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 아이를 데려오이소!”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화

김담 | 기사입력 2013/08/13 [10:51]

“먼저 그 아이를 데려오이소!”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9화

김담 | 입력 : 2013/08/13 [10:5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한 번 와본 집이지만 철이 바뀌어선가 눈에 설기만하다. 헛기침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기의 면모를 뜯어보는 여인네의 눈길을 얼버무리고 다시 무당은 묻는다.
-우째 식솔들이 다 출타하싰나? 조용합니데이?-


여인이 좀 전에 말했건만 건성으로 들은 무당은 여인의 눈을 보고 다시 묻자 여인이 입을 연다.
-예, 동서는 아아들 데리고 학교 갔고. 식구라고 해야 몇 식구 되도 않으이 뭐-
-오늘만 같으면 인제 솜바지 벗어도 되겠심더! 우찌나 날씨가 좋던지-


무당의 머릿속에는 화두를 어떻게 꺼낼까 궁리 중인데 여인이 묻는다.
-여 오신 것은 무신 말이라도 할끼 있으이 오싰을 테고. 마침 아무도 없으이 말해보이소-
세웠던 무릎을 내려 좌정을 하며 치마폭을 보듬어 다리 밑으로 들인다.


-그라입시더. 일이라 쿠는기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또 안될 성싶던 일도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릴 때가 안 있습니꺼? 쿤데 이 집이 오데 예삿집입니꺼? 내가 그래도 아지매 얘기 듣고 나서 한겨울 내내 마땅한 자리가 있나 싶어서 남도를 두어 번 휘젓고 댕깄지만 관상이 맞으면 집안에 손이 없는 처자고, 손 많은 집의 여식이면 얼굴이 박복하여 관상에 자손이 안보이고, 이것저것 괜찬타 싶으면 이미 헌 계집 된 것들이라 내놓을 수도 없는 소문만 잔뜩 달고 있으이. 이기 다 아지매 업이겠거니 하고 지도 고만 접을라 했심더! 쿤데 여 오기 바로 한 달 전에 딱 맞아떨어지는 아를 하나 보고 오는 길입니더-


그리고 무당은 허리춤에서 담배주머니를 꺼내 한 대 말아 침을 붙이며 뜸을 들인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쳐다만 본다.
-아는 올해 열여덜이고 삼천포 압니더. 난리통에 저거 아부지가 고만 행방불명이 됐다 쿠고. 아 어마이는 그래도 평이 좋게 났두구만 원체 딸린 입이 많다보이. 야가 맏인데 가 밑으로 너이나 더 있습디다. 아바이 없이 아아들 키우기가 오데 쉬운교? 여자 혼자서-


담배를 두어 모금 깊게 빨아 넘기며 무당은 흘깃눈으로 여인의 표정을 살피며 속짐작을 해볼 요량이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고 빤히 자기 얼굴을 보고 있는지라 도대체 표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여인이다.

까짓것 안 되면 막살 놓지 뭐 하는 생각을 다시해보며
-쿤데 아도 똑똑하고 근본도 있고 관상도 좋고 또 열여덜이면 아 놓기는 딱 좋은 나이인데-하며 또 타들어가는 담배를 입에 붙이자 듣고 있던 여인이 묻는다.
-얼매나 달라고 합디까?-
입만 달싹거리며 묻는 것이 정이라고는 좁쌀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기 영-
무당은 댓돌에 놓았던 다리하나를 올려 마루에 걸치며 어물거린다.
-말씀해보이소-
어정쩡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여인은 단호히 다그친다.
-그 집에서 대여섯 마지기라 카이 내도 기가 찹니더-


무당은 이 대목에서는 여인의 표정을 놓칠 수가 없는지라 말끝을 맺고는 빤히 보며 생각해 본다. 대여섯 마지기라 했으니 밀고 당길 틈을 조금은 주었고 지금의 여인의 행동으로 보아 여태 마땅한 씨받이를 구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 까짓 밑지는 장사나 헛다리품을 팔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대로 밀고 나가면 그래도 적지만 한마지기 논 값은 생기겠거니. 그기  오데 적은 돈이냐? 요새 같은 돈 마른 세상에 한마지기 논이라면 상답이 아니라 해도 적어도 팔만환은 받을 것인데. 생각은 하늘을 찌르고 당기는 것은 구미뿐이라 무당은 마른입을 침으로 적시며 여인의 다음 말을 기다리건만 여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 말 없이 그저 무당의 얼굴만 본다.


-보살님 하나 물어보이시더-
표정도 없이 조용하게 여인은 물었다.
_예, 뭡니껴?-
-가가 아를 낳아도 내 아가 됩니꺼? 아니면 그 아도 우리 영감하고 사주궁합을 봐야 됩니꺼?-

 

말을 들은 무당은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다.
-정혼을 하고 나서는 모든 집안의 운은 오직 두 사람한테서만 나오는 법. 오데 첩살이 궁합 보는 법 들었습니꺼? 누가 아를 나아도 다 영감씨앗이고 또 영감 자슥이면 다 아지매 자슥이 됩니더. 그라고 또 첩을 들이는 것도 아이고 그저 씨만 내리자꼬 하는 깁니더. 볼 거라곤 그저 애기를 잘 잉태할 건지 또 몸에 병이 없는지 그라고 집안에 내림병이라도 있는지 하는 것 뿐입니더. 거기사 내가 이미 다 알아보고 온기이니 아지매는 볼 것도 없슴니더-


난전에서 유기그릇이라도 팔듯 자신 있고 당당하게 일장연설을 마친 무당은 그래도 이 여인이 자신의 신통력을 믿고 있구나 하고 안심한다.


-닷 마지기라 켔지예?-
여인의 말을 들은 무당은 대여섯 마지기라고 했던 자신의 말에서 한마지기를 후려치는 여인의 흥정에 비로소 덫에 걸린 토끼를 옭아매기라도 하듯 정색을 하고 궁둥이를 당겨 앉으며
-삼신할매도 치성과 공덕에는 감동합니데이. 집안에 대를 잇고자하는 일에 아! 옛날에는 동네에 우물도 파주고 길지에 절도 지어 공양하기도 했는기 다 은덕을 두루 받자고 하는 거 아입니꺼? 그라이끼니 이왕지사 델꼬 올라쿠몬 아지매가 후한 소리 듣고 하는기 다 집안을 위해 좋을깁니더-
-다 알고있습니더. 다섯 마지기 값은 디리지요. 하지만 지가 아를 먼저 봤으면 싶습니더.-


여자 팔아본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동안은 항상 물건보다 돈이 먼저 거래되었고 돈이 손에 들어오면 뒤도 안보고 달아나듯 줄행랑을 치던 무당으로서는 의외의 거래조건이지만 소향이년 정도라면 물건을 먼저 내놔도 상관없을 성싶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잘만하면 후에 물건 값을 올려 받을 수도 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당은 호탕하게 말한다.


-그기야, 에로번 일 아입니더. 길이 천리 길이라 쿠지, 보는 기야 뭐 대숩니꺼?-


말을 마치긴 마쳤지만 문득 무당은 무엇을 잃어버린 양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을 느낀다. 도대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단 말인가? 애초에 삼천포에서 꿈꾸었던 두어 마지기 논이 그 당돌한 소향이년 때문에 슬그머니 새나가나 싶더니 어느새 여기 있는 이 정나미 없는 아지매 때문에 그나마 한마지기라도 하던 꿈이 온데간데없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아랫녘에서는 소향이년한테 당하고 여기서는 이 여인네한테 당하면 자기는 뭐 하러 엄동에 헛다리품 팔고 다녔다는 말인가?


다섯 마지기 달라던 소향이년에 다섯 마지기 준다는 이 여인의 계산을 합하면 무당 자신의 몫은 좁쌀만큼도 남는 게 없는지라 치미는 부화가 무당의 얼굴에 슬며시 나타난다.


-아지매요! 아시다시피 남도에서 여까지 지가 왕래하는 기 보통일이 아입니더. 쿤데, 또 중매라 쿠는기 오데 예삿일입니꺼? 행핀 마차 가민서 길흉화복에 맞꾸로 물색한다는기 아무나 할 수 있는기 아입니더! 케서 지가 디리는 말인데 아지매가 발품값으로 그라고 치성 드리는 복채로 지한테 얼매나 내놓을실랑교? 지도 미리 알아야 신명이라고 나서 한번 흔들 요령 두 번 흔들 꺼 아입니꺼?-
무당은 안 되면 막살 놓지 하는 심정으로 여인을 빤히 보며 말한다.


대문을 향해 눈길을 두고 무당의 말을 듣던 여인은 아무 기색도 없이 한순간의 뜸을 들이더니 무당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더. 보살님이 그 아를 먼저 델꼬 오이소. 지가 그 아를 보고 들일만한 아다 시푸면 그때 보살님한테는 섭섭지 않을 만치 할낍니더. 지 말대로 하이소-


도대체 씨도 먹혀 들어가지 않는 여인이다. 평소에 무당 앞에서 머리 조아리던 아낙들하고는 근본부터가 달라서인가, 무당이 흔들어대는 오색 요령채도 달콤한 혀 놀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여인이 일어나는 것이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가라는 듯이 느껴져서 무당도 불편한 심기를 안은 채 마루에 걸쳤던 한쪽 발을 내려 신발을 꿰고 마당으로 내려서며
-그라이소. 뭐든지 하늘의 뜻이니 그대로 안 되것심니꺼?-
인사말처럼 남긴 말끝에는 낙심의 여운이 가득하다.


신덕마을로 돌아온 무당은 빌린 아래채에서 삼십 리 길을 걸은 저린 발을 주무르며 자신의 한심한 행각에 팔다리에 힘이 빠져간다. 양쪽으로 버티고 있는 두 여자가 도무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사실에, 천리 길을 사이에 두고 또 생면부지 서로 알지도 못하는 두 여자의 은근한 기 싸움에 무당은 마치 개밥의 도토리 같은 신세처럼 느껴진다.


평소에도 길흉화복을 물어올 때 형색으로 보아 돈이 나올만한 차림이 아닌 사람들은 대충 둘러쳐서 내보내고 눈짐작으로 뭔가 있음직하다 싶으면 겁주고 어르고 내치고 안아주고 약 먹이고 독 먹이고를 밥 먹듯 하는 무당이니 재물에 밝기는 서울깍쟁이 장사치 저리 가라인데 논은커녕 뭐가 생길 줄도 모르고 천리 길을 오는가 하면 또 삼십 리 길을 걸어서 헤메고  다니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저녁이 되자 주인남자가 소를 몰고 들어서는 기척이 들린다.
무당은 앉은 채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아제요. 몸살이 날란가 우째 몸이 찌푸등한기 으실댄다. 사람들도 없으이 술 한잔 하재이-
자기보다 한참은 위인 듯한 주인남자 보고 하대를 하면서 술을 부탁한다.


-와예? 보살님, 방이 추운교?-
소를 외양간에 매면서 남자는 대꾸한다.
-불은 이따가 넣고 술이나 한잔 내오소. 내 답답해서 한잔하고 싶구만-


문을 닫은 무당은 술이라도 한잔 삼켜서 속풀이라도 하고 또 이왕 발걸음 했으니 여비라도 벌어야 할 판, 그러자면 여기서 며칠은 묵어야 하기에 혼자 사는 홀아비 주인남자한테 미리 수작을 붙이는 것이다. 상주나 문경으로 올 때마다 가끔씩 들려서 보살 대접 받아가며 공짜로 밥 먹고 잠자고 또 궁금했던 몸도 내맡기곤 하는 무당이다.

지서에서 난리굿이 난 다음부터 장날 대폿집 일을 하는 것 외에 소향어미는 읍내에 발걸음을 끊었다. 초가에 딸린 텃밭에서 이제 족히 한 뼘은 자란 마늘밭을 매거나 소향을 대동하고 봄나물을 뜯거나 가끔은 거북바위 밑으로 가서 간조에 조개를 캐고 해초를 걷기도 하는 것이 전부다.


평소에도 말이 많지 않았지만 엄마가 요즘 들어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얼굴에 표정도 굳어진다는 것을 소향은 느낀다. 소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깜깜한 밤에 보는 이 없고 듣는 이 없는 상황이라서 자기 자신의 비참함이나 급박한 사정을 입 밖으로 내놓긴 하였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거의 잠을 한숨 못자며 속병을 앓았다. 소향은 자신이 보살에게 한 약속이 실로 감당할 수 없을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만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머리 위에 삭정이 나뭇단을 얻고 뒷산을 내려오던 두 모녀는 소향어미의 쉬어가자는 말에 나무를 내려놓고 겨우내 말라버린 풀 사이로 새순이 파릇파릇 돋는 양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소향아, 아무래도 안 되것다. 내가 대구나 김천으로 해물이라도 날라봐야 것다-
멀리서 반짝이는 바다와 듬성듬성 떠있는 섬들을 보면서 소향어미는 말한다.


살림이 어려워져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대처로 장사를 나간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해본지라 소향은 덜컥 걱정이 앞선다.
-엄마야, 니는 그 가본 적도 없을낀데 우째 할라꼬?-
때거리도 어려워가는 상황을 소향도 알고 있는 터라 가지 말라거나 안 된다는 말 대신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다.


-대포아지매가 돈 좀 채해주기로 했다. 김하고 건어물 한보따리 값만 되면 대구나 김천은 그저 하룻밤 거리고 길어야 이틀 밤 거리데이. 낼이 장날아이가? 니는 대포집에서 일하고 있으래이. 내는 장에 나온 물건을 사 들라야 할끼다-


소향은 말이 없다. 엄마가 이미 궁리하고 작정하여 하는 말이니 마땅히 할 말은 없지만 그나마 아버지가 없는 집에 엄마마저 집을 비운다는 사실이 난간 없는 끝자락에라도 서있는 듯하다.
소향이 먼저 일어서서 말없이 나무를 머리에 얻고 몇 발짝을 걸어도 소향어미는 일어설 기색 없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가는 한숨을 쉰다.

이튿날 집안 단속을 숙향에게 맡긴 소향 모녀는 읍네 장으로 갔다.
이제는 완연한 봄날씨라 겨우내 입었던 때 절은 옷들이 벗겨진 사람들의 형색이 한층 밝게 보인다. 그래도 남자들은 주로 국방색 차림이 아니면 그저 흰색 광목쪼가리를 걸친 것이 대부분이지만 여인네들은 옥색이나 연두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도 보이고 검은색 일관이었던 치마색이 봄날에 어울리는 남색으로 변한 것도 보인다.


장은 인근 섬에서 나온 보따리 장사꾼들로 인산인해다. 지전이 귀한 사람들이 겨우내 모아둔 멸치, 곰치, 김 등 마른해물이나 손으로 만든 갓이며 대곰방대 등 각종 생활품들을 풀어놓고 팔리기를 기다린다.


소향이 대폿집에서 일하는 동안 소향어미는 난전을 기웃거려가며 물건을 들추어 보고 값을 흥정해보지만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인색한 사람들의 말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불안한 마음만 가득한 채 점심때가 되도록 빈손으로 돌아만 다닌다.


막연한 생각에 목이라도 축일 겸 대폿집으로 들어선 소향어미는 점심장사에 바쁜 소향에게 말도 붙이지 않고 정신없이 국밥을 말아내는 대포아지매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선다.
-물건 좀 했나?-
여전히 일속에서 손을 움직이는 대포집이 묻는다.


물 한 바가지를 마시며 목매는 목소리로 소향어미가 대답한다.
-아지매야, 막상 팔 물건 살라꼬 하이 겁이 나서 몬사겠다. 물건이 좋다 시푸면 값이 비싸고, 싸다 시푸면 물건 꼬라지가 말이 아이고. 안 해본 일이라 도시 감이 안 잽힌다 아지매-


어느새 들어왔는지 그 말을 들은 소향이 한마디 거들며 끼어든다.
-엄마야, 니가 여 좀 있거래이. 내 퍼떡 갔다오꾸마. 돈 좀 도고-
-와? 니가 돈 가지고 뭐할라꼬?-
바가지를 손에 든 채로 소향어미가 동그란 눈을 뜨고 묻는다.


-좀 있으면 파장 될낀데 여태 암껏도 안 샀다카이 안 카나? 내 대신 여서 쪼곰만 있거래이 엄마야. 빨리 돈이나 도고! 내도 물건 볼 줄도 알고 값도 안다. 내가 사오꾸마! 내기 맡끼고 퍼떡 돈이나 도오!-


얼떨결에 돈을 소향에게 건네준 소향어미는 후다닥 뒤도 안보고 달려 나가는 소향이를 보고 영 마음이 놓이질 않지만 점심 장사에 잠시의 뜸도 한가하지 못한 것이 대포집일이라 소매를 덤성 걷어 올리고 일을 시작한다.


대폿집을 나온 소향은 난전을 쭉 훑어가며 천천히 걷는다.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고 바닥에 놓인 물건에 발이 채이기도 하지만 소향의 머릿속은 물건으로 꽉 찼다. 엄마가 팔 물건이라면 비싸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물건으로 보따리만 크게 할 수도 없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먼 데까지 가서 팔아봐야 돈도 남지 않을 것이니 흔치 않은 물건이 좋을 것이고. 우선 장터에 무엇이 널려있는지 살펴볼 요량으로 장을 한 바퀴 돈 소향은 중년남자가 광목보자기에 펼쳐놓은 보기 좋게 묶인 청태 앞에 섰다.


-아저씨예. 지는예 이 김을 사서 대구나 김천으로 장사를 할라꼬 하거든예. 케서 디리는 말씀인데예. 지한테 좀 싸게 주시면 안 되겠심니꺼?-
느닷없이 묻지도 않은 속사정까지 널어놓으며 소향은 말을 마치고 남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니가 몇 살 돼 보이지도 않쿠만. 김장사를 한다꼬? 해봤나?-
남자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묻는다.


-한 번도 안 해봤심더. 그래도 지는 해야 될 사정이 있어서 디리는 말씀인데예. 김이 흑태는 아이지만 파래가 섞여서 맛은 아주 좋겠네예. 지도 여 살아서 해물은 볼 줄 알거던예. 이거 얼마 합니꺼?-
소향은 말을 하면서 허리를 굽혀 김을 뒤적인다.


-맛이야 이기 젤 좋지. 흑태는 비싸기만 하지. 이건 남해 끝자락에서 난기라 맛은 두말 할끼 없데이. 쿤데 니 정말 장사할끼나? 그래 안 빈다.-
또다시 믿기지 않는다고 묻는 남자는 손을 눈 위에 올려 비스듬히 내려쬐는 오후햇살을 가린다.


눈짐작으로 양이 꽤 된다고 생각한 소향은 허리를 펴고 남자를 향해
-아저씨예. 이거 다 지가 사고 싶은데예. 값만 지대로 좀 해주이소. 아저씨는 다 팔아서 좋겠지예, 또 지는 좋은 김 사서 좋을꺼고예. 얼매 합니꺼?-


아까부터 김이 좋다고 찬사를 들은 남자는 마음이 흡족하다. 사자고 대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선 물건부터 하찮게 말하는 게 대수인데 눈앞의 처자의 당돌한 태도나 거짓말로는 안 보이는 속사정 얘기나 또 자기의 물건을 알아주는 것이 맘에 든다.


-니 정말로 이거 다 살끼나? 돈이 에법 될낀데? 이거 한 토에 오백 환 받고 판다. 여 있는기 다해서 세봐야 알겠지만 한 오십 토는 넘을낀데. 니 돈이 그리되나?-


돈이라고는 만 환밖에 없는 소향은 전부 다 사자면 적어도 이만오천 환 정도니 기가 차다.

보따리 크기로 보니 엄마가 머리에 이기에 적당히 크고 또 물건 값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청태 종류니 적당하기는 한데 문제는 수중의 돈이 물건을 다 사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아저씨예. 지금 지한테는 만 환이 있습니더. 아저씨 김을 다 사자이 돈이 모자라네예. 케도 만일 아저씨가예. 한토에 사백 환에 지한테 주신다면 지도 몆 푼은 남겠네예. 그래만 해주실 요량이면예 지가 요 옆에 대폿집 국밥 아지매한테 좀 빌리가 오겠심더. 그 아지매는 지를 믿거든예-


빤히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소향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저 정도의 반짝거리는 빛 좋은 청태는 건어물전에서도 족히 오백 환은 넘는 물건쯤 된다는 것을 그동안 함씨집에서 엄마와 해태일을 하면서 들어본 적이있고 대처로 간다면 어렵잖게 처분도 가능할거라 생각이 든다.


-야야. 사백 환에 팔 거면 내 일찌감치 어물전에 넘깄지. 여 뭐 할라꼬 서있겠노? 그건 너무 싸다. 정 그라모 사백오십 환 도고. 카모 내 다 넘기꾸마. 그케도 니 정말로 장사할끼나?- 
가격보다도 어려보이는 처자가 널어놓는 말이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흥정이라 또다시 묻는 남자다.


-아자씨예. 지금 파장이 다 되갑니더. 이거 다해서 오십 토 정도라 하싰는데. 해질 때꺼정 몆 토나 파실 껍니꺼? 벌써 사람들도 마이 줄었다 아입니꺼? 아저씨가 지한테 사백 환에 주시면 지도 돈이 남는 장사도 될끼고 또 아저씨는 안 기다리고 가실 수 있지예? 돈도 모자라지만 김이 하도 좋아서예. 이걸 꼭 사고 싶습니더. 퍼떡 말해보이소. 아저씨. -


당돌한 처자가 애교도 아니고 구걸도 아니고 조목조목 맞추어가며 하는 말에 또 허리를 곧게 세우고 빤히 뜬 눈으로 자기를 보며 말하는 태도에 남자는 기가 차서 붕어 같은 입으로 한숨으로 내쉬며 고개를 젖혀 하늘의 구름 한 점을 본다.


하긴 처자말이 맞을 수도 있다. 아침 내내 그저 몆 토밖에 처분하지 못했는데 오십 토의 김을 하나씩 다 팔기는 애당초 틀린 일, 파장에 도매상에 들고 가면 반값에 후려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고 안 팔고 싸 짊어지고 다시 갈수는 없는 일, 남자는 말없이 소향을 한번 보고 김을 한번 보고 또 소향을 보고 김을 보고 하다가 입을 연다.
-니 돈이 모지랜다 켔제? 퍼떡 그거나 해온나-
-알았심더-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터 소향은 맘이 급하다. 거의 뛰다시피 해서 대폿집으로 들어서서 부엌으로 향한다.


식탁을 훔쳐내던 소향어미도 어리둥절하지만 부엌에 있던 대포 아지매도 바람 몰고 들어오는 소향이 궁금하다.


-너그 엄마대신 니가 물건 하러 갔다꼬? 뭐 했나?-
-아지매예. 내 급한데예. 돈 만 환만 좀 빌리 주이소. 청태가 있는데예. 다 사야 판다고 하는데 엄마가 준돈이 만 환밖에 안되예, 김이 참말로 좋심더-
-니가 김을 아나? 하기사 김일을 마이 했으이 알기는 알겠지만. 값이 우떻터노?-
돈 얘기 끝에 소향이 미덥지가 않아 대포아지매는 값을 묻는다.
-아지매 값은 좋아예. 그건 이따가 보시면 아실거고 돈부터 좀 빌리주이소. -


장날 장사에 돈 만 환 정도는 전대에 들어있는 줄 아는 소향이고 또 사실 그 정도는 들어있지만 열흘치 품값이나 되는 돈을 느닷없이 빌려달라는 소향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한 아지매다.
하지만 소향의 서둘고 채근하는 태도에 전대 속을 헤집어 만 환을 세어 내주고 소향은 달음질로 장터로 나갔다.


-아저씨, 돈도 됐으이 지하고 시알리예-
허리를 굽히는 대신에 아예 쪼그려 앉은 소향은 한켠으로 김을 한토씩 세어제낀다. 중얼거리며 세는 소향을 남자는 선 채로 눈을 떼지 않고 숫자를 확인하고 오십 토가 다 세어지자 남은 대여섯 토의 김만 오른쪽에 놓여있다.


-아저씨, 맞지예?- 
일어서서 주머니의 돈을 꺼내는 소향을 보며 남자는
-니, 이거 나머지도 사거라. 몇 토 되도 안하는데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여서 판다꼬 기대릴 수도 없재-
돈을 받을 기색도 없이 남자는 팔짱을 낀 채 소향에게 나머지 처분을 부탁한다.


-아저씨예, 지금 지는 돈이 한 푼도 더 없심더. 그라모 아저씨예. 만일 아저씨가 나머지를 외상으로 주시면 다음다음 장날에 지가 돈을 드릴 수는 있습니더. 저기 대폿집에서 일하고 있거던예-
빨리 처분하고 배를 타야하는 남자는 처음 보는 처자에게 외상을 주기도 난처하지만 그렇다고 몇 토 안 되는 김보따리를 들고 다니기도 성가신 심정이다.


-그라모, 내캉 가제이. 내 들어다 주꾸마. 이기 여섯 개데이?-
보자기를 움켜 싸며 나머지 갯수를 확인시킨 후 남자는 소향의 근원이라도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대폿집으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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