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여성단체, 연합체 구조 해체해야

차이 드러내고 수평적으로 연대하자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03/28 [03:51]

[논평] 여성단체, 연합체 구조 해체해야

차이 드러내고 수평적으로 연대하자

조이여울 | 입력 : 2006/03/28 [03:51]
이번에 열린 한국사회포럼2006에서 여성운동과 여성단체들에 대한 여러 고민과 의견을 정리하고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1980년대 중후반 민주화 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축으로 설립된 소위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현재’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기존 여성단체들의 보수화 위기

최근 수년 간 호주제 폐지운동과 건강가정기본법을 둘러싼 여성단체들의 행보들, 여성단체들이 전개하는 평화운동, 통일운동, 17대 총선을 둘러싸고 전개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 등에서 ‘위기’의 조짐을 보게 됐습니다. 여성주의가 경계하는 생물학적 여성론이나 가족주의, 모성담론, 전체주의 등에 대해 여성단체들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진,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단체 혹은 활동가들이 생겨나면서 상대적으로 기존 단체들의 정체는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권리문제에 있어서도 타 사회진영들이나 정부 혹은 정당이 제기하는 이슈보다 문제 제기하는 속도 혹은 수위가 낮을 때, 개별 여성들이 호소하는 절실함에 다가가지 못할 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관련 깊은 낙태,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와 같은 법, 혼인제도, 사회규범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거나 이슈가 불거졌을 때조차도 입장 표하기를 꺼릴 때, 황우석 사태와 같이 여성인권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는 사회적 사안에 대해 대응하기를 언론들보다도 더 몸을 사릴 때, 여성빈곤과 비정규직화를 가장 큰 당면과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천적 활동으로 녹여내려는 고민과 시도가 턱없이 부족해 보일 때, 여성단체의 위기를 감지하게 됩니다.

단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들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거나 심지어 설득력이 부족할 때, 단체 홈페이지의 배너로 장식되거나 언론사 측의 사진 한 컷으로 담길 수위의 캠페인 이상의 방식이 고민되지 않을 때, 단체에서 내건 기치들이나 이를 활동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많은 여성들에게 “(와닿지 않고) 진부하다”는 평을 들을 때, 변화해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양새와 의식수준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성단체가 보수화되고 있다, 낙후되고 있다, 여성주의적이지 못하다, 여성들의 삶과 멀어지고 있다, 운동단체가 가져야 할 급진성을 잃고 있다, 등의 판단을 하게 됩니다.

연합체-회원단체 구조가 낳는 문제들

사실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여성단체와 조직들, 활동가들이 있고, 기존의 단체라 하더라도 새로운 이슈를 가지고 새롭게 방향설정을 하는 단체도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여성단체’라 하더라도 한 묶음으로 보아선 안되겠지요. 문제는 한 묶음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합체’ 시스템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8개 회원단체를 둔 연합체로 되어있으며, ‘연합’의 이름으로 전국에 6개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각 지부들 역시 형식상 해당 지역의 여성단체들을 회원단체로 둔 연합체입니다. 28개 회원단체들 중에서도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25개 지부와 1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회원단체 2개와 지부, 준지부단체 8개가 있고, 한국여성민우회의 경우 11개 지부가 있습니다. (각 단체 홈페이지 참고)

그런데 과연 ‘연합체’가 각 회원단체들을 아우르는 대표성을 실제 가지고 있는가, 혹은 가져도 되는가, 회원단체들과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는가, 또는 회원단체들 간 소통이 되는가, 회원단체들과 넓은 의미에서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각 회원단체들 간 특정 사안들에 대한 관점과 입장이 어느 정도 조율되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보면 회의적인 답변이 나옵니다. 즉 이들 여성단체들의 구조는 정직한 운동을 해나가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합체’ 시스템은 여성단체들의 활동내용에 있어서 그 실체와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몇몇 단체가 회원단체 혹은 지부나 타 단체들에 권위적이며, 실제로 단체들이 다양한 목소리와 지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운동진영이 한 목소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 결과적으로 보다 급진적인 문제의식들이 사장되거나 드러나지 않게 되는 등 여러 가지 폐해가 있습니다.

적어도 각 여성단체들 간의 입장의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며, 기존 연합체 회원단체들 외에도 새로운 지향을 가지고 활동을 해나가는 여성운동 조직들이 발전적이고 다양한 여성운동진영을 형성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려면 현재의 전체주의적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지금보다 더 많은 소통과 논쟁, 그리고 연대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운동의 방법론도 여성주의적으로

지부단체를 두고 있는 단체들의 경우도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단체와 서울에 있는 ‘본부’단체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부 단체들의 경우 각 활동의 내용이나 방식이 서로 다르고 그에 대한 지역의 평가도 상이한 경우, 굳이 ‘중앙-지부’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점검이 필요하고,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실제로 제기되는 위계의 문제도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방식과는 배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운동의 씨앗이 자리하기 어려운 척박한 지역 분위기 속에서 기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나 지원을 받고자 새로운 여성운동단위들이 특정 단체의 ‘지부’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지지와 지원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단체는 그 자체 활동으로 평가를 받아야지 ‘이름’의 힘을 빌어오는 것은 정직한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러한 ‘이름’이 사회적 신뢰도를 잃을 경우, 다른 단체들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여성주의는 운동의 방법론을 이미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자매애는 ‘연합체’와 회원단체, ‘중앙조직’과 지부 등과 같은 조직형태가 아니라, 서로 지원하고 지지를 받는 파트너십 관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사회적으로 보다 큰 힘을 갖기 위해서, 서로 차이가 있을 때조차 이를 무시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구조를 갖는 것을 우리는 ‘위계’라는 말로 설명하고 이해해왔습니다. ‘위계’적인 문화는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방해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여성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켜왔지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 속에 ‘평등’이 녹아 들고 여성주의가 숨쉬게 하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 더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제기와 방식들, 그리고 노력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성주의적 가치관이 무엇이며 그 방법론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처음부터 점검하고 논의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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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라 2006/04/01 [17:03] 수정 | 삭제
  • 여연 "이후"를 위해서는, 아직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연을 억지로 해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달리 말해, 그냥 연합체로서 여연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일부 단체들이 탈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대안적 네트워크를 꾸릴 것인가 등등... 긴 논쟁이 되어야겠지요.


    그러나, 그런 시간 많이 걸리는 과정 이전에,

    단! 한 단체!! 라도 여연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연합체에서 탈퇴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여연을 둘러싼 논쟁도 물살을 탈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내.외부적으로 간단하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일부 여성 단체의 경우 이미 여연의 운동 방향과는 상당히
    멀어져 있다고 보고 그렇게 표명해 온것으로 압니다.
    끝없이 모이면 여연을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모습, 언제나 "대표성"을 가지고 "성명서"를
    내며, 운동을 틀에 가두려는 여연의 모습. 이제는 지칩니다.

    이 시기 여연에서 탈퇴한다고 해서 지난 시기의
    여연의 성과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치고 나갑시다! 일다는 여연 소속이 아니니
    어쩔 수 없고 ^^;;; 현재 여성운동의 기풍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여연 산하 단체, 아무도 안계십니까?
  • 모란 2006/03/30 [15:26] 수정 | 삭제
  • 논쟁이 돌아온다는 포럼 제목에 맞게 논쟁이 치열하게 되었던 포럼은 여성운동에 대한 것밖에 없었던 것 같더이다. 역시나 일다 편집장님은 그 논쟁의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하시더군요.^^
    반가왔습니다. 인사는 못 드렸는데 다음 번 논쟁 때는 저도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내공을 쌓겠습니다.
  • 순영 2006/03/29 [17:18] 수정 | 삭제
  • 연합-회원단체, 본부-지부단체 관계가 공평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구조적인 결함이라고까지는 생각 못했었는데, 공평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조금 안일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불평불만만 해왔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 js 2006/03/29 [11:11] 수정 | 삭제
  • 이번에 사회포럼에서 조이여울님이 연합체 방식의 운동에 대해서 비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여연 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모 단체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님의 의견에 많이 공감합니다. 평소엔 생각을 하다가도 뜸하게 얘기하고 지나버리는 일인데, 이번 계기로 물꼬를 텄으면 합니다. 다른 활동가들과도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연락드릴게요.
  • yeoja 2006/03/29 [02:32] 수정 | 삭제
  • 군사독재를 끝나고 민주화가 되면서 서민 노동자 장애인 등 국가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고, 여성의 인권(상속법,호주제폐지,할당제,가정폭력방지법 등 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인권은 민주화가 되면서 다른 인권개선상황과 더불어 저절로 얻어졌다기 보다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연합해서 투쟁해 쟁취한 성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여성단체들이 연합하지 않고 각개 투쟁방식으로 싸웠다면 파워(파워는 권력이 아니라 다수결임)가 약해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듯 싶습니다 즉 주체로서 해결하기 보다는 조언자에 그쳤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성문제는 여성이 말하는데만 그쳐서는 안되고 여성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파워가 있어야 하고, 파워는 진보여성단체들이 연합을 해서 한목소리를 내거나 진보적 여성정치인이 정계에 많이 진출해서 직접 정책결정을 할 수 있어야 훨씬 강력하고 빠르게 여성문제(여성정책)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지방에서 어떤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알리고 재발방지와 대책을 세워줄 것을 바란다는 뜻을 중앙이 아닌 지역에 있는 여성단체에서만 얘기했을 때 그 목소리가 전국으로 울려 퍼지고 울려퍼진 목소리가 대책으로 정책으로 입안되기까지 단계가 많아서 약화되거나 소멸되기 쉽기 때문에 강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실천적으로 도와주는 힘있는 단체와 연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현재 여성단체들이 진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여성단체에서 정계로 진출한 사람들이 각계각층의 유권자를 모두 의식해서 어느 한 방향으로 투쟁의 칼날을 세우기가 어려워 중도성을 많이 갖게 되고, 그들과 연대해왔던 기존 진보적 여성 운동권 사람들도 여성 세력화를 의식해 정책결정에 각 계층의 이해관계를 의식해서 결단력있게 진보성 정책들을 추진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쉽게 정책결정을 하는 것보다는 신중하게 결정해서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더 투쟁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갖고 있는 정책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합체를 해체하기보다는 각 여성단체들의 뜻을 하나로 묶어서 강력한 파워를 낼 필요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민주적 의사결정방식으로 처리하고 그 이외에 각각의 여성단체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안은 지배 피지배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에 의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각각의 단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moge 2006/03/28 [19:57] 수정 | 삭제
  • 여성단체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여성주의에 대해서 원점에서 돌아봐야할 시기를 맞이한 것인가요.
    이성적인 발제 잘 들었습니다.
  • 수수 2006/03/28 [19:12] 수정 | 삭제
  • 저도 저번 주에 포럼 현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었습니다. 포럼이 끝나고, 지금까지 일다의 생생한 취재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5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편집장님의 글만 올라왔네요. 그런데 이 기사마저도 당일 발표된 편집장님의 발제문을 정리한 것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입니다.(참세상의 조수빈 기자의 기사가 어제 참세상 홈피에 올라왔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 젠틀하게만 포럼을 소개했더군요)

    현장에서 토론했던 내용이 저한테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여연의 김기선미 정책국장님과 일다 기자분(성함을 까먹어서... ^^;;), 그리고 변혜정 한국여성연구원과 조이여울 편집장님, 그리고 사회진보연대분 등 여러 사람의 질의응답이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다에서 취재기사가 없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사회포럼의 주제처럼 구체적인 '논쟁이 돌아'온 좋은 자리였는데 말입니다. 일다의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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