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생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면

형식적 조사대신 ‘신뢰’ 쌓아야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6/07 [02:24]

교사가 학생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면

형식적 조사대신 ‘신뢰’ 쌓아야

박희정 | 입력 : 2006/06/07 [02:24]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 가정환경조사서를 둘러싼 문제는 어떤 항목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학생상담과 지도를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학년 초에 진행되는 일대일 상담의 자료가 되고, 장학금이나 급식비 지원 등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파악하는데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인터넷 게시판 <가정환경조사서에, 나 할 말 있다>에서 권미혁이란 이름의 회원은 “그 동안 가정환경조사서가 어떻게 기능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며 학생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하는 기능을 했는지, 아니면 학생의 처지만을 확인하는데 그쳤는지”를 보자는 것. 권씨는 가정환경조사가 실질적으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며, “정상가족이 아닌 경우 가정환경조사서를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하고 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자. 사실상 지금의 가정환경조사서는 호구조사 같은 형식적인 느낌을 준다. 학생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교사들도 있다. 한 중학생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눈을 감게 한 뒤 “부모님이 이혼한 사람 손들라”고 한 것에 상처를 입었다는 경험을 전했다.

자질 없는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당 수 학생과 보호자들이 심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문제다.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학생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질 없는 교사들을 만들어내거나 방치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이들을 돕고 지원하고자 한다면 가정환경조사서를 돌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섬세한 방식들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환경뿐 아니라 학교환경도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과 일대일 만남을 가지고 학생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기본적인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파악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관계가 없이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가정환경조사서의 내용을 거짓으로 적기도 한다.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사와 상담이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그 마음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특히 폭력이나 임신과 같은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은 더욱 그렇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둘러싸고 나오는 갈등의 목소리들은 전체주의적 학교행정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마음을 터놓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가정환경조사서에 대한 논의들이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와 학생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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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 2006/06/12 [14:29] 수정 | 삭제
  • 어렸을 적에 가정환경조사서 쓸 때마다 부모님 직업란도 그렇고 학력란도 그렇고 항상 문젯거리였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 거 쓰면 꼭 또 아버지가 쓰게 되는데, 엄마가 학력이 낮아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적어야 할지, 가족 모두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달까요. 거짓으로 적자니 아버지가 엄마를 무시하는 것 같고, 실제로 적자니 자식들이 창피당하거나, 나중에 선생님만날 때 선생님이 엄마를 무시할까봐 애매하고. 뭐 그랬던 것 같아요. 직업란도 그래요. 아버지가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상황이 어려워서 엄마가 남의 집에서 가사를 도와주셨었단 말이죠. 그렇지만 파출부 같은 단어로 쓰기는 엄마 자신도 싫고 저희들도 싫었거든요. 그래서 주부 라고 쓰면 학교 선생님은 어머니가 여유가 있고 집이 그래도 사는 줄 알고, 늘 어머니회 같은 데에 참석하라고 하거나 학급 대소사에 뭔가 하길 바라거나 혹은 촌지를 바라거나 말이죠.
    ..
  • 오정 2006/06/11 [01:12] 수정 | 삭제
  • 학생들을 위해 쓰였는지,
    학생들 상황파악만 하고 말았는지,
    나아가 차별하는데 기능을 했는지
    따져보아야 할 일!
  • 2006/06/10 [18:56] 수정 | 삭제
  • 물론 자신의 부끄런 이야기를 내놓기는 쉽지 않죠..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하죠..


    근데 생각해봅시다.... 여성의 전화같은 상담자들이나.. 환자를 상담해주는 정신과의사... 아니면,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 아니면, 문제아를 상담해서 이끌어주는 상담선생님..
    상처입고, 힘든 영혼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때 어떡해야할까요.
    따뜻한 말로 그 문을 열어주고 정서적교감을 통해서, 상처를 어루만져주어야겠죠.

    물론 그들에게도 상담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는것은 고통일겁니다.
    그 고통을 못견뎌서, 끝끝내 맘을 닫는다면, 그 사람은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겠죠.




    학교선생들중에서 참교육자가 몇이나 되는지는 몰라도,
    참교육과 학생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거나,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선생도 있겠죠.

    (예를들어, 학생이 부모에게 상습구타를 당한다면 선생이 어떡해야할까요.
    그 학생의 가정환경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상담하고 대처해야겠죠)



    만약 선생은 학생 가르치기만하면된다고 생각한다면, 선생은 학생의 개인신상에 대해 전혀 몰라도 됩니다.
    그런식으로 한다면, 선생한테 학교강사로 변신하라고 강요하는것이나 마찬가지네요.


    선생이 학생의 개인적인 신상을 아는것은 학원강사에게는 필요없으니,

    이 사회가 바라는 교육자에게는 필수적인것이죠.



    선생을 학원강사로 만들것이냐 , 교육자로 만들 것이냐는
    사회가 판단할수있죠.
  • pp 2006/06/08 [00:17] 수정 | 삭제
  • 학부모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 학생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답에 가장 근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학교에서 가장 고려되지 않는 시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