 안정성이 고령자의 AIP 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임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집을 소유한 고령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자 하는 의향이 2.4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년의 주거 안정이 개인의 선호나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주거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현재 한국의 주거 체계에서 AIP(지역사회 계속거주)는 노년기를 맞이한 개인의 주택 소유 여부와 경제적 능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띤다.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에게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임대차계약이 2년 단위로 체결되고 계약갱신청구권이 단 1회만 주어지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세입자에게 ‘계속’이라는 말 자체가 그림의 떡이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지는 일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년 여성·퀴어들의 ‘돌봄 공동주거’ 프로젝트

 

노년의 주거를 개인이 미리 준비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볼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결국 소유와 자산의 문제로 좁아진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은 이미 존재한다.

 

가령 독일의 여러 여성·퀴어 주거 프로젝트는 노년의 삶을 개인의 경제력이나 가족 관계에 맡기는 대신, 주거와 돌봄, 관계와 지역사회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들은 좋은 집이나 자가 소유 여부에 따른 격차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주거를 보여줌으로써 노후에 관한 우리의 상상에 좋은 재료가 되어준다.

 

▲ 독일 베를린 미테 지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노년 퀴어-여성 ‘돌봄 공동주거’ 프로젝트 RuT - Frauen Kultur & Wohnen 홈페이지에 건립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레즈비언 퀴어여성 단체 RuT – Rad und Tat Berlin gGmbH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공공주택 건설법인 및 베를린 시와 협력을 통해 조성되고 있다. 출처: https://rut-wohnen.de


최근 독일 베를린 미테 지역에서는 퀴어-페미니스트 돌봄 공동주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루트(RuT, Rad und Tat Berlin gGmbH)의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미테 지역에는 74세대 규모의 공동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의료) 돌봄 공동체와 문화센터, 카페가 한 지붕 아래 있는 건물이 들어서는 중이다. 전체 주택의 70% 이상이 공공 지원을 받는 임대주택인 이 건물에는 대부분의 세대가 무장애(배리어프리) 설계로 조성되고, 그 중 5세대는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구조도 갖췄다. 지역 주민을 비롯해 LGBTQ+ 커뮤니티에 친화적인 개방 공간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노년의 퀴어 여성과 레즈비언이 겪는 주거·돌봄 영역의 차별을 줄이는 것’이다. 낮은 연금 수준, 불안정한 주거 환경, 돌봄 시설이나 가족 중심 돌봄 체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인정받기 어려운 문제를 ‘돌봄 공동주거’(Pflege-WG)를 통해 풀어가는 것이다. 돌봄 공동주거는 독일에서 확산되고 있는 노년 공동주거 모델로, 입주자들이 각자의 생활 공간을 유지하면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다. 시설 중심의 요양원과 달리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이며, 이를 제도적 차원에서 지원한다. 이렇게 되면 안전한 공동주거가 필요한 이들의 주택 소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주택을 확보하는 것은 ‘공공이 보장해야 할 권리’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소유, 혈연을 넘어 ‘무지개집’과 ‘달팽이집’

 

주거정책은 누구의 삶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지, 그리고 그 삶을 지원하기 위해 사회가 얼마나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 또한 AIP(지역사회 계속거주)를 지원할 때, 기존 제도 바깥에 있던 소수자들이 겪는 주거·돌봄 영역에서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고안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는 ‘무지개집’이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와 퀴어 친화적인 비성소수자가 함께 거주하는 이 집은 함께주택협동조합의 함께주택 2호이기도 하다. 주택을 개인이 아닌 조합이 소유하고, 이용자는 출자금을 내고 거주한다. 이러한 방식은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으면서 동시에 주거가 지닌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무지개집 외관. 함께주택협동조합의 함께주택 2호이기도 하다.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2022, 오월의봄)에는 이 집을 함께 짓고 만들어 온 열다섯 퀴어와 다섯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 출처-함께주택협동조합)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2022, 오월의봄)에는 이 집을 함께 짓고 만들어 온 열다섯 퀴어와 다섯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담겨 있다. 무지개집 사람들이 서로를 삶의 동료이자 돌봄의 관계로 인정하는 과정이 집을 짓고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걸쳐 일어난다. 각자의 방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공용 공간에서 밥을 먹고, 집안일을 나누고, 서로의 일상을 살핀다. 아플 때 병원에 함께 가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무지개집은 주거 안정이 반드시 소유나 혈연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청년 세입자들이 모여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주택 ‘달팽이집’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설립 당시 청년 주거 문제는 ‘젊어서는 사서도 고생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개인이 감당해야 할 임시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던 당시, 청년 세입자들이 직접 자신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의 공간으로 달팽이집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 협상력을 형성하듯, 세입자들도 모이면 주택임대차시장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달팽이집은 세입자 개개인이 아니라 함께 부담할 수 있는 집을 구하고, 장기적인 거주 여건을 확보하며, 주택을 운영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민간 임대시장에서 공동체적 주거를 위한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달팽이집의 실천은 이후 사회적 주택 제도 도입의 한 계기가 되었다. 현재 달팽이집은 주로 공공이 주택의 기반을 제공하고, 세입자 조합원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입자들이 함께 주거의 조건과 관계를 만들어갈 때 새로운 주거 모델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서로를 지탱하는 삶을 상상하기

 

서로 돌보는 관계를 주거의 기반으로 삼는 일, 집을 권리로서 보장하도록 주거정책을 새롭게 갱신하는 일, 기존에 없던 대안주거 형태를 제도의 경계 안으로 이동시키는 일들은 가능하고, 이미 진행 중이다. 만약 독일의 돌봄 공동주거 프로젝트나 한국의 무지개집과 달팽이집 사례가 마냥 특수하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예외적인 대안주거 모델로만 느껴진다면, 그동안 주거와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의 노력에 떠맡겨 온 구조적 문제의 결과이다.

 

AIP(지역사회 계속거주)를 지원하는 제도적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존 제도 바깥에 머물던 이들의 AIP 또한 함께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계와 삶의 방식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주거와 돌봄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자산 격차가 빠른 속도로 커지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노후의 주거불안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문제다. 집을 소유하지 못한 채 나이 들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은 더욱 중요해진다. ‘집을 사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여성·퀴어 공동주거 프로젝트가 보여주듯, 노후의 안정적인 주거와 돌봄, 지역사회와의 연결은 개인이 집을 소유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주거와 돌봄의 조건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소중한 관계들을 함부로 놓쳐버리지 않을 수 있다.

 

주식 시장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반복될수록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더욱 조급해진다. 좋은 종목을 놓치면, 집을 사지 못하면, 결국 나만 뒤처지고 내 삶을 지킬 수 없게 될 것 같은 불안이 번져간다. 하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자산의 규모만이 아니다. 퀴어와 청년들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독일의 페미니스트들이 노년의 여성·퀴어가 함께 살아갈 집을 상상하며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온 것처럼, 더 많은 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관계와 공동체를 조직해왔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준비해 갈 미래는 할머니가 될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할 수 있는 집과 돌봄, 그리고 지역사회일지 모른다. 주식과 부동산 없이는 내가 나를 구하지 못할 것만 같은 시대에, 사람과 공동체가 서로를 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미래 없음’을 딛고 찾아나갈 답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 답을 예비할머니모임에서 앞으로도 함께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필자 소개] 호랑집사 : 가난한 페미니스트로 나이 든다는 건 뭘까? 가임기는 끝날 테고 몸은 취약해질 테고 주거는 쭉 불안할 텐데.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노후를 낙관할 수 있는 증거들을 얻기 위해 예비할머니 모임을 구상하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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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이 2026/07/26 [21:16] 수정 | 삭제
  • 그런 개념이 있군요. 사실 노년에 장소가 바뀌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지속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독자 2026/07/25 [16:48] 수정 | 삭제
  • 흥미롭네요. 한국도 중소도시에서 추진을 해볼 만한 모델인 것 같습니다.
  • 미들 2026/07/25 [13:27] 수정 | 삭제
  • 막연히 노년주택 늘어나길 기다리기보다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시도해나가는 분들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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