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의 감각

[무지개 책갈피가 꽂힌 책] 장진영 소설집 『우아한 유령』

내내 | 기사입력 2026/09/19 [09:22]

주변인의 감각

[무지개 책갈피가 꽂힌 책] 장진영 소설집 『우아한 유령』

내내 | 입력 : 2026/09/19 [09:22]

한국의 퀴어문학을 아카이빙하다 보면,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나 그런 사람의 주변인 유무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아카이빙의 의미나 맥락 상에서의 위치를 소략하게 되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 퀴어해서 혐오 당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고, 퀴어해서 의미화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복잡한 영역에 있어서 선뜻 말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다. 문학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질문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결국 세계를 만드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나라서 혐오 당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해사하게 웃었던 적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사랑받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불만이었을 것이다. 세상일이 많이들 그렇듯 양면적이라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혐오가 될 수도 있고 혐오가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있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왜 욕을 먹고 웃고 있느냐고 혼이 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왜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더라도 그 사람의 진심을 몰라주냐고 혼이 나고. 이중으로 모든 방향에서 혼이 나고 내가 한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갈 때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https://rainbowbookmark.com 2015년 “한국에도 퀴어문학이 있나요?”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단체로, 현재 한국의 퀴어문학 아카이빙 활동을 하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감기로 아픈 아이의 집에 찾아간 적 있다. 아이는 방의 모든 창의 커튼을 치고 누워 있었다. 나는 아이가 누워 있는 자리 근처에 앉기로 했다. 커튼을 걷어줄까? 아니, 햇빛이 들어오면 머리가 아파. 그래서 어른들이 서로 이야기를 할 동안 캄캄한 방에 둘이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어 그 아이의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모든 창의 커튼을 확 확 벗겨냈다. 엄청난 빛이 갑자기 방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는 울고 싶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할머니에게 따지고 들었다. 햇빛이 들어오면 머리가 너무너무 아프대요! 감기는 햇빛을 봐야 빨리 낫는 건데…. 할머니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이후에 아마 난 밥을 먹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불쌍하다.

 

불쌍하다. 모두 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골똘히 신경 쓸 만한 일은 따로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랑을 갈취하듯 보이는 번역을 계속 수행해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장진영의 소설집 『우아한 유령』(민음사, 2025)에는 어떤 인물의 주변인이 서술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서술자에게도 큰 일이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지만, 서술자에게 벌어지는 일은 어쩐 일인지 더 큰 일이 일어난 인물의 배경처럼 다른 인물들의 일에 묻혀버리고 말아버린다. 즉, 서술자에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거나 서술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서술자는 근처 인물에게 일어날 것 같은 큰일을 다른 인물들보다 기민하게 눈치채는 능력이 있다. 그 이상의 능력은 있는지 없는지 긴가민가하다.

 

소설집에 수록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공감이 되기도 하고 웃으면 안 되는 일에 웃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을 보라.

 

〈잔디밭에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텐트가 쳐져 있었다. 무슨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기타를 치면서 민중가요를 불렀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노래였다.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놀고 싶어서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쪽이 되었든 태도임에는 틀림없었고, 나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영원히 그들이 되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담배를 찾다가 다 피웠다는 걸 깨달았다. 담뱃갑 대신 핸드폰이 잡혔다.

문자메시지 창을 켰다. 무얼 적어도 틀린 말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눌렀다. 그날 미조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싫어요.’가 아니라 ‘싫어해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멈추었다. 수업 시간이 되었는지 기타리스트가 악기를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나는 실수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아닐 수도 있었다. 나란한 벤치, 단발머리 여자가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소리가 떠난 자리였다. 이번에는 누구도 늦게 웃지 않았다. 아멘.〉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 37~38쪽)

 

▲ 장진영의 소설집 『우아한 유령』(민음사, 2025) 표지 이미지


동성 간의 성적 접촉이 일어나는 것 같은 소설도 한 편 있었다. 「아란」이라는 소설이었다. 자궁에 난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고 잠시 입원한 병원에서 ‘나’는 우울증 환자로 이번이 두 번째 입원인, 18세일 때 무용 수행평가 차차차 춤추기 짝이었던 ‘아란’을 다시 만나게 된다. 소설 전체에 주요 인물들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사건들은 산재한다. 하지만 섹슈얼리티가 인물의 어떤 고정된 정체성을 만들어내거나, 대상에게 고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아란의 경우 청소년기에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하고, 서술자의 경우 한 번의 결석으로 있지도 않은 어떤 아저씨와의 ‘원조 교제’를 의심 받거나 아란을 안고 나서 ‘적절치 않은 행동’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등의 사건은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식의 설명은 자세히 되어 있지 않다.

 

소설의 결말부 퇴원 전날 밤, 아란은 내 침대로 와 ‘사회 통념상’ 친구끼리 할 수 있다고 하기 어려운 스킨십을 시도한다.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기척이 난 뒤 아란은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가, 서술자의 어깨를 깨문다. 왜 그렇게 했는지 묻자, 언젠가 서술자가 자신에게 잠자리를 먹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섹슈얼리티는 사회 규범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함께 제시된다.

 

〈다음 날 교무실로 불려 갔다. 교무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나는 담임이 전에 내게 줬던 벌을 생각했다. 그녀는 일 분 지각한 벌로 발깔개에 붙은 먼지를 한 시간 동안 손으로 떼게 했었다. 어쩐지 기분이 축축해졌다. 교무실로 들어가기 전 나는 머리를 높게 묶었다. 고개를 숙이면 합법, 젖히면 불법인 어중간한 길이였다. 담임이라면 매 끝으로 턱을 들어 올릴 것이다. 두르고 있던 담요를 정수기 위에 올려놓았다. 담요는 어떻게 해도 불법. 지퍼를 열어 치마를 내렸다. 허리에 걸치면 불법, 골반에 걸치면 합법. 머리는 길면 안 되었고 치마는 짧으면 안 되었다. 나는 블라우스를 끄집어내 벌어진 지퍼를 가렸다. 교무실 문을 열었다.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훅 끼쳤다. 담임의 뒷모습이 보였다. 기척을 내자 담임이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봤다. 머리카락 끝이 내게는 불법이되 그녀에게는 합법인 구역에 들어갔다.〉 (「아란」, 107~108쪽)

 

불법과 합법 사이 어중간하고 축축한 공간, 혹은 “애매한 애들을 모아 놓은 분리수거함”(「아란」, 118쪽)의 지속 안에서 “나는 나로부터 좀 박리된 느낌”(「아란」, 124쪽)을 받는다. 이러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격과,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복수의 이야기는 모두 제자리에서 벗어난 말들만을 남긴다.

 

내가 「아란」을 퀴어한 소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소설에 나타난 인물의 정체성이나 인물 간 성적 접촉이 나타난다는 점에 있다기보다, 섹슈얼리티가 규범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전자도 퀴어한 삶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란」을 읽을 때 나는 ‘퀴어함’을 ‘새로움’이나 ‘윤리’로 쉽게 등치하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어떤 윤리적 곤경을 맞이할 수도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의 복잡함을 좀 더 이야기해도 되는 시점이지 않을까. 그리고 퀴어가 새롭다고 하거나 이색적이라고 하는 서술들은 조금 지겨워지기도 한 것 같다. 불행한 사람으로 뭉뚱그려지거나, 단죄로 죽어서 사라지거나, 반전 요소로 제시되기가 지겨웠던 때처럼.

 

이러한 독해를 요청하는 것은 –정말 싫지만- 우리도 저 먼 세대들처럼 전장에 나가 대의를 위해 희생하자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도 역사를 위한 단일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쉽게 치환될 수 있다. 게다가 성소수자들의 나쁜 점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실은 우리를 공포스러운 것으로 여길 뿐인, 시간 많은 혐오자들의 ‘상상력’에 기름을 부어주는 행위일 것 같기도 해서 공개된 지면에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취약성을 빌미로 많은 것을 용서받는 삶, 제도권 정치에서 권력 있고 인기 있는 (실상 선점할 필요가 있는 게토에 지나지 않는) 인구 집단으로 호명되는 삶, 화려한 수사에 파묻혀 획일화된 공장 생산품이 되는 삶, 무엇에든지 반대하고 보는 삶, 한 사람의 욕망에 다른 한 사람이 복속될 뿐인 삶 같은 것을 살기 싫다는 이야기이다. 「아란」은 주변인의 자리에서, 내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한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로, 민중가요를 부르지 못하는/않는 사람으로서.

 

‘퀴어’ ‘문학’을 아카이빙한다는 것은 주변인의 시선을 모으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성소수자가 주변인일 때도 있고, 성소수자가 중심인물일 때도 있다. 이 사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 가끔 퀴어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가끔 문학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복잡한 이야기들.

 

[필자 소개] 내내 - 한국 퀴어문학 비영리단체 무지개책갈피(Rainbowbookmark) 아카이브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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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6/09/23 [14:39] 수정 | 삭제
  • 인용된 글만 봐도 재밌네요.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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