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백합만화 카페가 생겼다고?!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라즈베리 헤븐〉 박한별 대표를 만나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6/09/26 [12:18]

한국에 백합만화 카페가 생겼다고?!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라즈베리 헤븐〉 박한별 대표를 만나다

박주연 | 입력 : 2026/09/26 [12:18]

지난 여름, 서울 연희동에 백합/GL 만화 카페가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BL(Boy’s Love)도 아니고, GL(Girl’s Love) 만화 카페라니!! 정말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정보를 재차 확인했다. 분명 거짓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어느 평일 오후, 카페 〈라즈베리 헤븐〉을 찾아갔다. 카페는 심플한 느낌이면서도 아기자기 귀여운 분위기였다. 놀랍게도, 평일임에도 거의 만석이었다. 구비하고 있는 백합 만화책도 생각보다 많았다. 책을 한참 구경하다 요즘 보고 있는 백합 애니의 원작 만화책을 골라 자리에 앉아 디저트를 주문했다. 로맨스 만화책을 읽고 있다 보니 디저트가 나왔고, 부드러운 푸딩을 한입 먹자 달달한 기운이 더 깊어졌다. 순간 정말 ‘헤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연 만화 카페 〈라즈베리 헤븐〉. 박한별 대표가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소개해줬다. ⓒ일다


카페를 나오며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곳이 만들어진 과정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 후, 가오픈 기간을 마친 〈라즈베리 헤븐〉의 박한별 대표를 카페에서 만났다.

 

-백합 만화 카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분야가 무엇이든 ‘좋아하는 거, 재밌는 걸 하자’가 인생 모토였는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성인이 된 이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GL 장르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또 한편으로는 카페 일을 굉장히 오래 했었는데, 자연스럽게 나만의 가게를 여는 게 목표가 되더라고요.

 

처음 카페 알바를 하던 시기에 레즈비언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지넷 윈터슨 저)라는 책인데요. 거기에 작가가 어릴 때 다녔던 만화방이 묘사되는데, 레즈비언 커플/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에요. 그걸 봤을 때 ‘나도 어린이 손님들을 환영하는 만화방 아주머니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됐죠. 그 꿈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주변에 이제 퀴어이면서 저 같은 오타쿠 친구도 많이 생기다 보니까 점점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한국에선 특히 BL보다 GL은 더욱 마이너한 장르로 여겨지고, 소위 ‘돈이 안 된다’는 평을 받는데요. GL/백합 카페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안 드셨어요?

 

일단 이 카페로 떼돈을 벌자는 목표는 애초에 없었어요.(웃음) 그리고 그동안 제가 일했던 카페가 다 인스타 감성의 굉장히 핫플레이스들이었거든요. 그런데서 일해 왔다 보니 사실 지칠대로 지쳐있기도 해서, 돈을 못 벌더라도 피곤하지 않은 가게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어요. 수입에 대해서 큰 욕심은 없었고요.

 

그리고 요즘은 ‘오타쿠’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인 거 같아요. 홍대 주변으로 오타쿠 타깃의 가게도 많이 생기고 있고요. ‘이 흐름을 좀 타야겠다’ 생각했어요. 또 주변에 GL 좋아하는 퀴어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전 고립된 느낌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올해 열렸던 백합 온리전(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특정 주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교류와 동인지 판매가 이뤄지는 이벤트)도 손님이 되게 많았으니까요.

 

-저도 거기에 가고 싶었는데, 입장권이 정말 빨리 매진되었더라고요. ‘백합이 이렇게 핫했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GL도 더 이상 적은 규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GL 팬들은 깊이가 남다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카페를 열었을 때 손님이 없을 거라는 불안은 별로 없었어요.

 

-백합 만화가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많아졌어요. 저도 일본에 놀러가면 항상 ‘애니메이트’(애니메이션, 만화 관련 상품 체인점)에 가서 백합(Yuri) 코너를 구경하거든요. 작년에 어느 애니메이트를 갔더니 백합 코너가 책장 하나를 다 채울만큼 꽤 크게 있는 거에요. 감개무량이었어요.(웃음)

 

확실히 GL/백합을 향유하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아요. 예전에 일했던 소위 ‘핫플레이스’ 카페에서도 여자 손님들이 (GL 만화 캐릭터) 피규어나 인형을 가져와서 디저트랑 사진 찍고 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어요. 거리낌없이 말이에요. 그런 걸 보면서 백합 카페를 열어도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 〈라즈베리 헤븐〉 카페에서 박한별 대표가 소설책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지넷 윈터슨 저, 김은저 역, 민음사)를 들고 있다. ⓒ일다


-카페를 준비하고 오픈하는 데까진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요?

 

아이디어 자체는 2~3년 된 것 같아요. 2024년 초부터 여름까지 친구들이랑 동업으로 카페를 열어서 짧게 운영을 했었고요. 이후에 내 가게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카페 이름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만화 카페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한 만화 카페에서 3개월 정도 알바를 하기도 했고요. 작년 한해는 계속 돈을 벌면서 머릿속으론 ‘카페를 어떻게 할까’ 구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12월 31일에 퇴사를 하고, 올해 1월부터 지인들에게 상담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어요.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금전적인 게 제일 힘들긴 했고요.(웃음) 그 외엔 사실 제가 게으름이 많고 즉흥적인 성격인데, 그런 나를 타일러서 일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처음 들어섰을 때 보통 만화 카페보단 뭔가 더 세련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짝 메이드 카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카페 디자인은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레즈비언 대상 업소들은 미감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좀 깨고 싶었어요.(웃음) 그래서 인테리어에 신경을 좀 썼고요. 일본 여행 다닐 때 ‘킷사텐’(다방) 방문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 곳의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마스터와 손님들의 관계 또한 유심히 관찰했고요. 그런 걸 이 카페에서 좀 녹여내고 싶었어요. 제가 아직 카페 운영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마스터와 손님의 관계까진 재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테리어는 꽤 구현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 카페는 원래 계획이 거의 구현된 건가요?

 

그런 거 같아요. 다만 아직 아쉬운 게 있는데요. 책을 천권 정도 모으면 책장이 꽉 다 찰 줄 알았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공간이 남더라고요. 비어있는 곳이 아쉬워서 빨리 더 채우고 싶어요.

 

▲ 〈라즈베리 헤븐〉 공간 중 소파가 있는 자리. 커다란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다

 

-백합 만화는 처음 어떻게 읽게 되셨나요?

 

뭐가 처음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곤노 오유키 作)는 초등학생 때 투니버스에서 방송할 때 봤었어요. 그땐 백합이 뭔지도 잘 모르고 본 것 같지만은요. 그리고 사실 제가 뚜렷하게 ‘백합/GL’로 분류된 만화보다 여자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만화 속의 다양한 관계를 ‘착즙’해서 먹는 걸 좋아해요.(웃음) ‘백합/GL’로 딱 분류된 것 중에 제가 인지하고 본 첫 만화는 『최애가 부도칸에 간다면 죽어도 좋아』(히라오 아우리 作)인 것 같아요.

 

-『아즈망가 대왕』(아즈마 키요히코 作)을 좋아하신다는 정보는 미리 입수했는데요.(웃음)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어요. 여전히 1년에 두세번은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렸을 때 봤을 땐 몰랐는데, 이 만화에 레즈비언 캐릭터가 나와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연출 중엔 그 캐릭터 뒤로 무지개가 나오는 장면도 있고, “너 레즈비언이냐?”하는 대사도 나오고요.

 

-어머,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카페 이름도 애니메이션 〈아즈망가 대왕〉 OST에서 온 거죠?

 

네. 엔딩곡 제목인데요. 그 노래 가사를 들었을 때 퀴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대와 둘이... 둘이서 만나자” 이런 가사도 나오거든요. 원래 다른 이름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까 “라즈베리 헤븐”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라즈베리’가 레즈비언의 은어로 쓰인다는 것도 아셨나요?

 

그건 나중에 알게 됐어요. 우연이었는데, 그런 의미도 있더라고요.(웃음)

 

-카페 열 때 ‘이 만화만큼은 꼭 구비해야 겠다’고 생각한 작품은 어떤 건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죠. 이 작품은 너무 교과서이기도 하고 백합 만화의 클래식이기도 하고요. 무조건 전권을 다 구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라노벨’(라이트 노벨, 일러스트가 결합된 서브컬처 풍의 원작 소설판)은 다 구하지 못했어요. 절판됐는데 중고로 사려니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만화책은 아니지만 저한테 의미가 있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도 갖다 놓으려 했고요.

 

-구비된 책들은 원래 거의 다 갖고 있었던 건가요?

 

만화책은 대체로 산 거에요. 다른 문학 책이나 에세이, 동인지 등은 제 개인 소장품을 썼고요. 여전히 만화책을 모으고 있어요. 절판된 책들도 꽤 있어서 구하기가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몇몇 분들이 절판된 책을 기부하겠다고 연락 주셔서, 그렇게 받은 것도 있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 〈라즈베리 헤븐〉 카페 입구 ⓒ일다


-한별 님이 백합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어떤 점이 제일 좋나요?

 

아무래도 제가 여자니까 극 중 캐릭터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꼭 성애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여자들이 겪는 다양한 관계의 경험을 나에게 빗대어 보면서 공감할 수 있어서요.

 

-어려운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최애 GL/백합 만화를 이야기해 주세요.

 

백합 만화는 시기별로 최애 작품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근래엔 카페를 준비하면서 읽은 책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이시구로 마사카즈 作), 이건 완전 백합은 아닐 수 있지만 넓은 범위에서의 백합으로 볼 수 있고요.(웃음) 『제7여자회 방황』(츠바나 作)도 재미있었고. 『대전 감사합니다 ~숙녀는 격투 게임을 안해요~』(에지마 에리 作)도 재미있었어요. 이건 애니메이션도 최근에 나왔고요. 그리고 『백합에 끼어드는 남자는 죽어버려?!』(요모기모치 作)라는 책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드네요.(웃음) 한별 님은 이렇게 만화 좋아하시는데 직접 그리진 않나요?

 

초등학생 땐 만화가가 꿈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잘 못 그려서...(웃음) 올해 백합온리전을 갔다 오고 나니 창작 욕구가 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카페에서 만화 그리기 워크숍 같은 걸 해볼까 싶기도 해요. 저도 직접 배울 수 있으니까요.

 

-카페이긴 하지만, 이 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여러 행사들을 정기적으로 도모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이건 거만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창작자들에게도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작품 홍보나 판매 관련 행사를 할 수도 있고요.

 

-약 한달 정도 영업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혹시 있나요?

 

벌써 재방문하는 손님들이 꽤 있다는 게 일단 좀 놀라운 점인 것 같아요.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목요일마다 오는 단골 손님이 생겼어요. 그리고 목요일마다 일하는 직원 분도 있어요. 직원이 친구를 종종 데리고 왔는데, 그 친구와 손님이 바에 같이 앉았다가 친해진 거에요. 그리고 둘이서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나봐요. 근데 단골 손님이 목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에 카페에 와선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내일 못 올 것 같다. 근데 상대방 연락처는 모른다. 메시지를 전해달라’ 하시곤 선결제를 하고 가셨어요. 다음 날 직원의 친구 분이 오셔서 사정을 듣고선, 그 분을 위한 선결제를 또 하고 가시더라고요.

 

-너무 스윗한 장면이네요. 벌써 재미있는 교류가 생기는 장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라즈베리 헤븐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가요?

 

“라즈베리 헤븐” 노래 가사에 ‘낙원’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데요. 이 곳이 ‘GL러’(백합 만화 향유자)들에게 정말 낙원, 안식처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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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6/09/29 [15:44] 수정 | 삭제
  • 라즈베리 헤븐 넘 사랑스러운 이름이네
  • 오예 2026/09/27 [15:40] 수정 | 삭제
  • 조만간 성지 순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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