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 가정환경조사서를 둘러싼 문제는 어떤 항목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학생상담과 지도를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학년 초에 진행되는 일대일 상담의 자료가 되고, 장학금이나 급식비 지원 등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파악하는데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일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인터넷 게시판 <가정환경조사서에, 나 할 말 있다>에서 권미혁이란 이름의 회원은 “그 동안 가정환경조사서가 어떻게 기능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며 학생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하는 기능을 했는지, 아니면 학생의 처지만을 확인하는데 그쳤는지”를 보자는 것. 권씨는 가정환경조사가 실질적으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며, “정상가족이 아닌 경우 가정환경조사서를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하고 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자. 사실상 지금의 가정환경조사서는 호구조사 같은 형식적인 느낌을 준다. 학생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교사들도 있다. 한 중학생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눈을 감게 한 뒤 “부모님이 이혼한 사람 손들라”고 한 것에 상처를 입었다는 경험을 전했다. 자질 없는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당 수 학생과 보호자들이 심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문제다.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학생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질 없는 교사들을 만들어내거나 방치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학생들을 이해하고, 이들을 돕고 지원하고자 한다면 가정환경조사서를 돌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섬세한 방식들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환경뿐 아니라 학교환경도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과 일대일 만남을 가지고 학생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기본적인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파악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관계가 없이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가정환경조사서의 내용을 거짓으로 적기도 한다.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사와 상담이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그 마음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특히 폭력이나 임신과 같은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은 더욱 그렇다. 가정환경조사서를 둘러싸고 나오는 갈등의 목소리들은 전체주의적 학교행정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마음을 터놓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가정환경조사서에 대한 논의들이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와 학생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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