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인생

‘가지 않았던 길’을 찾는 진정순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8/01/25 [01:43]

설레는 인생

‘가지 않았던 길’을 찾는 진정순

조이여울 | 입력 : 2008/01/25 [01:43]

“어머니와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화해도 잘해요. 얼마 전에도 다퉜어요.”

진정순씨(50)는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각별한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먼저 풀어놓았다. 82세의 어머니는 진씨가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던 때부터 가사일을 맡아 주셨고, 지금은 평생 그와 함께 살고 싶어하신다. 6남매 중 셋째인 진정순씨를 어머니는 “가장 성격이 맞다”고 아끼시는데, 이유는 아무래도 그의 싹싹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지난 번에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시면서 아들 집에 가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일주일간 거의 서로 말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제가 어머니 나오시라고, 화해하자면서 맛있는 거 사드린다고 했죠. 고기를 먹으러 가서 어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시면서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하시더라고요.”

정순씨는 어머니가 “연세 드실수록 작은 것에 기뻐하고, 노여워하시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렇지만 80대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1시간씩 동네를 걷고 운동을 하실 정도로 정정하시다는 점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저는 일하는 거 좋아해요”

진정순씨는 자신을 “언제나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결혼하고도 직장에 다녔죠. 사업도 해보고. 앞으로도 일할 거예요. 일해야죠. 저는 일하는 거 좋아해요.”

공장에도 다녔고 여러 일을 해봤지만, 마흔에 시작한 식품제조업 분야 일은 특히 의미가 컸나 보다. “여성이다 보니까 순탄하지 않았죠. 비즈니스라는 게, 술 한잔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저는 그런 식으로는 못하고 대신 일일이 발로 뛰었어요. 제가 몸집은 작아도 성격은 화끈한 편이에요. 1년이고 2년이고 홍보를 다니면서 매너를 깔끔하게 하니까, 결국 계약이 이루어지는 식이었죠.”

일하면서 성취감도 많이 느끼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면서 일했던 경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때문에 “당당하게 살았어요” 라는 말이 그에게 어울리나 보다.

진정순씨는 두 딸들에게도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사회생활 하면서 우유부단하고 유순하다 보면 주관 있게 얘기를 못하잖아요. 남들이 얘기하면 그런가? 아닌가? 하고. 저는 (딸들에게) 일단 결정을 내리면 바로 실행에 옮기라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추천하거나 의견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빼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과감하게 한 번 해봐라 하고 말하죠.”

큰 딸은 간호사인데, 일이 힘겨워 보여서 어머니 입장에서 무척 안쓰럽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순씨는 “당연히 일을 갖고 살아야죠. 시집 잘 가면 그만이네, 그런 생각은 아예 없어요” 라고 말한다. “기업이나 그런 데는 아직도 성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이제 바뀌어가는 거잖아요” 라고.

언니와 동생 사이

딸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진씨의 가족들은 한 달에 1~2번 가족회의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때 하는 거죠.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묻고요. 아이들도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무엇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해요. 대부분 아이들 의견을 들어주는 편이에요. 하지만 조금 크더니 여행은 자기들끼리만 가고 싶어하더군요.”

스물여섯, 스물둘의 딸들은 할머니인 진씨의 어머니와도 친구처럼 지내고, 자매 간에도 잘 통한다 했다.

“저도 우리 언니와 친해요. 만나면 안 떨어지려고 하죠. 언니네 동네로 이사해서 2년 살았던 적도 있어요. 결혼하고 나이 먹어가면서 친구나, 부모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를 언니와 나눌 수 있어서 위안이 됐어요.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해주고, 슬플 때 같이 나누는 사람이죠. 언니는 50대 중반을 넘었는데, 몸이 아플까 두렵고, 오래도록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끼가 많은 사람

많은 일을 해오긴 했지만, 어릴 적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는 큰 무대에 서보기도 했다.

“아이들 학교 운동회 때, 학부모들이 왔다가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 노는데요. 제 의사와는 관계 없이 사람들이 장끼자랑 같은데 내보내고, 주부가요열창에도 접수를 시켜버렸어요.”

가수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을까? “제 실력은 사람들이 맛깔 나게 잘 부른다 하는 정도죠. 하지만 될 것도 아니었어요. 얼마나 노래를 전문적으로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다만 저는 떨지는 않아요. 담력이 있어서.” 이렇게 덧붙이는 말이 진정순씨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대담하게 살아온 정순씨에게 한 가지 신념이 있다면, 그것은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사람을 볼 때 집안이 어떤지, 가난한지 부유한지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의가 있는 사람인지를 보죠.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사람 말이에요. 세상에는 나이가 들어도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정하듯이

진정순씨는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거치고 있는 것이다. “영어학원에 다니던 중에, 친구로부터 나이든 사람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 즉각 달려왔어요.”

그는 가족회의 때 남편과 아이들에게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학교를 다시 다니겠다”고 말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결과는? “남편은 꼭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하면서도 선선히 알겠다고 했고요. 큰 애는 저보고 기특하대요.”

중년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일성여중고등학교에서 진정순씨는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정하듯이”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저는 제 일도 갖고 싶고,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요. 봉사활동은 한문을 열심히 공부해서 노인정이나 어린아이들 찾아 다니며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싶고요. 음. 어떤 일을 갖고 싶으냐고요? 아직 못 정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은 많아요.”

그 많은 ‘하고 싶은 것들’ 중에는 글을 쓰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백일장에 지원해본 적도 있는데, 채택이 안 되면 실망하게 되고…. 하지만 그 정도로 되는 거였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 되겠죠. 제 생각엔 시야가 넓은 분들이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경험은 많은 편이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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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키 2008/02/01 [19:47] 수정 | 삭제
  • 말씀을 시원시원하게 하셔도,
    많은 걸 짊어지고 이고 살아가시는 분이라는 게 느껴지네요.
    인터뷰 잘 봤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엄마와 노래방에 갈 딸들이 부러워요..
  • 김종의 2008/01/31 [19:14] 수정 | 삭제
  • 정순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있으면 도와힘이되주었으면 얼마나좋을까요?
    글을 읽고 저도 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좋은대학가시길기원합니다.
    내 운명은내가만들어간다고합니다.
    좋은일 만들어가시고 건강도같이.파이팅!
  • sjh 2008/01/30 [17:50] 수정 | 삭제
  • 엄마가 더 연세가 많으시긴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거.. 멋진 일이잖아요.
    저도 평생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습니다.
  • Rim 2008/01/26 [20:20] 수정 | 삭제
  • 저희 어머니두 그렇구...중년 이상 여성들 중에 '학교'에 대한 한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 분들이 정순님 처럼 '진로와 미래'를 꿈꾸게 되길 바래요. 엄마에게도 이 글을 보여드려야 겠어요.^^
  • freetime 2008/01/26 [10:47] 수정 | 삭제
  • 정순님인가요..
    멋쟁이십니다.. 잘보고 갑니다.
  • 독자 2008/01/26 [03:21] 수정 | 삭제
  • 어릴 땐 많이 싸웠던 언니인데.. 세월이 많이 지나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고 나니까, 이제야 서로를 알게 되고 아끼게 된 기분이에요. 나에게 때로는 친구보다 더 가깝고 연인보다도 사랑스러운 존재죠. 물론 어떤 경우엔 언니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친구에게 하고, 엄마에게 하지만요.
    서로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엄혹한 세상에서 참 행운이구나 하고 느껴요.
    님은 늙으신 어머니와도, 신세대 딸들과도, 함께 나이 들어가는 언니와도 아끼며 사랑하는 관계라는 게 복 받으신 것 같네요. 꿈을 잃지 않고, 진로를 정해나가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져 보이십니다. 자식만 바라보지 않고 자기 길을 정해나가는 중년의 아줌마,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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