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다른 선거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 출마한 커밍아웃 최현숙 후보 인터뷰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4/03 [19:22]

“우린 다른 선거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 출마한 커밍아웃 최현숙 후보 인터뷰

박희정 | 입력 : 2008/04/03 [19:22]
한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국회의원 후보로서 주목 받고 있는 진보신당 최현숙(51)씨는 최근 선거법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  ©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선거운동기간 전에는 어떤 형태의 선거운동도 금하고 있지만, 공직선거법 60조 3의 2항에 따라 이 기간에 예비후보자와 그와 함께 다니는 자 중에서 지정한 1인, 예비후보자의 배우자(또는 직계존비속 중에서 신고한 1인)는 선거운동을 위해 명함을 직접 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최현숙 후보는 "후보자의 정치적 견해와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동반자"인데, 현행 선거법이 정치적 동반자를 “가족”이라는 틀로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8대 총선에서 이처럼 이혼을 했거나 배우자와 사별을 한 사람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최현숙 후보. 레즈비언 후보임을 앞세우며 서울 종로에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최초로 커밍아웃한 국회의원 후보라는 점이 우리 사회에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는가?

“가부장제, 가족중심주의, 정상가족이데올로기 등을 이번 선거를 통해 사회적으로 정치 의제화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없는 사람들로 여겨져 왔다. 특히 레즈비언들의 경우 더욱 그랬다. 내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레즈비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시화시킨 것이다. 이전에는 (동성애자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한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레즈비언이 어떻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만큼 성소수자들의 인권부분이나 사회의 인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이라고 본다.”

 
일다에 ‘하나꼬’라는 이름으로 글을 기고하신 적이 있다. 50세라는 나이를 앞두고 동성애자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경험에 대한 글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레즈비언 정치인으로서 총선에 출마하게 되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이후 어떤 경험과 과정을 거쳤는가?

▲ 유세하고 있는 모습  ©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나는 모든 것은 정치의제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지방의회 후보로도 출마한 적이 있었고, 2004년에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이후 짧은 시간에 커밍아웃한 후보로 출마한다는 게 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이번에 후보로서 정치 의제화하는 것은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대단하다, 혹은 너무 서둔다 이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정체화 이후 가족과의 관계를 얘기한다면, 나는 결혼했었고 자녀가 둘 있었는데 2004년 그 아이들이 21살, 24살이었다. 커밍아웃 이전부터 동성애에 대해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잘 인식하고 있어서, 2004년 내가 커밍아웃 하고 이혼한다고 말했을 때 아이들은 지지해 주었다. 전 남편이야 이혼도 반대했고 동성애 정체성에 대해서도 혐오적이었지만 지금은 나아졌고, 2006년에 합의해줘서 이혼이 완료되었다.
 
이전의 정치활동 경력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면, 1987년 가톨릭 신자로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좁은 의미의 제도정치 안에서의 활동은 2000년 3월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2001년부터 여성위원회 활동을 시작해, 2002~2004년 중앙당 여성위원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성소수자 부문 쪽 활동을 해서 2006~2007년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며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총선 출마를 계획한 시기는 언제인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작년 5월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모임 <붉은이반> 회원들과 엠티를 갔다. 그 자리에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 논의하다가 우리도 총선에 후보를 내자는 얘기가 적극적으로 나왔고, 6월 임시총회에서 결정했다.”
 
지역구로 종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종로가 정치 1번지라고 하는데, 그것은 종로를 거쳐 대권으로 간다는 식으로 기득권을 확장하기 위한 기반으로 종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종로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창신동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정치 1번지냐 하면 그렇지 않다. 종로의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번에 종로의 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민정치 1번지’로 종로를 보기 위해서, 또 종로 안의 게이들, 파고다 공원 노인들, 인사동 문화꾼 등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어떻게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 보일 수 있는 도시공간이라는 점에서 지역구로 종로를 택했다.”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출마하는 것에 대해, 진보신당에서 비례대표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도 있는데.

▲ 종로구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그런 건 아니다. 진보신당이 비례대표를 확정한 건 총선 며칠 전이고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 선거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가 무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지역구를 선택한 것은 이번 선거를 공세적으로 사회 의제화하는 데 지역구 출마가 적합했기 때문이다. 비례로 나가면 당내 선거에 갇히고, 실제로 한국 총선에서 비례대표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처음부터 비례대표를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순번배정의 문제와 관련해서 (출마를 결정할 당시) 민주노동당의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상 나는 소수파였기 때문에 비례대표 앞 순위를 받기 힘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정치세력화든 장애인정치세력화든 소수자의 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과연 누가 대표성을 띄는가는 논란이 많은 주제다.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최현숙 후보는 자신이 성소수자들을 대표하는 후보라고 생각하는가?

“후보로 나가기로 결단한 것이 내가 성소수자를 대표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다. 감히 성소수자를 대표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그렇지만 공직선거 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상당 정도 (성소수자를) 대리하고 대표성을 띈다는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공직선거 후보로서 대표성 면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사실은 상당히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경험도 천차만별인데 성소수자 정치인으로서 성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정치를 펴고 싶은가.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정체성 운동에 빠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동성애자 정체성에 기반한 논의를 넘어서 성과 관련한 진보적인 제안들을 하고 싶은 것이다. 피해자중심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진보의 패러다임 안에서 소수자 의제들이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진보정당의 활동 속에서 소수자 의제들을 풀어내고자 했다. 여성과 소수자들의 삶에 다가가는 정치, 개인주의와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선 연대의 정치, 자본주의의 경제중심 효율성중심 경쟁중심구조 속에서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정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자치의 정치, 공유의 정치가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걸고 있는 다섯 가지 의제다.”
 
성소수자들이 최현숙 후보 또는 진보신당에 대해 지지를 표하고 있다고 보는가?

“글쎄, 성소수자들이 가시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지금 선거운동을 함께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은 '우리 미쳤나 보다. 최현숙이라는 후보에 미쳤든, 이 선거 자체에 대해 미쳤든, 이런 역사적인 사건에 미쳤든, 미쳤다'고들 한다. 인터넷 카페나 주말의 바에서 만날 수 있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레즈비언들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같이 지지해주는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게이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반대하는 이야기들을 찾아보지는 못했다.”
 
손학규(통합민주당), 박진(한나라당) 등 종로에 쟁쟁한 인물들이 출마한다. 최현숙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에, 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안 되는 싸움’을 하는 것에 회의를 갖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  ©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다른 언론이 아니라 <일다>이므로 현실적으로 얘기를 하자면, 우리는 물론 당선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목표를 당선에 두고 있지는 않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후보로 인해 성정치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제를 전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고, 진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목표다. 그런 면에서 ‘되지 않는 싸움’이 아니라, ‘될 싸움’을 하러 나온 거고 그 싸움의 성과는 우리가 하는 만큼 만들어질 것이다.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는 게 목표고,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도 당선이 목표가 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최현숙 후보는 ‘소수자를 위한 정치’를 걸고 여러 가지 공약들을 걸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건 공약은?

“의료나 주거의 공공성이 확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 등록금 상한제, 소득에 따른 차등제를 제시하고 있고, 우선적으로는 교육이 무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실업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회연대제라는 큰 틀로, 가족 내에서 여성들에게 전담되고 있는 돌봄노동을 사회적 돌봄노동으로 대체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적 연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관련된 주요 정책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무산된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자들의 동반자 관계뿐만 아니라 결혼제도에 편입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동반자성을 인정해서 헤어질 때 재산 분할 재산상속 등에 대한 법안을 마련하는 '동반자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관련해 '문화다양성의 집'을 구상하고 있다. 창신동만 해도 아시아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고 혜화동 인사동 등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런 이주민들이 싸구려노동력으로밖에 취급 안되고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는 우리의 다양성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가 나온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약들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이상적인 구호들을 표방하는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약의 실효성에 대해 점검해보았는가?

“선거정책이나 공약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느냐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수권의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 아니므로 현실정치에서 받아들여 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에서 우리 공약을 가져갈 것도 아니다. 당장에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공약이 현실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과연 총선 운동기간에 얼마나 많은 홍보를 통해 성소수자 이슈를 사회에 알려내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선거운동의 전략이나 특성에 대해 말해달라.

▲ 선거운동 발대식 © 최현숙 선거운동본부
“선거 때 유권자들은 피곤하다. 일단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이 신나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상상력을 자극 받고, 잊고 있던 아픔들을 끄집어 내고, 개개인들이 변화의 계기를 찾아나갈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성소수자들의 경우 선거운동 할 때 ‘아우팅’의 위험도 있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그래도 좋다 하고 나왔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열정과 경험을 할 수 있으면 했는데, 지금 그렇다. 그것 자체가 '다른 선거'다. 돈으로 조직원들을 사서 역 앞에 배치하는 것과는 다르다.

 
선거운동도 퍼포먼스를 하고 유세차에서 난리를 친다. 춤을 추고. 그걸 보는 주민들도 다르다는 걸 안다. 낯설지만 새롭고, 같이 신나면 손 흔들어주고. 물론 낯설어하지만 아직 혐오를 드러내놓고 말한 사람은 없다. 블로그나 선본 홈페이지(comingout.or.kr)에 지지하는 시민들, 동성애자들, 성전환자들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수십 년 간 바닥에 깔아놓은 기득권들의 선거문화가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다른 선거를 하고 있고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최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성소수자들이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함께 뛰는 사람들, 혹은 모임들에 대해 소개한다면.

“대체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를 같이 했던 사람들, 그 중에서 진보신당으로 같이 온 사람들, 일부는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함께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진영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가 아닌 당원들, 길에서 저를 알아보고 같이하고 싶다고 찾아 온 사람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또 사람을 끌고 온다. 최현숙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 선거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전에는 서로 섞여볼 기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선거 통해서 같이 섞이면서 차이를 이해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개인적 이득이 생기는 것이 없음에도, 선거에 참여해주는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끝으로 유권자들과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어디가 가장 소수자의 자리인가를 가장 먼저 보고 기사화하는 <일다>의 관점을 지지한다. 이 선본 역시 여성주의적인 가치를 추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 후보가 나온 역사적 사건에 대해 (독자들과) 같이 의미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기득권자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정치는 더럽지만, 내가 시민권을 얻는 것, 내가 노동자로서 어떤 임금을 받을지 결정하는 것 등 그 모든 것은 정치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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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다 2008/04/14 [11:10] 수정 | 삭제
  • 선거운동본부 측의 사진을 제공받은 것인데, 편집과정에서 사진설명만 들어가고 ©표기가 누락되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화숙님, 지적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 이화숙 2008/04/14 [02:16] 수정 | 삭제
  • 선본에서 사진자료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기사에 사용하신 사진이 모두 선본에서 찍은 사진인데, 출처를 밝히지 않으시다니 실망이네요. 혹여나 선본에 양해를 구하셨더라도 출처를 밝히는 것이 언론으로서 마땅히 취해야할 태도가 아닐까요. 살짝 마음이 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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