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흔들어놓은 삶

느끼고 알고 표현하고 다가서는 사람, 이충열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8/08/18 [18:57]

촛불이 흔들어놓은 삶

느끼고 알고 표현하고 다가서는 사람, 이충열

조이여울 | 입력 : 2008/08/18 [18:57]
▲ 페인팅의 소재는 항상 고양이다.
“왜 고양이를 그려주는지 아니? 쥐 잡으라고.”

 
주말이면 낮부터 해질녘까지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이충열(32)씨. 미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페이스페인팅 대상은 대부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고, 그림의 소재는 항상 고양이다. 아이들에겐 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한다.
 
“건강이 중요할까, 돈이 중요할까? 하고 물으면 다들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죠. ‘그런데 그걸 모르는 할아버지가 있어. 위험한 쇠고기를 수입하잖아’ 하고 설명해요.”
 
5월 말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니, 80일이 되었다. 그런데 충열씨는 정작 처음엔 촛불집회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물 사유화나 의료민영화 문제가 더 크다고 봤거든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광우병이 무서워서 나온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참여해보지도 않고 비판하다니…. 직접 나와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하필 처음 나온 날, 물 대포를 맞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여성들과 작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물을 피하면서, 시민들의 연대의식을 함께 느끼면서, 그 동안의 무관심이 미안해졌다고 한다.
 
느끼는 것만으론 부족해
 
▲ 주말이면 낮부터 촛불집회가 열리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도 뭔가 해보자’는 학과 조교의 제안으로, 6월 초부터 시작한 페이스페인팅은 처음엔 시청광장에서, 다음엔 청계광장에서, 그리고 종각으로 장소를 옮겼다.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점점 설 자리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진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이 와중에도 작은 즐거움이라도 주려고 노력하는 충열씨이지만, 막막하고 절망스런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지난 80여일 간, 촛불은 그를 많이 흔들어놓고 변화시켰다.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겉으로만 사람을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만나면 피하고 싶어지는 모습의 ‘아저씨’들에 대한 혐오감도 상당히 사라졌다고 한다.
 
집 주변의 편의점보다 작은 가게를 이용하게 되고, 친구들이 스타벅스에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말하게 되고…. 또, 자신의 블로그에 촛불집회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촛불 참여하면서 매체를 못 믿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알리려고 블로그에 쓰게 된 거죠.”
 
더 큰 변화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나는 ‘느끼는 스타일’의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신문도 보게 되고, 책도 읽게 되고,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더 많은 걸 알아야겠구나 싶어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그는 이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전공과는 무관하게 힙합동아리 활동을 하며 춤만 추었다고 할 정도로, 몸짓과 느낌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미술을 시작한 지는 불과 5년 남짓한 시간이라서 “시각적 표현”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촛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어떤 길로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디자인 쪽이 자신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거든요. 요즘은 내가 미술활동가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을 하려면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표현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더 접근할 겨를이 없거든요. 어쩌면 선배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안다고 하면서도 모르는 게 가족 아닐까
 
이충열씨의 일상은 어떠할까. 그는 스무 살 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졸업 후 다시, 예술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2004년엔 기숙사생활을 했고, 지금은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아, 그리고 동거하는 존재가 또 있다. 다섯 마리의 강아지다. 두 마리는 지인을 통해 키우게 되었지만, 세 마리는 집 주위를 돌아다니던 유기견들이다. “재작년에 한달 째 돌아다니는 개를 봤어요. 먹을 걸 줘도 가까이 오지 않고, 불쌍했죠. 근데 태풍이 온다고 하는 거예요. 구해줘야겠다 싶어서 데려왔어요.” 

▲ 페이스페인팅을 하러 나간 첫 날 셀프사진

이후에 집 앞에 또 다른 한 마리가 눈에 띠였고, 올해 3월에도 개 한 마리가 충열씨를 따라왔다. 유기견 세 마리는 화장실을 못 가리지만, 버려진 상처가 큰 아이들이라 혼을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졸업하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으니, 마당이 있는 집을 얻어 풀어놓고 키울 계획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이 다섯 아이들을 씻기고 미용해주느라 시간이 다 간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너 결혼은 안 하니?”라고 물어보셨다는데, 충열씨는 “좋아하는 동안 같이 살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단다. 결혼을 통해 가족을 만들 생각은 별로 없지만, 그는 지금의 가족들과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언니들과 오빠에게 비폭력대화 모임을 제안했어요. 우리가 서로 모르지 않냐고, 다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론 모르는 게 가족 아닐까, 진짜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3월부터 2주에 한번씩 만나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이야기해요. 두 달간 촛불집회 때문에 바빠져서 좀 쉬었지만, 다시 시작했어요. 연대감이 생기고 관계가 좋아졌죠.”
 
충열씨는 “장군 같은 엄마”와도 소통을 꿈꾼다. 대화의 방식을 모르고 누군가에게 받을 줄도 모르는 엄마에 대해서, 동시대를 살면서도 많이 멀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엄마와 소통하기 위해서 그가 택한 방식은 참으로 그답다.
 
“엄마랑 메일을 주고 받았더니 풍경사진과 시, 동영상만 보내시는 거예요. 정작 엄마의 글은 몇 줄 되지도 않고요. 저는 엄마가 보내주신 사진과 시를 다 모으고 있어요. 이것도 다 내게 주신 메시지인데, 많이 모으면 나중에 뭔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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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토 2008/08/22 [21:40] 수정 | 삭제
  • 가족들과 소통하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던데.. 참 세상 일이 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 사람의 노력이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릴 때, 작지만 큰 변화가 조용히 일어나는 기쁨이 시작되기도 하죠....
    장군같은 엄마하고도 좋은 대화 해나가시게 되길 빌어봅니다.. ㅋㅋ
  • .... 2008/08/19 [14:52] 수정 | 삭제
  • 마음에 듭니다. 차곡차곡 자신의 길 만들어가시길. 길게보고요.
  • moro 2008/08/19 [05:02] 수정 | 삭제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좌절금지"
    페이스페인팅,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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