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마을밥상> ‘밥상지기’ 4인

이유지현 | 기사입력 2005/03/14 [17:54]

먹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마을밥상> ‘밥상지기’ 4인

이유지현 | 입력 : 2005/03/14 [17:54]
아줌마, 나이 먹어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보니 자연스레 아줌마가 되었지만, 아줌마에 걸어놓은 사회적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길게 생머리를 기르고 미니스커트에 긴 부츠를 찾아 입는다 한들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사회는 얼굴을 싹 바꾼다. 아줌마는 무얼 해도 아줌마 타이틀이 먼저다. 아줌마는 아줌마라서 직장을 계속 다니기도 힘들고, 재취업도 힘들고, 자본력과 사업력을 끌어오기도 힘들고, 따라서 무언가를 해보기 힘들다.

난 가끔 상상했었다. “더럽고 얄미운 세상, 아줌마끼리 잘 해보리.”

나는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아줌마들끼리 잘 해본 사람들이 있었다. 뜻 맞는 아줌마들이 모여 자본을 모으고 노동력을 모아 사업을 차렸다. 반찬사업. <마을밥상>이 그들 사업 명이다.

<마을밥상>은 남부여성민우회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남부여성민우회 사무실은 <마을밥상>의 사무실이기도 하다. <마을밥상>을 운영하는 아줌마들, 이들은 스스로를 ‘밥상지기’라고 불렀다. 만나 본 ‘밥상지기’들은 최미나, 이명숙, 권병임, 김소앵씨.

주부라면 누구든 반찬거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주한 창문에 ‘우리가 힘입니다’ 라고 써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중앙테이블 위엔 오전 내내 준비한 반찬들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봄 동 겉절이, 콩장, 두부조림, 달래 전. 전날 준비해둔 재료가 쓱쓱 무쳐지고, 조려지고, 뚝딱뚝딱 반찬이 되는 동안 그 맛만큼 산뜻하고 고소한 재미가 솔솔 공기를 채운 듯 하다. 일을 마치고 허리가 아프다는 표정도 즐겁고, 농담이 가득하고, 웃음이 가득했다.

“우린 한 번도 싸우지 않았어요.” 돈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동상이몽, 싸우는 일도 있기 마련일 텐데, 이들은 처음부터 뜻이 잘 맞았다. 남부모임 사무실 재정마련을 모색하고 있었고, 모두 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밥상이 갖는 생태, 환경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밥상을 차리는 주부라면 누구든 반찬걱정에서 자유롭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지역회원들과 더 가깝게 만날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이 반찬사업에 확신을 주었다.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의 자매 단체인 일본 생활협동조합에서는 이미 ‘워커즈 콜렉티브(workers’ collective)’란 사업형태를 성공시킨 사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으로부터 사업형태의 아이디어를 따왔다. 워커즈 콜렉티브에 대해 김소앵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역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출자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경영도 하는 사업체로 이윤이 목적이 아닌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재빨리 말을 이어받아 이명숙씨는 “소규모가 특징이고, 그 소규모의 워커즈와 다른 소규모의 워커즈가 연계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마을밥상>은 서울남부 지역에 국한되어있지만, 배달워커즈가 탄생하여 연계할 수도 있는 거죠”라며 미래를 조심스레 전망한다.

반찬통 속에 넣어 전달하는 메시지

사업준비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 반찬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문의하고, 배우고, 이미 손에 익은 일이지만 제철 식품 만들기 실습도 했고, 일일이 발품을 팔아 사무실 한 켠을 부엌으로 정비했다.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그런 도움들이 있어 <마을밥상> 워커즈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도 생겼다. 드디어 2004년 10월, 500만원의 출자금과 3인의 ‘밥상지기’들로 <마을밥상>이 문을 열었다.

운영에는 원칙이 있었다. 민우회 생협 생활재를 기본으로 국내산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다. 유기농 재료를 구할 수 없는 것은 국내산을 원칙으로 한다. 되도록 제철 식품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한다. 이 원칙은 높은 생산단가라는 사업상의 결함을 의미하지만, <마을밥상>에겐 밥상에서 생태적 세상과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소박하고 원대한 희망’을 의미했다.

<마을밥상>을 이용하는 회원들로부터 때로는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건의도 있었고, 멸치조림이 왜 딱딱하지 않으냐는 문의도 있었다.

설탕을 쓰지 않고 조청으로만 단맛을 낸다는 설명, 당장 아이들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단 밥상에 올려 눈과 먼저 친해지면 입과도 친해질 것이란 제의를 해줘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시간을 내어 반찬을 가져갈 만큼 <마을밥상>이 입맛을 돌려놓았다는 회원들이 많다. 먹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새로운 밥상에 대한 의식, 이들이 회원들에게 반찬통 속에 넣어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사회 어느 곳에서 주부를 이만큼 인정해주겠어요”

사업의 원칙과 과정에 대해 능숙한 전문가들처럼 앞다투어 설명을 해내는 이들은 사실 평범한 주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집밖을 나와 여성단체 안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세상을 생각하는 과정은 각각의 삶에 전환점을 마련해줬다.

이명숙 밥상지기는 이렇게 말한다. “<마을밥상>은 제게 있어서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혼자만의 주부가 전문가가 되는 기회의 장이었죠. 사회 어느 곳에서 주부를 데려다 이만큼 인정을 해주겠어요.”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일할 맛 난다는 주변의 평을 듣는 권병임 밥상지기는 “<마을밥상>은 내 생활의 활력이고 재미”라고 말하며 예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들려줬다. 최미나 밥상지기는 “전에 커피 마시고 돌아다니며 놀았을 땐, 집안에 매몰되고 소외되는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와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현재 이들 세 사람이 2기 ‘밥상지기’이다.

실제로 일하는 날은 월, 화 이틀이지만 ‘밥상지기’들은 여느 사업주나 마찬가지로 일주일 내내 사업에 대한 고민과 긴장에서 떠나지 않는다.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주문, 준비하는 일까지는 함께하고, 그 후 조리과정에서 한 사람 당 한 가지 반찬으로 분업화 되어있다. 각자의 효율보다는 모두 참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싸움 한 번 한 일 없이 논의하고 일하며 이윤을 나눴다. 현재 밥상지기의 배당금은 일인 일일 5만원으로 책정하고, 그 이상의 이윤은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해 쓰임을 결정한다고 한다.

앞으로 유치원이나 생일파티, 혹은 망년회, 회식 모임 등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지역의 저소득층과 독거노인들을 돕고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다.

지난 겨울이 시작될 즈음, <마을밥상> 회원들은 반찬통을 꺼내다가 놀랐을 것이다. 밥상지기들이 쓴 쪽지편지를 발견하고.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인가 봅니다’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그렇게 따뜻함을 주었을 것이다. ‘내 집에서’ 보다 더 철저히 ‘원칙을 고수하며’ 반찬을 준비하는 밥상지기들의 <마을밥상> 정성은 입 발린 고객시스템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고객감동 사업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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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뭇잎 2005/03/16 [13:42] 수정 | 삭제
  • 사회적 약자중 가장 약자인 여성중에서도, 주변인으로 대우받던 주부가 당당히 벤처의 대열에 들어서서,성공하고, 또 당당히 지역사회에 눈을 돌리는 모습은 가히
    성공하는 기업의 작은 모델을 보여주는 것 같아 넘 반갑습니다.
    소비자 눈높이와 입맛에, 그리고 감성까지 깊숙하게 다가가는 경영은
    주부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지요?
    대단합니다, 주부의 성공기, 아니 실패기라도 도전한 내용들이 있다면 많이
    실어주세요
  • white 2005/03/15 [20:04] 수정 | 삭제
  • 모르겠습니다. 집안일을 많이 해선지 애를 낳아키워선지도요.
    그러나 어쨌든 아줌마들은 힘이 느껴집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열쇠 2005/03/15 [13:29] 수정 | 삭제
  • 일다에서 아줌마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조금은 소외감 느끼던 차인데...
    아줌마가 뭉쳐서 잘 해보는 세상이라니 멋지고 힘 나네요.
    밥상지기 하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자랑이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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