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의 텃밭에서 미리 그려보는 노후

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⑥ 파주 동네탐방기

나목 | 기사입력 2026/09/17 [10:40]

서울 근교의 텃밭에서 미리 그려보는 노후

2030 여성들의 예비할머니 프로젝트⑥ 파주 동네탐방기

나목 | 입력 : 2026/09/17 [10:40]

2030 여성들이 모여 ‘예비할머니’를 자처하며 낯선 동네를 탐방하러 다닌다고 하면, 누군가는 이르다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삶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일하는 방식도, 함께 사는 사람도,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모두 다를 수 있다. 나이 듦과 돌봄, 관계와 독립,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각자의 언어로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다. 가족이 나를 돌봐줄 거라는 전제가 사라진 세대에게 노후 준비는 자산을 쌓는 일이 아니라, 누구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를 지금부터 실험해보는 일이 된다. 실제로 이 모임은 매달 만나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그 기록을 연재 글로 엮어가는 중이다. 오늘의 동네탐방과 인터뷰도 그 기록의 한 장면이다.

 

이 모임이 앞서 진행했던 ‘65세 생활계획표’ 워크숍에서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됐다. 계획표를 만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전 5시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났고, 세 명 중 두 명꼴로 ‘텃밭’ 이야기를 꺼냈다. 완전히 귀농해서 자연인처럼 살고 싶다는 사람은 오히려 적었고, 대부분은 서울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면서도 흙을 만지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어딘가를 원했다.

 

그 타협의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번에는 파주의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 도시농부 현명 님이 살고 있는 파주 아파트의 전경. [사진: 예비할머니모임]


저렴하고 조용한, 그러나 낯설고 인프라는 부족한…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삶의 여유는 가까워졌다

 

우리가 탐방한 아파트 단지는 지어진 지 20년이 조금 넘었는데, 원래 인허가 자체가 실버타운으로 났던 곳이라 지금도 법적으로는 ‘주택’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25평은 2007년에 1억 7천만 원에 거래됐고, 32평은 2020년에야 2억 3천만 원에 거래된 이력이 있을 만큼, 서울 도심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다. 25평은 단지별 세대수가 각각 40세대, 20세대뿐이라 매물이 거의 나와 있지 않지만, 세대수가 훨씬 많은 32평은 요즘도 2억 초반에서 매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여유 있는 집”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여유가 서울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했다.

 

동네를 걸으며 나온 소감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길이 널찍하고 오래된 나무가 우거진 풍경, 남향으로 층층이 앉은 조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누군가는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적막함에 살짝 겁을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조금만 더 도시였으면 좋겠다”는 말과 “이 정도 조용함이 딱 좋다”는 말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나왔다.

 

실질적인 걱정거리도 구체적이었다. 반찬가게나 배달 서비스가 잘 되지 않고, 이불을 세탁할 만한 큰 세탁기가 없어 공동 세탁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전시나 강연 같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해 결국 헤이리나 서울까지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반면, 이 동네에는 이미 그림책 작가와 출판 관계자들이 오래전부터 모여 살고 있었다. 인근 출판단지가 가까워 편집자와 작가들이 이곳을 숙소처럼 써왔고, 그 결과 작은 도서관에는 뜻밖에 인문학·문학 서가가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공간이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 이 동네에는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

 

도시농부가 알려준 삶의 방식 “농사는 정년이 없다”

 

이 동네에 현재 살고 있는 현명 님과의 대화는 탐방의 핵심이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귀농을 준비하며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마지막으로 방문한 농촌에서 텃세와 문화적 격차를 겪은 뒤 완전한 귀농은 포기했다. 대신 서울을 오가며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로 했다. 고양시부터 강화도까지 검토한 끝에, 하루에 서울을 왕복할 수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 나갈 일이 생겨도 감당되는 파주를 선택했다. 마침 지금 사는 실버타운 인가 아파트에 전세 매물이 나왔는데 가격이 1억 8천만 원 정도로 놀랍도록 저렴했다. “정착할 생각까진 없었지만, 일단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온 지 벌써 2년이 됐다.

 

그가 자리를 잡자, 옆집에는 동생이 들어왔고 이후 친구들도 하나둘 따라왔다. “제일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사람으로서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딱히 무섭다기보다는 맞지 않으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여지가 있었기에 감당할 만했다고 답했다. 완전한 귀농이 아니라 도시와 연결된 채로 흙을 만지는 삶, 그것이 그가 찾은 균형점이었다.

 

▲ 이번 탐방에 참여한 예비할머니 모임의 구성원들 모습. [사진: 예비할머니모임]


현재 그는 처음 30평 텃밭에서 시작해, 지금은 각각 600평과 80평 규모의 땅에서 여러 작물을 키우고 있다. 그의 농법은 땅을 깊게 파지 않고 비닐을 쓰지 않으며 투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다년생 작물을 많이 심어 몸에 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심어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토양을 살리는 방식이다. “땅을 계속 파고 비닐을 씌우면 그 안의 미생물이 죽는다”라는 그의 설명은, 노년에 몸을 크게 다치지 않고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농사법을 스스로 개발해 온 흔적이었다.

 

다만 생계형 농업으로 확장하려면 최소 500평 이상이 필요하고, 수도권에서는 그만한 땅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청년 세대가 새롭게 농업에 진입하기 힘든 구조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 않다고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농사와 소소한 프리랜서 일, 농부시장 마르쉐 판매를 병행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벌레와 폭염, 갑작스러운 냉해로 밭작물을 통째로 잃는 해도 있었다.

 

자녀가 없는 상태로 혼자 늙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도 분명 있지만, 그는 그 불안을 혼자 감당하지 않는 나름의 안전망을 만들어 두었다.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으면 옆집 동생이나 친구들이 집을 확인하러 오기로 서로 약속해 두었고, 필요하면 비밀번호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그가 반복해 강조한 말은 “농사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을 크게 다치지 않고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평생 지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착과 은퇴, 선택할 시점은?

정착은 꼭 한 번에 결정해야 할까

 

정착과 은퇴의 시간에 대한 물음은 한 사람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은퇴 이후 무엇을 하며 나이 들 것인가”를 그려보고 있었다. 한 참가자는 간병이나 돌봄 노동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서울 은평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이 다른 지역으로도 뻗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낯익은 동네에서 서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노후가 훨씬 덜 불안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는 지금의 삶이 벌이와 집값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갇혀 있다는 점을 짚었다. 직장을 다니는 한, 집을 고르는 기준은 결국 통근 거리와 가격이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퇴직하거나 먼저 지역으로 옮긴 사람이 여러 동네를 답사해 보고, 나머지 친구들이 그 정보를 따라 조금씩 옮겨가는 방식을 상상해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정착’이라는 말 자체와 거리를 두었다. 오늘처럼 여러 동네를 실제로 걸어보고 사진을 찍고 지도를 들여다보며 “이 거리감이 나한테 괜찮은가”를 몸으로 확인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했다. 65세라는 숫자를 미리 정해두고 그 시점만 바라보면 지금과 너무 멀어서 오히려 불안해지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답사를 다니고 시험해보면 그 불안이 구체적인 감각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반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직장을 따라 여러 번 이사 다니며 스스로 집을 구해본 경험이 거의 없던 참가자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지금 사는 집도 완전히 제 힘으로 구한 게 아닌데도 너무 힘들었다며,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실험보다는 마포 같은 익숙한 생활권에 아예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은평의 공공임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고 순번을 기다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마침 청년 자격이 곧 만료될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그는 ‘살림’ 같은 공동체 가까이에 살아보고, 그것이 정말 자신에게 중요하다면 그 동네에 눌러앉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답을 듣고 나니, 아버지가 오랫동안 시민사회 활동가로 일해오셨다는 한 참가자의 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활동가들에게도 정해진 정년은 없지만, 그들은 스스로 “이제는 정리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몇십 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는 결정을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내리는 것, 그 자체가 은퇴의 정의라는 이야기였다.

 

돌봄 노동, 반복되는 이사와 답사, 한곳에 뿌리내리기, 활동을 스스로 정리하기—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노후를 어떤 정해진 ‘끝’으로 그리기보다, 내가 계속할 수 있는 일과 내가 그만두기로 정하는 순간을 스스로 설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예비할머니 모임의 파주 탐방 기념 사진. [사진: 예비할머니모임]


자산이 아니라 관계로 짜는 노후

 

이날 나온 이야기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노후 준비가 흔히 자산 흐름의 문제로만 다뤄진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삶을 지속시키는 건 돈보다 관계와 리듬이었다.

 

참가자들은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급격히 쇠약해지는 어르신들과, 텃밭이나 정원을 계속 돌보며 몸을 움직이는 어르신들의 회복 속도가 전혀 다르다는 사례를 나누었다. 반평생 흙을 몰랐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정원과 화분에 마음이 기울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텃밭에 무심하다고 해서, 몇십 년 뒤의 나도 그럴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기반의 의료·돌봄 공동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서울에서 활동해 온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의 사례처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낯익은 동네에서 방문 진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집에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일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제도와 자원이 부족해, 결국 자가 소유와 무관하게 서울이나 병원 근처로 다시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됐다.

 

‘단체 이주’라는 낭만과 현실 사이 - 함께 떠나되, 각자의 속도로

 

‘다 같이 지역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에게 있었지만, 각자의 경제적 상황과 직업이 다르다는 현실도 솔직하게 논의됐다. 한 참가자의 친구는 경의중앙선 끝자락의 매물을 두고 고민하며,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그곳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일하는 이른바 5도2촌, 혹은 3도4촌 형태의 삶을 그려본다고 했다. 완전한 이주도, 완전한 서울살이도 아닌 그 중간의 리듬을 찾는 시도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단체로 정착하자”는 결론보다, 먼저 떠난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나머지가 그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가거나, 서로의 집을 나누어 쓰며 오가는 유연한 형태가 더 현실적이라는 데로 모였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서대문·마포 생활권에 익숙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파주 방면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는 것도, GTX 등 교통 인프라의 변화가 이런 흐름을 조금씩 앞당기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주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그 안에서 텃밭을 일구는 한 사람의 삶은, ‘노후’라는 단어가 가진 무겁고 막연한 이미지를 조금 다르게 그리게 해주었다. 완전한 귀농도, 완전한 서울살이도 아닌 그 중간 지대에서, 흙을 만지고 이웃과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은퇴 없는 노동을 이어가는 삶의 방식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예비할머니들의 동네탐방은 정답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한 삶의 모양을 눈으로 확인하고 각자의 것으로 가져가는 과정이었다. 다음에는 공주나 강릉처럼 또 다른 지역을 살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노후를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함께 늙어갈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쓰게 되었다.

 

[필자 소개] 나목 :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살던 회사원. 예비할머니 모임을 알게 된 후 막연했던 미래의 스케치를 시작했다. 더 이상 생을 뭉툭하게 살지 않고 박완서 작가의 시선처럼 구체적으로 감각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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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이 2026/09/21 [13:47] 수정 | 삭제
  • 나도 내 집 열쇠 맡길 수 있는 이웃은 두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 해요. 나도 누군가의 집 열쇠나 비밀번호를 공유받을 만큼 신뢰를 쌓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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