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녹색성장” 이름만으론 안돼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⑬

이헌석 | 기사입력 2008/09/02 [01:00]

“저탄소 녹색성장” 이름만으론 안돼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⑬

이헌석 | 입력 : 2008/09/02 [01:00]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이헌석님은 청년환경센터 대표입니다. -편집자 주]



비용과 공급문제에서 환경과 형평성문제로
 

▲ 고압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송전탑 부근의 안전문제와 건강문제도 크다.  © 일다

이전에 에너지는 산업을 움직이는데 가장 필요한 동력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 식량, 주택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공급되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중의 하나이며, 난방과 취사, 전기사용 부분만 아니라 교통, 농수산업, 생활필수품 공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에너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2004년 단전조치 이후 촛불화재로 숨진 여중생 사건을 통해 확산되었고, 2006년 에너지기본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에너지 문제는 아직도 경제적인 비용의 문제, 산업활동에 지장이 없는 안정적인 공급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에너지 문제 뒤에 숨어있는 환경의 문제, 지역적 형평성의 문제, 에너지원을 결정하기 위한 국민적 합의의 문제 등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서구 유럽에서 1980년대에 환경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핵 발전을 폐지하자는 사회적 논의와 국민투표가 진행되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우리 사회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은 갈 길이 멀다.
 
3개월간의 해프닝: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확정 발표돼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에너지기본법에 의해 5년마다 한 번씩 설정하는 계획으로, 향후 20년 동안의 국가에너지 계획이다. 그 동안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세우기 위한 논의는 몇 차례 있었지만, 대선과 내각개편 등으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올해 6월에야 계획수립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의 국가계획 발표와 달리,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논의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민간단체의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에너지문제에 대한 계획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정부는 6월초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는 지금까지 관련 논의를 진행해온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에서조차 이야기되지 않은 사안이었다. 위원회에서는 핵 발전 비중문제 등 예민한 사안들이 지적되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 없이 6개월 만에 공청회와 확정계획이 먼저 나온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6월초 공청회는 ‘공개토론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원래 절차대로 전문위원회 내부토론과 워크숍 등의 일정이 잡혔다. 하지만 시한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토론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게 되기 마련이다. 논의의 내용과 워크숍 일정을 놓고 시민단체와 정부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됐고, 결국 늦어도 8월까지는 논의를 마쳐야 한다는 정부의 일정에 맞춰 진행하게 되었다.
 
워크숍과 공청회가 이어졌지만,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주요 쟁점이 되는 사안들은 서로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전력부문을 넘는 포괄적인 에너지 검토의 필요성, 에너지 수요증가의 타당성, 핵 발전비중, 재생에너지 비중증가와 그 효용성 등 많은 사안들이 간과된 채, 정부의 계획이 거의 그대로 확정 발표됐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는 약3개월 동안의 해프닝으로 마감되고 말았다.
 
에너지 97% 수입국이면서도 에너지효율은 떨어져
 

▲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9위에 달한다. 사진은 석유산유국 이라크의 한 주유소. ©일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분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나라다. 반도이지만, 북쪽이 남북문제로 막혀 있어 전력이나 가스가 육로로 공급되지 못하는 나라다.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에너지 소비량은 2007년 기준으로 세계 9위(234.0MTOE, 2.1%)를 차지한다. 세계 10위인 영국(215MTOE)보다 많은 양이다.
 
아프리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344.4MTOE(3.1%)이고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중동지역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574.1MTOE(5.2%)라는 점을 생각할 때, 단일국가로서는 상당히 많은 양을 소비한다. 따라서 에너지 수입량도 매우 많아서, 2007년 기준 석유 수입 세계 4위, 석탄수입 세계 2위, 천연가스 수입 세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소비량이 이렇게 많은 것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석유의존적인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많은 양의 석유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2008년 상반기 수출품목 중 1위가 석유제품(183억 4800만 달러, 전체 수출의 8.6%)을 차지한다. 석유의 경우 전체 소비의 1/3이 나프타 등 산업용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한국이 석유 없이는 살수 없는 근거 중 하나다.
 
이러한 현실이 그 동안 나온 고유가 대책, 에너지절약대책이 큰 실효성 없이 끝나버린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 국가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이 2000년대 에너지위기의 시대에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걸림돌은 에너지 효율 문제다.
 
에너지효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에너지원단위(1단위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의 경우, 우리나라는 0.22로 OECD 평균 0.18보다 높으며, 영국(0.13), 일본(0.15), 독일(0.16)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 높다. 에너지원단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지만, 효율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국가적으로 에너지 가격을 저가격에 공급해왔으며, 이에 따라 에너지효율성을 향상시키는데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유파동이 있을 때마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향상을 외쳤지만, 정작 달라진 것은 없이 20년 이상을 지내왔다.
 
에너지 수요 증가, 세계 최대규모로 늘어나는 핵발전소
 

▲ 원자력은 TV CF등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로 적극 홍보되고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친환경)편 <출처: 한국수력원자력(주) 홈페이지>

에너지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량 예측치는 2030년 300.417천TOE로 2006년에 비해 28.7%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에서 GDP 증가에 따라 에너지 소비증가율이 감소하고, 고유가와 재생에너지 열풍으로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예측치는 너무나 많은 수치일뿐더러 향후를 대비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에너지 소비증가율을 감소시키는 것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에너지체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은 내수 목적이 아니라, 수출을 위한 산업이다. 다수의 선진국들이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꾸면서 에너지 효율과 소비량을 개선하고 고유가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엽적인 문제로만 에너지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에너지 수요와 관련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대대적인 핵 발전 증설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전력 중 40%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핵 발전의 비중을 60%까지 늘리며, 이를 위해 설비비중을 26%에서 41%까지 증가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운영, 건설, 계획 중인 28기의 핵발전소 이외에 10여기를 더 짓겠다는 선언으로, 결국 우리나라는 2030년 40여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세계 최대의 핵발전 밀집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 밀집도는 사고의 위험성과 국가의 핵발전 친밀도를 생각할 때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현재 1위의 밀집도를 갖고 있는 벨기에나 3위의 밀집도를 갖고 있는 대만은 모두 경상도만한 면적에 각각 7기와 6기의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경상북도와 부산, 울산 등 이들 국가와 거의 비슷한 면적에 울진, 월성, 고리 등 모두 1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국가 전체면적으로 계산했을 때는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2030년이 되면 2위와 상당한 차이를 두는 1위가 될 것이다. (현재 계획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2016년 이 지역에는 모두 22기가 가동될 것이다.)
 
핵발전은 사고 위험성과 파급력 이외에도 온배수 문제, 대규모 송전탑 문제, 핵발전단지 건설로 인한 지역공동체 해체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발전이다. 핵발전이 온실가스 문제 해결에는 일조할 수 있다 할지라도, 더 큰 문제를 낳는 핵발전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으로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번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논의에서 핵발전을 둘러싼 논의는 합의되지 못했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당장 10기를 더 짓기 위한 부지확보 문제와 이로 인해 발생할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대한 부분조차 검토되지 않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21세기 한국의 에너지계획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신재생에너지도 다 좋은 건 아냐’ 11% 공약의 허점
 

▲ 부안주민들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에너지자립 마을만들기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 일다

기후변화와 저탄소를 둘러싼 논쟁 역시 재생에너지 비중 문제를 둘러싸고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내세운 “저탄소”와 “녹색성장”이 ‘개발주의’와 ‘성장주의’의 다른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펀드가 국내에도 도입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금융기관들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를 활성화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가 국제적인 화두가 된 지금, 이를 바탕으로 ‘장사’와 ‘개발’을 하기 위한 계획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천시와 중부발전 등이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강화조력발전소와, 한국해양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이 R&D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인천만 조력발전소다.
 
각각 여의도 면적의 10배와 15배 면적의 조지(潮地: 방조제로 만들어지는 땅)를 만드는 대규모 조력발전은 국제적으로 사상 최초이며, 연안습지를 파괴하는 토목공사로 인해 많은 환경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 발전소가 건설된다면 에너지원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더 큰 환경파괴를 낳게 되는 ‘반환경적 재생에너지’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데 현재 ‘저탄소 녹색성장’ 담론에는 이러한 종합적인 판단과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미 인천시가 기후변화 대책과 온실가스 거래에서 탄소 CREDIT을 판매하기 위해 조력발전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것이나, 섬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연육교 건설계획과 조력발전소 건설계획이 맞물려있다는 점들을 생각하면, 외형상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지만 환경파괴가 더욱 심해지는 토목공사들이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현재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밝히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공약에는 이러한 허점이 숨어 있다. 화석연료의 대표적인 물질인 석탄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청정석탄발전 기술, 화석연료나 핵발전으로부터 수소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 수소전지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점들은 그간 우리가 ‘신재생에너지’라는 이름이면 모두 ‘친환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늘리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져야 하며, 어떠한 에너지원을 개발하여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할 것인지 함께 논의하자
 
에너지문제는 매우 기술적인 문제에 국한되어 왔다. 기술적 전문성이 없으면 논의조차 어렵고 논의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에너지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과거의 습성을 적극적으로 깨야 할 때다. 기술개발과 운영 등은 과학자나 기술자의 몫이지만, 어떠한 에너지원을 선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그들만의 몫이 아니다.
 
에너지는 이미 우리의 기본권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단지 법령에 언급된 기본권은 그 자체로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에너지 주권을 찾는 과정도 사람들의 노력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녹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진짜 녹색인 시절은 끝났다. ‘녹색’, ‘친환경’, ‘저탄소’,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말이 붙어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에너지 문제를 더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녹색의 탈을 쓴 ‘가짜 녹색’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함께 알려주고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5년 뒤 다시 수립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확정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하위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들은 올해 확정 발표될 것이다. 하위계획과 다음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어떠한 결정이 내려질 지는, 우리사회가 에너지문제에 대해 어떠한 판단과 논의를 해나가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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