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누비며 쌓은 리더십

강북구 녹색여성모임의 ‘골목정치’

윤정은 | 기사입력 2005/09/06 [03:24]

골목 누비며 쌓은 리더십

강북구 녹색여성모임의 ‘골목정치’

윤정은 | 입력 : 2005/09/06 [03:24]
<일다는 풀뿌리 지역운동 현황과, 여성들의 지역정치 참여활동을 되돌아보고, 현재 지역 현안엔 어떤 것이 있으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성의 의정참여와 지역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지역정치의 전망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역 일이라는 것이, 골목 일이라는 것이 시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겁니다. 풀뿌리 자치와 풀뿌리 리더십. 우리는 어차피 여기 살잖아요. 끈질기게 할 일이에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여성모임) 정외영 대표의 말이다.

기자가 사무실을 찾은 전날도 아버지에게 구타와 성적으로 학대를 받는 지역 아동 문제를 관련단체와 협의를 거쳐 일단락 지은 상태였다. 이렇듯 지역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지역개발의 문제에서 빚어지는 환경파괴, 교육 문제, 통학로 안전문제, 주차장 문제 등. 직접적으로는 폭력과 분쟁으로 점철되기도 하며 때론 악순환의 고리처럼 오랫동안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 “이렇게 사는 수밖에”라며 체념하고 지내는 문제도 많다.

“혀만 찬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죠. 문을 열고 들어가 관계를 맺어야만 문제해결의 빌미를 찾을 수 있죠. 이 지역은 한 부모 가정 중에서도 70%가 부자가정이에요.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우리 식으로 모여서 얘기하면서 지역문제 해결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죠.”

사랑의책배달부, 풀빛살림터 지역맞춤형 운동

‘사랑의 책배달부.’ 저소득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돌볼 이 없이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책배달부’ 자원활동가들이 움직인다. 집을 직접 방문한 ‘이웃산타’와 ‘이웃루돌프’는 지역사회 학교와 연계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검진, 생활지도 등의 교육을 지원하는 활동뿐 아니라 ‘저소득 한부모 가정의 모자가정 신청지원’과 같은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와의 연계고리를 만든다.

또 김장김치 및 반찬배달, 재활용 가구나 도배 후원 등 생활환경 개선활동과 외부자원을 연결하는 활동도 한다. ‘사랑의책배달부’ 자원활동가는 강북구, 도봉구, 성북구, 노원구 네 구를 중심으로 현수막 및 구청홈페이지 등으로 홍보돼 조직되고, 정기적인 모임과 교육을 통해 전문화된다.

‘녹색여성모임’에서는 처음엔 저소득 가정의 아동을 위한 ‘열린 숙제방’을 운영하다가, 이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더 열악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웃산타 활동’을 5년 전부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그 후, 2003년 저소득 한부모 가정의 실태 및 어려움에 대한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네트워크’를 결성해, 지역공동체의 보다 구체적이고 생활과 밀착된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지역에서 만든 프로그램들은 그냥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아니에요. 주민들이 직접 문제 제기한 내용들이죠.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주민이 지나가면서 ‘요즘 사람들은 물건들을 고쳐서 안 쓴다’고 얘기했는데, 들을 때는 잔소리 같았죠.”

그 문제 제기에 착안해 만들어진 것이 마을공동재활용작업장 ‘풀빛살림터’다. 이 공간이 마련되고 나서부터 마을 주민들은 가정에서 고쳐야 할 것과 변화가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직접 와서 공구들을 이용해서 수선할 수 있다. 정외영씨는 “재봉틀이나 전동드라이버, 오마르프 등 각 가정에서 구입하려면 부담이 되는 공구를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면 좋죠. 청소년들도 수선하러 왔다가 면생리대를 직접 공부하면서 만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마을공동재활용작업은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봄마다 하는 가로수 전지작업 후에 나오는 나뭇가지들을 이용해 지역 아이들에게 ‘가로수의 도움과 역할’에 대한 환경교육을 했다. 교육이 끝나면 노작에 대한 욕구가 강한 아이들은 그 나뭇가지를 이용해 전동 톱과 다른 도구들을 이용해 핸드폰 고리, 목걸이 등을 만드는 등의 공작을 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결과 인근 10개 학교에서 신청이 들어와 가로수를 이용한 노작체험, 면 생리대 만들어보기, 환경도서를 통한 생태탐방, 생태미술 등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환경강사양성과정을 거친 지역여성들이 학교에 파견되어 체험환경 강의를 했다.

주민들의 리더십 키운다

‘녹색여성모임’이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다. 모임의 출발은 지역 여성 6명이 모여 차 모임을 하며 자녀교육 문제와 여성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면서 시작됐다. 이 모임이 지역사회에 대한 문제인식으로 나아갔고, 지금은 ‘지역여성 지도력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04년 창립 10주년을 기념해서 ‘풀뿌리여성지도자의 성장과 특성’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풀뿌리 여성활동가 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내용을 토대로 이뤄졌으며, 지역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여성지도자 역할 모델’을 발굴하고, 리더십에 대해 풀뿌리 여성지도자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됐다.

이 설문조사에서 지역 여성활동가들은 ‘지도자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목표와 비전 제시’(38.2%)와 ‘잠재력 발휘 기회 제공’(26.5%)로 응답했다. 심층면접 조사에 따르면 ‘풀뿌리 활동에서 지도자의 역할’로서 “자신에게나 조직에게나 목표나 비전을 주면서 인내심을 갖고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고 기다리면서 스스로 앞서 실천하는 것”으로 꼽은 것으로 드러났다.

‘녹색여성모임’은 주민들이 지역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리더십을 키울 기회를 갖게 되며,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강북구 지역 여성들의 지역사회 의식 및 참여욕구에 대한 조사를 해서, 강북구 여성정책 현황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이 조사 결과는 9월 6일, ‘여성 지역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강북구 구민회관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정외영 대표는 그간 활동에 대해 “우리는 지역에서 10년 동안 열린 숙제방, 녹색가게 이웃산타프로그램, 사랑의 책배달부, 풀빛살림터 등 여성들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와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토론도 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자신들이 직접 지역문제를 풀어보고,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해온 활동들이라 자신감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풀뿌리 여성 리더십.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녹색여성모임’의 활동은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지역에서 움직이고, 지역을 바꾸어내는 지역 여성 리더십의 중요한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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