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 결국 먼 걸음에 나선 세 여인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4화

김담 | 기사입력 2013/11/30 [09:31]

씨받이, 결국 먼 걸음에 나선 세 여인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4화

김담 | 입력 : 2013/11/30 [09:3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더위가 막바지에 치닫는 음력 칠월이다. 기차 화통이 뿜어대는 연기가 검댕이를 휘날려도 열차 창문을 닫기에는 너무 더운지라 전부 열려 있다.


무릎 위에 작은 보따리 하나를 올려놓은 소향은 멍하니 지나는 창밖 풍경에 눈을 주지만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지 않다. 소향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에 가슴만 울렁거린다. 숙향이에게 식모 살고 온다고 동생들 당부를 하고 왔건만 마음이 놓이질 않고 울음 삼키며 자기를 대포아지매에게 딸려 보내던 엄마의 얼굴이 정신을 어질거리게 한다.


더디게 목돈이 들이닥칠 것을 생각하는 털보무당은 염천도 말릴 듯한 더위도 아랑곳없이 그저 즐겁다.


대포아지매가 따라붙은 것이 애초에는 좀 심기가 불편했지만 딸자식 팔아넘기는 일에 에미가 직접 가기에는 어색한 지경이라 대신 대포아지매가 가는 것이라는 말에 그것도 그럴 일이라 생각하여 말 없는 소향보다 이런저런 말벗 삼아 긴 발걸음을 같이 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생각 들지만, 대포아지매는 자기 딸도 아닌 소향을 대동하고 나선 길이 왜 이리 착잡한지 무당이 건네는 말도 그저 건성으로 들리고 자꾸만 소향의 얼굴을 돌아보고 머리를 쓸어 올려주거나 옷매무새를 고쳐주곤 한다.

새벽같이 나선 길이라 오늘 중으로 태봉에 닿을 것이다.
화차가 김천역을 몇 정거장 남겨놓을 쯤인가 옆에 앉아있던 대포아지매가 소향에게 한마디 한다.
-야야! 니 배 고프제? 내도 고픈데. 니라고 안 글켓나? 보살님예, 우리 김밥이라도 사서 소향이 좀 믹일까예?-
피붙이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정이 들고 또 집안 사정까지 꿰뚫고 나서부터는 자식 없이 살아온 대포아지매 마음속에 언제부터인가 소향이 마치 자기 딸인 것처럼 착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아서라! 쪼매만 더 가몬 김천인데 그서 노리까이 해야 된데이. 김천역에 묵울끼 많다. 모하로 김밥 묵노? 시원한 냉민이라도 무야제!-
뭉텅 돈이 들어올 것에 신명난 무당은 그깟 텁텁하고 쉰 냄새 풀풀 나는 김밥보다 열무김치에 말은 쫄깃한 냉면발이 구미에 당긴다.


며칠 전에 오늘 갈거라 전보도 쳐놓았으니 알아서 돈도 마련하라는 전달이 되었고 비록 한여름 해는 길어도 역시 갈 길도 먼지라 일찌감치 나선 길이 오늘 당도하기에는 충분하다.
무당의 말끝에 대포아지매가 소향을 보고 -그카재이. 아무케도 앉아 묵는 밥이 팬치. 쪼매만 더 가재이- 하면서 소향의 손을 잡지만 소향은 대꾸도 없이 여전히 밖에 지나는 풍경만 본다.


무당의 세상 얘기도 바닥이 났는가 더 이상 대포아지매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셋은 덜커덩거리는 열차 속에서 김천역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의아한 얼굴을 지은 무당이 대포아지매를 향해 묻는다.
-아지매! 쿤데 내가 그 집에 아지매를 모라카제?-
뜬금없는 질문에 대포아지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몬 말씸입니꺼?-
-아, 소향을 따라 나섰으이 누구라꼬 말은 해야 안 되나? 에미가 아니몬사 이모라 카까?-
-보살님 좋을 대로 하이소! 지야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인데 어떠민 오또심니까?-
그다지 중요치 않다는 대포아지매의 표정이지만 무당은 그래도 갖추어야 할 모양새가 있으면 갖추어 보자는 셈이다.


혈혈단신보다는 누구라도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자기가 소개한 처자가 아무 처자가 아니라 그래도 뭔가 근거지를 가진 처자라는 것을 은근히 내세우고자 하는 심산이다.


창만 바라보던 소향이 무당을 향해 말한다.
-보살님예! 그저 아지매라 카이소. 와 그짓말을 합니꺼?-
넋 나간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기 말을 듣고 거드는 소향을 향해 보살이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한다.
-내는 니가 있었는지도 모리고 여까지 왔디만 내 말을 듣고 있었구나. 내 말은 거짓뿌렁을 하자는기 아이고 니 입장을 생각해서 좋게 말하자는 것 뿌이다-
-지가 가진 입장은 다 아는 입장인데 아지매가 이모라 칸다꼬 모가 달라집니꺼?-
없는 것을 보태기도 싫고 꾸며대기도 싫다는 소향이다.


그렇다. 소향이 태어나 자란 덕호리에서는 모든 게 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대로를 느끼고 그대로를 알고 있을 뿐 사람들 틈에서 술수를 배우거나 마음 불편한 음모나 수작이라곤 행하여 본적 없는 소향이다.


-다 니 좋으라꼬 하는 말이다. 안 그렇나?-
동지를 구하듯 응원을 청하는 무당은 대포아지매에게 눈을 돌리며 말한다.
그럼에도 대포아지매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저 모로 돌린 눈길로 창밖만 보는 것이 상관 안한다는 눈치다. 멋쩍은 무당은 치마폭을 고치며 -그래. 굳이 그칼끼야 없제- 하며 입맛을 다신다.



길게 용트림을 토하듯 열차가 증기를 뿜어내며 김천역에 멈추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마대포대나 광목 보따리를 이고 지거나 혹은 질질 끌면서 내리는 틈에 여인네 셋도 내린다.


-소향아, 여가 김천인데. 너그 엄마가 여기꺼정 왔다는 말이제? 그 짐을 이고?-
몇 번밖에 하지 않은 장삿길이지만 부산보다는 대구를 많이 다녔고 또 한두 번은 대구보다도 더 먼 김천까지 몇 푼 더 받아보려 왔다는 소리를 소향도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지는 소향이다.
한여름 날은 일찍이도 밝는데 그 아침이 밝기도 전에 둘이 일어나 주섬주섬 길채비를 하고 소향은 자는 동생들을 한번 휘둘러보고 소향어미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문갑속의 소향 옷을 이리저리 보따리에 싸서 둘이 대폿집으로 나섰다.


소향어미의 울먹이는 숨소리를 대수롭지도 않은 양 손 쳐서 떨구고 대포아지매는 소향의 앞에서 그러나 무당의 뒤에서 길을 나선 것이다.


-아지매야, 우리가 일찌이 나선기 참말로 다행이다. 상주 가는 열차꺼정 한 시간이 넘게 남았으이 점심 묵기에도 딱이네. 퍼떡 가재이. 요 앞에 묵을끼 만타!-
대답을 기다릴 것 없이 무당은 치마 앞자락을 휘여잡고 인파 속으로 파고든다.
즐비한 음식점들이 양쪽으로 쭉 늘어선 길가에는 호객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정신이 없다.

순대국 잡수이소~ 영남에서 젤로 맛있습니더~
낙동강 어죽입니더!
사천요리도 있고 북경요리도 있습니더! 잡숫고 가이소~

거의 사람 소매를 잡고 놓지 않는 지경의 호객꾼들을 무당은 스스럼없이 뿌리치고 길게 평양냉면이라고 빨간색 만장이 걸린 음식점으로 앞장서서 들어섰다.


국수는 여름 한철에 코에 신물이 나게 먹어봤지만 소향은 아직 말만 들어봤지 실지로 냉면을 여태 먹어본 적이 없다. 궁금은 한데 도무지 구미가 없는 소향이다. 배는 고파 허리가 휘어지는데도 입맛이라고는 통 없다.


의자에 앉은 무당은 동행자들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대뜸 냉면 세 그릇을 시키고는 허리춤에서 담배 한대를 뽑아 올리고 허리를 쭉 펴면서 대포아지매한테 묻는다.
-아지매, 내는 자 델따 주고 나서 강원도에 좀 가봐야 되는데. 아지매 혼자 돌아갈 수 있것제?-
-보살님도 참. 아, 지가 나가 한두 살 입니꺼? 큰 발걸음은 마이 안 해봤지만. 그래도 그렇지 오데 집에 돌아가는 길도 모릴까예. 걱정 마이소!-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 아니라 그저 소향이 머물 집이 어떤 집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살림은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한 대포아지매다. 소향어미를 대신한 몸이니 그 마음 또한 소향어미의 마음 마냥 똑같은 것이다.


요란하게 젓가락질을 해대는 무당과는 달리 소향은 냉면 사발을 들고 국물만 들이 마신다.
질기디질긴 가락은 맛도 없을 뿐 그저 쉽게 목으로 넘어가는 열무김치 국물이 시원할 뿐이다. 대포아지매도 배가 고팠는지 무당이 젓가락을 놓을 즈음 같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소향의 그릇을 보고는
-야 야! 니는 우째 묵도 안 했노? 오데 안됐나?-
눈을 찌푸려 걱정스레 묻는다.


-아이라예! 국물이 시원해서 다 마싯으예. 케도 국수는 찔기서 못 먹겠심더-
-냉면이라 쿠는기. 원래 밀가루 국수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기라. 그래서 별미인데-
대포아지매는 아까운 듯 자꾸 눈을 소향이 남긴 냉면 그릇을 힐긋거리는데 남의 일에 신경 안 쓰듯 무당이 다짜고짜 일어서서 음식점 문을 나서며 -퍼떡 가재이~ 아지매!- 말을 남긴다. 돈 내고 오라는 말이렷다. 대포아지매는 아무 말 없이 주인에게 지전을 세어 내주고 소향을 앞세워 역전으로 걸어온다.


차표도 역시 대포아지매가 돈을 내어 사고 셋은 상주 가는 또 다른 화통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열차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숨쉬기도 한결 낫다고는 느끼지만 그래도 여름철 쇳덩어리 화차 속에서 화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마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상주에 도착한 세 여인은 익숙한 무당의 발걸음을 따라 낙동강변을 거슬러 올라가기를 두어 시간. 늦게 지는 해가 어느덧 서산에 걸렸다.
무당은 -아지매! 저기 봉긋이 솟은 봉우리 보이재?- 하고는 태봉을 가리킨다.
-예, 그깁니꺼?-
-그래, 그 옆에 동네 보이제? 그 동네에서 젤로 부잣집이고 이 넓은 들이 거의 다 그 집 뜰이다 쿠더라. 만석도 넘을끼다!-
의기양양한 듯이 앞만 보고 걸어가면서 말하는 무당이다. 자기가 벌려놓은 일이 그렇게 엄청난 집안과 엮었다는 일종의 과시다.


대포아지매도 소향도 대꾸 없이 그저 바쁜 무당의 뒤꿈치를 열심히 좇고 있는데 저만치 강가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한 무리의 사람 떼가 보인다. 더운 여름이니 나무 아래에 쉬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기 다가서서 보니 다름 아닌 거지떼였다.
-마님~ 한 푼 적선하고 가시지예-


소향을 거의 품에 안다시피 한 대포아지매는 거지 떼에 등을 대고 거의 게걸음으로 걷다시피 하는데 대뜸 무당이 한마디 한다.
-아지매. 우리네 발걸음에 복도 많은데 여따 좀 나놔주고 가재이. 소향아 안글나? 밥 한끼 묵었다 치고 이 사람들한테 잔돈이라도 조라. 아지매!-
그 말을 들은 거지떼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 에워싼다.


기겁을 한 소향을 꼭 안으며 대포아지매는 원망스런 눈을 무당에게 돌리다가 거지 떼에게 일갈한다.
-저리 좀 가 있으소! 그라고 누가 대장인지 모리지만 대장만 오소! 원! 정신이 있어야제!- 하면서 에워싼 거지 떼를 벗어나려 발을 옮기자 그 중 허우대가 제일로 멀쩡한 남정네가 나서서 -너그는 저 가 있거라 마님들 귀찮게 하지 말고- 하고는 반쯤 허리를 굽실거리며 대포아지매 뒤를 따랐다.


열댓 발자국쯤 거지 떼가 멀어졌을 때 대포아지매는 소향의 등을 무당 쪽으로 가란 듯이 밀어내고 자기는 속치마에서 지전 한 장을 골라내 대장이라는 자에게 건네는데 문득 얼굴을 보니 눈썹이 없다.
-아이구야~ 이 문디 아이가?-
내밀었던 손을 달군 쇠꼬챙이 잡고 놓듯이 오므려 뒤로 잡아 뺀다.


놀란 소리를 들은 무당이 소향의 손을 휘여잡고 되돌아오자 거지대장이라는 자가 멋쩍은 듯이 허리를 반쯤 낮추고 말한다.
-미안합니다. 마님들. 우리도 산목숨인데 너무 박대하지 마시고 적선해 주시지요-


거지들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변통에 상이군인이 된 자들은 정부의 마땅한 보상이나 후생정책이 없는지라 애꾸눈에 목발을 짚거나 자전거 바퀴 위에 판자를 깔아 만든 구루마에 몸체만 실거나 혹은 보기에 멀쩡한 자들이 헤진 군복만 걸치고 벌건 얼굴로 무리 지어 앞뒤상하 가릴 것 없이 행패를 부리며 구걸 아닌 반 강탈을 일삼는 거지 떼고, 다음은 남편을 사변에서 잃었거나 혹은 징병징용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 딸린 아이와 함께 웅크러진 밥통 하나 들고 떠돌이 구걸행각을 하는 거지 떼고, 그 다음이 아무도 밥 한술 주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문둥이 거지 떼다.
산목숨이지만 동네 어귀에만 들어와도 사람들이 몽둥이로 개 패듯 하여 쫓아내고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가 혹은 무엇이든 도둑맞으면 문디가 훔쳐갔다던가 하는 낭설로 인하여 그야말로 발붙일 곳도 없는 거지 떼 중의 상거지 떼였다.

놀란 대포아지매는 손을 비록 닿지는 않았지만 연신 치마 엉덩이 자락에 문지르면서 닦아내는 시늉을 한다.
-아지매. 그래도 부처님 봐서 암말 하지 말고 적선하고 가재. 다 팔자아이가!-
무당은 담담하게 한마디 하고 뒤로 돌아선다.


대포아지매는 손에 여전히 들고 있던 지전을 땅에 떨구고 물끄러미 구경을 하고 있던 소향의 손을 휘잡고 무당을 향하는데 순간 소향은 손을 잡아 빼고 딸려가지 않는다.
허리를 굽힌 소향은 땅 위의 돈을 주워들고 한 걸음 대장에게 다가가서 건네준다.


-아씨. 감사합니다-
머리를 꾸벅대며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든 대장이 얼굴을 들고 소향을 향해 -성령이 축복을 많이 내려 주실 겁니다- 라며 한마디 더 보탠다.
-야야! 모 하노? 퍼떡 안 오고?-
순간도 못 참고 대포아지매는 벼락같은 소릴 내지르며 소향을 잡아채어 간다.


생전 첨 들어보는 말이다. 성령이라? 소향은 덕이니 복이니 하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성령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성령이 뭐 길래 축복을 준다고?
저만치 문둥이 떼가 멀어질 때쯤 앞서가던 무당에게 소향이 말을 한다.


-보살님예! 성령이 몹니꺼?-
-모라꼬?-
채 듣지 못한 무당이 되묻자 소향이 다시 묻는다.
-아까 그 거지대장이 지보고 성령이 축복을 준다켔어예! 부처님은 알겠지만 성령은 또 몹니꺼?-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세 여인은 계속 걸어간다.


역시 뒤도 돌아보지도 않는 무당은 앞으로 발을 옮기면서
-천주쟁이나 예수쟁이들이 하는 말이니라. 니는 몰라도 된다!-
더 이상 물을 것 없다는 듯 잘라서 말하는 무당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 있고 동네는 코앞에 펼쳐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