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감동할 수 없는

원폭의 상처를 담은 <저녁뜸의 거리>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6/08/23 [01:12]

마음 편히 감동할 수 없는

원폭의 상처를 담은 <저녁뜸의 거리>

김윤은미 | 입력 : 2006/08/23 [01:12]
<저녁뜸의 거리>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10년이 지난 1955년부터 2003년까지를 배경으로, 히로시마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만화다.

일본과 국내에서 모두 호평한 이 만화의 강점은, 전쟁이 안겨준 상처를 국가의 문제가 아닌 개인, 그것도 전쟁을 일으킨 주도자와는 가장 거리가 먼 평범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일상에서 캐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그림체는 느슨하게 보일 만큼 부드러우며, 인물들의 대사 또한 원폭에 대해 정치적으로 고찰하는 내용 등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담담하다. 지은이는 시종일관 그 어디에나 산재해 있는 개인의 생명과 일상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55년의 히로시마. ‘저녁뜸의 거리’는 히라노의 평범한 직장 생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퇴근하는 히라노의 주변, 히로시마의 풍경은 평범하지 않다. 거리에는 ‘원폭 10주년: 성공적인 원폭 금지 세계대회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간판이 설치되어 있고, 히라노는 ‘죽은 줄 알았어요, 오토미 상. 부처님이라도 몰랐을 걸요, 오토미 상.’이라는, 원폭 때문에 생사 확인이 두절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중얼거린다. 목욕탕에 가면 사람들의 벗은 몸에는 원폭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처럼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의 상흔이 개개인의 삶에 강하게 아로새겨진 공간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히라노를 비롯한 히로시마 사람들은 원폭 피해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라노는 원폭의 기억을 잊으려 한다. 그녀는 원폭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은 “누군가 우리에 대해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 전부라고 중얼거린다. 히라노에 따르면, 누군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원폭을 투하한 결과, 히로시마 사람들의 내면에 자신이 죽음을 당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막연하게 기억된 ‘숙명적인’ 죽음의 기억, 즉 나 또한 죽었어야 했다는 믿음은 일종의 외상으로 남는다. 히라노는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행복해지는 상태를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죽어나 뒹구는 시체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게 되고”, “죽은 여자의 나막신을 훔쳐 신는 냉정한 인간”이 되었다고 술회하는 그녀. 원폭 이후 일어난 대규모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고 행복한 일상을 낯설어하는 한편, 그 기억을 “나만 잊으면 될 일이었다”고 처리하려는 히라노의 모습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원폭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거리의 이미지,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히라노의 대사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도 된다는 걸 가르쳐주세요.”는 전쟁의 상흔이 이들에게 어떤 개인적인 의미를 남겼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삶의 당위성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것. 이것이 그들의 상처이며, 그들은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노력한다. 그 모습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 감동과 더불어 미심쩍은 느낌을 지우기도 어렵다. 전쟁의 피해를 개인적인 상처의 확인과 치유에서 멈추어도 괜찮은가 라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가해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 국가의 평범한 시민 개개인에게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전쟁의 가해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사유하여,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아내는 적극적인 역할의 주체 또한 평범한 개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현실이다. 이 문제는 전쟁의 피해를 아이들의 삶을 통해 그려냈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가 지속적으로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이어지는 단편연작 ‘벚꽃의 거리’에서는 2000년대가 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히로시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55년의 히로시마 사람들이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고민했다면 2000년대의 문제는 ‘차별’에 대한 것이다. 히로시마 사람들이 원폭의 피해로 인해 일찍 죽는다는 사실, 이것은 두고두고 그들이 결혼을 하는 등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장애물로 인식된다. 그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녁뜸의 거리>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일정 정도 이상을 고찰하지 않는 대신, 개인적 상처와 그 치유를 담아내는 방향을 잡았다. 지은이가 상처를 받은 ‘개인’을 단지 일본인에 한정 짓지 않는다는 점 또한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히로시마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라며 원자폭탄의 피해자인 한국인의 존재에 대한 인식 또한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왜 끌려갔는지, 그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이 담담하고 아름다운 만화에 대해 마음 편히 감동할 수 없다는 점, 이는 한국의 독자라면 식민지였던 국가의 개인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쉽사리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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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ng 2006/08/24 [13:50] 수정 | 삭제
  • 누군가 우리에 대해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 아프네요.
    아픔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방식 좋아합니다.
  • 나나 2006/08/23 [20:57] 수정 | 삭제
  • 내용이 어떨지도 짐작이 가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