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잃고 건강까지… 팜 농장 여성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⑩

조보영 | 기사입력 2008/08/06 [21:36]

땅 잃고 건강까지… 팜 농장 여성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⑩

조보영 | 입력 : 2008/08/06 [21:36]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초국적 기업들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팜오일 플랜테이션. 이제 국제 NGO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넘어, 팜오일 플랜테이션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대항하는 행동을 전개하고 있다.
 
팜오일이 생산되는 현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팜오일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말에 전혀 걸맞지 않게 지역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인권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인도네시아 팜 플랜테이션 현장을 중심으로 2주간 조사를 마치고서, 현지 단체인 SAWIT WATCH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선 팜 농장 여성노동자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팜 농장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논의 중이었다. 인도네시아 팜 농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노동자들이 바쁜 일손을 제쳐두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것일까.
 
제초제와 화학비료로 인해 시력 잃어
 

▲팜 농장에서 일하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조'  ©에너지정치센터

“난 오래 전에 이혼을 했어요. 큰 아이가 18살이고 그 아이가 비록 일을 한다고 하지만, 네 명의 아이들 모두 나에게 의존하고 살아요. 그래서 난 아파서도 안 되고, 다쳐서 병원비가 들어도 안돼요. 그런데 이미 한쪽 눈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고, 등은 무거운 농약살포기를 견디지 못해 혹이 나기 시작했어요. 매일 나던 기침에 이제는 피까지 섞여 나오고 있구요. 이러다 정말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에요.”
 
‘조’라고 소개한 중년여성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한쪽 눈은 우리를 보지 못한 채 인터뷰를 하는 내내 허공을 보고 있었다. 팜 농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제초제와 같은 독성이 강한 농약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것이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매우 안타까웠던 것은, 그녀의 시력을 빼앗아간 팜 농장이 지금은 팜 기업의 땅이 되었지만 예전엔 그녀의 소유였다는 점이다. 조는 이제 땅을 잃어버리고, 팜 기업의 노동자로 고용돼 일하며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해 건강까지 잃었다.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할 때 최악의 상황으로 걱정했던 일이, 당장 현실의 문제로 코 앞에 닥쳤다.
 
조는 예전에는 논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의 땅을 팜 기업에 넘기도록 권고했다. 대신 기업은 그들에게 땅 크기만큼의 지분을 주기로 약속했다. 또한 일자리도 제공하겠다고 그럴싸한 제안을 했다.
 
그녀가 팜 기업에 땅을 뺏기고 농장에서 13년간 일하는 동안, 기업은 그녀에게 어떤 지분도 주지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농약과 제초제, 그리고 강한 화학비료 때문에 생긴 갖가지 병마뿐이다.
 
아이들 학비 댈 수 없어 가난의 악순환
 

▲ 팜 농장은 독성이 강한 제초제와 화학비료 등을 사용함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 환경정의 제공

"나는 이제 내가 농사를 짓던 땅에서, 이런 노역을 하는 노동자가 되었어요. 문제는 그 후 아이들을 교육시킬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두 아이의 학비가 3개월째 밀렸어요. 곧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거예요.”
 
SAWIT WATCH의 활동가 ‘치차’는 이런 비참한 상황이 비단 조에게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농약 등으로 인해 팜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보고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는 것.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팜 농장 노동자의 자녀들이 가난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이들까지 다시 팜 농장의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의 큰 아들은 15살이 될 무렵부터 그녀를 도와 팜 농장에서 일했다. 당시에는 떨어진 열매를 주워 모으는 일을 했으며, 18세가 된 지금은 그녀와 똑같이 농약을 치는 일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삶에 희망이 없다는 것
 
인도네시아의 5개의 큰 섬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수마트라의 북부에서 온 ‘리마’는 지역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기에 원주민 언어를 인도네시아어로, 다시 그것을 영어로 바꾸어 대화했다. 인도네시아에 다양한 부족이 있고, 그 수만큼 많은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난 집안일만 하던 가정주부였어요. 그런데 남편이 일하던 목재공장 주변이 모두 팜 농장으로 변해 버렸어요. 남편이 먼저 팜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전과 달리 남편이 벌어오는 것만으로 살림을 꾸려 갈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팜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리마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였다. 그녀가 하루에 받는 일당은 27,600RP, 한화로 약 3,100원에 해당하는 적은 돈이다. 거기에 농장까지 가는 교통비 4,000RP을 빼고, 일하면서 쓸 농약살포 기계나 장갑 등까지 자기 돈으로 사고 나면 정말 적은 돈이 남는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에, 남편과 17살이 된 아들은 그녀와 같은 돈을 받고 팜 농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모두 농약을 살포하거나 제초제를 뿌리고 잡초를 뽑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리마는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해 “아무 것도 없다”고 간략하게 대답했다. NGO 활동가인 치차가 거들었다.
 
“그녀는 이제 바라는 것이 없어요. 이미 더 이상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 이 모임에 오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그녀와 똑같이 말해요 더 이상 삶에 희망이 없다고요.”
 

▲  인도네시아 팜 플렌테이션은 밀림을 밀어내면서 대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 환경정의 제공


선진국, 자국의 CO2 감소만으로 행복한가

 
인터뷰를 마치고, 통역을 도와주었던 치차에게 “당신이 여성노동자들 담당이라고 들었는데 저분들에게 어떻게, 무얼 해주고 싶은가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이 치차를 울컥하게 했는지, 잠시 천장을 보며 눈물을 꾹 참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난 신이 아니에요. 뭐든 하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게 너무 속상해요. 난 그저 저분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지만, 그저 내가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고통이 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선진국이 자국의 CO2 감축량을 보면서 행복해 할 때, 다국적 기업이 자신들의 수출량을 늘려가며 행복해 할 때, 누군가는 하루 3달러를 받으며 살아가고,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고, 땅을 잃어버리고, 이젠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도 못하는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조보영님은 환경정의 초록사회국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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