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술을 가르쳐주던 그녀

판타스틱 체육소녀 박은지

정이은 | 기사입력 2006/08/15 [21:34]

호신술을 가르쳐주던 그녀

판타스틱 체육소녀 박은지

정이은 | 입력 : 2006/08/15 [21:34]
스물다섯은 사람들에게 어떤 나이일까. 누군가에겐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만한 나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겐 세상 밖으로 나가는 시기일 수도 있다. 그 대열에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공통점이 있다면 이제 구체적인 미래를 계획해야 할 시기라는 것일 게다. 더는 미룰 수 없이 ‘장래희망’은 내일의 일이다.

박은지씨는 스물다섯, 아직 학생이다. 친구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몰입할 때, 그는 체육교육과로 편입을 준비했고 다시 학생이 됐다.

거의 도장에서 살았어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렇게 말이 없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없는 사람 같다는 정도의 인상이 전부였고, 별 대화도 없이 스치듯 지났다. 그가 합기도와 태권도 유단자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계획을 세워 놓고 착실히 준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은지씨에 대한 인상이 바뀐 건 사람들과 호신술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다. 그는 간단한 호신술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며 몇 가지 기술을 알려주었다. 나는 ‘몸치’였기 때문에 팔을 꺾는 기술 같은 건 금세 잊었지만, 반짝하고 눈을 빛내는 그에게서 숨겨진 열정을 엿보았다. 길거리에서 내 친구가 웬 술 취한 아저씨한테 팔목을 잡혀 어쩔 줄 몰라 할 때, 그가 호신술을 이용해 아저씨를 가볍게 밀어냈다는 건 이후 알게 된 깜짝 이야기.

“대학원서를 쓸 때 어머니가 골라 주신 문헌정보학과는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어요. 수능이 끝나자마자 시작한 합기도가 제일 재미있었고, 그래서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죠. 봉사활동을 다녀온 6개월을 제외하고는, 5년을 꼬박 합기도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 열중했어요. 학기 중에도 그랬지만, 방학 때는 도장에서 거의 살았고요.”

사범이 꿈이었다는데 굳이 힘들게 편입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까. 은지씨는 “도장에서 사범으로 지내면서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어딜 가나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경력을 인정 받잖아요. 그런데 이 방면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졸업장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 또한 적성에 맞는지도 의문이 들었고요.”

도장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 학부모 비위도 맞춰야 하고, 아이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레크리에이션 준비도 그렇고요. 재미있게 진행해야 하는데, 전 그걸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학원이다 보니 아이들을 돈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관장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빠져 나가면 그것 때문에 또 스트레스 받고. 체육은 재미있는데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까 계속해서 사범을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체육교육과 편입을 준비했죠.”

강해지는 느낌

은지씨는 합기도 3단이다. 그건 정식 사범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식 사범은 4단부터 채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의 타이틀은 ‘부사범’이었는데 급여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니, 돈을 받지 않고 일했다니?

“그냥 밥은 주면 먹고, 뭐 그렇게 일했어요. 다른 도장에서는 사범 교육이라고 해서 오히려 3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들었어요.” 너무하다는 나의 말에,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도장 운영이 쉽지가 않아요. 태권도장은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정이 더 낫긴 하지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는 합기도와 태권도의 차이를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다 그 밥에 그 나물, 비슷하고 닮은 무술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쩐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진다.

“(웃음) 전혀 다른 종목은 아니에요. 태권도가 타격기 위주라면, 합기도는 타격기에 관절기를 더한 종목이고요. 유도는 관절기라고 보면 돼요. 쉽게 생각하면 유도와 태권도의 중간이 합기도라고 할 수도 있어요.”

타격기, 관절기, 이게 다 무슨 말인가.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타격기는 상대를 가격하는 공격이에요. 발차기, 권술(예를 들면 복싱), 그런 거요. 관절기는 유술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 물론 세게 하면 관절이 꺾이겠지만, 더 쉽게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에요. 태권도 시합 때는 보호대를 하고 나오잖아요. 그건 맞았을 때 충격을 덜 주려고 하는 거예요. 아, 그리고 유도 경기할 때 보면 보호대 없이 나오잖아요. 때리는 기술이 없어서 그래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격투기라는 건 아직은 신기하기만 한 세상이다. 때로 어떤 사람의 관심사를 통해 그 사람의 세계를 엿보기도 하는데, 박은지라는 사람이 운동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운동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나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무술을 배웠어요. 태권도, 검도, 합기도, 복싱, 그리고 지금은 주짓수라는 브라질 무술을 배우고 있어요. 무술이라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그런 종목의 운동을 하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어쩐지 스스로가 더 강해지는 것 같고. (웃음) 정신적인 건 물론 육체적으로도 남에게 제압당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거든요.”

자신의 약한 모습들이 싫다는 의미냐고 물었다. 은지씨는 “그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약하다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 있잖아요. 몸이 약하다. 정신이 약하다. 전 제가 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일부러 감추고 싶지는 않아요.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에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음. 저는 분노와 공포가 심한 편이에요. 무서운 것도 많고 화도 잘 내고요. 그런데 운동을 배우면서 두 가지 감정들이 좀 가라앉았던 것 같아요. 수련을 하며 스트레스나 분노가 해소되기도 했고. 또 운동을 하면 자신감이 생기니까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고요.”

여성, 운동 그리고 무술

여자가 합기도를 한다고 하면 놀랍다는 반응을 많이 접하게 된다고 했다. 은지씨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더 의아하다고 한다. 그러나 관장을 찾는 여자관원들은 많지 많다고 했다.

“사범을 하면서 절실히 느꼈지만 아직 무술계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사각지대인 거 같아요. 여자 관장님들도 아주 극소수고. 그나마 태권도는 여성선수들이 많고, 신체 접촉이 심하지 않지만, 합기도나 주짓수는 몸을 밀착시켜야만 이루어지는 기술이 많거든요. 그럴 때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여자선생님들이 있으면 좋은데, 보통은 다 남자들이잖아요. 그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 두는 여자들이 많아요.”

여성이 무술을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여자가 운동한다고 하면 운동하는 남자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자가 하면 얼마나 하겠어.’ 이런 식이죠. 그것 때문에 더 이 악물고 했어요. 수영이나 테니스, 이런 운동도 재미있어요. 그래도 합기도나 태권도 같은 무술도 여자들이 많이 배우면 좋을 경험이 될 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워요.”

세상에는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일치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나의 경우 거의 보물찾기처럼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행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행운권 당첨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행운이 아닌 것처럼. 그러니 오늘 그와 인터뷰하며 들었던 질투의 감정은 귀여운 투정이라고 해두자.

“10년 뒤에요? 체육교사를 하면서 도장을 하나 차리고 싶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장 말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도장을요. 남자와 접촉해야 된다는 부담 없이 무술을 배우게 하고 싶어요.”

사실 권술이니, 수련이니 하는 얘기 들으면서 어쩐지 중국 무술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조심스럽게 샘솟는다. 배우고 싶다는 가벼운 욕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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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stin 2006/08/18 [21:50] 수정 | 삭제
  • 돈도 못 받고 체육관에 붙어 살았다니, 얼마나 운동에 대한 애정이 강한지 알 것 같네요.
    편입을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타격기, 관절기 얘기도 재밌게 들었습니다.
  • ... 2006/08/17 [16:54] 수정 | 삭제
  • 언제 일다에서 호신술 강좌를 마련해보심이... ^^
  • 바람 2006/08/16 [14:15] 수정 | 삭제
  • 운동을 즐기는 여성은 멋있는 것 같다.
    운동을 잘하면 더 멋있는 것 같다. 헤헷...
    잘은 못해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잘해야 재밌는 것 같기도 하구.. ^^;
    어쨌든 운동 좋아하는 여성은 멋있어요~~
  • 피에르 2006/08/15 [22:31] 수정 | 삭제
  • 운동은 확실히 자신감과 상관관계가 많은가 봐요? 외국처럼 우리 나라도 여성들이 운동을 생활화할 수 있는 문화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