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을 안 샀더라면 아들들이 이승에…”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2화

김담 | 기사입력 2013/11/16 [16:45]

“그 땅을 안 샀더라면 아들들이 이승에…”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2화

김담 | 입력 : 2013/11/16 [16:45]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이어 무당은 -영감님 사주나 주시구려- 하면서 담배를 끄고 양반다리로 한껏 퍼질러 앉는다. 함씨도 담배를 끄고는 남은 입속의 연기를 한쪽으로 돌려 불어내고는
-신유년 사월 초닷셉니더. 시는 축시고-
저 지랄 맞은 영감이 또 그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구나 하고 무당은 손가락을 펴서 간지를 짚는 척하며 -그러이……. 올해 수가……- 하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무릎을 세우고 있던 부인이 -올해로 예순일곱입니더!- 하며 성급히 말해준다.


생월이나 생일 그리고 생시쯤은 그래도 알겠는데 도무지 그놈의 육십갑자 얽힌 태어난 해를 말할 때는 늘 속으로 불안한 털보무당이다. 하지만 오늘도 어물쩍 부인의 덕으로 넘어간다.

 

말없이 한참을 손으로 이리 짚고 저리 짚고 하던 무당이 함씨를 보고 묻는다.
-그 터가 오데 있는교?-
이미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물으며, 그저 오늘같이 안팎을 다 알고 사람들을 대한다면 얼마나 쉽고 또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질 텐데 하며 그저 즐겁지만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장터 들어오다 첫머리에 국밥집 안 있는교? 그 옆에 옹기점하고 그 점방건물입니더-
함씨에게 묻는 말을 부인이 잘도 대답해준다.


그제야 무당은 부인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아지매! 집을 사는 건 터를 사는 겁니더. 명리대가라는 사람들이 풍수만 가지고 좋네 나쁘네 하지만 사실 명당이네 흉당이네 하는기 다 천지인 삼위조화가 맞아야 결정되는 일. 그 천지인을 음양오행 없이 우째 알 것이며 또 사주 없이 그 음양오행을 우찌 풀 겁니꺼? 케서 내는 사주하고 어울리야 그 터가 길택지가 되든 흉택지가 되든 한다꼬 압니더-
하고는 다시 함씨를 보고
-축시라 켔지예?-
또 다시 손가락을 폈다 굽히고 마디를 짚는 시늉을 하는 털보무당이다.


한참을 눈을 내리깔고 혼자만 아는 말로 중얼거리다가 -서천이라- 하며 함씨네를 둘러본다. 지금 사는 집에서 서쪽으로 나있는 쪽으로 옮긴다는 말이다. 다시 담배를 한 대 더 댕기고는 정색한 얼굴로 함씨를 보고
-영감님. 영감님 사주에는 서천은 곧 사거명당이고 반대로 동천이 생거명당입니더. 다시 말하민 서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더. 혹시 전에 서쪽에 땅이나 집 사신 적 있습니꺼?-
묻는 말에 또 함씨 부인이 나서서 말한다.


-지금 사는 집이야 우리 시부모님이 사시던 집이고. 샀다 해야 그 건조대 놓는 터를 사긴 샀지예.. 그기 운젠데? 벌써?- 하면서 영감을 쳐다본다.
-글치. 우리가 산 거라고는. 그거뿌이제-
영감의 짧은 대답이다.


하긴 대대로 바다에 명줄 걸고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농사짓지 않는 그들이 땅을 사들일 일이 없고 지금 살고 있는 낡은 집도 몇 대 위에서 지은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들 부부가 산 것이 김발을 널어놓는 건조대를 확장하면서 옆에 딸린 마늘밭을 사들여 터를 꾸민 것이다.


-그 터가 집 쪽에서 어느 쪽입니꺼?-
무당은 예전 진혼제 올리던 생각을 하며 그 집의 설계를 머리에 떠올려 보지만 기억이 희미해서 잘 모르겠다.
-집에서 보민 이쪽 아입니꺼?- 하면서 함씨부인이 오른팔을 들었다 놓는다.
무당은 답답한 듯이
-아지매. 밑도 끝도 없이 이쪽이라 카민 우짭니꺼? 집을 등지고 하는 말인지 집을 바라보고하는 말인지를 해야 알지!-
이제는 아예 핀잔 주듯 말끝도 놓는 털보무당이다.


함씨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거들고 들어선다. -집에서 보민……. 서쪽이제?- 하고는 부인을 쳐다본다.
-그기 운젭니꺼? 산기?- 
무당의 질문에 함씨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 한참 되지, 한 이십 년은 되구만!- 하고 묻듯이 대답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이리도 잘 풀리는지. 무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만 더 근엄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영감님. 그 땅을 안 샀더라민 영감님 아들들도 아직 이승에 있었을 겁니더. 영감님 사주는 절대로 서쪽으로 가서는 안 됩니더. 거저 줘도 그런 건 손에 넣으민 안 됩니더!-
일갈하고 두 내외를 쳐다본다.


함씨네는 큰 눈으로 서로를 번갈아보고 말이 없다. 정말인가? 그래서 그 땅을 사서 금쪽같은 두 아들을 한날한시에 바다에 처넣었단 말인가?
-영감님 사주에 서쪽 방향으로는 혈이 생기고 또 북현무 하기도 하이. 그저 동쪽으로나 남쪽으로만 가이소! 내 말 맹심하이소!-
하고는 의기양양하게 또 담배를 꺼내든다. 감히 이렇게 엄포를 놓았는데 그 터를 살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 무당이다.


이렇게 ‘자릴 옮겨야하나’ 하며 걱정하던 대폿집도 돕고 또 거기에 점방이라도 낼 요량인 소향이네도 손쉽게 거들어준다는 마음이 생기는 무당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다.
영문 모르는 함씨네에게는 죽은 아들과 건조대 터를 엮어서 말하게 되어 딱 들어맞았고 또 혹시라도 대포아지매가 복채 들고 찾아오면야 영험한 신통력을 한번 더 써 먹을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근자에 없던 기분 좋은 일이다.

함씨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서로를 보다가 부인이 슬며시 묻는다.
-얼매 놓으민 됩니꺼?-
복채를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 알던 사람들인데. 쪼매만 놓으이소!-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무당이 말하자 부인이 치마 안에서 주머니를 꺼내 이천 환을 놓고 둘이 힘없이 나간다.


그 점방을 사서 어물전을 내면 겨울철 칼바람 맞으면서 하는 해태일도 걷어치우고 그저 두 늙은이가 소일 삼아 슬슬 매일같이 지전이라도 만져볼 심산이었는데, 함씨네는 코가 너덧 자가 빠져서 집으로 갔다.


함씨 영감은 사실 아침에 자기 코앞에 손가락을 흔들어대던 그 대폿집 작부를 쫒아내게 되지 못한 게 더 화가 나지만 보살님 말씀이 남쪽으로나 동쪽으로만 가라, 남으로는 자식 삼킨 바다고 동으로는 산끝 절벽이 바다하고 물려 가로막고 있으니, 결국 꼼짝 말고 그 집에서 죽으라는 얘긴가, 목구멍 속에서 갈갈대던 가래를 한바탕 훑어내서 칵! 하고 뱉는데 재수 없게도 자기가 신은 고무신 등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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