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태, 어느 쪽이 ‘지역이기주의’인가

[논평] 부상자 속출하는 밀양, 송전탑 공사 중지해야

박희정 | 기사입력 2013/05/23 [17:52]

밀양 사태, 어느 쪽이 ‘지역이기주의’인가

[논평] 부상자 속출하는 밀양, 송전탑 공사 중지해야

박희정 | 입력 : 2013/05/23 [17:52]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20일부터 공권력을 동원해 밀양에 76만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면서 주민들과 대치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인데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고향마을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있어 공권력이 투입된 현장에서는 연일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밀양의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공권력이 투입되어 공사가 강행되면서 밀양의 주민들이 절벽 끝에 내몰린 듯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칠순 여성노인들이 웃옷을 벗고 공권력과 맞서고, 밧줄로 목을 매거나 분신을 시도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 여길 정도로, 주민들이 격앙되어 있는 것이다.
 
8년의 시간, 왜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을까
 
▲ 지난 20일부터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한전과 주민들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부상을 당하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밀양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결정된 이후 8년째 반대투쟁을 해오고 있다. 한전 측은 그 긴 시간 동안 대화의 노력이나 뚜렷한 보상책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결국 공사 중지와 강행만을 반복하며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키웠다. 그 결과 지난해 1월 지역주민 이치우씨가 분신을 해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치우씨의 분신 이후, 한전 측에서는 대화에 나서는 듯싶었지만 지난 18일 조환익 사장이 대국민 호소를 발표하며 공권력을 요청하고 공사 강행에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한전의 공사 강행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특히 ‘보상금 몇 푼 때문에’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76만5천 볼트 고압 송전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위해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 연구소’(IARC)는 송전선로 주변에 형성되는 극저주파 자계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또 3~4mG이상의 자계에 ‘수시로’ 노출되면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한국의 전자파 노출 안전 기준은 ‘단시간’에 노출되었을 때의 안전 기준인 국제비전리방사선 보호위원회(ICNIRP)의 권고기준 833mG을 채택하고 있다. 송전선로와 같이 장시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때의 기준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근거가 없다니…
 
밀양 주민들이 국가 기관에 의뢰하여 측정한 765kv 송전선로 직하의 전자파는 53.48mG로 측정되었다고 한다. 밀양 지역에 건설될 765kv 송전선로가 정상 운영된다면, 전자파가 최대 150~180mG정도 나타날 것으로 주민들은 예상한다.
 
한전 측은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전자파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은 전자파가 무해하다고 입증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 조사가 어렵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를 할 수 없어서 결과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전자파와 백혈병, 암과의 상관 관계를 밝히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자파가 무해하다고 단정 짓는 것이 더 위험한 판단이라고 보아야 합리적일 것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은 전자파에 대해 ‘사전예방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각각 2mG, 4mG, 10mG의 낮은 수치의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한편으로 한전은 지역 주민들이 땅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오래도록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농민들이다. 선산을 지키고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농민들에게, 땅이란 그저 돈 몇 푼으로 교환될 재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추억과 정이 어린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에 오랜 기간 ‘목숨을 건’ 싸움이 가능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된 ‘꼴불견’이라는 식으로 매도하였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주류 언론들은 한전 측 입장을 옹호하며 아예 사설을 통해 ‘공사 강행’을 외치기도 하였다. 공공성에 입각해 사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도록 주문해야 할 언론이 앞서서 갈등을 부추기는 꼴이니,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이다.
 
대기업에 전기료 3조원 감액, 환경불이익은 농민에게?
 
▲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공권력 투입이 시작된 다음 날(21일) 정부의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폭력적인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청하며 한국전력공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일다-여연
 
한전이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이유로 든 것은 ‘전력수급 위기’이다. 주민들은 이 ‘위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전은 올 겨울 블랙아웃을 대비하기 위해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가 완공되는 것은 그 이후이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은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고 주문하며, 한국 정부의 무조건적인 전력공급 확대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에너지 관리정책은 수요를 관리하는 쪽이 아니라 공급을 무한정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전력수요 확대의 주 원인은 산업용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이다. 2011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30개 그룹들의 전력사용량은 5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용 전기는 전력생산 원가 아래로 싸게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의 지난 5년간 전기요금 할인 금액은 3조8000억 원에 이른다.
 
또, 실제로 전력난으로 ‘위기 상황’까지 우려되는 시기는 1년에 몇 일 되지 않는다. 다른 날은 오히려 남아도는 전기가 문제가 된다.
 
이제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수요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에너지 관리 정책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적극적 수요관리 정책을 펼친 미국 캘리포니아는 가장 전력수요가 집중될 때의 10%, 전체 소비의 7%를 줄일 수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
 
송전탑 문제가 발생하는 또 다른 원인은 서울과 수도권의 ‘전기 자급률’이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전기 자급률은 0.3%에 불과하다. 핵발전소를 결코 수도권 가까이에 짓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전소가 있는 지역들은 이미 전기 자급률이 200~300%를 넘는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만을 핵발전소 건설지로 삼는 것은, 핵발전이 그만큼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발전소가 수도권과 먼 곳에 있지 않으면 전기를 실어 나르는 초고압 송전탑 문제가 발생할 이유도 없다.
 
핵발전소나, 송전탑 건설은 대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이다. 국가가 기업에게 싸게 전력을 공급해주어 전력 사용량을 늘려 놓고, 핵발전소 짓고 송전탑 세우는데 또 다시 대기업에 돈을 퍼주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 한편에서는 전기 사용량이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적은 시골마을 농민들의 삶 터와 권리가 속수무책 침해되고 있다.
 
과연, 누가 누구더러 ‘님비’(NIMBY, 지역이기주의)라 비난해야 할 상황인가.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정관주민 2013/06/03 [14:27] 수정 | 삭제
  • 기사 정말 잘보았습니다. 과연 원전, 765 송전탑을 서울에 짓고 세우자고 한다면 국회의원, 대통령 가만있을까요 위험한걸 아니 지방에 세우는겁니다. 수도권이랑 먼곳으로. 서울사람들, 타지역사람들 악플다는거보면 정말 기가찹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