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만 하고 방치하는 ‘가정폭력’

폭력피해자 딸의 아버지 살해사건을 보며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4/26 [01:01]

근심만 하고 방치하는 ‘가정폭력’

폭력피해자 딸의 아버지 살해사건을 보며

김윤은미 | 입력 : 2005/04/26 [01:01]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린 피해자의 가해자 살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지난 16일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한 이유로 체포된 이모씨(15)의 사연은 가정폭력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시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약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

이씨는 지난 16일 오전 3시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흉기로 위협하며 폭력을 휘두르자 이를 막으려고 하다가 아버지에게 맞은 후 아버지의 목을 조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경찰에 “이 날도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한다.

이씨는 15년 간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폭력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이씨의 고모는 “오죽했으면 자기 아버지의 목을 졸랐겠느냐”며 “그 아이는 줄곧 폭력에 시달렸으며 4살 때는 아버지가 세탁기에 넣고 돌려 죽을 뻔하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아버지 살해 여중생 일기 공개”, 세계일보 4월 20일자).

언론에 공개된 이씨의 일기에 따르면 이씨는 아버지가 술 먹은 날을 따로 표시해두고, 술에 취한 채 학원까지 찾아와서 자신을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이씨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때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사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부인이 집을 나갈 정도로 심하게 폭력을 휘두른 이씨의 아버지가 15년 동안 자식에게 계속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씨의 사연은 특수하지 않다. 최근 여성부의 가정폭력 통계에 따르면, 여섯 가정 중에 한 가정에서는 가정폭력이 일어난다. 여성주의 커뮤니티나 여성단체 게시판들을 살펴보면 가정폭력에 줄곧 시달려왔다고 토로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약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구조적 폭력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뿐 그냥 내버려둔다.

수많은 피해자가 있어도 여전히 ‘낯선 경험’

폭력은 개인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가정폭력의 상처는 수용소 체험이나 지하철 폭발사고와 와 마찬가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도한 충격을 겪은 개인이 자신의 일상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는 충격을 감당할 수 없어, 일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그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적인 해리 상태에 빠지는 정신장애다.

게다가 가정폭력은 일상적으로 자신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경험이다. 이씨를 비롯한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살인은 ‘자식이 어떻게 아버지를 죽이는가’, ‘부인이 어떻게 남편을 죽이는가’라는 식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자식, 부인/남편 사이에 지켜져야 할 일상적인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심각한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의 자기방어로 해석해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징은 일상적인 체험과는 그 수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을 경험해도 사회적 차원에서는 '낯선 경험'으로 다루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다 한국 사회는 이 낯선 경험을 피해자의 시각이 아닌 가해자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무마하려고 든다.

‘부부싸움은 칼에 물 베기’라는 식의 논리로 부인에 대한 남편의 폭력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거나, ‘아버지 또한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라며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드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매일 아버지의 귀가시간이 다가오면 자동적으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남편이 사람이 아니라 ‘괴물’처럼 보이는 현상을 경험하는 피해자들의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다.

가해자 논리가 폭력을 순환시킨다

한편 이 같은 가해자중심적인 사고와 피해자들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더 많은 피해를 발생하게 만든다.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들이 결혼해서 가정폭력을 휘두른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또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폭력에 길들여져서 순종적이고 자기학대적인 심성을 가지기 쉽다고 한다. 그 결과 폭력의 악순환은 끊기지 않는다.

이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폭력은 주변인들이 걱정하고 충고하는 수준에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의 가해자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제도적 조치가 따라주어야만 근절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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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시 2005/04/26 [21:42] 수정 | 삭제
  • 늘 느끼는 바이지만
    zz 님은 언제나 논지를 비약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해 버리시는데 익숙한 분이신 것 같군요.

    위 기사는 더이상 가정폭력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살인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말이 아니라요.

    가정폭력이란 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정말 나를 낳아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그 심정을.
    그 심정을 조금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본적이 있는지. 이 사회가 .

    그걸 이야기 하고 싶은 겁니다.
  • zz 2005/04/26 [12:15] 수정 | 삭제
  • 일다는 비폭력주의를 외치지 말아야한다.
    비폭력주의를 내세워서 반전,반징병제를 외치던 일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기방어를 하기위해선 살인을 저질러도
    무방하다는것에 일다는 동의를 한것같다.
    그러므로 더이상 일다는 비폭력주의를 외칠자격이 없다.
    그럼의미에서 비폭력주의를 내세워 양심적병역거부를 주장하는 놈들을 더이상 일다는 옹호하거나 양심적병역거부를 지지하지 말아야한다.
  • 지니 2005/04/26 [07:56] 수정 | 삭제
  • 가정폭력과 살인사건 양쪽 다 가해의 책임이 사회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집마다 폭력에 시달리면서 크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