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화’를 위해 시설에 갇힌 사람들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씨가 말하는 형제복지원 사건

윤정은 | 기사입력 2012/12/10 [07:59]

‘사회정화’를 위해 시설에 갇힌 사람들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 씨가 말하는 형제복지원 사건

윤정은 | 입력 : 2012/12/10 [07:59]
세상에 대해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이라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분노로 똘똘 뭉친 생각에 매달려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TV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주인공이 꼭 자기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는 꿈만 꾸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영화 주인공의 책망을 들은 다음 날, 그는 바로 여의도로 향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24시간 1인시위에 돌입했다.
 
‘당신들이 약자인 우리를 대신해 세상에 알려주지 않겠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알리겠다.’
 
연일 무더위로 축축 늘어졌던 올해 여름. 그에게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는 이 때를 기점으로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어둡고 긴 동굴 속에서 “짐승 같이” 살았던 날들과, 예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상한 일들로 가득한” 동굴 밖 세상.
 
국회 앞에 선 그날에 대해 그는 “이 일이 바로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 가는 과정 중, 내가 했던 최초의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복지원’이라는 이름의 생지옥에 끌려가다
 
▲ 한종선 씨는 한 달에 한번 아버지와 누나가 입원해있는 정신병원에 면회갔다 온다. 사진은 최근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면회를 간 장면.     © 윤정은
1984년 부산, 당시 아홉 살이었던 한종선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살던 집 근처 관할파출소에 들어갔다. 세 살 많은 누나와 함께였다. 파출소에 가기 전에 아버지는 종선과 누나에게 새 신발과 옷을 사주었다. 아버지는 파출소에서 “여기 있어라. 아버지가 찾으러 올게.”하고는 사라졌다. 조금 후 파출소 앞에 검은색 지프차가 왔고, 낯선 남자들이 두 아이를 차에 태웠다. 어디로 가는지 영문을 모른 두 아이는 “우리는 집에 갈 거”라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9살, 12살 종선 남매에게 감당하기 힘든 폭력이 시작됐다. 차 안에는 두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형제복지원이라는 곳이었다.
 
훗날 국가기록원은 형제복지원의 실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여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하였고,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 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원장 박인근은 매년 20억 원의 국고지원을 받는 한편, 원생들을 무상으로 노역시키고 부실한 식사를 제공하여 막대한 금액을 착복하였다.”
 
한 복지시설 안에서 사람을 때리고 고문해서 531명이나 사망한 사건을 국가기록원은 야속하게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3천500명을 수용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사회복지시설이었다. 또한 정부로부터 매년 20억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받았고, 박인근 원장은 종선이 끌려갔던 1984년에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을 받는다.
 
당시 아홉 살이던 종선과 열두 살이었던 누나는 어땠을까. 생지옥이라고 묘사되는 시설에, 아무 것도 모른 채 끌려갔던 두 아이.
 
복지원은 군대였다. 종선은 24소대인 남자 아동소대에, 누나는 23소대 여자 아동소대에 배정받았다. 그 후부터는 어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구타와 고문,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렸다.
 
12년간 531명이 죽어나간 사회복지시설
 
▲종선과 누나는 영문을 모른 채 복지원에 끌려갔다. 한종선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

어느 일요일, 독감에 심하게 걸려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던 종선은 조장으로부터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구타와 폭력을, 그리고 성폭력을 당한다.
 
종선의 누나는? 종선 씨는 “나는 그렇게 복지원 안에서 정신 없이 맞아가며 적응하는 동안, 우리 누나는 나와는 반대로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나 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종선 씨. 그에게 누나는 자신을 보호해준 어머니이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복지원으로 끌려오기 전, 누나는 어린 종선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한다. 학교에 갈 때도 동생을 업고 가 교실에 앉혀놓곤 했다. 공부도 잘했던 누나는 종선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고, 동생을 한시도 혼자 두지 않고 돌봐주었다.
 
그랬던 누나는 복지원에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벌 중에서 가장 심한 체벌을 받았다. 여자 소대원 누나들이 종선의 누나가 너무 안쓰러워서 쉬는 시간에 종선을 찾아와서 얘기해줬다고 한다. “옷을 다 벗기고 손을 묶은 후 나무 막대기에 비닐을 씌워” 여자의 성기를 사정없이 찌르고 빼는 고통스러운 체벌을 받았다고.
 
또 하루는 조장이 종선에게 “네 누나 따 먹혔다면서?”라고도 하고, 어느 날은 소대원 누나들이 와서 “네 누나 미친년 다 됐다”고도 했다.
 
한번씩 종선이 누나를 보기는 했다. 어쩌다가 멀리서 종선이 보이기라도 하면 누나는 종선을 향해 달려왔다. 곧바로 조장들이 누나를 사정없이 구타하는 장면. 그리고 얼마 후 누나는 복지원에 있는 정신병동에 감금됐다. 가끔 종선은 키 큰 소대원 형들의 도움을 받아 높은 창문에 매달려서 누나를 볼 수 있었다. “누나는 몸에 손이 묶인 채 항상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종선의 아버지. 종선과 누나는 복지시설 안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파출소에서 마지막 헤어질 때 “데리러 온다”고 했던 아버지. 언젠가는 자신들을 구출하러 올 것이라고 믿었던 아버지 또한 복지원에 끌려 들어왔고, 부자는 거기서 만난다. 그러나 아버지도 오래가지 못해 정신이 이상해져 헛소리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장은 지금도 복지법인, 기독신문, 대안학교 운영
 
높은 담장 안의 복지시설. 담장 밖 세상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12년 동안 높은 담장 안에 꽁꽁 숨어있던 이야기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87년이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에 따르면, 박인근 원장은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키던” 중 1명이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보를 받은 울산지청에서 사건을 수사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1987년 시설은 폐쇄됐고 박인근 원장은 대법원에서 2년 6월형을 받는다. 형제복지원에서 12년 동안 구타와 굶주림으로 513명이 살해됐고, 엄청난 액수의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는데 말이다.
 
최근의 근황을 알게 되면 더 충격적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에 따르면,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원의 이름을 바꾸어 “2011년까지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재단’의 이사를 지냈고, 지금은 아들이 법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더 놀랄만한 일은 “지금도 이 법인이 중증장애인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정부로부터 10억 원 가량의 지원을 받아왔다”는 것.
 
또 수익사업체로 레포츠센터, 상상해수온천, 피부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남 김해에 있는 사회복지법인을 인수하여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 법인은 “법무부로부터 비행청소년들을 위탁 교육하는 대안학교”인 신양중학교와 신양고등학교, 기숙시설인 샘터학교도 운영한다.
 
그러나 그가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2년 실로암 요양원 건물을 경북 안동에 신축하는 과정에서 장마에 옹벽이 무너져 내려 11명이 죽거나 다치는 큰 사고가 났지만, 그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또 그가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 올해 여름, 교사도 없이 학생들을 무인도로 끌고가 생태체험교육을 하다가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래군 씨에 따르면 “원장은 부산지역 기독교신문 <교회복음신문>의 대표이사직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 전두환’의 이름으로
 
▲ 동생을 보러 왔다가 모진 매질을 당했던 누나. 한종선 씨가 당시 상황을 재연한 그림. 

올해 37세가 된 한종선 씨. 그는 당시 형제복지원이 폐쇄되고 누나와 아버지는 어떻게 된지도 모른 채 소년의 집으로 옮겨졌다. 누나를 찾기 위해 27번이나 소년의 집에서 도망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어느 날 사회로 나왔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는 일하고도 노임을 떼어 먹히기 일쑤였고, 사회에 대한 원망만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노가다를 하다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아버지와 누나를 찾게 된다. 아버지는 울산에 있는 정신병원에, 누나는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 있었다.
 
아버지와 누나를 찾긴 했지만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답답한 나날을 보내다가 그는 문득 ‘나는 누구지?’, ‘나와 누나는 왜 복지원에 가게 됐을까?’, ‘어떻게 복지원에서 나올 수 있게 됐을까?’ 등의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당시 신문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1984년의 정황을 정리하게 됐다.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은 부산 시내의 거지나 노숙자, 부랑인들을 한곳에 잡아 가두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로 인해 당시 보건복지부와 부산시 그리고 부산의 각 경찰서가 이 복지원에 협조하고, 00복지원은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중략)

사람 수대로 예산을 측정해 정부는 그 복지원 원장에게 돈을 주었으니, 복지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어린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끌고 갔던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강간과 성폭행, 구타, 고문, 기합 등으로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인이 되고 불구자가 되었다. 사망하고 암매장되고, 사체로 팔려간 사건. 정부에서는 축소 은폐하였고, 어떤 방송매체에서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지 않는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형제복지원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당시 정부가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사회정화를 위해서라며, 1981년 ‘대통령 전두환’의 이름으로 국무총리에게 보낸 ‘지휘서신’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전 교수는 형제복지원을 수사했던 김용원 검사가 낸 책 <브레이크 없는 벤츠>의 글을 인용하며 “지휘서신이 있은 뒤부터 전국의 복지원 수용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신체장애자뿐 아니라 구걸행각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은 모두 잡아다 복지원에 수용했다. 구걸행각을 한 일이 없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마구 수용되었다”고 설명했다.
 
김용원 검사는 당시 (부산) 시장이 ‘복지원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사과하자, 전 대통령은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 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라고 대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나 고생했지? 이제 집에 가자”
 
대통령의 특별한 지시와 정부의 명령으로, 갑자기 한 가족의 삶은 회복하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졌다. 버려진 자신과 누나 그리고 아버지의 삶. 형제복지원에 함께 수감되어 있었던 수많은 피해자들. 한종선 씨는 이 모든 것을 알기 전에는 왜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됐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냥 어둠의 터널을 끝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세상에 알리지 않겠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알려야겠다”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선 것이다. 그 결심 후, 그는 갇혀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썼다. 기억나는 대로 그림도 그렸다. 지난 달 22일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현재 한종선 씨는 누나와 아버지를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며, 언젠가는 병원에서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와 같이 살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모진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누나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살고 싶은 꿈”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꿈을 설명하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누나와 아버지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살아왔는데, 함께 시골에서 동물들과 교감치료를 하면서 살고 싶다. 누나가 학교에 나를 업고 다니면서 나를 위해 모든 걸 다해줬는데, 나는 누나에게 무엇을 해주지? 언젠가는 ‘누나 고생 했지? 이제 집에 가자’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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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2013/02/06 [22:27] 수정 | 삭제
  • 정말로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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