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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후, 파병반대집회에 가면 다음과 같은 발언을 들을 수 있다. “내 아들을 전장으로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려는 당시부터 여성들의 반전운동은 한국에서도 불 지펴졌지만 각종 언론에서는 “총칼 꺾는 ‘어머니의 힘’ ”, “어머니의 생명 사랑으로 갈등 극복을!”등의 문구를 통해 소개됐을 뿐이다. 즉 여성들의 반전운동은 평화를 이야기하는 ‘어머니들’의 운동이었던 것이다. 지난해까지 계속됐던 반전집회에서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모성 이데올로기, 가족이기주의 부추겨 여성들의 반전평화운동은 오랫동안 ‘어머니로서의 입장’이 내세워졌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우선 ‘생명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란 존재는 평화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출산경험, 양육경험에 근거하여 어머니를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생태학적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남성은 태생적으로 무력과 가깝고, 여성은 태생적으로 평화와 가까운가? 생물학적 결정론은 별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특히 성별역할의 구분을 확고히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즉 모성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여성평화운동은 여성운동이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성별역할 분리’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어머니의 이름을 내세우는 방식은 혈연중심의, 가족이기주의와 연결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말에 있었던 파병반대집회에서 “이 땅의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면서 선보인 노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라크에) 우리 아들 안 보낸다, 너네 아들 보내라.’ 병역의무를 지지 않는 아들을 둔 소위 ‘고위층’을 향한 노래다. 이 노래는 ‘fucking USA’만큼이나 문제가 있다. 이 노래에 깔려 있는 생각은 여성들의 평화운동을 ‘이기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자기 자녀, 자기 가족들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파병과 전쟁을 반대한다는 논리 속에서 여성들은 가족이기주의의 선봉에 선 사람들로 비쳐진다. 과연 여성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가 아들을 전장에 보내기 싫어서란 말인가? ‘어머니’ 전략 과연 효과적인가 사실상 ‘어머니’를 내세우는 것이 여성평화운동의 ‘보편적인’ 목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남성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들은 이것이 “잘 먹히니까”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여성들은 ‘전쟁’, ‘군대’ 등에 대해 주체적으로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평화’에 대해서만 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것조차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에게만 허락됐다. 소위 군대도 가지 않는 여성들이 무슨 ‘전쟁’과 ‘평화’를 논하느냐 하는 남성들도 ‘(남성들의) 어머니’의 평화운동에는 반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남성들에게 ‘어머니’는 ‘여성이 아닌’, 단지 어머니일 뿐이다. 과연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여성평화운동이 전략적 선택으로 효율적이라 할 수 있나? 이 같은 운동방식은 또한 ‘어머니가 아닌’ 다른 많은 여성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많은 비혼 여성과 불임 여성, 레즈비언, 자녀가 없는 기혼여성들은 ‘보편적인 어머니’와는 다른 경험을 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에게 “여성은 어머니로서 당연히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공허하고 동떨어진 것인가. 소수자의 입장에서 펼치는 여성평화운동 2001년 9.11 이후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WAW가 “여성과 소수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며 결성되었을 때, 이들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평화운동에 있어서의 모성담론에 대해 WAW 측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여성들은 모성을 넘어서서 다각도의 저항이 필요하다. 전쟁의 피해를 말하는 여성은 국제분업 속에서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이며, 군사화가 찬양하는 폭력적인 남성성으로 인해 직접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이며, 전쟁이 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쓸모 없게 여겨지는 모든 ‘어머니가 아닌’ 여성”이라는 것이다. 여성과 소수자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원래 더 평화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경험들을 통해 전쟁이 만들어 내는 상황들, 전쟁을 준비해 가는 상황들을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의 폭력에 노출돼있는 여성들, 장애인들, 아이들,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로 인해 폭력과 전쟁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약자라는 정체성이 평화운동을 벌여나가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자의 입장에서 펼치는 여성평화운동은, 반전운동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주의적인 문화를 밝혀내고 그것들을 없애나가려는 노력과, 약자에 대한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을 포함한다. 다양한 여성의 정체성 찾아야 모성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전시/비전시’라는 단순한 구분을 낳을 우려가 있는, “어머니로서 평화를 사랑한다”는 모호한 주장은 문제가 있다. 모성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은 새로운 여성들의 평화운동에 대해서조차 ‘딸들의 외침’이라고 왜곡해서 생각해버리는 실정이다. 나이든 여성들이 하는 평화운동은 ‘어머니’로서 하는 것이고, 젊은 여성들이 하면 ‘딸’로서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팽배해있다. 우스운 노릇이다. 여성평화운동은 더 이상 ‘자식을 군에 보낸 혹은 보낼 어머니’들이 펼치는 운동이 아니다. 기존의 여성평화운동 진영도 이젠 모성담론을 뛰어넘어, 여성들의 다양한 위치와 정체성을 바탕에 두고 새로운 평화운동담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또한 새로운 평화운동을 원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에 관심의 축이 이동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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