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꾼 집안에 발생한 불상사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0화

김담 | 기사입력 2013/08/20 [18:21]

천석꾼 집안에 발생한 불상사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0화

김담 | 입력 : 2013/08/20 [18:2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아이구! 광수 아지매! 퍼떡 좀 나와 보이소!-
자지러지듯 외치는 소리가 솟을대문 밖에서 들리고 뒤이어 치마 한쪽을 움켜쥔 대구댁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선다.


봄볕에 대청에 앉아 광수어미가 뜯어온 봄나물을 다듬던 두 여인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순간 손을 멈추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에 대구댁은 연이어 숨넘어가는 소리를 쏟아낸다.
-빨리 좀 가보이소! 광수아부지 죽습니데이!-
-뭐예?! 광수아부지가예? 와예?-


광수어미는 얼어붙은 듯 입만 달싹거리며 묻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지금 논바닥에서 광수아부지가 꾸루와이한테 삽에 맞아서 피투성이입니데이! 큰일났습니데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광수어미는 이미 대문을 벗어나고 큰아지매는 천천히 댓돌 위의 신발을 신으며 대청에 앉아 머리를 쓸어 올리는 대구댁을 향해 묻는다.
-자초지종을 말해보게 대구댁. 무슨 일인가? 병구가 어째?-
-아침에 광수아부지가 논 부치는 사람들하고 농사 얘기한다꼬 다 논에서 안 만났심니꺼! 지는 막걸리하고 김치 담아서 논에 나갔디만 우찌된 일인지는 모리지만 벌써 꾸루와이가 광수아부지 보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난리를 치더구만요. 아, 머리에 인 막걸리 소쿠리를 내리기도 전에 광수아부지가 그놈 삽에 맞아서 넘어졌는데 마이 다친 모양입니더!-
대구댁은 큰아지매가 대문으로 걸어 나가자 뒤따라가며 말끝을 맺고 숨을 헉헉거린다.


멀리 들판에 한 무리 사람들이 마을로 몰려오는 것이 보이고, 그 가운데 허연 물체를 앞뒤로 든 사람들 틈에서 앙칼진 목소리로 악쓰는 광수어미가 미친 듯이 허우적대는 것이 큰아지매의 눈에 들어온다.


기어이 그놈이 탈을 낸 것이다. 노병구 그놈이.
그가 듣지 않는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꾸루와이라고 부른다. 아니 정확히 노삥꾸루와이가 별명인 것이다. 노병구라는 이름에다 일제시대에 왜놈순사 앞잡이 하는 놈이 미워서 마을에서 빈정대듯 붙여준 것이다.


그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는 이유는 6.25사변통에 이미 나이가 서른 중반이었음에도 출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자식이 둘이나 딸린 노병구가 징병이 되고 낙동강전투 어디에서 심하게 다친 후유증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이후로는 왜정시대의 밀고꾼이었던 사실을 잊은 채 마치 대한민국이 자신 때문에 전쟁에서 이긴 양 의기양양하게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행패를 일삼고 술주정을 부리지만 마을에서는 내놓은 개 취급 하며 슬슬 피하고 상대하기를 꺼리는 상이군인이다.


-대구댁은 광수에미 데리고 집에 가게. 내가 병원에 같이 갈 요량이니! 그리고 우리 영감 좀 찾아서 읍내병원으로 오라고 전하고-
큰아지매는 마을 입구에 이르른 사람들 틈으로 들어서서 신음소리를 내고 널브러진 시동생으로부터 광수에미를 뜯어내며 주위사람들을 향해
-자네들! 빨리 읍네병원으로 옮기고!-
-꾸루와이가 사람 죽이네! 이놈이 광수아부지 죽여!-
땅에 퍼질러 앉은 광수어미는 두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악을 쓰고 대구댁은 휘젓는 팔을 잡기 바쁘다.

읍내 유일한 서의원에 지게에 실려 간 김태광은 삽날에 깊게 파여 손바닥 하나는 됨직한 허벅지 상처를 치료받고 방에 누운 채 끙끙거리고 있다. 원래부터 성질이 사납지도 않고 집안 내력인지 형인 김태섭처럼 유순한 내성을 가진 광수아부지다.


자식이 둘씩이나 태어나도록 아직 분가도 못 받고 아래채에서 살면서 마지막 있던 머슴이 문경의 광산으로 간 뒤에는 형을 대신하여 집안의 소작을 관리하고 소작인들과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땅마지기라도 받아내고 따로 살림을 내자고 성화를 부리는 마누라의 등살을 그냥 저냥 들어가며 이제나 저제나 형이 알아서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집안의 거의 모든 경제권을 거머쥐고 있는 형수는 도무지 속내를 드러내는 법 없이 사는 살얼음 서린 사람이라 세월이 갈수록 광수아부지도 슬슬 부화가 속에 차오르지만 작심하고 별러봐도 마누라도 자신도 여태 입도 열지 못하고 있는 참이다.


오늘도 천석꾼 소리 듣는 집안의 소작꾼들을 모아놓고 한해 농사를 배분하고자 지난 해의 소출이며 도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누가 농사를 잘했고 누구는 부지런하여 땅심 돋구는 거름도 많이 했고 또 누구는 게을러서 소출이 형편없이 적었다는 등등을 설파하고 그 나름대로의 기준과 형평성 또 능력을 고려하여 논과 밭을 나누어주고자 모였는데 시작 초반부터 꾸루와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지 모든 사실들이 성에 차지도 않고 그저 먹고 노는 것이 몸에 밴 터라 아예 떼쓰고 트집 잡는 일을 벌였던 것이다. 같은 논이라도 자기 논은 물길이 좋지 않다. 태산이 햇볕을 가로막아서 소출이 적을 수밖에 없다. 태산 옆으로 흐르는 바람줄기가 풀씨를 많이 가져오니 논에 풀만 많이 자란다 등등 그저 생떼만 쓰고 있던 참이었다.


사실 꾸루와이가 붙이는 논은 모든 소작꾼들이 탐내는 상답 중의 상답이건만 생전에 논 매는 법도 없고 퇴비나 소똥 한 짐 갖다 붓는 법 없이 알곡만 챙겨 먹으려는 심보니 아무리 땅심 좋고 물길 좋은 땅이라도 한 이태만 돌보지 않으면 벌써 소출이 뚝 떨어지는 판이라 병구는 이참에 거름 잘되고 소출 많았던 다른 논으로 바꿔 가지려는 속셈이고 또 도지도 조금 더 깎아보려는 계획이었다.


소작꾼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지주가 땅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련만 노병구에게 김태광이는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사정이었고 또 그것을 잘 아는 꾸루와이는 그렇게 생떼를 쓰며 곤조를 부렸던 것이다. 나이도 김태광보다 두어 살 더 먹은 병구는 그 잘난 절름발이 육신을 훈장처럼 생각하며 마을에 온갖 행패를 일삼고 술집의 기물을 부순다거나 무전취식이며 욕설과 악담을 밥 먹듯 하고 그중 제일 겁나는 것은 아무 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둘러대는 그야말로 태봉의 무법자인 것이니 죽어나는 사람은 그의 마누라였다.


논은 꾸루와이가 받아온다 해도 농사는 거의 마누라가 짓는 것이나 다름없고 남정네가 해야 할 힘든 일을 못하는 사정에 소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다.


태성이 선비 같은 광수아부지는 그러한 꾸루와이의 못된 성질이 겁나기도 하고 집안에 행패라도 부리는 날에는 형이며 형수에게 그리고 집안 전체에 미칠 화가 걱정되어 그저 좋은 게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매년 좋은 상답도 주고 도지도 남몰래 깎아주곤 했지만 오늘도 역시 다른 논으로 바꿔달라며 생떼 쓰는 꾸루와이에게 누구도 힘들여 거름하고 정성들인 논을 바꿔주겠다고 하는 소작꾼이 없는지라 소작꾼들 앞에서 모처럼 위신도 세울 겸 한마디 점잖게 한다는 것이 그렇게 사건으로 도진 것이다.


순리나 도리나 이치가 필요 없는 꾸루와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냈고 이제 그 피해를 고스란히 허벅지 안쪽에 담은 김태광이는 서의원에서 하얀 얼굴로 누워있다.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의원의 말과 상처가 깊어서 치료는 오래 걸리겠다는 말.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말에 안도는 되지만 농사꾼도 아닌 자신이 집안을 대신하여 그 흉악무도한 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겁나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퀴퀴한 냄새 진동하는 병실 안에 웅성거리며 구석구석 웅크려 앉은 마을사람들을 보고 큰아지매는 왜 아직도 남편은 오지 않는지 허탈하게 생각하다가 온다한들 또 뾰족한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다 싶어 고개를 돌려 좌중에게 말을 한다.


-여기는 저 하고 동서가 있을 것이니 다들 돌아가시고 마을에서 있은 일이니 쓸데없이 빈말나지 않도록 다들 유념해주세요-


작은 아지매 광수어미도 정신을 차린 양 창백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연신 입안에 마른침을 삼킨다.


사람들이 부시시 일어서는데 귀에 익은 소란스러운 대구댁의 말이 들리는가 싶고 이어서 문이 열리고 김태섭이 들어온다.


-아이구, 이러다가 우리 광수아바이 제명에 못살지. 우리가 무슨 머슴인가. 내가 부엌데긴가. 하인도 우리 같은 하인은 없을낀데-
갑자기 작은아지매가 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김태섭이 들어선 문이 채 닫히기 전에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나간다. 통곡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다 아는 양이다. 종가를 지키는 두 내외주인은 마을사람들하고 별반 왕래를 하거나 소담을 나누는 일이 없어서 빗장 걸린 속내를 마을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동생 김태광은 농사일이나 마을일로 늘 마을사람들하고 술잔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 마누라는 종갓집 둘째 며느리 행세하고는 한참이나 먼 수다쟁이고 욕심 있는 여자라 샘가에서나 도랑에서 빨래라도 하는 날은 종가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속에 입은 고쟁이도 까발리듯 이것저것 광고를 하니 마을에서도 그들이 형님내외한테 불만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는 터였다.


-자네! 좀 조용히 하게! 일수가 사나와서 일어난 일에 여자가 더더군다나 집도 아닌 밖에서 그 무슨 울음인가! 고만하게!-
정색을 하며 큰아지매가 다그친다.


-아니 행님! 제가 뭐 틀린 말 했심니꺼?-
남편 손을 놓고 돌아앉으며 아직도 우두커니 서있는 시아주버니는 눈에도 없는 양 광수어미는 큰아지매를 향해 고개를 치켜뜨며 말한다.


-내가 다 알고 있어! 고만해!-
큰아지매의 말 한마디가 다음에 연이어 터져 나오려던 작은 아지매의 입을 꽉 닫았다. 늘 그렇다. 작심하고 대들어보려고 큰아지매한테 입을 열기라도 하면 몇 마디 섬기기도 전에 큰아지매의 화살 같은 시선과 차돌 같은 말 한마디에 번번이 그렇게 주눅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시집을 올 때부터 별반 가문을 내놓을 만큼 이름 있는 집안이 아니라 안방 차지하고 있는 큰아지매하고는 자신이 많이 다르다고 속으로는 인정하며 살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기도 어엿한 며느리이고 이집의 둘째아들의 마누라고 또 무엇보다도 아들을 둘씩이나 내놓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그럴뿐 당최 안방에는 통하지 못하는 광수어미만의 헛바람일 뿐이다.


-제수씨. 놀라싯지예. 들어오기 전에 원장하고 얘기 나눠보이 다행히 뼈도 안 다치고 다른 부위도 이상이 없다카데예. 피를 마이 흘리서 그기 좀 걱정이긴 해도 잘 먹고 회복하면 아직 장정이라 걱정 안 해도 된다 캅디다. 아아들도 집에 있는데 집사람하고 들어가이소. 지는 여서 사람들 좀 만나보고 이따가 지서장 오면 얘기 나눈 후에 차 한대 불러서 태광이하고 갈께예-


누워서 눈도 뜨지 못하는 광수아비를 향해 앉아있는 작은아지매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일언반구도 없다.


-당신이 제수씨하고 들어가게. 여는 내기 맡기고-
김태섭은 태광이 누워있는 오른쪽으로 좌정을 하며 큰아지매를 보고 말을 한다.


-가긴 가지만 아주버님을 집으로 옮기면 치료는 어떻게 할 요량입니까?-
-끼니라도 제대로 맥일라면 집에 있어야지 당신도 봐서 알지만 이기 어디 환자가 지낼 방이요? 그라고 치료는 서의원이 이삼일에 한 번씩 온다고 했으이 됐고. 어서 가시게!-


포시랍게만 살아본 사람이라 김태섭이의 눈에는 환자가 누워있는 방꼬라지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진동하는 약내부터 속을 긁어내는 듯한데 처음 맡아보는 야릿한 냄새들은 무슨 괴질에서 왔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구석구석 얼룩으로 물든 벽이며 방바닥은 차라리 자기집 통싯간이 더 나을 성싶었다.


-아참! 오는데 배달부를 만났는데 전보를 주더이다. 보이 내끼 아이고 당신꺼지 싶소. 그런데 보살이 누구요? 당신한테 전보를 다 치고?-
하면서 종이하나를 건네준다. 의아하던 큰아지매가 순간 무슨 영문인지 알아차리며 종이를 받아 접으며
-길일이나 받아볼려고 찾았는데 오면 될 일을……. 어찌 전보를 다 쳤는지-
말끝을 흐리며 일어선다.


두 여인네는 육솟간에 들러 환자에게도 주고 집안사람들도 먹을 보신용으로 소뼈를 한 덩어리 사고 다시 점방에서 광수 재수에게 줄 과자도 한 보따리 사서 집으로 왔다.


광수어미는 부엌에서 불을 때가며 가마솥에다 사온 소뼈를 우려내는 동안 큰아지매는 그제야 방안에 앉아서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펴본다.
-삼월보름도착 보살-
지금이 양력으로 삼월 그믐이니 필시 음력으로 삼월 보름이겠다. 그러면 한 일주일은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한편 한심한 생각이 든다.


차라리 광수를 양자하고 시동생 살림을 차려 내주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이렇게라도 씨를 내려 받아야 옳은가? 남들은 주렁주렁 너무 많아서 걱정인 그 흔한 자식새끼 하나 없이 왜 이리 박복한 처지인지. 사지에 힘이 빠지고 한숨이 새 나온다.


-행임요. 좀 나와 보이소-
부엌에서 자신을 부르는 광수어미의 소리를 들으며 그래도 그렇지 내 저 천한 것의 씨앗을 내 새끼로 하고 싶지는 않다 하고 작정을 하며 부엌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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