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무이 점방 하도록 해주이소!”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7화

김담 | 기사입력 2013/12/22 [18:50]

“우리 어무이 점방 하도록 해주이소!”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27화

김담 | 입력 : 2013/12/22 [18:50]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소향의 일은 이제 집안일이니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보살님은 밖에 이 일은 내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알려질 것은 뻔하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구설수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추석 무렵이나 돼서 한번 발걸음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달포는 남았고 그때쯤이면 제가 보살님께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둘 사이의 거래는 마무리가 되었다는 듯 하는 말이다.


-그라입시더. 마님이 아를 건사하실끼니 지야 이제 마음 놓고 갈랍니더-
돈이 치마 밑에 들어가자 금방 다시 마님이다.


소향이나 대포아지매 일은 안중에도 없이 빨리 이 집을 벗어나서 얼큰한 탁주 한 사발 들이켜고 가랑이 쩍 벌리고 퍼질러 앉아서 돈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무당은 큰아지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아래채로 내려와 신발이 놓인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야야, 내는 갈 길이 바빠서 갈란다. 니는 그저 아지매 말씸 잘 듣고 그라고 아지매는 정말로 혼자 잘 찾아갈 수 있것나?-


몸은 벌써 대문을 향해 돌린 채로 방안의 소향과 대포아지매를 향해 건성으로 묻는다. 낮은 문설주를 피하느라 고개를 숙이며 나오는 대포아지매는 -벌써 가십니꺼? 저녁인데 주무시고 가시지예?- 고무신을 신으며 말한다.
-아이다. 내사 오데 자몬 어떻노? 갈 데도 많고 오란 데도 많테이. 또 보제이-
치마를 펄럭거리며 무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미 솟을대문을 벗어난다.


인사도 할 겨를이 없던 소향도 밖으로 나왔지만 털보무당은 떠나고 둘은 물끄러미 마당에 남겨졌다.


막연한 심정의 대포아지매다. 그래도 여기까지 무당을 의지해서 오긴 왔지만 막상 무당이 휑하니 나가자 텅 빈 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무얼 해야 할지 통 모르겠다.
소향을 데려다 주고 에미를 대신해서 말 한마디라도 야물게 남겨서 함부로 소향을 구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건네준다는 돈을 들고 무사히 삼천포까지 내려가는 게 자기의 일인데 여태 그저 저녁 한 끼 때웠을 뿐 어색한 분위기가 도통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이다.


-소향아. 아지매하고 좀 들어온나-
때마침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다.


대포아지매는 소향을 쳐다보고 손을 다부지게 잡는다. 이제 자기가 소향을 위해 안방여자에게 말이라도 건넬 기회가 왔다는 듯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안방에 들어선다.


-보살님이 안 주무시고 가시네예. 바쁜 모양입니더-
제법 멀찍이 둘이 자리를 잡는다.


-늘 바쁘신 분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도 달포나 있으면 또 오시기로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주머니께서 먼 길에 소향을 대동하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소향에미한테도 전해주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소향을 동기간 같이 잘 데리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럼 아주머니께서는 내일이라도 가실 겁니까? 아니면 며칠이라도 계실 겁니까?-
있을 일이 뭐있으랴? 그저 인사치레로 남기는 큰아지매의 말일 뿐, 남아있는 거래를 종결하고자 하는 큰아지매의 확인일 뿐이다.


-지야 뭐, 소향이 있을 데도 봤고 또 아지매도 봤으이 됐심더. 낼 가야지예. 지도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비워둘 수가 없습심더-
한손으로는 여전히 소향의 손을 잡은 채 대포아지매는 머리를 조아려대며 말한다. 알게 모르게 큰아지매의 기세에 눌려있는 형세다. 어쩌면 대가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거나 또는 계집 팔아먹는 형편에 설 수 없는 얼굴의 어설프고 난처함일 수도 있다. 비록 자기딸은 아니지만……. 갑자기 밖에서 시끌거리는 아이들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인!-
부르는 소리만 안방에 흘리고 태섭은 댓돌 위에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뒤에 따라오는 두 사람을 보며
-들어오시구려. 요기라도 하셔야지. 때가 됐는데-
큰아지매가 일어서서 치마폭을 잡고 마루로 나서보니 광수와 재수가 큰아버지를 따라 이미 마루에 올라와있고 그 뒤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있다. 영문을 모르는 큰아지매다.


-어서들 오세요. 영감은 저녁은 하셨소? 동네서 자실 거라 믿고 우리는 이미 먹었는데?-
건성으로 두 남자를 향해 짧은 인사만 하고 태섭에게 얼굴을 돌려서 묻는다.
-내는 했는데, 지목수가 늦게 와서 못했구려. 할 얘기도 있고. 상이나 내오시구려-
-아이구, 저녁은 됐심더, 우린! 마님, 걱정 안하시도 됩니더!-
시대가 시대인지라 큰아지매를 마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드문 마당에 그 중 나이든 지목수는 여전히 마님이라 부른다.


지목수의 손사래 뒤에 장성같이 무표정하게 서있는 장씨가 있다.
-안 그래도 지난번에 수고를 하셨는데 마침 잘 오셨네요. 약주라도 한잔 하셔야지요. 어서 들어오세요. 야야, 광수야, 엄마 좀 불러 오너라-
마님은 사랑방에서 동생하고 큰아버지 옆에서 놀던 광수를 향해 말하면서 마루로 올라서는 지목수와 장씨에게는 길을 터주느라 마루 한 편으로 몸을 옮긴다.


-제수씨 오라할 꺼 뭐 있노? 당신이 좀 하민 되제!-
퉁명함이 묻어있는 영감의 말에는 들은 체도 안하고 사랑방으로 들어서는 두 남자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서서
-어떻게 발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묻는 큰아지매다.


-신이 있던데……. 누가 오셨소?-
태섭의 대답 대신 하는 물음이다.
-아? 예! 저한테 볼일이 있어서……. 재수야, 빨리 가서 엄마 오라고 해라-
우리에게 볼일이 있어서도 아니고 저한테라고 한다. 그 말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더 묻지 말라는 말이렷다. 또 대충 차리면 될 것을 굳이 제수씨를 오라 가라 하는 마눌이 밉다.


쓴 입맛을 다시며 태섭은
-당신도 잠깐 앉구려. 우리 얘기도 들어야 할끼 있으이. 당신도 알 테지만 낼부터 샘을 풀낀데. 아무케도 정자를 하나 지아야 될꺼 같소. 빗물도 막고 낙엽이나 먼지도 막을 뿐 아니라……. 우짜든지, 샘이 너무 들어나 있으이께네. 그래도 그기 참 귀하고 중한 샘인데-
대충 중얼거리는 태섭의 말에도 금방 알아차리는 큰아지매다.


인근에서 젤로 물맛 좋고 깊다는 샘이지만 지붕 하나 없이 방치돼 있는 탓에 바람 불면 온갖 것들이 날라들고 땡볕에서는 아낙들이 햇빛 한줄기 피할 수 없이 노천상에 있는지라 비록 물 한 동이 길러본 적 없는 자신이지만 알고는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뭔가 지나가는듯한 큰아지매가 입을 연다.


-샘에 지붕을 씌우자는 겁니까?-
-케서……. 내 지목수를 오라켔구만. 당신이 돈을 들이서……. 그래도 그거 할 사람은 당신 아니몬 누가 하겠노?-
마눌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태섭이 환한 얼굴을 짓는다.


돈줄을 쥐고 있는 마눌이니 좀전에 입속에서 돌던 쓴맛도 꿀꺽 삼키고 마눌을 치켜 올린다.그래. 이참에 좋은 일도 할 수 있지. 샘을 파서 사람들에게 덕을 쌓는다고도 하지 않던가? 새로 샘을 파는 것도 아니고 천금을 들여 절을 짓는 일도 아니고. 좋은 일로 자신이 하는 씨받이 일이 그저 잘 성사됐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큰아지매다.


-마침 좋은 생각을 하셨네. 영감님이. 그럼 얘기들 나누시고……-
하고는 동의를 한다는 표시를 마치고 일어서려던 큰아지매는 아직도 태섭이 옆에서 때기를 접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 접는다.



집을 지키고 살았지만 부엌살림이라고는 상관 안하고 사는 큰아지매는 막상 그 흔하디 흔한 주반 하나 차릴 엄두가 안 난다. 조금은 난감한 생각이 들지만 해볼 요량으로 신을 돌려 신고 봉당으로 내려서서 부엌으로 들어가려다 돌아서서 안방에 앉아 있는 두 여자에게
-아주머니, 내 상 좀 보고 들어오겠습니다. 소향아, 너 잠깐 좀 나오느라-


두 짝으로 닫혀있는 정지문을 열고 넓은 부엌으로 들어서니 게을배기 동서가 왜 정지문을 닫아두었는지 알 것 같다. 안방에서 물린 상은 그대로 부뚜막에 걸쳐져있고 바가지는 열려있는 물 단지 위에 둥둥 떠있고 반갑지 않은 음식냄새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어느새 나왔는지 두 여자가 부엌으로 들어선다.
막연하게 서있는 큰아지매 뒤에서 대포아지매가 입을 연다.
-손님 오신 갑지예? 우리한테 시키시이소. 뭐 하민 됩니꺼?-


소매를 걷어붙이며 대포아지매가 부엌을 둘러보지만 그녀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의 살림이라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저 술상 하나 볼라는데도 동서가 없으니-
말끝을 흐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는 큰아지매를 보고 대포아지매는
-술상이몬 됩니꺼? 그기사 됐심더. 겉절이 있고 하이께네. 술이나 내오이소! 소향아, 니는 설거지나 해라-
부엌을 치우지도 않고 문을 닫고 나간 그 동서라는 여자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포아지매는 소향에게 상 위에 뒹구는 빈 그릇들을 동이에 주섬주섬 담아주고 자기는 상을 훔쳐낸다.


소향도 물을 바가지로 옹기동이 속에 퍼넣고 쭈그려 앉아 그릇을 부수기 시작하고 큰아지매는 광에서 정종 한 병을 들고 오고 대포아지매는 행주로 수저며 잔을 닦는다.
-아지매, 물통 속에 수박이 있을 겁니다. 한번 들여다보세요. 화채라도 해보지요. 상이라고 올릴 것이 없으니-


큰아지매의 해보지요, 하는 말이 참 어정쩡하다. 자기는 못한다는 말투고 또 그래도 손님으로 온 여자에게 대놓고 시킬 수 없으니 하는 말투다.


이미 어둑해진 저녁이라 깊은 물 단지 속은 더 깜깜하다. 속이 보이지 않자 대포아지매는 저고리 팔을 한껏 걷어 올리고 손을 물속에 넣고 휘젓는다.
-있네예, 그랍시더! 시원한 화채 한 그릇이몬 여름에 됐심더! 쿤데 꿀 좀 있습니꺼?-
-아 참. 꿀도 내와야야지요-


돌아서서 큰아지매가 다시 나가고 대포아지매는 수박을 숭숭 썰어내고 소향은 마친 설거지 동이를 들고 부엌을 나서고 별것 아닌 술상 하나 마련하는 부엌에 세 여자가 왔다갔다 분주하다.


옻칠 잘 입힌 육각 소반을 든 큰아지매가 건넛방으로 가자 대포아지매는 남아있는 수박을 크게 한조각 썰어서 소향에게 주며
-아나, 니도 무라. 보아 하이께네, 저 아지매는 안방 구들만 지킷제 딴살림은 통 모리는 사람이다. 니가 살림꺼정 해야 할랑가도 모리겟네-


소향이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그냥 혼자 하는 말인지 구분 없이 수박 한 쪽을 입에 넣고 부엌을 둘러보며 말하는 대포아지매다.


연신 수박씨를 손으로 받아내고 훌훌거리며 벌건 속을 입속에 구겨넣고 대꾸도 없는 소향을 물끄러미 보며 대포아지매는 속으로 -저 건너방에 들어앉아있는 영감이 그 남정네인데. 너는 도시 거기엔 관심도 없구나. 내는 궁금해 죽겠구만서도……- 하면서 철없는 소향을 넋 놓고 본다.


-들어오세요, 아지매-
큰아지매의 부름에 먹던 수박을 얼른 치우며 입을 훔치고 대포아지매는 또 소향의 손을 부여잡고 부엌을 나선다.


다시 자리 잡고 앉은 세 여자들. 역시 입을 먼저 열고 길을 내야 할 사람이 큰아지매다.
-손님을 부엌까지 들게 하고 제가 지나쳤습니다만 덕분에 동서 없이도 상을 봤네요-
미안한 듯 계면쩍은 듯 엷은 미소와 함께 치사부터 마친 큰아지매는 다리를 고쳐 앉는다.
-언지예~ 그기 무신 상이라꼬예-
대포아지매도 거들며 어색함을 버무린다.


-아시다시피 보살님 덕에 소향이가 여기까지 오게 됐고 그리고 전에 소향이와 나눈 말이 있어서 약속을 지켜야합니다. 우선……-
하면서 문갑 속에서 미리 준비해서 싸놓은 보자기를 꺼낸다. 아까 전에 무당에게 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뭉치다.


-저도 큰돈이라……. 속으로 걱정을 했답니다. 누가 어떻게 이걸 지닐지- 하면서 그들 중간에 내놓는다.
-삼십만 원이다. 소향아, 그리고 니가 아들을 놓고 나서 다시 십만 원을 주기로 했으니 나머지는 그때까지 있거라-
이왕지사 거래니 확실히 해야 할 것, 주저 없이 입에 올린다.


대포아지매는 어쩔 줄을 모른다. 청보자기에 싸여는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큰돈 앞이다. 자기 돈이 아니니 감히 돈뭉치에는 물론 손 댈 염두도 안 나고 갑자기 사람을 앞에 놓고 아들이며 십만 원이며 거침없이 무슨 물건 거래하듯 쏟아내는 큰아지매의 말을 들으며 대포아지매는 비로소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사각으로 내려 돈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소향이 거침없이 돈 보따리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것을 대포아지매 무릎에 털썩 올려놓으며
-아지매, 지는 아지매만 믿습니더, 우리 어무이 아지매 옆에서 같이 점방 하도록 해주이소. 꼭 그리 해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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