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찾아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끊임없이 탐구하는 호야님

이희연 | 기사입력 2008/07/04 [13:51]

사회가 아닌, 내가 원하는 바를 찾아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끊임없이 탐구하는 호야님

이희연 | 입력 : 2008/07/04 [13:51]
이른 아침 장마비가 쏟아졌다. 일찍 집을 나선다고 했건만, 비가 와서인지 평상시보다 걸음이 더욱 조심스럽다. 비가 오면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는 것도 장애의 특성인지, 평소 잘 들고 다니던 가방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약속장소에 간 것은 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차가 막히네요. 1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눌 호야님이다.

 
▲ 호야님. 사진찍기 민망해하셔서 아쉬운 한 컷
“죄송해요. 워낙 약속시간 늦는 걸 안 좋아해서 일찍 나왔는데도, 비가 와서 그런지 차가 많고, 게다가 오늘은 주차장도 꽉 찼네요. 오늘은 늦는 날인가 봐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 차를 가지고 다니시는구나. 운전을 배울까 말까 고민하다 포기한 나로서는, 운전을 하는 장애여성들을 보면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운전은 17년 전부터 했어요. 아무래도 목발을 짚으니까, 운전을 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물론 주차문제로 늘 고민이긴 하지만, 일단 이동이 자유로우니까요. 희연씨도 생각해봐요.”
 
이런 이야기를 하며 조용한 장소로 찾아 나서는데, 함께 걷다 보니 그녀의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평등한 관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키 크다는 얘기 많이 들으셨죠?
“아, 제가 좀 큰 편이죠? 젊을 때는 예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웃음) 그래도 흔히 말하는 스캔들의 주인공은 안되더라구요. 장애가 있으니, 저를 바라보는 미의 기준이 다르게 느껴졌겠죠?”

 
큰 키에, 젊어 보이는 얼굴, 목발을 사용해도 상당히 바른 자세를 유지하시는 것 같아 슬쩍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요즘 주위에서 아주 많이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저 같은 경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장애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거든요. 혹시 그런 건 없으세요?
“아휴, 왜 없어요~ 저도 원래 목발 하나로 다녔는데 이젠 2개를 사용해야 하는 걸요. 좀더 있음 휠체어를 타야 하려나. 장애여성들 정말 건강관리 잘 해야 해요.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그 말처럼, 그녀는 참 바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다.
 
린 시절 그녀는 지금처럼 장애인을 거리에서 만날 수 없었던 때에, 중고등학교를 비장애인과 함께 다니면서 악착같이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부를 잘한다 해도 장애가 있다는 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때는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관계 맺음’에 무척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평등한 관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니까. 친구는 적어도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때는 친구가 도와준다는 것이 어느 순간 불편해질 때도 있었어요.”
 
이 말을 들으며 아주 많이 공감했다. 나 역시 여러 번 느껴본 것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더니 “많은 장애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걸요~” 라며 씩 웃는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평등한 관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제가 비장애인 사이에서는 도움을 받는 존재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게 꼭 장애/비장애 관계만은 아니잖아요? 많은 경험 덕분에 ‘경계인’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한 것 같고, 그게 저의 장점이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장애를 좀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호야님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조금 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배가 소개해 준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울림터’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장애인권 동아리인데 그때 참 많이 공부했던 것 같아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고, 뭐. 전공 공부는 안 했지만요. 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약대를 가라고 했어요. 약사가 되는 것이 장애여성들에게 제일 안정적인 직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약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건 아니다 하면서 의류직물 쪽을 택했는데, 막상 전공해보니 생각했던 거랑은 또 다르더라구요. 대학생활은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시간이 많았죠. (웃음) 지금도 그 활동에서 찾아낸 내 길을 가고 있으니, 맨 처음 ‘울림터’를 소개시켜준 선배한테는 아직도 감사할 따름이에요.”
 
졸업 후 그녀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일했고, 동시에 서울 DPI활동을 했으며 결혼도 했다. 그리고 지금 12살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는 말이 맞다. 지금도 상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모습에서 활기가 넘친다.
 
▲ 호야님은 중고등학교 인권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만나며,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공부는 건 재미있나요?
“아직은 머리 아픈 단계죠.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왜 하필 여성학일까? 그 동안 활동을 하면서 많은 장애여성들을 봐왔고, 또한 장애여성을 대상화하는 많은 연구들도 봐왔다고 한다. 또, 그녀 역시 장애여성이기에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장애여성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싶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십대여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이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제가 가끔 중고등학교 인권강의를 나가는데요. 그때마다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느껴요. 아이들이 장애를 좀더 많이 봐서 이해해야 될 것 같아요. 통합교육은 물론이고, 또 다른 매개체를 통해 이론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장애의 다양성을 알 수 있도록 직접 보고 듣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장애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역할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호야님은 장애여성에 대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할 땐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제가 ‘급식당번 폐지모임’을 했어요. 저는 바빠서 급식당번을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매스컴에서는 제가 가진 장애를 부각시키면서 이야기하죠. 이런 여성이 있으니까 급식당번제를 없애야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에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
 
경험에서 우러나서 말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며 깊이 빠져들었다.
 
“어릴 때는 그런 시선에 항상 묶여 있었죠. 예를 들어 집안일도 다른 일을 하느라 안 하는 건데, 주위에선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더 열심히 하기도 했어요. 일 때문에 안 하는 것과 장애 때문에 못하는 것의 차이는 참 큰데, 언제쯤이면 그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호야님은 사람들이 장애여성들에게 모순된 것을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때에는 (장애여성은) 여자가 아니었다가, 집안일을 시키고자 했을 때는 ‘너도 여자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못하면 또 차별하고 억압하고. 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뉘앙스가 다른 거 알죠? ‘대단하다’ 라든지 ‘밝다’ 라는 말이 상황에 따라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말이에요. 그런 말들을 언제쯤이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장애여성이라면 누구나 느껴본 적 있지 않을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타이틀을 붙이는 일은 우리 주위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타이틀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그녀 역시 주위에서 흔히 듣는 ‘장애여성은 이래야 돼~ 이렇게 살아야 해’ 라는 이야기들로 인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장애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역할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장애여성을 바라봐요.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잖아요. 잘하는 일도 다르고, 장애의 형태도 각자 다르고, 장애가 있어도 환경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바라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정체성이 변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호야님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마 그녀는 다른 장애여성들을 위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 나오는 통에 피곤해서 목이 잠기는 사람을 2시간 동안 붙잡아 둔 것이 미안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못 듣고 헤어진 것이 무척 아쉬웠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녀가 건강하길 바래본다.
 
※이 기사는 신문발전위원회 2008년 소외계층 매체운영 지원사업의 보조를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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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或者 2008/07/07 [17:19] 수정 | 삭제
  • 삶의 활기가 느껴져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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