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힘든 삶을 바꿔줄 수 있다

<꽃을 던지고 싶다> 22. 전생의 업

너울 | 기사입력 2012/11/12 [03:40]

내가 너의 힘든 삶을 바꿔줄 수 있다

<꽃을 던지고 싶다> 22. 전생의 업

너울 | 입력 : 2012/11/12 [03:40]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3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산다는 것이, 평범하게 산다는 것조차 나에게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사상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세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준 그 날의 기억을 여전히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나의 운명을 선명하게 바꾸어 놓은 그 날의 기억.
 
우울한 날이면 인사동에서 고시원이 있는 대학로까지 걸어가는 길을 나는 좋아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사랑과 수없이 오고 갔던 그 길을 걸으며 어쩌면 잃어버린 날을 추억했는지도 모른다.
 
학원장의 부인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동에 들렸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운 고시원 방으로 들어가기엔 견딜 수 없이 슬픈 감정이 몰려 왔고, 짙게 나를 짓누르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었다. 미술관이라도 들러서 전시회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사동은 밤보다 낮이 더 화려하고 번잡하다. 그런 생기 있는 낮이 나는 좋았다.
 
▲ “남자 때문에 많이 힘들게 살았겠다. 남자가 많다. 가엾게도 힘들었겠다. 힘든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일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회 포스터들을 살피고 있었다.

 
“남자 때문에 많이 힘들게 살았겠다. 남자가 많다. 가엾게도 힘들었겠다. 힘든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목소리는 무심하게 포스터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 나에게 더 나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전생에 기생이어서, 남자들을 많이 힘들게 해서 아가씨가 지금 힘든 거야. 아가씨에게 한을 품고 죽은 남자들이 너무 많아. 그 한을 풀어줘야 해. 주변에 남자 많지? 다 전생에 쌓은 업 때문이야.”
 
나는 포스터에 응시했던 시선을 거두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풍채가 있고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가진 승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옷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또한 설명되지 않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삶의 사건들의 원인을 찾은 듯했다. 그것 말고는 저주받은 듯한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가씨가 그래도 착하게 살아서 나를 만나게 된 것도 부처님의 은공이고, 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도 부처님의 뜻이니, 내가 아가씨의 운명을 바꾸어줄게. 제사를 지내야 해.”
“제사를 지내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가 마침 제사를 지내려고 했어, 아가씨를 위해 한번 더 지내면 되겠어. 제사 지내러 가지.”
“신세지고 싶지 않은데요.”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아.”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저주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게만 해 준다면 나는 목숨도 바칠 수 있었다. 아니, 드디어 내 저주스런 삶을 벗어나게 해줄 은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하리라. 설령 나에게 죽으라고 한다면 그것도 나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듯했다.
 
그 사람이 간 곳은 인사동에 위치한 한 여관 앞이었다.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며 종업원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방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스님은 나에게 한을 품은 원귀가 많다며 자신에게 몸 보시를 하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래, 이렇게 해서 삶이 바뀐다면 나는 못할 것이 없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또 한번의 강간을 당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절망으로 돌아섰다. 아주 조그마한 기대. 솔직히 먼지 정도 크기의 기대밖에 없었지만 결국은 이 스님이 원하는 것도 내 몸뚱아리였을 뿐이다.
 
스님이 방을 나가고 나서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눈물이 났다. 내 자신이 싫었지만 정말 스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런 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취약해진 내 상태도, 나 자신도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남자가 스님일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포기가 되었다. 내 몸에서 더러운 벌레가 기어가는 듯했다. 무엇 때문일까? 왜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내 몸을 원하는 것일까? 나는 예쁘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전생이 기생이어서, 창녀가 될 운명이라서 그런 걸까?
 
더럽게 느껴지는 몸을 씻어내고 옷을 입고 나오려는 순간, 그 남자가 놓고 간 15만원이라는 돈이 눈에 들어왔다. 창녀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창녀가 되었다. 창녀가 되는 일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찾아왔다. 그 남자가 놓고 간 15만원이라는 돈이 지금도 너무 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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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ya 2012/11/20 [15:42] 수정 | 삭제
  • 너울님 힘내시고요~~
    일단 그 개싱키를 비롯한 너울님을 힘들게한 또라이 멍멍이 들에게 접어서 날려던져버리고 싶다고 산산조각이 나게 맘이 타고 아파 잘못했구나 참회의 눈물을 한바께스 흘리며 너울님께 진심으로 맘으로라도 용서를 구할 기회가 꼭 생기기를 바랍니다.
    너울님 행복하세요~~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마음의 감옥에서 스스로 풀려 나시지 않으면
    자꾸 저런 멍멍이들이 껴들지도 몰라요!!
    화이팅
  • 2012/11/16 [00:05] 수정 | 삭제
  • 너울님. 참 힘든 경험을 너무 많이 하셨네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남자에게는 경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난 ~게 되나보다라고 순간순간 포기하시는 때가 마음 아픕니다.
    이제는 어린 소녀가 아니시니까 성인여자로서의 힘이 있이 있다는것을 믿으시고
    확 경계를 만드셔서 이런 인간들의 짓거리를 용납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분명 힘이 생기셨을 거라고 믿어요.
  • 죄인들 2012/11/14 [23:35] 수정 | 삭제
  • 이 승복입은 남자를 포함해서 님에게 감히 악행이라 할수있는 죄를 범한 남자들은 도대체 어떤벌을 받게될런지..휴..가슴이 답답합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들에게는 엄중한 심판이 있을것이고 님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한가닥 빛을 보게되네요..포기하지마시고 힘내세요
  • 2012/11/13 [20:13] 수정 | 삭제
  • 설마 설마 하며 읽었는데....하지만 그런 말이라도 믿고 싶었다는 너울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너울님과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식으로 상처가 많은 사람이에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고 평화를 잃을 때가 많지요. 힘냅시다, 너울님. 되도록 즐거운 생각 많이 하고 예쁜 것 많이 보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착한 사람들 많이 만나면서 어떻게든 살아봐요, 우리. 다 주제넘은 말들일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가슴 아픈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 qhdckd 2012/11/13 [10:03] 수정 | 삭제
  • 계속힘들게 사시는것같네요``마음을 다잡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않으면, 누가 아껴줄까요~~마음이 무척 힘드신거같습니다.마음속의 종교를 가져보세요.봉사활동도 사는데 큰 의미를 줍니다. 과거를 떨쳐버리시고~`생각을 빨리 바꾸셨으면 합니다.세상엔 할일이 너무많아요.너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