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성폭력은 피해자 탓’ 운운하나

연쇄성폭력 사건 희화화 하는 언론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1/23 [22:58]

아직도 ‘성폭력은 피해자 탓’ 운운하나

연쇄성폭력 사건 희화화 하는 언론

박희정 | 입력 : 2006/01/23 [22:58]
10여 년간 잔혹한 연쇄 성폭력을 저질러 온 이모씨(45)가 검거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80명이 넘는 이 사건은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10여 년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점에서 끔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경찰조사가 시작되고 신문과 방송들이 보여준 사건 보도태도는 이 사건의 무게를 간과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씨가 검거되고 “택시 기사로 일할 때 여성승객을 태우고 길을 헤매자 ‘택시 기사가 길도 모르냐’고 무시를 해 첫 범행을 하게 되었다”는 진술이 알려지자, 각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무시하는 여성에 앙심 품고 첫 범행”과 같은 표제어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지난 유영철 사건 때 “몸을 함부로 놀리는 여자들 때문에” 범행을 하게 되었다는 범인의 면피성 발언을 그대로 사건의 원인인양 옮겨 적고 피해자 유발론을 유포했던 언론들의 행태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일보는 “택시 운전 때 여성취객의 모멸이 성폭행, 연쇄범행 불러”(2006년 1월 20일자 보도) 제하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아예 이씨의 파렴치한 범행이 “모멸감을 준 여성 취객” 탓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전일보는 한 술 더 떠 “억눌린 열등감 폭발…… 죄의식 상실”-심리학자가 본 ‘발바리’라는 제하의 기사(2006년 1월 21일자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여성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잠을 자거나 낯선 사람을 쉽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등 범행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건을 유발시킨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무시당한 분풀이’, ‘범인의 열등감’, ‘약한 자에 대한 공격성’ 등을 지적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말은 실명으로 인용했으면서 ‘여성들이 범행기회를 제공했다’는 말만 유독 ‘전문가들은’ 이라고 적고 있다.

여전히 다수의 언론들이 성폭력 사건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수많은 여성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극악한 범죄임에도 “발바리”와 같은 희화화된 용어를 받아서 사용하고, 사건의 원인을 피해여성들에게 돌리는 듯한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 속에서 피해여성들에 대한 배려나 잔혹한 사건을 대하는 침통함은 찾을 수 없다. 이런 끔찍한 성폭력 범죄가 가능했던 상황에 대한 분석적 기사도 보기 힘들다. ‘연쇄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흥미위주로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피해를 당하고도 피해자가 숨죽이는 희한한 상황은 성폭력을 선정적으로 바라보거나 피해자의 잘못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탓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제기하고 취약한 여성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개선해나가도록 이끄는 것이 언론의 몫이 아닌가. 여성 대상 범죄가 일어나면 앞장서서 “여자들 조심해라”고 외치는 게 역할은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일간지들의 청소년 성폭력 보도 기사 분석결과가 새삼 주목된다. 상담소 측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제안했다. 성폭력의 심각성과 이를 둘러싼 제반 사회적 여건에 대해 언론관계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보도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점을 보며, 절절하게 공감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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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s 2006/02/03 [16:14] 수정 | 삭제
  • 연쇄성폭력..
    성폭력도 범인도 싫어 죽겠는데..
    그거 보도하는 언론까지 너무 문제가 많고...
    진짜 짜증 많이 납니다.
  • 자전거 2006/01/27 [23:55] 수정 | 삭제
  • 발바리라고 부른 것은 진짜 황당한 일입니다.
    성폭력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하도록 만드는 용어입니다.
  • J 2006/01/24 [23:06] 수정 | 삭제
  •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데도...
  • witch100 2006/01/24 [15:31] 수정 | 삭제
  • 일다에서 이사건에 대해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서 며칠을 기다렸습니다.
    발바리라는 용어를 자체를 언론매체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여성단체나 여성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용어 자체에서 성폭행 사건을 경미하게 취급하려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제 의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발바리가 수사하는 형사들이 대전 성폭행 사건을 속칭 해서 부르던 용어라 하던데 우리나라 만화작품 중에 발바리의 추억이라는 성인만화가 있습니다.만화 내용이 백수건달인 남자가 여러 여자와 연애를 하는 것인데 스포츠 신문에서 인기있던 만화라면 그 내용의 선정성 정도가 어느 정도 인 줄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형사들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생각해서 10년동안이나 그 놈을 잡지 못했다가 (안 잡은것인지 사건의 특성상 못잡은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서 10년동안 그 많은 사건이 일어날 동안 제대로 된 증거가 없었다니...) 공개 수사후 일주일도 못 되어서 잡은것에 대해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잡은 후 흉악범이라고 대서특필해도 모자랄 일을 그런 용어를 쓰다니 ..어떻게 보면 개의 명칭을 쓰면서 성폭행건자체를 미친개에게 우연히 물린듯한 느낌을 주는 듯한 피해자 탓 운운하는시선 역시 있지 않나 싶습니다.(당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당한 너희들의 잘못이다.) 이 가부장적인 사회의 허술한 방범 시스템은 생각치도 않고 ...그 피의자가 잡힌 첫날 언론방송국에서 당연히 그 말을 쓴던데 정말 흉악범이라고 정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죽이는 일을 저질렀으니까요 신체적 피해 뿐만 아니라 ..그런데 건전하고 평범한 가장이라고 강조하지를 않나 .. 이틀 뒤 엠비씨에서는 발바리라 하지 않고 피의자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는 발바리라고 하지 않나요
    피해자인 여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그 피의자의 행동을 경미하게 취급하는 듯한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폭행 사건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한건이든 수백건이든 성폭행 사건 그 자체로 얼마나 흉악한 사건인가요. 제발 이번 사건은 중형이 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형이라는 중형이 내려져 이 사건을 경미하게 본 이 사회에 경각심을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론매체 신문 잡지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도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 초록 2006/01/24 [06:53] 수정 | 삭제
  • 성폭력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그런 기사 쓰는 인간은 기자 자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 OZ 2006/01/24 [01:23] 수정 | 삭제
  • 원룸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여성들을 생각만해도 너무 끔찍하고 떨리는데, 뉴스에선 발바리가 드디어 걸렸다는 식으로 너무 쉽게 보도한다는 느낌을 저도 받았어요.

    흉악범이 너무 많아서일까도 생각해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사회가 예전보다도 더 성폭력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 현 2006/01/24 [00:29] 수정 | 삭제
  • 잔인한 성폭력범을 별 거 아닌 잡범인 것처럼 취급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성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이유도 말이 안 되구요. 택시기사 무시하는 말을 여자만 하나요? 어처구니가 없는데도 언론이 계속 그렇게 보도하는 것도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비판기사를 보니까 조금 속이 시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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