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기입항목이 주는 상처

민우회, 가정환경조사서 관련 토론마당 열어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6/14 [05:12]

“정상가족” 기입항목이 주는 상처

민우회, 가정환경조사서 관련 토론마당 열어

박희정 | 입력 : 2006/06/14 [05:12]
매 학년 초 작성, 갱신되는 가정환경조사서는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여 상담과 지원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와는 별도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상처와 차별의 경험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6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가정환경조사서 필요한가’ 토론마당을 개최했다. 현직교사뿐 아니라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야 하는 당사자인 학부모, 학생 그리고 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를 함께 나누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민우회 유경희 대표는 “1997년부터 한부모 가족 정책에 대해 고민하면서 한부모 가족으로부터 가정환경조사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대로 적을 것인가, 그대로 적게 되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에 대해 고민을 호소하는 경우들이 많았다는 것. 유 대표는 “폐지/유지의 결론이 아니라 가정환경조사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로 토론회를 열었다.

가정환경조사서 둘러싼 한부모 가족의 고민

민우회 김선화 활동가는 특정한 가족형태를 ‘정상’으로 보는 가정환경조사서의 양식을 문제 삼았다. “혈연, 혼인,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의 범주 안에서 작성하도록” 되어있는 가정환경조사서는 이미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가족의 개념을 묻는 도표에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을 적는 난이 있는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적을 공간은 없다” / “우리 딸 아이가 ‘부’(아버지) 난에 누굴 쓰냐고 물었다. ‘외삼촌 이름 쓸까?’ 외삼촌이 아빠 참여 수업 시 대리로 참석한 적이 있다. 마음이 찌르르했다. 가정환경조사서가 다양한 형태로 나왔으면 싶다” (민우회 발표 사례 중)

김선화 활동가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 학생의 경우, 부모가 다 있는 것처럼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쪽을 누락시키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놀림을 당하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직업이나 수입 정도가 그 아이의 능력인 양 잘 대해 준다. 특히, 편모, 편부 더 특히 사정상 조부모나 친척들 손에 키워지는 아이들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기피한다. 더불어 자녀들에게도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 ‘친구에게 엄마가 없었다. 그 사실을 반 학생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그에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그 친구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민우회 발표 사례 중)

당사자 고려없이 정보수집 ‘관행’

좋은교사운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헌희 교사는 “3월 달에 각종 지원, 추천을 빨리 할 것을 요구 받는다”며 “1~2주 내로 학생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양식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서 교사는 “자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받은 서류 한 장으로 학생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거짓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교사들도 현재의 가정환경조사서를 거의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별도의 양식을 마련해 따로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는 것.

이어서 가정환경조사서가 “항목별 세부사항을 지정하는 것보다는 주관식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또한 “학생의 학교생활을 관찰하고 학부모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학생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도 덧붙였다.

전교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 유현초등학교 허영주 교사는 “교사가 발령, 임용이 될 때도 가정환경조사서와 비슷하게 부모님의 학력, 재산 등에 대해 적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에 대한 고려 없이 정보의 수집, 집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함을 꼬집었다.

허 교사는 “개인 정보의 수집과 집적은 꼭 필요한 것으로만 최소화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현재 가정환경조사서는 “정보의 집적 단위가 학교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생활기록부에 입력되는 부모성명, 생년월일, 연락처 만으로도 기초 자료로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 이외에 학생지도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학급담임이 시기와 내용을 판단하여 수시로 수집하고 활용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 장은숙씨는 “정보를 적는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지금 형태의 가정환경조사서는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생님도 선입견을 갖게 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조사서는 아이들을 차별하는 기재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

장은숙씨는 “선생님이 개별 상담을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밝히며 이는 “교사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해결해나갈 수 있게 교육 여건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교과행정 전반에 깔린 ‘차별’ 돌아봐야

학부모 정옥경씨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자 한부모의 입장에서 겼었던 어려움을 전하며 특히 사생활 보호에 소홀한 학교 행정을 지적했다. 학교에 방문하였는데 공개적으로 한부모, 생활보호대상자, 부모직업 등이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일화를 전했다. 같은 한부모 가족인 정씨의 친구도 교사와 주변의 편견이 걱정되어 한부모 가족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윤선영씨도 조회시간에 학비지원 대상자임을 밝히거나 수업시간에 자신이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교사에게 상처 받은 경험을 전했다. 윤선영 학생은 “관심과 지원은 좋지만 티 안 나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현재와 같은 가정환경조사서가 아닌, 자유 기술 형식이나 일대일 상담의 강화 등 대안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또한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 학교 내에서 소통이 가능하게 할 적극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민우회 김선화 활동가는 “조사서가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 이전에 학생의 상황을 아는 것이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는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발 씻고 감상문 써오기 등 학생의 가족관계가 노출되는 정상가족 위주의 교과행정들이 고민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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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06/14 [08:49] 수정 | 삭제
  • 동거인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으면 기분이 이상하죠. 함께 사는 사람인데, 내가 좋아하고 친한 사람인데, 나의 가까운 친척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죠. 그런 기억이 나네요.
  • 말발굽 2006/06/14 [07:58] 수정 | 삭제
  • 동정의 시선이 제일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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