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삶을 지지한다

네팔의 돌 깨는 노동자, 수니따와 미나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7/02/05 [19:37]

당신들의 삶을 지지한다

네팔의 돌 깨는 노동자, 수니따와 미나

조이여울 | 입력 : 2007/02/05 [19:37]
네팔의 작은 시골마을인 치쌍 골(Chisang Khola)은 외국인이 여간 해선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당연히 이곳 사람들 입장에서, 외국인은 구경거리였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해서 끼니를 때우는 어린 노동자들이 있는 곳.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희망의 언덕’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 차 방문했지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아이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은 차질을 빚었다.

결국, 앞으로 지원하게 될 아이들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야 하는 ‘희망의 언덕’ 한국인 관계자와 이 사업의 담당자인 먼주 타파에게 아이들 면접을 맡기고, 다른 일행들은 흩어져 치쌍 마을을 곳곳을 둘러보았다.

여기 사람들은 돌 깨는 노동을 해서 먹고 산다. 먼지바람을 막아줄 수 없게 생긴 텐트나, 돌 사이에 천을 둘러 친 것들이 주거공간이다. 마을 공간의 주 성분인 돌무더기들은 3살 아이 때부터 노동의 터전이자 동시에 놀이터이기도 하다.

결혼? 그런 걸 왜 해?

이곳에서 내가 보게 될 여성들은 ‘어떤 어린이노동자’거나 ‘어떤 어린이노동자의 어머니’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만나게 됐다. 돌 무더기에 둘러 앉아서 외국인들을 구경하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여성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올해 45살인 수니따 수바다.

그녀와의 대화는 엄밀히 말해 내가 그녀를 인터뷰했다기보다는, 그녀들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것도 네팔 말에 능한 40대 한국인 남성분의 통역을 통해서 말이다.

수니따 수바는 안경 낀 눈매에 담긴 여유로움이나, 확신을 가지고 담담하게 말하는 어조,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말할 때 약간 흔들리던 눈빛 등이 꽤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중에 일행들에게 그녀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누군가는 “페미니스트 이미지네” 라고 말했는데, 그 이미지가 무엇이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도 그렇게 느꼈다.)

더욱이 “결혼? 그런 걸 왜 해? 남자들은 술만 마시잖아.” 식으로 말할 때는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혼풍습이 남아있는 네팔에선 (특히 시골에서) 열살 남짓한 여자아이를 결혼 시키는 부모들이 아직도 많다. 이런 사회에서 여자가 독신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지간해선 어려운 일이며 드문 사례라고 통역을 맡은 사람은 설명했지만, 수니따 수바는 “결혼 안 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어릴 적에 고아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부모님이 살아 계셨으면 물론 내가 독신으로 사는 것에 대해 반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분들이 무슨 상관인가. 내 삶은 내가 결정하는 것인데!”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그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동생과 함께 살아왔다고 한다. 남동생이 결혼한 뒤엔 그 집에서 함께 살다가, 5년 전부터 혼자 치쌍 마을에 이주해 와서 돌 깨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엔 수니따 수바처럼 돌 깨는 노동을 하러 이주해오는 사람들 수가 늘고 있다. 그 얘기는 돌 깨는 노동을 하며 사는 것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니따 수바는 혼자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며,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볼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을 할 땐 쓸쓸해 뵈기도 했지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고, 다시 태어나도 결혼 따위는 하지 않고 살겠다.”라고 말했다.

21살의 신부 미나 슈바

이야기가 결혼에 대한 가치관으로 흐르자, 그 옆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도 입을 뗐다. 올해 21살인 미나 슈바는 치쌍 마을에 이주해서 돌 깨는 노동을 하며, 이곳에서 만난 남성과 사랑에 빠져 작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역시나 우리의 통역자는 네팔에서 오래 살았지만 부모의 중매가 아닌 연애결혼을 하는 경우(특히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웠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나 슈바는 “그건 옛날 얘기”라고 반박했다.

미나 슈바도 당당한 자세가 매력적이고, 웃음 속에선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는 신부인 미나 슈바는, ‘결혼은 여자에게 득 될 것 없다’는 수니따 수바의 얘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좋은 남자를 만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다.

결혼의 신성한 가치를 믿는 한국인 남성인 통역자는, 그녀의 얘기에 반가운 듯 마치 두 사람 간에 논쟁을 붙이듯이 결혼을 하면 뭐가 좋은지 말해달라고 했다. 미나 슈바는 “남편이 있으면 몸이 아플 때 좋다”고 말했다.

이제 이 논쟁에서, 또 한 명의 비혼여성인 내가 나설 차례가 됐다고 느꼈다. 내가 “남편이 없으면 몸이 아플 때 빼고 다 좋다”라고 말하자, 수니따와 미나를 비롯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미나 슈바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녀는 자신은 자식을 둘 낳고 싶으며, “딸만 둘 낳아도 절대 더 낳지 않겠다” 라고 말했다. 주위 다른 여성들이 와~ 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네팔은 아들 원하는 사회로는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 힌두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아들이 눈을 감겨줘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즉, 아들이 없는 사람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수도인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마오이스트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러한 믿음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번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인습을 따르고 있어서, 아들 낳을 때까지 아이를 줄줄이 낳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때문에 미나 슈바의 말은 그녀가 신세대 여성답다는 느낌을 전해줬다. 그래서 그녀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돌 깨는 일을 하는 성인이 한 달에 버는 돈은 2천 루피(한화 2만 8천원)다. 혼자서든 둘이서든 살림을 하기엔 빠듯한 상황이다. 관습적으로 신분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네팔사회에서, 돌 깨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신분이 낮고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속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수니따 수바와 미나 슈바 같이 자기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

봉건제와 내전으로 인해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 네팔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그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가난과 가부장제에 굴하지 않고 삶의 소중한 빛을 발하는 여성들이 세상 곳곳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구나 하는 유대감을 갖게 했다. 그곳을 떠나며 두 사람에게 ‘당신들의 삶을 지지한다’ 라고 작별인사를 고했다.

<통역지원: 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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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12 [02:40] 수정 | 삭제
  • 네팔 잘 다녀오셨습니까? 기사 잘 읽었습니다. “남편이 없으면 몸이 아플 때 빼고 다 좋다” 하하핫
  • mana 2007/02/09 [18:46] 수정 | 삭제
  • "가난과 가부장제에 굴하지 않고 삶의 소중한 빛을 발하는 여성들이 세상 곳곳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구나"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함께 유대감을 느끼고 싶어집니다.
  • 믹키 2007/02/07 [02:02] 수정 | 삭제
  • 정말 삶을 지지하고, 지지 받고 싶어지는 여성들이네요.
  • 세희 2007/02/06 [02:16] 수정 | 삭제
  • 매력적인 여성들이네요..
    타지 여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모습이 연상되었슴다.
    20.30.40
    세 분이 세대별 만남이 되는 건가 보네요.
  • milk 2007/02/05 [23:55] 수정 | 삭제
  • 국적을 떠나서 여성들 간의 유대감이 찡하게 느껴지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