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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블랙 스완>은 뉴욕발레단원인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이 ‘백조의 호수’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게 되어 공연을 하기까지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몸을 지속적으로 단련시키고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점이, 장애가 있는 내 몸과는 거리가 있기에 개인적으로 감정이입할만한 요소는 딱히 없었다. 게다가 전형적인 스토리와 이분법적인 형식으로 별로 긴장할 요소도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끝날 때까지 몰입하여 긴장을 놓지 못한 채 보았다. 경쟁의 주요한 자원, 섹슈얼리티
권력을 가진 단장인 토마스가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이용하고, 여성들 또한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 섹슈얼리티를 이용하기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예술적 목적을 위한 것인 듯, 남녀간의 사랑인 듯 모호하게 드러난다. 백조처럼 순수한 니나가 백조와 흑조의 1인 2역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상황에 대해 영화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로서 명분을 주고 있다. 현실에서도 흑조로 재현되는 섹슈얼리티의 획득은 권력, 성공으로 이르는 주요한 수단이다. 어떤 분야에 있어서의 능력과 더불어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자원이 되는 이러한 경쟁사회에서의 분위기는 장애여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비장애인들과 경쟁할 만큼 스펙을 쌓기도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능력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섹슈얼리티 측면에서 배제되면 권력의 중심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섹슈얼리티가 강조되는 분야에서 는 더욱 그렇다. 물리적인 환경 개선이나 개인의 업무적인 능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만으로는 장애여성이 살아남기에 충분치 못한 현실인 것이다. 백조로 길러진 딸들
이 부분에서 나의 경험과 비슷한 면을 느꼈는데, 장애여성들도 엄마에 의해 역시 보호라는 이름으로 유사하게 백조처럼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모를 여성스럽지 않게 꾸미도록 한다거나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니나의 엄마처럼 딸의 발레리나로서의 성공에 대한 기대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장애여성인 딸이 그저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인공이 자유분방한 흑조를 연기하기 위해 성적인 쾌락을 알려고 시도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동안 무성(無性)적으로 학습된 자신을 변화시키는 쉽지 않다. 그녀가 인형들을 버리고 오르골을 부스고 엄마를 다치게 하는 행위에서 이전의 자신을 부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성적쾌락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자아를 급격히 쌓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학대하고 분열시키는 극단을 경험한다. 그러나 사실상 백조와 흑조는 명백히 이분화 되기 어렵다. 설령 그런 범주를 적용해 한 개인에게 그런 두 속성들이 포함되어 있어도, 누구나 니나처럼 분열을 일으키고 파괴적이 되어가지는 않는다. 아마도 니나는 오랜 세월 동안의 자신의 특성을 단시간에 바꿔야 했고, 그 변화여부가 일생일대의 중요한 상황과 맞물리게 되면서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리라. 백조와 흑조 사이의 갈등, 혼란
일방적으로 일정한 방식으로 길러지다가, 어느새 그 방식이 인정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되면 혼란스러워지고 갈등이 표출되기 쉽다. 이러한 갈등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잘 풀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넓은 혜안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섹슈얼리티 측면에 집착하게 되거나 너무 의식적으로 무시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계속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니나처럼 백조에서 흑조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던 스무살 즈음의 나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세상은 장애여성인 나를 어느 때는 흑조로 어느 때는 백조로 극단적으로 대우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가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날들이 오랜만에 다시 떠올랐다. 배에 피가 철철 흐르면서도 자신의 완벽함에 행복해하는 마지막 장면이 섬뜩하다. 그런데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장애여성인 나는, 고통이 따른다해도 저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괜찮다! 가끔이니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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