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의 삶의 변화 조명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11/14 [22:30]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의 삶의 변화 조명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

김윤은미 | 입력 : 2004/11/14 [22:30]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여성들은 후방에서 전쟁터에 나간 남성들을 기다린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 인간성의 파괴는 전장에 있는 남성들의 몫이며, 여성들은 순수함과 따뜻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아올 남성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그녀들은 남성들에게 가정의 안락함을 제공하고,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현실, 그리고 전후의 황폐함이 남성과 여성이 겪는 고통의 종류를 완벽하게 갈라놓았을 것 같지는 않다.

1950년대 여성들은 어떤 경험을 했나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는 전쟁과 전후의 황폐함이 여성에게 안겨 준 생존의 고통과 변화의 두려움은 남성들이 겪는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단지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결정되는 전장의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의 생존은 보다 긴 시간 속에서 결정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여성들이 겪은 고통과 두려움을 ‘편안함’ 혹은 ‘안전함’으로 덧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전후 사회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는 <태극기 휘날리며>류의 사고가 상식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사 전반에 걸쳐 여성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지만, 특히 1950년대는 ‘혼란과 고통’으로 기억될 뿐 실증적인 연구가 부재하다.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는 1950년대 여성들이 무너진 가정을 일으키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느라 이중적인 억압을 받았다는 시각이나 혹은 ‘자유부인’처럼 전후의 혼란을 틈타 성적으로 타락했다는 시각을 넘어선다.

대신 한국전쟁으로 인해 여성들이 어떠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는가, 또 그 자각이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1950년대 여성들의 변화와 그 가능성을, '혼란과 고통'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는 상당히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고된 노동현장과 성매매로 유입돼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전면적으로 나선 사실을 꼽아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미망인’이 37만 명에 이를 정도였으니, 먹고 살 문제를 급히 해결해야 할 여성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물론 그 직종은 노점상, 삯바느질, 식모 등 학력이나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여성중심적인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식모”처럼 일반 가정에 들어가서 일하는 여성들의 경우 아침 5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천대 받기 일쑤였고, 성폭력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됐는데, 생계가 곤란한 전쟁 ‘미망인’들의 수도 상당했다. 성매매는 전후에 증가세를 보였는데, 미군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한국정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지원하는 자세를 취했다. 한 예로, 1950년대 보건사회부 성매매 여성 통계에는 “하녀”, “미군동거”, “위안부”라는 범주가 포함되어 있다.

“하녀” 범주는 소규모 선술집, 식당, 여관 등의 심부름꾼이나 식모살이 등으로 일반 가정에 들어간 여성들이 상당수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군 동거”는 일시적으로 미군과 함께 사는 여성들을 지칭하며, “위안부”는 군인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을 지칭할 때 쓰였다. 즉 일본군에서 유래한 ‘위안부’라는 용어 1950년대에는 군인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축첩과 간통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라

한편 경제활동을 시작한데다가 근대적 인식이 확산된 여성들은 더 이상 봉건적 가족관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칠거지악 등의 도덕규범으로 참아야 했던 광범위한 축첩 관행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1953년 논란 끝에 형법 조항으로 간통 쌍벌죄가 통과된다. 간통 쌍벌죄는 ‘남성을 같이 처벌해도 되는가’라는 문제로 이슈가 됐다. 대법관 최병주는 “남자를 처벌한다면 누구나 안 걸릴 사람이 없으니 이는 실지상 불가능하다”라는 논리로 쌍벌죄 대신 여성 단벌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가족 구조와 재산 소유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여성들의 경우 남편이 첩을 들여도 어떻게 손쓸 방안이 없었기에, 간통 쌍벌죄의 통과를 환영했다. 남편의 간통을 여성이 고소한 사건들의 경우 여성방청객들이 법정을 가득 매웠으며 심지어 유리창을 깨거나 법정 창문에 매달려 방청할 정도로 축첩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자발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1957년 배우자 동의 없는 서자 입적 조항을 포함한 민법 안에 대해 400명의 여성들이 국회를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이처럼 축첩은 관제시위 이외에는 시위가 금기시됐던 전후 사회에서 평범한 주부까지도 거리에 나오게 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축첩은 처와 첩 중 어느 한편을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첩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 첩이 되는 여성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 타개 및 성적 욕구의 해결을 위해 첩이 되었으며, 대를 잇기 위해 처가 직접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첩의 수가 경제력 및 사회적 능력을 과시하는 도구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당대 법률로 인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1956년에서 1960년 사이 여성법률 상담소의 상담 내용 가운데 절반이 남성의 축첩 및 간통을 차지했다. 특이할 사항은 남편의 직업이 군인과 경찰관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는 1950년대 권력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승만 정권의 새로운 권력층인 친미 엘리트, 군인, 경찰, 관료 등이 자신의 권력을 배경으로 축첩을 했음을 보여준다. 전후 사회에서 군, 경찰, 관류는 국민을 통제하는 억압기구의 중추였다. 때문에 정부 차원의 축첩 공무원 숙청이 미약하게나마 이루어졌으며 여성들은 축첩 공무원 숙청을 요구하는 궐기를 하기도 했다.

여성의 경제권과 ‘성’을 통제하려는 시도들

이 같은 여성들의 변화에 대해 1950년대 사회는 두려움을 느끼고 통제하려 했다. 전쟁 ‘미망인’들은 열녀, 효부로 살 것을 강요 받았으며 성매매 여성들은 ‘양공주’라고 불리면서 민족의 수치로 여겨졌다. 경제활동에 나선 여성들의 경우 그 활동이 폄하되기 일쑤였는데, 예를 들어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만 경제적 신용활동을 할 수 있던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편리한 자금조달 수단이었던 계는, ‘여성들의 무계획적인 허영’이라고 비난 받았다. 실제로 계를 통해 가정경제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상황이 많았던 만큼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직장을 가지면 여성이 ‘남성화’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며, 직장 내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중에서도 여성의 성을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담론이 거셌다. ‘자유부인’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사교 활동의 장이 소수 부유층에게 집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등에서 ‘자유부인’이 사회에 만연한 허영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면서 비판한 것은, 경제적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기 위함이었다. '자유부인’은 서구소비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자이자 에로틱한 성적 대상이었으므로, ‘자유부인’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들의 복장에 대한 규제도 심했다. 양장을 착용한 여성들의 경우 ‘사치와 허영’에 빠진 ‘노출증자’, ‘나일론 광’으로 지칭됐다.

전쟁 이후 남성의 수가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증가한 미혼여성의 경우 사회적 감시 대상이 됐다. ‘전후파’ 혹은 ‘아푸레’ 여성은, ‘동양적인 미풍과 생활도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타입’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인데, 모든 죄악과 비극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이 같은 악선전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1950년대 여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이는 ‘가정적’, ‘편안함’, ‘안락함’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또한 이 변화는 남성중심 사회의 균열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바꿀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고된 가운데서도 여성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가정 내 지위를 보다 상승시킨 이중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근대적 의식으로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이 같은 고단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활동들은 온갖 사회활동을 억압했던 이승만 정권과 남성중심적 사회의 장벽에 부딪쳐 조직화된 여성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 시기의 여성들의 변화가 가져온 가능성과 한계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1970년대와의 연속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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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 2004/11/21 [03:05] 수정 | 삭제
  • 한국 전쟁에서 남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 쓴 책이라면
    수십 권은 댈 수 있을 겁니다 -_-;

    한국전쟁 때와 그 이후의 여성의 상황이라는 지금껏 주목받지 못한 부분을
    연구한 책인데 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고 그렇게 불만인지 참.

    맨 위 두 문단을 보세요. 요약하자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면, 전쟁 때 남자들만 고생했고 여성들은 따뜻함을 간직한 채 돌아온 남자들에게 안락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사실 전쟁이 여성들에게 준 고통은 남자들의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말인데... 뭐가 여성들만 고통받았다고 썼다는 건지...

    지금까지 많은 책들은 그것이 "전쟁에서 한국 남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전쟁이 한국인에게 준 고통"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전쟁에서 한국 남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만 말했죠. 그런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한국 전쟁에서 여성의 경험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리고 있는데... 그런 책에 여성의 경험 이야기만 했다는 게 뭐가 문제된다는 겁니까.

    물론 나중에는 남성사/여성사로 구분되는 역사뿐만 아니라 성별관계를 거시적으로 다룬 역사가 쓰여져야겠지만... 지금 남성사에 대한 연구는 분량으로만 따져도 여성사에 대한 연구의 수십 배가 되는데. 나중에 종합적인 역사가 쓰여지려면 여성에만 초점을 맞춘 역사 연구가 좀 활발하게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 ㄴㄴ 2004/11/21 [00:39] 수정 | 삭제
  • 여자들도 군대보내서 전쟁나면 총들고 싸우게 해야한다.
    그리고 밑에분 한국전쟁으로 남성들은 편안하게 잘살았고 여성들만 고통받았다는
    내용이 없는거라고 하시는데 그런의도가 보인다는것이죠.
    이 기사에서는 남성들의 고통에 대해선 전혀언급이없고 여성들만 고통받고 피해자라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는거죠.
    남성들의 고통도 예기하면서 여성들의 고통을 예기했으면 더 좋았을껏같은데..
  • M 2004/11/21 [00:29] 수정 | 삭제
  • 위 책의 내용이 한국전쟁에서
    "남성들은 편안하게 잘 살았고 여성들'만' 고통받았다"는 내용으로 보이나보죠?

    첫 두 문단만 찬찬히 읽었어도 그런 소린 안 할 텐데... -_-
  • 임문주 2004/11/15 [03:00] 수정 | 삭제
  • 전쟁과 여성, 평화에 대한 기사들이 많네요.

    책 소개로 된 것도 종종 본 것 같구요..

    이런 기사들 보면 사회적인 추이를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좋은 책 소개받는 것도 즐겁고요..
  • ㅋㅋㅋ 2004/11/15 [00:14] 수정 | 삭제
  • 한국전쟁으로 인한 여성들의 삶의변화?
    남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놀고먹었나? 전쟁으로 인해 남성들은 고된노동현장에 뛰어들지 않았나? 오히려 여성들보다 더욱 고된노동에 투입됬을꺼 같은데?
    50년대 여성들을 억압했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ㅋㅋ 여성들만 억압받앗다고?
    이러니깐 여성에게도 총을쥐게 해야한다니깐 ㅋㅋ 그래야 이런소리 안하지 ㅋㅋ
    나라를 지키기위해 전장에 뛰어든 남성들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고나서
    여성들의 고통을 예기해야 순서가 맞는거 아닌가?
    뭐니뭐니해도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남자입니다.
    여성들이야 생명이라도 구제할수 있지 않았습니까?
    음..앞으로 만약 한국전쟁이 일어나게되면 여성들도 총을쥐게하고 전장에 투입시켜야되겠군...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