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라 안 했심더! 다르다 캤지예!”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2화

김담 | 기사입력 2013/09/03 [19:31]

“거짓말이라 안 했심더! 다르다 캤지예!”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12화

김담 | 입력 : 2013/09/03 [19:3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아침에 부엌에서 딸그락거리던 소리가 난 후로 잠잠한 것으로 봐서 광수어미는 오늘도 널린 집안일을 제쳐두고 방안에서 서방하고 있을 것이다. 큰아지매는 안다. 이것이 광수어미의 일종의 시위라는 것을. 이참에 땅 마지기라도 얻어내고 분가하고자 하는 속내를.


영감이 동네를 벗어났을 쯤에 큰아지매는 문을 열고 아래채를 향해 광수어미를 부른다.
-동서! 나 좀 보세!-
그러나 문을 닫지 않고 대답을 기다린다. 요 며칠 동안 은근히 고집을 부리고 대답도 퉁명스럽게 던지는 동서가 첫 마디에 들은 척 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동서!-
목청을 조금 더 높이자 그제야 문이 열리고 대답 없이 거꾸로 놓였던 고무신에 코를 꿰는 광수에미다. 첫 부름도 들었다는 태도다.


-좀 들어와!-
문을 닫지 않고 그냥 돌아앉는 큰아지매는 무능력에 가까운 영감에 자식 하나 생산 하지 못한 자신, 그리고 시들어가는 집안 가세에 이번에는 노병구 놈한테 받은 우사꺼리까지. 그야말로 한심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마루 끝에 비스듬히 앉은 채 허리만 안방을 향해 굽히고 광수어미가
-와예?-
하고 묻지만 큰아지매는 대면도 안하고 대답도 안한다.

요것이 들어오라는 말에도 어긋장을 놓으려는 심상이라. 화가 치솟는 것을 참는 큰아지매다.

 

광수어미는 큰아지매를 이기지 못한다. 이겨본 적도 없다. 수중에 돈 한 푼 들어오지 않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하루 세 끼를 꼬박 차려 대령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그저 샘터에서 흉이나 보고 상소리 섞인 혼잣말이나 나불대는 것이 고작이다. 속은 깊지 않아도 그냥저냥 맘고생이 뭔지 모르고 치마 펄럭거리며 사는 여인이다.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방안으로 들어서는 동서를 그제야 표정 없는 눈으로 마주보며 큰아지매는
-오늘 보니, 광수 학교 가는데 옷이 허술해 보이데. 함창장보다 점촌장이 크니 가서 재수 꺼도 사고. 자네도 입기 편한 양장이나 한 벌 사! 아아들이 훌쩍훌쩍 크니까 좀 품이 넉넉하도록 사야지 오래 입히지. 한 번 빨면 바짝 쪼그라들어서. 아랫물림할 애도 없는데-
-같이 가실껍니꺼?-
하고 금새 입이 옆으로 째지는 광수어미다.


-서방님 점심은 내가 채릴 것이니 자네가 천천히 댕기와. 보고 나한테도 맞을만한 것이 있으면 하나 사고. 굳이 안 사도 되지만-
하면서 허리춤에서 돈을 내준다.


신바람 난 광수어미지만 십리길 점촌장까지 왕복하는 데는 족히 한나절은 걸릴 것이라 이제 보살이 온다 해도 마음 편히 말도 나눌 수는 있겠다 싶은 큰아지매다.

서의원이 아래채를 다녀가고 시동생 점심도 치운 후에 뒤안도 둘러보고 담 넘어 별채도 볼 겸 어슬렁거리며 한쪽 눈은 동네 어귀에 놓고 있던 중에 마침 여자 둘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걸음걸이나 품으로 봐도 휘젓는 자세가 보살이 틀림없고 그 뒤에 또 치마 차림의 여자가 있다. 물끄러미 두 여자들을 바라보던 큰아지매는 서두를 것도 없는 발걸음을 옮겨 안방으로 간다.


-계십니꺼!-
요란하게 거칠 것 없이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연 큰아지매는 일어서서 나오며
-어서 오시오. 날이 좋아서 산천구경도 많이 하셨지요?- 하고 대답한다.

 

-좋은기 아이고. 인젠 덥다 아입니꺼! 빛이 떠굽습니더!-
이마를 훔치며 대청 끝에 앉는 털보무당과는 달리 뒤에 있는 아이는 마당 한가운데서 집만 휘휘 둘러볼 뿐 그냥 서있다.


질끈 묶은 머리새며 구겨지고 꼬장물 흐르는 검정 광목치마며 떡하니 뒷짐 지고 서있는 자세가 영락없는 촌것으로 보이지만 비록 마른버짐은 피었어도 얼굴 하나는 당차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큰아지매가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하며 몸을 돌린다.
-야!야! 니도 들어온나!-
대청에 올라선 무당은 여전히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소향을 보고 말한다.

오는 동안에 나라가 참 크다고 생각했던 소향이다. 몇 년 전에 지금은 죽은 아부지 따라 합천 어디론가 피난가본 게 덕호를 처음으로 떠난 일이고 그때 지친 발걸음과 머리에 이고 등에 진 보따리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참으로 땅이 크고 넓다고 생각했는데 이름도 모르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면서 가도 가도 사람이고 집이고 마을이고 도시라 땅은 참 크고 사람들도 많구나 하고 다시 생각했다.


솟을대문과 안채의 기와집은 삼천포 읍네에 있는 향교처럼 생겼고 자기 키보다도 높이 올라앉은 마루가 사람이 사는 집치고는 조금 겁나게 생겼다고 생각하던 소향이 아직도 땀이 배어 미끄덩대는 고무신을 조심스럽게 돌계단 위에 올리고 안방으로 향한다.


-앉거라! 괘안타-
무당은 뒷짐을 지고 방 입구에 서있는 소향을 보고 자기 옆 방바닥을 치며 말한다.


-혼자 댕길 때야 오데 시간 보고 댕기는 법 있습니꺼? 되는 대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댕기는 기 일인데. 야하고 오이께네 시간에 쪼치가 밥 무글 시간도 없었지예-
무당은 퍼질러 앉은 자세로 연신 머리를 올리며 수다를 떤다.


-이름이 뭐냐?-
무당과 적당히 사이를 띄운 채 앉은 소향은 아주 깨끗한 방안을 처음 보는 양 신기하게 훔쳐보는데 큰아지매의 첫 물음이 들린다.
-예? 예! 소향입니더!- 
그리고 소향이도 큰아지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짧은 말로 치사인지 인사인지를 마친 큰아지매는 찬찬히 소향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그 시선이 어려운 소향은 눈길을 어떻게 피해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냥 오는 눈길을 빤히 마주하니 오히려 큰아지매가 눈을 돌린다.


-보살님. 야한테 뭐라 하셨는지 저하고 같이 있는 지금 자리에서 다시 한번 더 말씀해 주시지요. 인륜지 대사는 되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오해 없도록 보살님이 수고스럽지만 한 번 더 말씀해 보세요-
-아 뭐 새삼시럽게 묻습니꺼? 이 댁에 아들이 없으이 야가 아들을 하나 낳아주몬 그걸로 아지매는 야한테 준다고 한 것을 주면 되는 거지예-
허리를 곧추 세우며 무당은 어설피 대답은 하지만 속알맹이는 텅 빈 대답이다.

방안에 앉은 세 여자가 아무 말 없이 잠시 틈을 놓다가 이윽고 큰아지매가 자세를 고치며
-소향이라고 했지? 나이는?-
-열여덜이라예-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소향이 대답한다.


-내 얘기를 잘 들어 보거라. 내가 보살님한데 우리 집 사정을 이미 말했으니 너도 그건 들어서 알 것이라 믿고 그 얘긴 안한다. 니가 아들을 낳아주면 내가 너한테 논 너마지기 값을 주겠다고 보살님한데 말했다. 내 말이 맞냐?-
논이다 값이다라는 말이 나오자 무당이 바짝 긴장하며 눈에 힘을 주고 듣는다.


소향은 아무 말이 없다. 배가 고프다.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무당이 말하기를 대갓집에 가면 점심 한 끼는 잘 차려 줄 거라고 했는데 밥은커녕 물 한 그릇도 없이 앉아있고 또 아까부터 오줌이 마려운데 참고 있는 중이다.


-지가 밴소에 가고 싶은데예-
큰아지매의 질문과는 영 다른 말이다.


-그래, 마당 왼쪽에 잿간 옆이다. 갔다 오거라-
큰아지매도 아까부터 누구 뱃속인지는 몰라도 꼬르륵 소리를 들었긴 하나 혹시라도 누가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 중대사를 먼저 마무리하고 나서 끼니라도 치레할 요량이었다.


-보살님, 혹 시장하시더라도 우리 이 일을 먼저 얘기하고 난 후에 제가 살펴드리지요-
무당도 목 마르고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지만 주인이 그리 하자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럼 물이라도 한 그릇 마십시다. 아까 걸어오민서 우찌나 땀을 마이 흘맀던가-
-예, 야가 오면 부엌에서 물 한 그릇 떠오라하지요-


손수 물 한 그릇도 대접 안하는 미운 여자다. 무당은 속으로 인정머리 없기는 애당초 알아봤지만 천리 길을 온 사람한테 물도 제 손으로 떠다 먹으라니, 확 막살놓고 싶은 심정이 솟구친다.


인기척이 들리자 무당은 밖을 향해 짜증이 반 섞인 소리로
-소향아, 들어오기 전에 부엌에 가서 물 한 그릇 떠온나. 니도 마시고. 물배라도 채우구로!-
얼굴이 구겨진 걸 감추는 무당이 아니다.


큰아지매도 무슨 상전대접 할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의중이다. 둘이 말도 않고 있는 사이에 소향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담배도 피우고 싶은 무당이지만 자리를 비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까 아지매가 한 말씸은 지가 알고 있는 거 하고 다름니데이-


큰아지매의 눈을 똑바로 보며 소향이 운을 떼자 옆에서 무당이 화들짝 놀라는 눈치다.
-모가 다르노? 야야 니 똑 바로 말해봐라! 이 아지매가 한 말하고 내가 니한테 한 말하고 모가 다린데?-
-지가 보살님한테 분명히 다섯마지기라 했심니더-
고개를 모로 돌려서 무당을 응시하는 소향이다.


-그기사 일이라 쿠는기 서로 말을 마차봐야 되는 기라서 내가 캤지. 그기 우째 거짓말이라 카노?-
눈을 올려 뜨며 나무라듯 소향을 본다.
-지가 그짓말이라 안 캤심더! 다르다 캤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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