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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자야. 프리랜서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든 지 15년. 함부로 대해 온 몸, 마음, 영혼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요가와 명상을 시작한 지 10년. 명함에 글 쓰고 요가 하는 자야, 라고 써넣 은 지 6년. 도시를 떠나 시골을 떠돌기 시작한 2년 만에 맞춤한 집을 만나 발 딛고 산 지 또한 2년... 그렇게 쌓이고 다져진 오래된 삶 위로, 계속해서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는 ‘지금 여기’의 삶을, 일다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귀촌, 그 헛된 작심
그때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도대체 왜? 시골에 갈 데는 있고? 거기 가면 뭐 먹고 살 건데? 하지만 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연고도 대안도 없이 무작정 시골에 가겠다는 내 작심의 이유를, 사실은 나도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관계자가 차를 몰고 와 내 짐들을 실어 나를 때는 잠시 긴장하기도 했다. "저기요, 죄송한데 그냥 가시면 안 될까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 나올까 봐 입 단속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내 짐을 잔뜩 실은 차는 무사히 떠났고, 내 곁엔 부모님 집에 맡길 작은 가방 몇 개만 달랑 남았다. 누굴 줄 수도, 재활용가게 넘길 수도 없을 만큼 허접하고 사소한 것들. 내가 살아온 흔적이 너무 짙게 묻어 있어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것들. 따지고 보면 도시든 시골이든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다 주거나 버리고, 정작 쓸 데 없는 물건만 남겨둔 셈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처럼 ‘가벼운’ 상태로 인도에 갔고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 기쁨보다는 당장 머물 데가 부모님 집밖에 없다는 현실이 부담스러웠다. 미쳤지, 내가. 명륜동 전세 집을 남겨놨어야 했는데. 물건은 또 왜 전부 처분한 거야. 하여간 대책 없는 인간이라니까. 이런 생각들로 복잡한 내 머리 속에서 시골에서 살리라는 작심 따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님 집에 머무는 3개월 동안 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줄기차게 고민했지만, 시골로 내려가는 방안은 그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로 가자니 그것도 싫었다. 결국 나는 적당한 체념과 스스로에 대한 위무가 뒤섞인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인도 행 비행기에 오르고 만다. 2005년 10월의 일이다. 그 후 또 1년이 지나 이젠 정말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 됐을 때, 나는 아차산 아래에 자리한 보증금 낀 월세 집을 구했다. 위치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그 동네는 산동네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그 아우라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가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전철역에서 20분이 넘게 걸어야 하는 오르막길,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집들, 거기서 풍기는 결코 향기롭다고는 할 수 없는 생활의 냄새.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보는 별빛이 유난히 선명하고 달빛은 마냥 고왔기에, 다른 것들은 용서가 됐다. 게다가 신발만 꿰차고 나가면 옆구리에 바싹 산이 다가서는데 뭘 더 바랄 것인가. 1년을 채 못 살았지만 나는 그 집을 나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타고 금산으로 내려가던 날, 흩뿌리는 빗물보다 조금 짠 눈물을 찔끔 흘렸는지도. 간신히 먹고는 살아도 가슴은 안 뛰더라
그래서 나중엔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직(前職)의 경험과 인맥을 살려 출판 관련 아르바이트에 손을 댔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내 주머니는 여전히 가볍고 마음은 헛헛했으며 몸은 고됐다. 무엇보다도 요가와 책 만드는 일, 이 두 가지야말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무척 사랑하는 일임에도 그것이 재미있거나 신나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진 나는 극도로 피곤함을 느끼며 모든 일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백수들이 왜 산을 찾게 되는가를 뼛속 깊이 이해하며(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또한 매일같이 아차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잡다한 생각들은 비워지는 대신 하나의 물음이 따라붙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데도 나는 왜 즐겁고 가슴이 뛰고 행복하지 않을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선을 돌려 가난한 집들을 잇는 좁은 길을 내려다볼 때마다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던 그 물음과 동행하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아차산을 오르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중에 나는 인도에 가기 전에 꿈꾸고 그려오던 어떤 것을 기억해 냈다. 그건 바로 시골로 가는 것, 즉 귀촌(歸村)이었다. 하지만 처음 그것을 꿈꿀 때와는 다른 게 있었다. 더 이상은 작심의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실 마음을 짓는다(作心)는 건, 강해 보이는 한편 얼마나 허약한가. 저 혼자 짓다가 풀다가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는, 한마디로 찧고 까부는 장난을 치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본래 속성이 아니던가. 그날, 아차산을 내려오는 내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는 귀촌을 위해 내가 굳이 마음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믿음, 그리고 때가 되어 떠올랐으니 그것이 이제 내 삶을 이끌어 가리라는 낙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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