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트랜스젠더 김비

윤정은 | 기사입력 2005/04/18 [19:30]

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트랜스젠더 김비

윤정은 | 입력 : 2005/04/18 [19:30]

“내 기억이 존재하는 그때부터예요. 남들은 내게 이상하다는 말을 했고, 난 그 얘기를 듣고 자랐죠.”

언제부터 자신이 사회가 쉽게 분류하는 성의 이분법적 범주에 들지 못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기억이 존재하는 그 아득한 때부터”라고 했다.

 

▲ 트랜스젠더 여성 김비 씨.  ©윤정은 기자


세상으로 거침없이 나가기엔 아직 사회적 적응력과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무기력한 존재 앞에 놓여진 높디 높은 장벽. 세상과 자아의 경계 사이에서 오는 불화와 분리감. 내면의 자아와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자아와의 불일치와 배반감. 세상과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하는 이 경험을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어릴 적에는 항상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놀리고 괴롭히니까 혼자 울곤 했어요. 특히 힘들었던 때는… 80년대 중반에 사춘기를 거쳤으니까, 교련 과목 등 반공교육이 심할 때였죠. 사춘기를 거치면서 남자아이들은 더욱 정신적, 육체적으로 거칠어지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김비 씨가 힘들었다고, 아주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그녀의 사춘기 시절은 “힘들었다는 표현 이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대학 들어가면 더 이상 놀림을 받지 않으려고” 세상이 ‘남자는, 여자는 그러해야 한다’는 규정대로 “철저히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남자로 살아남아야 했다. 더 이상 세상과 가정과 불화를 이루며 “놀림 받고, 상처 받기 싫어서”였다. 일부러 남들보다 더 나이 많은 남자 어른들 흉내를 내며 기지 바지를 입고 007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런다고 사람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일부러 잘 어울리지도 않는 남성복장을 착용하고 남자 어른 흉내를 냈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구나”를 다시 한번 철저히 깨닫게 된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서부터다. 한 사람을 “목숨을 바쳐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자신을 알게 됐다. 한 여성으로서 사랑하는 남성과 완전한 결합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8년에 이르는 시간이었다.
 

▲ 김비 작가.   ©윤정은 기자


그러나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기다림이었지만 사랑하던 남자의 대답은 “형의 후배로서 옆에 있어주는 것”이었고, 그의 시선은 친한 동성의 ‘선배’로 바라보는 그것이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사랑은 이렇듯 제 사랑을 깎아 먹으며 하는 사랑이다. 그녀는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을 두고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비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분법적 세상의 법칙이란 어느 범주에도 들어올 수 없는 경계에 선 사람들을 그 잣대로 내리쳐 갈갈이 찢어놓는다. 그리고 찢겨진 파편들을 이쪽 저쪽으로 분류를 다시 하고 재조합해내어, 기어코 어느 한쪽으로 개조, 편입시키고자 한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언어로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과 서사를 빼앗긴 채, 세상의 규정에 의해 타인의 시선에, 타인의 언어에 의해 자아가 먼저 선점 당하고, 갈갈이 찢겨져 규정 당하는 폭력을 경험해야만 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여자로 보든, 남자로 보든 편하게 받아들여요.”

학원에서 강단에 서서 영어 강의를 하는 그녀를 두고 수강생들도, 동네 주민들도, 그녀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여자냐, 남자냐?”라고 물어본다.

“여자로 느껴지면 나를 여자로 대해달라”고 담담히 말하곤 하는데, 간혹 그녀를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그 고마움은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일 텐데도 그녀는 “내 아픈 상처를 들여다봐주는 것이니까”라고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며, 그런 사람들의 태도를 “자신을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끄트머리에서 중심으로

"내가 서있는 끄트머리에서 내 중심을 만들어갈 거에요"

김비 씨가 겨우 잡고 있는 끄트머리. 그리고 그녀가 걸어갈 중심. 두 곳은 다르지 않는 곳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내면의 깊숙한 곳, 그 누구도 그녀 자신도 가 닿지 못한 마음의 오지, 그 어디쯤일 것이다. 그녀 밖의 세상은 여전히 그녀에게 세상의 끄트머리도 허용하지 않는 듯 하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까지 가봤기 때문에,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을 찾은 것 같아요. 세상에 달관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제는 오버하지도 않고 다운되지도 않고 봄 햇살처럼 따스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 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자신의 얘기를 글로 할 것이라고 김비 씨는 말한다.   ©윤정은 기자


요즘 그 자신의 끄트머리에서 글을 쓴다. G문학(구 게이문학)에서 회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지금의 시간이 끝나는 어느 때쯤에는, 제주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평생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이제는 혼자면 혼자인 대로, 누가 있으면 있는 대로, 편해요. 나는 내 얘기를 글로 할 것이고, 누군가는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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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다 2005/04/21 [14:43] 수정 | 삭제
  • 대학 때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이 생겨서 김비님 홈피에 왕창 질문을 올렸었는데 차근차근한 긴 답변 글을 주셨었던게 기억 나네요.
    육년즈음 전이던가요... 아무튼 그 때 홈피에도 사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보다 연륜이 쌓이신 모습.
    위의 사진들 속의 모습은 세월을 굽이굽이 많이 살아온 여인네가 깊은 강물을 보고 있는 듯한...
    아무튼 이곳에서 김비님 소식을 보게 되어서 기쁘네요.
  • 정아 2005/04/20 [12:04] 수정 | 삭제
  •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처럼요.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을 거란 짐작이 들어요.
    교련시간. 으으..
    학교가 문제죠..학교가.
    저도 남자 ,여자 안따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비님 멋있어요.
  • J 2005/04/19 [15:03] 수정 | 삭제
  • 김비님의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 인터뷰도 참 따뜻한 분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당..
  • 혜숙 2005/04/19 [00:14] 수정 | 삭제
  • 사람에게 느껴지는 느낌이 생김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역쉬나 문학을 하시네요. ^^
    김비님이 얼마나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상상이 조금은 가요.
    앞으로는 차가운 시선보다 따뜻한 시선을 더 많이 받게되길 바래요.
  • 공감 2005/04/18 [23:38] 수정 | 삭제
  • 세상의 법칙은 이분법의 법칙.. 싸움의 법칙. 경쟁의 법칙. 약육강식의 법칙이죠. 무섭고 단순 무식해요.
    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인간이 지금보다 평화로울 테고, 누구든 자유롭게 다양성을 인정받으며 살 수 있을 텐데요..
    성장통을 심하게 앓은 사람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딛고 살아나갈 때 인간의 아름다운 면을 보게 됩니다. 김비님,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