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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잔혹한 연쇄 성폭력을 저질러 온 이모씨(45)가 검거됐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80명이 넘는 이 사건은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10여 년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점에서 끔찍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경찰조사가 시작되고 신문과 방송들이 보여준 사건 보도태도는 이 사건의 무게를 간과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씨가 검거되고 “택시 기사로 일할 때 여성승객을 태우고 길을 헤매자 ‘택시 기사가 길도 모르냐’고 무시를 해 첫 범행을 하게 되었다”는 진술이 알려지자, 각 신문과 방송들은 일제히 “무시하는 여성에 앙심 품고 첫 범행”과 같은 표제어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지난 유영철 사건 때 “몸을 함부로 놀리는 여자들 때문에” 범행을 하게 되었다는 범인의 면피성 발언을 그대로 사건의 원인인양 옮겨 적고 피해자 유발론을 유포했던 언론들의 행태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일보는 “택시 운전 때 여성취객의 모멸이 성폭행, 연쇄범행 불러”(2006년 1월 20일자 보도) 제하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아예 이씨의 파렴치한 범행이 “모멸감을 준 여성 취객” 탓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전일보는 한 술 더 떠 “억눌린 열등감 폭발…… 죄의식 상실”-심리학자가 본 ‘발바리’라는 제하의 기사(2006년 1월 21일자 보도)에서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여성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잠을 자거나 낯선 사람을 쉽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등 범행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건을 유발시킨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무시당한 분풀이’, ‘범인의 열등감’, ‘약한 자에 대한 공격성’ 등을 지적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말은 실명으로 인용했으면서 ‘여성들이 범행기회를 제공했다’는 말만 유독 ‘전문가들은’ 이라고 적고 있다. 여전히 다수의 언론들이 성폭력 사건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수많은 여성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극악한 범죄임에도 “발바리”와 같은 희화화된 용어를 받아서 사용하고, 사건의 원인을 피해여성들에게 돌리는 듯한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 속에서 피해여성들에 대한 배려나 잔혹한 사건을 대하는 침통함은 찾을 수 없다. 이런 끔찍한 성폭력 범죄가 가능했던 상황에 대한 분석적 기사도 보기 힘들다. ‘연쇄 성폭력 사건’을 단순히 흥미위주로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피해를 당하고도 피해자가 숨죽이는 희한한 상황은 성폭력을 선정적으로 바라보거나 피해자의 잘못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탓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제기하고 취약한 여성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개선해나가도록 이끄는 것이 언론의 몫이 아닌가. 여성 대상 범죄가 일어나면 앞장서서 “여자들 조심해라”고 외치는 게 역할은 아닐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일간지들의 청소년 성폭력 보도 기사 분석결과가 새삼 주목된다. 상담소 측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제안했다. 성폭력의 심각성과 이를 둘러싼 제반 사회적 여건에 대해 언론관계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 보도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점을 보며, 절절하게 공감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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