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평택의 촛불을 건네받자

땅의 가치를 일깨워준 주민들

윤정은 | 기사입력 2007/02/27 [04:40]

[논평] 평택의 촛불을 건네받자

땅의 가치를 일깨워준 주민들

윤정은 | 입력 : 2007/02/27 [04:40]
끝까지 남아있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이주하기로 정부와 합의하면서 ‘평택 문제는 끝났다’고들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저녁이면 지금도 어김없이 대추리 농협창고에 모여 촛불을 든다. 23일, 주민들은 정부가 마련한 ‘임시’ 이주예정지를 둘러보고 돌아와서도 촛불을 들었다.

마음도 많이 안됐을 텐데, 삼삼오오 난로가로 모여 촛불행사를 하며 한 여성농민이 ‘농민가’를 부른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짓던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평화적 합의? 억울하고 또 억울해

이날 오후 대추리를 찾았을 때, ‘임시’ 이주예정지를 둘러보고 온 주민들은 노인회관에 모여 있었다.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제 다 끝났는데, 뭘. 두들겨 맞을만큼 맞고, 다 내주고, 이주해야 하는데, 이제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러나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속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할머니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하고, 할아버지들은 “열 받아 속 터지면 우리만 손해지” 하면서도 “욕이 입에 붙어버려서 큰 일”이라며 연신 허공에 대해 욕설을 내뱉었다.

최근 주민들의 이주 합의에 대해 언론은 “대추리 주민 갈등 해소”, “정부와 주민 이주 합의”, “마침내 합의도출하여 평화적 이주 가능” 등 주민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마치 평택문제가 평화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억울하다.” 땅을 일구어 평생 농사짓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에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어 나가라 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막아 오랜 기간 이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중장비가 들어와 마을공동체 중심인 학교를 부수기 시작해 집들까지 파괴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쳐버렸다.

언론과 여론은 저항하는 주민들을 ‘국가 이익에 반하는 집단’으로 매도해버렸다. 심지어 지역공동체로부터 “빨갱이 집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격리됐다. 주민들에겐 지난 시간들이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이었다. 주민들은 언제 또 더 큰 폭력이 닥칠지 몰라 매일 마음을 졸이며, 불안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를 또 버텨왔다.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의 폭력과 압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이주에 대해, ‘자발적 합의’니 ‘평화적 이주’니 선전을 해대니, 주민들은 허망하고 원통한 마음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의 저항을 이해 못하는 한국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이 좋은 농토를 미군에게 내주고, 우린 보금자리를 잃었다”며 패배감에 젖어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건강하게 농사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앞으로 우린 뭘 하나?” 라고 탄식하는 농민들의 말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망각해버린 대지와 농사, 그리고 삶의 보금자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국방부와 언론은 집과 땅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저항을 ‘보상 문제’로 호도했다. 타 지역 사람들도 주민들이 평생 살던 땅에서 쫓겨나가는 것을 “끝내 보상을 더 받으려 속셈이었다”는 식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보상문제라고 한다면, 그동안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로 인해 받은 정신적 심리적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그런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보상은, 오로지 줄자로 수치로 잰 돈으로 환산하는 계산법이 전부이니 말이다.

평택주민들을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돈, 돈’하며 부유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땅값이 오르면 팔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이 행복인양 말하는 도시의 사람들로선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끝끝내 지키고 싶었던 땅의 가치를 이해할 리 없다. 주민들이 말하는 땅과 집, 그리고 농사는 부동산업자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치를 분간할 수 있는 사회가 이미 아닌 듯 하다.

예전에 한 건축가가 “자기가 살던 아파트가, 그동안 삶이 담겨 있는 집이 부서지는데 ‘축 재건축’ 플랜카드 내걸리는 사회는 한국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살던 공간이 부서지든 말든, 부동산 값만 뛰면 좋아라 하는 사회에서, 누가 대추리 주민들이 말하는 땅의 가치를 알 수 있겠는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저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자신의 삶을 가꾸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소중함도 모르고,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도 없고, 지역에 대한 관심도 없다. 오로지 돈만이 중요한 가치다. 농업을 포기한 나라에서 농토를 지키려고 하는 농심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농사 지을 땅 한평 가지는 게 소원이어서 땅을 개척하고, 옥토로 바꾸어 농사짓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땅값 부풀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있을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촛불

삶을 꾸려나가던 집에서, 평생 일군 농토에서 쫓겨나 이주단지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이제는 도시인들처럼 몇 평짜리 집에서 정부가 저소득고령자에 한하여 주는 생계유지비를 받으며 살게 될 주민들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사누?”라고 내쉬는 깊은 탄식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부터 이번 겨울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밝히는 어르신들께 “주민들이 살아계시는 한 평택문제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들고 있는 촛불은 희미하기만 한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2년간 늙고 병든 몸으로도 하루도 촛불을 놓지 않았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손에들려져 있던 촛불이 이 날도 어김없이 밝혀졌다.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주해야 할 3월까지, 대추리를 떠나기 전까지, 주민들은 어김없이 촛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촛불을 건네 받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척박한 땅에서, 지난 2년간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밝히고 있던 촛불을 어떻게 건네받아 평화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을 수 있을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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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 2007/02/27 [13:41] 수정 | 삭제
  • 아.. 평택에서 아직도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니 위로가 되고 어쩐지 희망이 느껴지네요.

    평화롭게 살기 위해 투쟁하는 주민들에게 힘이 되어주지도 못한 사람들이 주민들의 이주 합의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안타깝고 분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야겠지요!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요..
    역사가 기억할 겁니다.
  • 고향 2007/02/27 [09:23] 수정 | 삭제
  • 사람들은 고향이라는 것에 강한 감정, 애착을 가지고 있잖아요. 죽어서라도 시신은 고향에 묻혀야하고, 연휴마다 몇시간씩 걸려 고향으로 가고.... 특히 자신이 계속 자리를 잡고 살던 지역, 고향이자 생활터인데 그곳에서 강제철거 당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박탈감과 허무함이 상상할수 없을 것 같아요.
    누가 고향을 돈의 가치하고 바꿀수 있겠어요. 돈은 도는 거지만, 고향은 한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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