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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이라크인 수감자 학대에 대한 항의로 이라크의 한 무장단체가 미국 민간인을 참수한 사건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져 가고 있다. 소위 ‘참수 동영상’이라고 불리는 이 영상물은 지난 주, 언론을 통해 영상을 캡춰한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어 각 방송사의 뉴스를 통해 동영상의 일부가 공개됐고, 한 방송사에서는 참수과정을 화면만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내기도 하였다.
‘목을 자르는 과정을 그대로 담은 영상’이라는 충격적 내용을 접한 후 일부 사람들은 실제 동영상을 찾기 시작했고, 게시판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영상은 순식간에 확산 배포됐다. 문제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상기(?)를 내놓았고, ‘참수 동영상’과 관련된 또 다른 뉴스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사건은 최근 미군의 이라크인 수감자 학대와 관련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위험수위를 넘겼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미군의 이라크 포로와 민간인 학대 관련 보도들은 하루가 다르게 선정성으로 치닫고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사진들을 경쟁적으로 내어 놓았다. 사진이 보여주는 잔인함의 강도는 더욱 더 높아졌고, 매일 다른 종류의 사건들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미군의 수감자 학대는 비판 받아 마땅한 전쟁범죄이며, 진상을 알리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말이 곧 미국이 벌이고 있는 대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을 고발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보도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글보다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전달이 가능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보도사진은 수십 줄의 기사보다 훨씬 웅변적일 때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각 이미지는 ‘구경거리 화’되기 쉽다는 위험성을 가진다. 따라서 영향이 큰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의 특종잡기 식의 경쟁적인 보도태도는 이러한 위험성이나,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물 속의 피해자들의 인권에도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나체로 벗겨져 학대를 당하는 이라크 남성 수감자들의 모습을 간신히 성기 부분만 모자이크 처리해 싣고, 일부 매체에서는 강간을 당하는 여성의 얼굴(사진의 진위여부와는 별개로)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 참수된 희생자의 가족들은 “그것(동영상)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이 구경거리가 되는 걸 그들은 원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영상은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시시콜콜한 신상까지 뉴스로 보도되는 판국이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잔인한 사진을 접할수록 전쟁의 속성에 대해 더욱 더 성찰하게 되는가? 수감자를 심하게 다루는 영상을 보아야만 전쟁이 잔인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잔혹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즉물적으로 얻게 되는 분노는 일시적이고 사그라지기도 쉽다. 오히려 자극은 무덤덤함을 낳고, 더 커다란 자극을 원하게 만든다. 인터넷 게시판에 “동영상 어디서 구해요?”라거나 “이라크 여성 강간 사진 입수” 따위의 글들을 올리는 네티즌들을 보게 된다. 언론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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