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가정기본법 모순 많다

구호는 다양성, 정신은 친가족주의

이박혜경 | 기사입력 2004/01/26 [02:32]

건강가정기본법 모순 많다

구호는 다양성, 정신은 친가족주의

이박혜경 | 입력 : 2004/01/26 [02:32]

 

지난 해 연말 건강가정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을 놓고 여성계 등 여러 분야에서 반대가 있었기에 법안 통과 소식은 여러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지금의 심정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실망을 넘어 한국 사회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가족에 대한 국가 책임 규정

건강가정기본법에서 말하는 ‘건강가족’은 가족원 모두의 요구가 충족되는 가족이지만, 건강가족을 저해하는 것은 성별 불평등이라는 진단이 전제되어 있다.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어서 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을 위한 지원도 국가의 책임으로 포함돼있다. 국무총리 산하에 중앙건강가정정책위원회 둘 것과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가족상담센터를 설치할 것도 규정되어 있다. 이 법에 따라 대학에서 사회복지, 여성학, 가정학의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이들이 건강가정사 자격증을 가지고 가정상담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이 법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가족의 유지를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족이 문제 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시기에 국가에 이렇다 할 만한 대응도 없다가 이제야 좀 움직이려나 보다고 이 법의 제정을 반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복지와 문제가 개별 가족의 책임으로만 맡겨졌던 것에 대한 비판을 상기한다면, 가족을 위한 국가의 책임은 오랜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족정책 일관된 철학이 없다

한국에 가족정책이 부재하다는 오랜 비판이 있었지만, 여러 법과 정책이 가족 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족을 명명하고 있는 정책만이 가족정책인 것은 아니다. 세법, 상속법, 연금법 등 여러 법들이 가족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족정책의 부재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족정책 자체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정책을 이끌어가는 철학의 결여 또는 정신의 비일관성을 지적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일관된 정책은 가족의 현실에 대한 진단에서 출발한다. 해결되어야 할 가족의 문제를 무엇으로 보느냐가 정책의 방향을 세우는 데에 출발점이 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다양해지는 가족 현실에서 가족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겠다는 입장에 기반해 있다. 하지만 가족의 다양성을 현재의 가족의 현실이라고 보고 있음에도, 그 다양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일관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가족의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출발점인데, 그 문제라는 것과 다양성의 관계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가족이 다양해서 문제라고 보는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이혼을 막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막아보다가 그래도 이혼하면 도와주겠다는 것인가? 심지어 국가에게 가족 해체 방지책을 세울 책임까지 지우는 데서는 좀 어지럽다.

그런데 이혼이 왜 사회적 문제인가? 성인의 경우를 보자면 이혼으로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있지만, 국가가 그것을 미리 막아주는 것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민을 미성년자로 보지 않고서야 국가가 그 정도로 나설 필요가 없다. 성인의 삶이란 자신의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 뒷감당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혼이 문제가 된다면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를 받거나 버려지는 아동의 입장에서 문제다. 아이는 부모의 결혼도 이혼도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아이가 성인처럼 뒷감당할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요컨대 이혼은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 받는 아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혼이 아니더라도 아동 양육은 이미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해결되고 있지 않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 부모 두 사람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제 깨닫고 있지 않는가? 굳이 부모의 이혼이 아니더라도 아동 양육에 대한 종합적 처방을 가져야 한다. 부모의 이혼을 막겠다는 것은 자녀 양육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의 결혼 상태와 관계 없이 아동 양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양성 평등한 가족을 대안으로 보고 있다. 옳은 답이다. 그런데 그 답이 내려지기 전에 왜 이렇게 이혼율이 높아지는가 하는 질문의 맥락이 있다. 하지만 이혼은 논리적으로 결혼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질문은 다른 맥락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이토록 결혼이 성별 불평등한데도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가? 그러면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 상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혼이 사회 문제가 된다면 그 처방은 '가족의 유지'보다 근본적인 가치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 때문이라면, 이혼 전에 문제를 삼아야 하는 것은 친밀한 관계에 미성숙한 이들의 결혼이고, 기혼자라는 사실에 부모 될 자격이 자동적으로 따라다니는 사회가 문제 아닌가? 그 전에 결혼은 당연하고 결혼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많은 이유를 대어야 하는 이상한 선택으로 보거나, 혹은 결혼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에만 선택할 수 있는 소극적인(부정적인 - 즉 결혼이 아니면 ‘미혼’이라는 식의 구분) 선택으로만 보는 사회가 문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족의 중요성이 아니라 가족 중요성 구호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법의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조문은 '인식'을 국민의 의무로 하고 있는데,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무엇을 알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하다. 그 중요성을 국가는 알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혼인의 중요성이란 혼인 그 자체의 중요성인가, 양성평등 등 혼인의 원리나 가치의 중요성인가?

가족 해체를 방지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이 법에서 가족은 혈연, 혼인,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로 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가족의 다양성과 가족 유지라는 수사가 서로를 허용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가족의 중요성 또는 유지 운운에서 가족이란 핵가족 또는 그것을 핵으로 한 직계가족으로 보인다. 가족 해체 운운에서의 가족이란 결국 핵가족 등 기존의 가족 개념인데, 가족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면 핵가족 이후의 가족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보아야 한다. 법에서도 가족의 다양성 운운할 때의 가족은 그야말로 다양한 가족들이다. 그렇다면 가족 해체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가족 해체를 방지하겠다는 정신으로 이혼가정을 지원하는 것은 이혼가정을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보면서 지원하겠다는 결손가정 지원책과 다른 것인가? 그리고 이혼가정이 다양한 가족의 전부인가?

가족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과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공존할 수 있는 입장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경계가 확장되고 흩어지고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꼭 가족이라고 불리어야 하는지, 그리고 가족이라고 불리는 것 사이의 공통점이 가족과 가족 아닌 것의 경계만큼 불분명하다면 가족이라는 명명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높은 이혼율뿐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고 단독 세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는 것에 현실도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결혼을 하고는 싶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소극적인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이혼도 단지 결혼 내의 문제의 결과로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 안에서 밀어내는 힘뿐 아니라 밖에서 당기는 힘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남성 되기, 여성 되기의 변화가 경계의 불안정화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섹슈얼리티 정체성(혹은 정체성의 거부에 이르기까지) 등 무수한 요소들의 운동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모든 논의에 물들어 있는 ‘서구적’ 발상-엄밀히 말하면 서구 이론 암송을 한국 사회의 현실 진단으로 착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이런 논의에 항상 따라붙은 서구의 유령-변화하는 현실을 보는 시각을 결여한 채로, 새로운 이야기는 그것이 서구의 논의와 닮았다고 해서 서구적인 것이고, 서구적인 것은 우리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단순 전제하는 담론-도 함께 조심하면서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최소한 높은 이혼율이 젊은 세대의 높아지는 일인가구 구성율과 동시에 일어나는 현실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상황은 친밀성의 구조 변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성애 핵가족이 근대적 친밀성의 구조 안에서 차지해 온 특권이 와해되는 중이다. 즉, 친밀성이 새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수구주의 입장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다양성의 인정은 원리의 다양성,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전제해야 한다. 여전히 결혼에 기초한 가족의 중요성을 전제하면서 다양성이란, 핵가족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가족의 기능을 보완해 주겠다는 기존의 선가정 후복지의 입장과 달라질 수 없다.

고이혼율, 저출산율, 인구노령화 등 인구 및 가구 동태에서 두드러지는 몇 가지 특징은 새로운 사회적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지금의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의 현실에 대해서는 미미한 해결책을 가질 뿐이면서 그것을 둘러싼 이권과 권한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 법의 효과가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혼율도 저하시키지 못하면서 특정 집단의 이해에나 봉사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건강가정기본법이 담고 있는 가족 유지 가치는 현실의 변화는 보지 못한 채 효의 원리를 암송하면서 노인복지를 가족에 떠넘겨온 방식을 상기시킨다. 그 암송은 사실상의 정책 부재의 다름 아닌 것이다. 철학이 없는 정책은 새로운 정책의 부재와 다름없고, 새로운 정책의 부재 속에서 전통적 가치에 대한 강한 옹호는 수구주의 아닌가? 지금의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 다양성 인정은 구호이고, 정신은 친가족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법안 졸속 제정이 낳은 결과

건강가정기본법을 제정하기까지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의 문제는 이러한 기존의 태도와는 달라지려고 한 것 같은데 달라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어리석음 때문인지, 친가족주의를 포장하려는 정치적 의도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다양성은 결론이 아니라 우리의 출발점이다. 이 다양한 현실에서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가족의 중요성과 가족 아닌 것의 중요성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다양성 인정은 출발점이기에 논쟁과 경합의 정치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다양성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탈정치화 시켜온 무사안일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무사안일에서 페미니즘도 완전히 무죄는 아니다.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지금은 다양성을 탈정치화시킨 무사안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 같다. 이 법은 만들어지자마자 급진적인 도전에 처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이 모든 어지러운 사태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이 법의 졸속 제정 때문이다.

-필자 이박혜경님은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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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런 2004/02/03 [15:18] 수정 | 삭제
  • 호주제 속에서도 행복하니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잘~~~~~사는 가족구성원

    들 많다... 가정 파괴 시킬려면 너네들이 그냥 가정 만들지마.. 괜히 남들 행복하게

    사는데 딴지걸지 말고... 이기주의자들아...
  • 창씨개명 2004/01/31 [08:40] 수정 | 삭제
  • 구호는 다양성, 정신은 친가족주의

    빛 좋은 개살구?!?!

    무정부상태가 되지 않는 이상 이 공동체는 공동체로서 지켜야 할 룰과 원칙이 있는 겁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룰마져, 일부 사회구성원이 인권이라는 잣대나 종교의 잣대나 자신의 신념이라는 잣대로 무너뜨려버리면, 그 사회는 급속히 붕괴되어 버리고 마는겁니다.
    공동체에 대한 깊은 사려와 관심이 없는 이상, 당신은 당신의 신념속에서 계속 허우적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권위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신은 인권이란는 또 다른 권위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권의 기준은 당신 자의적인 해석에 밑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스스로 괴리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당신 스스로 지나친 편견과 오만과 독선을 버려야 할겁니다.
  • 스누피 2004/01/27 [20:51] 수정 | 삭제
  • 시원스레 지적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 이상한 법안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주질 않았는데.

    여러 사이트에 퍼 날라도 되겠지요?
    물론 출처는 정확히 밝히겠습니다.
  • 애니 2004/01/27 [09:57] 수정 | 삭제
  • 무늬만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건가 보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 yellow 2004/01/26 [21:00] 수정 | 삭제
  • 흠.. 정말 모순되는 개념이 많군요.
    법학자들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
    특정집단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강한데..
    그 특정집단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 아닐까..
    이건 법학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일까요.

    건강가정이라는 말부터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이 법안도 그들끼리 이랬다저랬다 말들을 바꾼 것 같은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출발해서..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포장을 해버리는...
    이율배반적인 법안인 것 같습니다.
  • 모량 2004/01/26 [14:50] 수정 | 삭제
  • 특정 분야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어거지로 만든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해체 막겠다는 게 목적이면서 가족의 다양성을 어떻게 인정하겠다는 건지, 법률은 아주 분명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한심합니다.

    이 법률이 특히 가정학 분야 전공자들을 먹여살리려고 하는 거라는 말이 있던데요. 가족정책이나 복지정책을 이런 식으로 좌지우지해선 안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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