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살길, 농촌 문화 평등하게 바꿔가는 것

횡성 여성농업인지원센터가 잇는 도시와 농촌③ 변화를 환영하는 곳

호미 | 기사입력 2026/09/07 [16:13]

농촌의 살길, 농촌 문화 평등하게 바꿔가는 것

횡성 여성농업인지원센터가 잇는 도시와 농촌③ 변화를 환영하는 곳

호미 | 입력 : 2026/09/07 [16:13]

횡성은 2021년 전국 최초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횡성형 여성일자리사업’으로 농업 분야에서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농촌에서 관행상 같은 노동을 하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적게 받은 임금의 부족분을 지자체 지원금 등으로 보완하여 ‘성평등 임금’을 실현한 정책이다.

 

또 지난 겨울 ‘남태령대첩’에서도 호명된 '언니네텃밭 꾸러미' 사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으로 생산한 제철농산물을 도시의 소비자들이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직거래 사업이다.

 

횡성군은 여성농업인육성 지원 조례, 횡성군 토종농작물 보존·육성 조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조례, 식생활교육 지원 조례 등 여성 농민의 삶과 직결된 굵직한 조례들도 제정한 바 있다.

 

이 모든 사업과 조례 제정의 교차점에는 횡성군 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와 비영리법인 횡성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이들 단체를 이끌어 온 한영미 소장과 회원들을 인터뷰해 농촌과 지역사회, 그리고 여성농업인을 위한 활동과 정책을 만들어온 경험과 노하우를 총 3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 주]

 

▲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어린이도서연구회 동아리가 어린이집에 찾아가서 진행하는 “책 읽어 주세요” 프로그램. 어린이집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여성농민’은 낯설지 않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제공)


나에게 여성농업인센터는 
“권리를 알게 해줬”다

 

횡성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오전에 시작되었던 〈내 인생의 그림책〉 강의가 점심때가 되자 끝났다. 참여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담한 식사다.

 

한영미 소장이 집에서 가져온 김치를 넣고 식생활교육네트워크 대표 미덕 씨가 감자탕을 끓였다. 감자탕 옆에 명이나물 장아찌, 방울토마토, 만두, 계란부침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늘 점심을 차리는 건 아니지만 ‘그림책’ 강의 참여자들이 고령이라 식사를 하고 가시도록 준비했다.

 

강의 참여자들과 센터 곳곳의 회원들이 삼삼오오 밥상에 모여들었다. 수저를 놓는데 짝 없는 수저를 보고 광현 씨가 묻는다. “수저 어쨌어? 짝 없는 거 다 없애라니까.” 한 소장은 “다 있어요. 버리기가 아까워서.” 한다. 알고 보니, 이 회원이 수저 50벌을 센터에 기탁했다 한다. 어떻게 사주셨는지 물었다. “일하는데 수저 짝 맞추고 앉아 있는 게 보기 안돼서, 그냥 일하기 쉬우라고 사다 준 거지요.”

 

적은 자원으로 센터가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는 비결이 회원들에게 있었다.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와 센터’로 연결되었다. 회원들에게 “나에게 센터는 (    )이다.” 괄호를 채워달라고 부탁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무리일까 했는데, 모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권리를 알게 해준 곳’, ‘연결망’, ‘역량을 키우는 곳’, 그리고 누구나 손 내밀 수 있는 ‘의지처’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 ‘내 인생의 그림책’ 강의 후, 횡성여성농업인센터 활동가들이 준비한 식사를 하고 있는 수강생들과 회원들. “나에게 센터는 ( )이다.”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촬영: 호미)


유독 곱게 차려입은 순옥 씨가 “집에서는 일만 하는데, 여기 오면 소풍 나온 기분이에요. 쉬러 오는 거죠.” 라며 운을 뗀다. 생활개선회 우천면 회장을 지낸 그는 “생활개선회나 마을에서 센터에 강의 요청을 많이 했어요. 여성농민으로 일만 하지, 내가 권리를 가졌다는 건 잘 모르잖아요. 농업인수당 70만 원, 여성 바우처, 편이장비 등 이런 게 그냥 복지가 아니라 권리라는 걸 가르쳐줬죠.”

 

“나에게 센터는 ‘없으면 시체’다.” 한 회원의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센터가 없었으면 횡성에서 숨 쉴 데가 없었을 것 같아요. 농민 중에 여성농민들 위치가 참 애매하잖아요. 우리들이 모이거나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런 데가 없거든요. 인문학 교실도 하고, 욕구가 거의 충족이 돼요. 염색도 배우고, 친환경 샴푸, 화장품 같은 것도 만들어요. 보통 사다 쓸 줄만 알지, 직접 만들 생각은 못하잖아요. 뭔가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토종 씨앗도, 아이들도, 강사도 길러내는 곳

 

회원들의 얘기에 이어서 ‘식생활 네트워크’ 강사인 미덕 씨가 식생활 교육매니저 양성과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했다.

 

“우리가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으니까 좋은 먹거리,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자고 (교육을) 시작했어요.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진행한 ‘바른식생활교육 매니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강사로 활동하면서, 식생활교육 횡성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현재는 횡성과 강원 식생활교육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어요. 오늘도 초등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이 채소를 안 먹잖아요. 그런데 파프리카에 대해 알려 주고 같이 썰어 보는 활동을 하고 나니까 잘 먹어요. 아주 많이. 처음 먹어 본다는 학생도 있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 있죠.”

 

식생활교육 매니저들은 스스로 모임을 결성해 강사를 길러내고, 어린이집·학교·마을회관·경로당을 찾아 토종 농산물의 가치를 알리고, 지역먹거리와 지역 사회를 직접 연결하고 있다.

 

▲ ‘찾아가는 식생활 교육’ 수업. 강사들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요리교실에서 함께 잡채를 만들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제공)


코로나 시기에 환갑을 넘겨 국가자격증 ‘종자기능사’를 딴 선숙 씨는 목소리가 컸다.

“코로나라 다 집에 갇혀있을 때, 우리는 센터 나와서 종자기능사 시험 준비했어요. 젊은 애들 사이에서 시험 봤죠. 당당하게. 성취감이 컸어요. 신랑이 친구들한테 ‘이 사람 종자기능사야’ 하고 자랑해요. 그런데 써먹지를 못하고 있어서. 어떻게 써먹게 좀 해 주세요!”

 

그의 이야기를 숙민 씨가 받는다. 바로 오늘 그림책 수업을 이끈 강사이다. 센터가 공부방을 열던 시절에는 센터에서 일했던 직원이었고, 지금도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감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한, 그런 게 있어요. 처음 공부방 열었을 때, 우리 늦둥이 애를 6개월 때부터 키워주셨어요. 얘가 낮에도 안 자고 밤에도 안 자고…. 1년 동안 잠을 안 잤어요. 상담도 많이 해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아마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애가 돌일 때, 센터에서 돌잔치를 해줬죠. 깜짝 놀랐어요. 저의 직장에 대한 개념이 확 바뀌었어요.”

 

숙민 씨의 이야기에 많은 회원들이 동조한다.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방학 때도 여기서 살았어요”, “텃밭 가꾸고, 동화 읽는 모임도 만나고, 온갖 캠프 가고, 새만금 투쟁도 애들 데리고 쫓아다니고… 아이들이 잘 컸어요.” 공부방에서 돌봄센터로 이어지며 여성농업인센터는 아이들을 함께 키운 곳이었다. 하지만 센터가 아이들만 키운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자발적인 열정이 막 나와요”

 

근처 도시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몸과 마음의 소진을 겪은 은하 씨는 지금은 횡성여성농업인센터가 운영하는 다함께돌봄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야 번아웃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단다.

“옆에서 지지를 많이 해주세요. 여기서는 자발적인 열정이 막 나와요.”

 

숙민 씨가 은하 씨의 이야기를 받았다.

“자율성, 주도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여기는 있어요. 그래서 일을 계속한 것 같아요. 다른 데서는 경험하기 어렵죠. 제가 맨날 불만이었던 게, 우리는 조직 체계가 없다고 그랬거든요. ‘이거 해야 한다’고 하면 다 같이 달려들어서 하고, 공부방도 그렇고 프로그램들 할 때도요. 그래도 센터를 통해 직장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 2025년 횡성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농촌형 성평등 강사 과정을 마친 수료생들이다. 센터에서는 3년째 성평등 강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제공)


센터 예산이 부족해 온갖 공모사업을 끌어다 사업하느라 휴일도 없이 일했던 직원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봤던 회원도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열심인 거예요. 종교단체인가, 정치집단인가 했다니까요. 그런데 보니까, 센터가 기둥이에요. 어디서나 잡으라고 얘기해요. 그래서 횡성이 발전한 거예요. 진짜 여기 같은 데 투자해 줘야 해요.”

 

20년 전에는 이곳의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자유로이” 센터를 다닌다는 회원은 “다니던 직장에 이렇게 다니는 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근데 여기는 돼요. 그게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성농업인센터 예산이 확대되기는커녕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꼬집는다.

 

“이런 여성농업인센터가 더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되는 것을 보면 답답해요. 횡성에서 진행하고 있는 많은 사업들 중엔 센터에서 시작한 것이 많아요. 이주여성 관련 사업도 지역 여성들을 만나고 연결해서 어느 정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관’에서 가져가요. 그래 놓고 오히려 우리더러 (사업이) 중복된다고, 여성농업인센터가 왜 따로 필요하냐고 하죠. 소장님한테 ‘좋은 일 했더니 다 가져가서 속상하지 않냐?’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널리 퍼지면 좋은 거지.’ 하시더라고요. 좀 별난 사람들이에요, 여기가.”

 

▲ 인지증 예방을 위한 브로치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 제공)


페미니즘과 만나게 해준 여성농업인센터…‘좋은 노인’이 되고 싶어

 

남편을 따라 횡성에 와서 살다가 산후우울증을 겪었던 한 회원에게 센터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그는 여성농민회 언니들을 알게 되어 센터까지 닿았다. 아기를 업고 일주일에 한 번 한지공예를 하러 나오면서 우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린이도서연구회 모임도 한다.

 

“언니들은 경험이 있으니까, 애들이 와서 어지르고 그래도 잘 봐주시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좀 튀는 사람이 있어도, ‘저 사람은 저렇구나’ 봐주시고. 그러니까 모임을 계속해 올 수가 있었죠.” 그는 지금은 공부방 만들기 강사로도 활동한다.

 

원주 그림책도시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숙민 씨가 말을 이었다. “센터에서 진행한 부모교육 후속모임으로 만들어진 ‘책까먹기’에서 동화읽는어른모임을 만들었고, 다시 어린이도서연구회로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요. 이제 돋보기도 껴야 되고, 글도 잘 안 읽히고 그래요. 하지만 모임을 하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방법도 있어, 세상은 아직 살 만해.’ 이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해 간다고 생각해요.”

 

센터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는 희정 씨는 이곳에 오는 길이 입학식 가는 마음이라고 했다.

“처음엔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었죠. 그런데 바로 옆집에 조이한 작가가 이사를 왔어요. 필연인지 우연인지. 같이 모임을 하고 있는데, (내 가치관이) 깨지고 또 깨지는 과정을 겪고 있어요. 농촌에서 페미니즘 공부가 사치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좋은 시어머니, 길잡이가 되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고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희정 씨의 옆집에 사는 조이한 씨는 현재 여성농업인센터의 운영위원이자, 오두모임 이끔이이다. 그에게 센터는 ‘길잡이’다. “제가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귀농한 게 아닌데…. 제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지요.”

 

“평등한 농촌 만들어야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들어온다”

 

저녁 강의는 이유진 한겨레 신문 기자의 “AI시대, 여성의 몸은 어떻게 바뀌는가”였다. 강의실 앞 테이블에는 한영미 소장과 사무장 용한 씨가 만든 간단한 주먹밥, 삶은 계란, 샌드위치가 놓여있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저녁 강의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원주 등 멀리서 온 이들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던 이들이 7시가 되자 모여들었다. 30여 석의 강의실이 거의 찼다. 한 소장은 강의 참여자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 지난 5월, 이유진 한겨레신문 기자가 “AI시대, 여성의 몸은 어떻게 바뀌는가”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횡성 여성농업인센터는 인문학 교실, 동아리 모임, 토종씨앗농사 등 횡성 여성들의 필요와 욕구에 응답하는 곳이다. (촬영: 호미)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갈 기차 시간이 임박했다. 인문학 강의가 시작되고 한숨 돌리는 한영미 소장에게 농업·농촌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언을 부탁했다. 한 소장은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농업·농촌을 바꾸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유지됩니다. 근데 젊은이들이 안 들어오는 가장 큰 이유가 남성중심문화, 가부장적인 제도라고 봐요. 평등한 문화로 바꿔나가는 게 농촌의 살길이에요. 그러니까 작은 문제라도 불편한 걸 계속 요구해야 해요. 요구해야 정책이 바뀝니다. 계속 시도하고 던져야 해요. 그게 농업·농촌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에요. 여성농업인육성법, 친환경무상급식, 토종씨앗 조례, 공동경영주, 농협 복수조합원제도, 들녘 화장실도 처음 이야기했을 때는 가당키나 했나요? 근데 다 됐잖아요.” [끝]

 

[필자 소개] 호미 :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지만 다시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를 따라썼다) 드러내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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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 2026/09/09 [14:01] 수정 | 삭제
  • 지금은 생계 유지를 위해 일하느라 정신 없이 살고 있지만, 노년이 되면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횡성의 농촌 마을에서는 제가 바라는 일상이 있는 것 같아서 웃으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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