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레즈비언과 스포츠의 함수관계

우리들만의 운동장을 꿈꾸며

미니 | 기사입력 2004/10/10 [17:23]

[기고] 레즈비언과 스포츠의 함수관계

우리들만의 운동장을 꿈꾸며

미니 | 입력 : 2004/10/10 [17:23]
영화 <오스틴 파워>의 한 장면. 닥터 이블과 뜨거운 밤을 보낸 프라우 파비시나, “다시는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 예언은 결국 맞았다)이라던 그녀가 어느 날 새 애인을 데려왔다. “우린 LPGA 투어에서 만났어요. 이쪽은 ‘일자눈썹(unibrow)’.” 그 사람은 굵은 일자눈썹이 돋보이는 당당한 체격의 여성 프로골퍼. 프라우 파비시나는 ’일자눈썹‘의 골프장갑 낀 손을 만족스럽게 쓰다듬는다.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세간의 부당한 편견이 우리나라에서는 “선머슴” 혹은 “덜 성숙한 여성” 정도라면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서구사회에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낙인으로 존재한다. 이 관념 차이는 아마도 레즈비언의 가시성 때문이겠지만 어디서나 “저들은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전제는 깔려있다. “레즈비언 운동선수”는 대중문화에서의 농담거리였고 사람들 머릿속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

1981년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그와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의 관계를 의심하던 언론에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다. 언론은 나브라틸로바의 랭킹 독주를 성취 그 자체가 아닌 “부자연스러운” 여성이 자신의 신체능력 우위를 이용한 것으로 은근히 폄하했다. 운동을 너무 잘해도 탈이라고 할까. 관습적 여성상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은 스포츠에서의 강한 여성을 불편하게 느꼈고 나브라틸로바의 커밍아웃은 좋은 얘깃거리였다. “그럴 줄 알았지. 유전자에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야.”

이런 사회적 편견은 나브라틸로바 이전에 1910년대 이후 미국에서 여성의 스포츠 참여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시기부터 암암리에 존재했다. 때문에 여성들은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기도 했고 겁에 질린 프로 리그 경영자와 체육 지도자들은 사회적으로 ‘무해해 보이는’ 여성상을 내세워 홍보했다.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서 여자 야구 선수들이 특정한 복장과 머리모양을 지도 받고 차밍스쿨 교육을 받는 장면은 그 단적인 예다. 2차 대전이 배경인 이때에는 경영자들의 전략이 가정적인 여성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편이었다면 동성애자의 가시성이 높아지는 전후 1940~1950년대에는 레즈비언 혐의를 불식시키려는 방어에 가까워진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이 ‘낙인’은 여성 스포츠인의 성취를 비정상적이라고 여기는 남성 중심 스포츠계의 여성 비하와 동성애 혐오의 소산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레즈비언과 스포츠의 상관관계의 발견은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관찰이기도 하다. 물론 이 관계는 그들의 편견대로 ‘스포츠=남성성=레즈비언’의 단순한 도식으로 해석할 일이 아니다.

다른 사회적 공간보다 스포츠계에 레즈비언 비율이 높다는 큰 표본의 공식적 통계는 물론 없다. 다만, 몇몇 스포츠사 연구 자료와 ‘카더라 통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감’을 이용해볼 때 더 많다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존재감이 상당히 가시적이다. 수잔 칸(Susan K. Cahn)은 여성 스포츠가 미국에서 레즈비언 하위문화와 정체성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레즈비언이 스포츠에 몰려온 것인지 스포츠가 각자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인정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주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던 특성들―적극성, 역동성, 스피드, 파워―이 스포츠에서는 미덕에 해당했고 많은 레즈비언들이 스포츠 안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느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일단 머리 짧은 것이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운동하기에 편하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또 바깥에서와 달리 이 곳에서는 ‘여자처럼’ 공을 던지면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스포츠가 깃발을 높이 든 레즈비언의 해방구였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비밀의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이 점이 게이 바나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과 달랐다. 스포츠는 굳이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드러난 외침보다는 암묵적인 추정과 몸짓, 분위기가 소통수단이었다. 물론 어디서나 둔한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니 어떤 이들은 그 경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다. 따라서 스포츠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안식처, 은근히 레즈비언 정체성을 끌어안을 수 있는 곳으로 작용했다.

물론 요즘에도 비밀스러움을 얘기하기는 무색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수면으로는 떠오르지는 않는다. 리그 경영자들은 레즈비언 미팅 장소로 일반인의 인식이 굳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선수들은 은퇴 후나 더 이상 비밀도 아닌 무렵에 커밍아웃을 한다. 이래저래 관람자들만 남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인 것 같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 중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비치발리볼 여자부 결승을 보게 되었다. 그간 비치발리볼이라는 스포츠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선입관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것을 내켜 하지 않다가 처음 시청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점수를 따고 우승을 확정 지으며 환호하는 미국 팀의 두 선수. 비키니 차림의 그들이 서로 껴안고 모래밭을 뒹구는 장면, 점수 딸 때마다 불필요해 보이는 신체접촉을 해가며 기쁨을 표하는 장면을 보고, ‘건전한’ 스포츠관람을 기대했던 나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며 인터넷에 접속해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게시판(영어사용자들의 게시판이었다)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 게시판은 “둘 다 남자친구 있다니 날 샜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라는 분위기였다. 하여간 레즈비언들은 이래서 귀엽다. 초이성애적 이미지의 스포츠에서 또 구경거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왠지 많은 것을 놓친 게 아닐까 아쉬워하며, 날 설레게 하였던 그간의 스포츠 경험들─때로는 관람자로서, 때로는 직접 뛰는 선수로서─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날 밤, 나를 운동장 중앙에 모셔두고 말총머리 찰랑거리는 축구 선수들이 공을 차고 구릿빛 피부의 소프트볼 선수들이 캐치볼 하는 레즈비언들만의 운동장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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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가리 2004/11/10 [20:28] 수정 | 삭제
  • 여성 스포츠계의 문제는, 같은 프로라도 남성이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테니스도 그렇고, 골프, 농구, 축구 등등 여성 프로 선수들이 남성 프로 선수들만큼 돈을 받는 스포츠가 거의 없죠.
    그런데, 테니스의 경우, 여자 테니스에 대한 인기가 증폭하면서, 프렌치 오픈인가에서는 처음으로 여자 단식도 남자 단식과 동등한 액수의 상금을 받게 되었지요.
    그 후 힝기스, 비너스, 세레나, 대벤포트, 카프리아티, 애넹 등등의 여자 선수들이 한 핏치 더 높여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피튀기는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정적으로 보여지던 여성의 공격성, 힘, 스피드, 동물적 감각 등이 이들 선수들에 의해 훨씬 더 많이 부각되었구요.
    남자 선수들 못지 않게 소리지르고 얼굴 붉히고 싸우는 모습과, 언론에 대고 서로 헐뜯는 발언을 하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무도 그들을 뭐라고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테니스 선수인 아멜리 모레스모가 앞서 언급한 선수들에게 밀려서 그랜드 슬램 이벤트에서는 번번이 우승을 놓치곤 했지요.
    결국, 레즈비언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프로 스포츠에서는 상금의 차별을 없앴을 때 남자 특유의, 혹은 여자 특유의 성격이 없이, 남자건 여자건 (레즈비언이건 -_-) 다 비슷해진다는 결론이었습니다.
  • 마리 2004/10/15 [11:53] 수정 | 삭제
  • 레즈비언 스포츠선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레즈비언과 스포츠 간 의미찾기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기도 하지만, 실제로 내용은 너무나 다른 시도죠. 하위문화가 갖는 특성이라고 볼 사람들도 있겠고요.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낙인에 대해선 저항하고, 내부에선 의미찾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인 것 같아요. 물론 유희를 누릴 권리란 측면에서도 중요하고요.
  • 원숭이 2004/10/14 [23:22] 수정 | 삭제
  • L들은 그런 애기 많이 하죠.
    우리들만의 빌딩을 사자.
    우리들만의 마을을 짓자.
    거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운동장이죠.. 혹은 코트.. ^^
  • 독자 2004/10/14 [20:19] 수정 | 삭제
  • 재밌네요..
    레즈비언들만의 운동장을 저도 꿈꿉니다.
  • 임시메모리 2004/10/14 [20:05] 수정 | 삭제
  •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브라틸로바의 경우도 그렇고 기자님 얘기대로 아주 나중이거나 은퇴 후에 밝히게 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다 밝히는 것도 물론 아니구.. 다들 짐작하는 경우가 아닐까해요.
    특히 레즈비언이란 게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으니까요. 나브라틸로바에 대한 그녀가 레즈비언이란 것에 대한 시선은 정말 안 좋았던 것 같거든요.
    테니스계가 또 상당히 스타시스템이라서 그런 것에 더 민감한 부분도 있는 것 같구.
    그렇게 파워풀한 경기를 하는데도 선수들의 외모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엄청난 기술과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네요.
    소위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종목의 여자선수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고 말이죠.
  • 니나 2004/10/14 [20:05] 수정 | 삭제
  • 여자들은 운동을 잘 하는 것조차 여자답지 못하다는 '약점'이 되어버리죠.
    눈치를 보느라 스포츠쪽에 관심있어도 뛰어들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운동을 즐기는 여성들에겐 여자다우니 뭐니 (화장이나 머리스타일 같은거)
    그런 거 신경 안써도 되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그런 건 편할 수도 있고.
    보면 괜히 여성스럽네 아니네 그런 걸로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유독 여자선수들 운동복을 벗으면 어울리지도 않는 옷에 화장을 잔뜩 하고 나타나서
    불편하게 했던 기억들도 많이 있죠. 한국선수들 특히요.
    여자다움이라는 걸 보여줘야한다는 그런 게 작용하니까 그런 거겠죠.
    그런 면에서 우리들만의 운동장을 갖는다면 그건 해방구를 꿈꾸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얘기인 것 같네요.
    여자다움이든 아니든 신경 안 써도 되는 공간이 필요해요.
    유니폼입는 회사에 다니는 제 친구가 (이반친구죠) 단 하루만이라도 남들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 2004/10/12 [22:01] 수정 | 삭제
  • 이반감성 + 이반아이디어 + 이반유머 + 이반이슈가 담긴 글이네요.
  • 저녁 2004/10/11 [20:08] 수정 | 삭제
  • 그러나 그런 얘기를 나누는 건 재밌죠.
    스포츠계 연예계 특히요.
    이반에게도 착각과 망상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
  • moca 2004/10/11 [14:56] 수정 | 삭제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애인과의 관계를 밝혔을 때 그녀를 더 많이 좋아하게됐죠. 세간의 시선은 별로 안 좋았지만요. 그녀의 집념과 파워풀한 플레이와 불꽃튀는 경쟁심 모두 참 아름다워보이더군요. 그 때 생각이 나네요. 화려한 독주. ^^
  • 광합성 2004/10/11 [01:13] 수정 | 삭제
  • 스포츠모임이 ((비밀리에)) 많지 않나요? ^^
    만약에 레즈비언 하위문화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라면 훌륭하긴 하겠군요.
    좀더 상세한 얘기를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궁금증 발동하네요.
    저도 <그들만의 리그> 보면서 쪼금 실망했던 차라 더 공감이 갑니다.
  • 코르크 2004/10/10 [19:49] 수정 | 삭제
  • 테니스계의 전설적인 이름이죠.
    재밌는 내용이네요.
    스포츠와 레즈비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