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납’이 아니라 인신매매다

[시론] 故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9/03/18 [05:06]

‘성상납’이 아니라 인신매매다

[시론] 故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조이여울 | 입력 : 2009/03/18 [05:06]
가끔씩 한국사회가 정말 민주주의 사회이고, 여성운동의 발전과 함께 여성의 권리가 빠르게 신장된 사회가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故 장자연씨의 죽음에 얽힌 사건들도 이러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왜 아직도 대한민국의 ‘어떤 여성’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인 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채 살아가고, 죽음으로써야 그 사실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일까요. 장자연씨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성적 착취구조, 대상이 아닌 ‘고리’를 끊으려면
 
소속사 대표로부터 술자리에 나가고 접대를 하도록 강요를 받았고 폭행을 당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문건이 장자연씨 자필로 확인되었습니다.
 
연예인을 사이에 두고 매니지먼트사와 일명 ‘리스트’에 해당하는 거물급 인사들 간의 거래관계에 대해, 흔히 ‘성상납’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용어는 현실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공정한 계약관계 속에 묶여있는 연예인들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성상납’이 아니라 성적 착취이며 ‘인신매매’라는 용어가 더 적절합니다.
 
이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적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 일쑤입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상납’이라는 개념과 심지어 ‘공생관계’라는 인식 속에서, 연예인들의 지위와 이미지는 더욱 하락하게 되고 그만큼 성적인 폭력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이 ‘연예계의 더러운 뒷사정’ 정도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해자 혹은 가해집단이 피해자의 생존권을 쥐고 있을 경우, 인권침해를 당하는 당사자들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됩니다.
 
일례로, 지난 해 KBS가 충격적인 ‘스포츠 성폭력의 실태’를 보도함으로써,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선뜻 피해를 고발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가해자가 학생의 목줄을 쥐고 있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집단이 학생의 장래를 좌지우지할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는 연예인들은 사회의 모욕적인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스스로 검은 고리를 증언하고 끊어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의 인신매매 성격과 성매매의 구조를 명확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 비리 척결하듯 정부가 조치 마련해야
 
우리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더 이상 동종업계의 ‘관행’이라고 이야기되지 않는 사회를 바랍니다.
 
유력 인사들의 ‘리스트’가 거론되면서, 한 켠에선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깊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경찰과 검찰, 정부에 대한 신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직접 쓴 문서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장씨가 문건을 쓰게 된 이유와는 별도로 연예 매니지먼트를 둘러싼 잔혹한 범죄에 대해 경찰은 수사를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불공정 계약에 따른 인신매매의 구조, 성적인 착취와 매수의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그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 매니지먼트 사와 방송과 언론, 대기업에 얽힌 고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법과 제도로 엄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그칠 문제도 아닙니다. 방송시장에서 연예인, 그것도 신인여자연예인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약자의 입장을 배려한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해 보입니다. 공무원 비리를 척결하듯 국가가 나서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처벌과 단속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는 바로 예방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공정하지 않은 계약관계는 그 자체로 연예인에 대해, 특히 여성연예인에 대해 인권침해를 가져옵니다. 절대로 시장에 맡겨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인-노예로 비유되는 연예인과 소속사와의 현 권력관계를 합법적인 중개사와의 관계나 일반 회사의 노무관계 수준으로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공정하지 않은 거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성적인 착취가 공생관계로 미화되지 않는 사회, 수사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이제 고인이 된 장자연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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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 2009/04/02 [08:58] 수정 | 삭제
  •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경찰이 못하면 특검을 해야 합니다.
  • 라벤더 2009/03/21 [16:56] 수정 | 삭제
  • 한국이 정말 이정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민주화된 사회인지..결국은 너무나도 흔히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기혼남들의 성적 문란과 성매매의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없는 놈들은 사창가에서 좀 있는 놈들은 룸싸롱에서 더 있는 놈들은 연예인들과..
  • 박민주 2009/03/20 [15:50] 수정 | 삭제
  • 왜 꿈 많은, 아직은 어린 여성이 세상을 등져야 했을까요?
    자신의 삶과 맞바꾸면서까지 이 더러운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살아서 같이 싸웠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이젠 더이상 이런 성적인 착취를 강요하는 인간 쓰레기들은
    지구 상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합니다!!!!!!!!!!!!!!!!
  • 김민정 2009/03/20 [10:33] 수정 | 삭제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두손모음_()_
  • 김영호 2009/03/19 [10:18] 수정 | 삭제
  • 같은 소속사에 있었던 연예인들이 자살한 경우가 많았다는건 뭔가가 있다는얘기일것입니다 그리고 소속사 대표는 성추행전과가 있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정말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되는 문제입니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려는 정부와 검찰의 의지가 분명해야합니다
  • 애도 2009/03/18 [06:19] 수정 | 삭제
  • 연예계-재계의 검은 유착고리에 의해 고통받다가, 매니지먼트사 분쟁의 희생양이 된 장자연씨가 너무 불쌍하고 가엾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한 곳으로.....
  • 안귀재 2009/03/18 [06:16] 수정 | 삭제
  • 이 일로 인하여 참 젊은아가씨가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연예인의 죽음은 모방자살등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켜 죽어서는 안되겠지만
    얼마나 힘이들고 괴로우면 죽음을 선택했겠습니까 ? 소속사대표 김모씨 예전에도 전력이 있고 현재 수배중이면서 사과는 못할망정 조작극이네 모네 지랄을 하는데 ...잘된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있도록 반드시 진실은 드러나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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