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의의와 과제

풀어야 할 숙제 많아, 장애운동 더 성숙해지길

김효진 | 기사입력 2008/04/14 [19:23]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의의와 과제

풀어야 할 숙제 많아, 장애운동 더 성숙해지길

김효진 | 입력 : 2008/04/14 [19:23]
<김효진님은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일다 편집위원입니다. –편집자주>

동정의 대상 아닌 ‘권리 가진 주체’로 인정한 법률
 
 © 장애인문화공간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시행되었다. 장차법은 2001년부터 장애인당사자의 염원을 담아 입법운동이 시작된 이래 7년여의 세월을 거쳐 이루어낸 장애 관련 최초의 인권법이다. 미국, 호주, 영국, 홍콩,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 20개국이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마련한 것을 보면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당사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인권법이라는 의미는 대단히 큰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시행되어 왔던 장애인 관련 법률은 장애인을 ‘보호’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규정하였을 뿐,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 법률 속에서 장애인들은 서비스와 프로그램의 대상으로 존재했으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근거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장차법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도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도 권리를 누리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 당연한 전제가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과 싸움이 있었다. 지난 7년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세월이기도 했다.
 
때문에 장애 문제가 장애를 가진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에 있다는 인권 관점으로 전환한 것은 장애인당사자에게는 커다란 사건이다.
 
장차법에서는 장애를 사유로 한 차별을 폭넓게 금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금지대상이 되는 차별행위를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제공을 거부하는 것, 광고를 통한 차별로 규정했다. 차별의 영역은 고용과 교육을 비롯해서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 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 성, 가족 가정 복지시설 및 건강권 등 여섯 가지 영역으로 규정하여 생활상의 다양한 영역에 걸친 차별을 금지토록 하였다.
 
또 차별의 예방, 조사, 시정조치 및 장애인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두도록 했고, 법무부장관이 시정명령을 하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과태료를 규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장애여성의 경험, 장애유형별 차이를 드러내다
 
▲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 장애여성을 위한 별도의 조항을 요구하는 보고대회 (2005 UN특별위원회)     © 윤정은
장차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은 비로소 이제까지 드러내지 못했던 우리들의 목소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장애 문제가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이 겪는 차별의 경험과 양상은 곧잘 개인의 무기력이나 의존적인 습성 탓으로 치부되곤 했다.

 
우리 자신조차도 지배적인 가치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져 있던 탓에 우리들의 목소리를 가다듬는 작업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은 성별, 유형별, 정도 별로 각기 차이를 지니고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장차법 제정운동의 과정에서 장애여성 활동가들의 약진은 특히 두드러졌다. 처음엔 장애여성과 관련한 별도의 조항이 명문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난색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장애여성들이 주장하는 차별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장차법이 통과되면 장애여성의 차별도 시정될 수 있을 터인데, 굳이 장애여성 조항을 명문화할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장애여성의 경험이 장애인의 경험으로 통칭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통계와 자료,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여성들은 스스로의 차별의 경험을 드러내는 과정을 건너뛰지 않았다. 다양한 차이를 지닌 장애여성들의 경험을 장애여성 관련 조항 속에 녹여내 명문화하고, 각 조항에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여성 집회가 있을 때면 “장애여성 관련 조항 원안대로 통과”를 주장하는 우리의 목소리만으로는 너무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외롭고 서글펐었다. 그래도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장애여성들이 주장했던 조항들은 거의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되는 성과를 얻었다. 장애계와 시민사회계의 암묵적인 지지가 많은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조금씩 성숙할 수 있었다.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법 개정 등 과제로 남아
 
그렇다면 이제 장차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장애여성들의 삶이 확 달라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까? 아쉽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 싶다.
 
집단소송제도, 독립적 차별시정기구 설치, 시정명령 및 이행강제금, 입증책임의 전환, 징벌적 손해배상 등 차별금지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 항목들이 끝내 관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도모할 만큼의 차별시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
 
게다가 시행령에서는 시설주와 사업주의 반발을 우려해 적용범위가 최대한 축소되고, 유예기간이 연장되었으며, 기존 관련 법률 수준의 적용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이유로 장차법 입법운동은 끝난 것이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대상 사업장은 확대되어야 하며, 시설이나 이동, 교통수단에 있어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내용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와 맞물려 편의증진법과 이동편의증진법 등 관련 법률도 개정되어야 한다. 장애여성 관련 조항의 경우에도 다른 장애 관련 법률이나, 여성 관련 법률 개정과 맞물리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차별 구제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 형식으로 존재하게 되어있는 차별시정기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인권위법을 개정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이 남아 있다. 지적장애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막기 위한 조항을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과제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무엇보다 장차법을 실효성 있게 현실화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당사자가 개정을 요구하고 감시하지 않는다면, 장차법은 그저 선언적인 내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장애계 내에서도 소수자인 장애여성들의 경우,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참여에 그쳐선 안 되며,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의 권리를 우리 손으로 찾고야 말겠다는 장차법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것은 다른 어느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우리 당사자들의 몫이지만, 장차법의 시행으로 이제 우리 사회 전체가 한 차원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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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속의별 2008/04/15 [19:43] 수정 | 삭제
  • 솔직히 장차법이 시행될 날이 올 것 같아보이지가 않았었는데,
    한국에선 아직도 장애인 인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 수준인데,
    장애 단독 차별금지법 제정이 빠른 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에요.
    장차법이 시행된다고 하는데도, 법조항의 한계 때문이라기보다는
    과연 얼마나 지켜질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기우일까요.
    사회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우파정부가 들어선 것을 보면은
    얼마나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자꾸만 장애인권을 상기시키고, 이제부터가 출발이라고 마음 다잡고,
    더 나은 세상,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나아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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