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찾아, 그 자기 말고 너”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17) 제리케이 “You’re Not A Lady”

블럭 | 기사입력 2014/01/23 [11:47]

“자기를 찾아, 그 자기 말고 너”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17) 제리케이 “You’re Not A Lady”

블럭 | 입력 : 2014/01/23 [11:47]
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웹진 스캐터브레인의 편집자이자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힙합 곡에 대한 소개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제리케이(Jerry.k)라는 한국 래퍼의 “You’re Not A Lady”라는 곡이 생각났다.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곡이라서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작년에 발표된 곡이라 이내 잊고 지냈다. 그러다 이 곡을 생각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먼저, 이 곡을 떠오르게 만든 곡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한창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신인 걸그룹에게 쓴 소리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AOA(에이오에이)라는 그룹이 얼마 전 싱글 “짧은 치마”를 발표하였다. 깔끔하고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사운드를 가져온 팝 음악이며 신시사이저 운용이 빛을 발한다. ‘용감한 형제’가 최근 선보였던 음악들과 결을 같이한다는 점은, 좋은 곡을 만든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비슷한 곡의 반복이라는 점에서는 단점이기도 하다.
 
“난 아직도 쓸만한데”와 같은 가사는 다소 불편하다. 굳이 이 가사의 화자가 걸그룹 이면에 있는 남성 작사가라는 점을 주목해 다루지는 않겠다. 가사를 쓸 때 직접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당당한 여잔데” 바로 다음 나오는 내용이 “왜 나를 힘들게 해”, “넌 나만 무시해”라는 것은, 그 당당함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되짚게 한다. 여성의 외모에만 초점이 잡힌 가사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짧은 치마”에 등장하는 화자는 외모로 어떻게든 상대를 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짐작해보건대, 화자가 그런 생각을 하므로 상대방은 별 관심 없을 수도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가 가진 매력일 것이다. 그래서 제리케이의 곡 “You’re Not A Lady”가 생각났다. 일종의 답가로서,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짧은 치마 vs. You’re Not A Lady
 
▲ 제리케이(Jerry.k)의 싱글 "You’re Not A Lady"
제리케이(Jerry.k)는 한국의 힙합 아티스트이다. 서울대 재학 중에 음악 활동을 하였고 이후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다시 음악에 전업한 사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곤 하였다. 작년에는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여 더욱 공격적인 활동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DOPE DYED]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You’re Not A Lady”라는 곡은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 중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일명 ‘어장관리녀’의 모습, 다른 하나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여성의 모습이다. 여성들이 다 이렇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의 형상화된 모습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두 경우 모두 내면에 자신을 채우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기를 찾아. 그 자기 말고 너”라는 말을 강조한다. “직접 벌어서 써” 같은 표현은 식상하다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표현을 써왔던 사람들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를 온전히 세우는 과정은 중요한 것이다.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모습 중에는 상업적 존재 또는 ‘멘토’들이 계몽의식에 근거해 ‘당신의 자존감을 세우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이성애 관계 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이성이)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강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유형들은 차치하고, 꼭 어떤 사회운동의 일환이나 과정이 아니더라도 늘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사유의 출발점에 있기 때문에, 사유하지 않는 시대에서 이러한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방법이 있다거나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투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는 자가 가지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 자보다 훨씬 많기에 다시금 강조하게 된다.
 
* 제리케이의 You’re Not A Lady 라이브
* “You’re Not A Lady”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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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 불안불안 2014/01/31 [00:33] 수정 | 삭제
  • 4. 미국흑인남성문화와 한국남성문화의 내면화된 자발적 식민성과 페니스파시즘. 자신을 차별하는 외부에 대한 저항과, 자신 내면의 남성문화로서의 여성상품화와 동성애혐오에 대한 정당화. 힙합의 저항적 가치와 예술성 등 단순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심리적인 공통점이 있어보입니다. 힙합 씬 안에서 이런 주제로도 다뤄봐주시길 기대해봅니다. 힙합의 새로운 언어로서의 희망을 품고, '여성주의 시각으로서의' ‘이 세상의 모든’ 음악 이야기, 특히 힙합에 관한 글들 늘 기다리고있겠습니다.
  • 가끔 불안불안 2014/01/31 [00:29] 수정 | 삭제
  • 1.블럭님께서 문제제기 된 부분을 공감해주시고 흔쾌히 사과도 하신 점이 진심으로 감사했던것이고, 2.여성주의 뮤지션을 소개하는 코너로 바꾸자고 의도하거나 언급한것도 아니었고 , ‘제이케이’ 씬의 문제가 되는 지점을 객관성 있는 남성뮤지션과 여성주의적 뮤지션과 비교해보는 ‘대안’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지적에 그치는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하게됐습니다. 3.이효리씨의 새로운 행보와 그의 앨범의 변화는 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매력을 고민하면서 진정성 있는 변화에 성공하는 것이 여성주의 뮤지션이지않을까요? 여성주의 음악을 '씹선비'를 강요받는 양 멍석이 확 좁아지는 양 답답하게 느낄 필요는 없을듯합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라, 늘 열려있고 넓혀나갈수 있다는 마음으로, 신인의 등장도 기대되지만 이효리씨처럼 변화를 통한 경우도 있을것입니다. 다른 장르입니다만 만화작가 한혜연씨도 여성주의? 만화잡지 '나인'을 통해 작품의 변화가 가능했지요. 여자들이 개념이 없어서 ‘멋없게 덜큰’ 것이라기보다 주류 (시)장이 여성들을 생존을 위한 ‘애기(며늘아기)’로 만드는 문제도 있겠지요. ‘어리다’는 것이 거래가치-권력이 되는 여성의 현실에서 특히 상업주의 씬에서는 20대에 여성주의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문제도 있겠고요.
  • jodiemhy 2014/01/30 [07:13] 수정 | 삭제
  • 블럭 씨, 댓글로 답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문투나 글의 구조 때문에 제가 댓글을 쓴 의도가 어긋나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저는 댓글을 통해 블럭 씨가 쓰신 글의 주장, "제리케이의 you're not a lady는 여성주의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AOA의 짧은 치마와 대조된다"는 논점을 비판한 것이지, 블럭 씨의 글이 모욕적이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이 노래를 듣고 느낀 감정에 대해서 블럭 씨가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독자분의 댓글처럼, 이 곡이 공감할 만한 곡인지는 개인의 판단이겠고, 제가 여성주의자 독자로서 드리는 피드백은 이 글에 담긴 주장에 대한 것이죠. 저는 이 연재글들의 목적이 '여성주의 뮤지션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이 칼럼의 제목대로 이 글들은 여성주의의 시각으로 하나의 노래를 들여다 보는 작업일 테지요. 앞으로도 독자들과 함께 여성주의적 사고를 단단히 다져가는 글들을 부탁드립니다.
  • 가끔 불안불안 2014/01/30 [01:42] 수정 | 삭제
  • 안그래도 제 댓글 때문에 누군가 또 댓글을 달아주시느라 수고하실까봐, 저도 '여성주의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여성뮤지션'을 '여성주의로부터 자유로운 (그냥)뮤지션'이라고 바꿀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상해보았습니다만. 여성주의를 음악적 완성도 없이 무리하게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음악으로 승화시킨'으로 설명이 다 되는듯해서 그냥 그렇게 썼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음악적 완성도로 성공시켰을때 남성뮤지션과 차별화된 독보성을 인정받고 음악적인 질을 높이 평가받아온듯합니다. AOA 등의 아이돌-걸그룹 중에도 누군가는 오늘도 가사를 써보며 노력하고있겠고요.) 그리고 위의 글에 있어서는 '제이케이'의 정서가 여성주의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서 비교할 필요가 있을듯해서 그리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성뮤지션 김목인씨의 앨범도 예를 들었고요. 블럭님의 글이 신선하고 기다려지는 이유는 주제가 힙합과 여성주의라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겠고 힙합 씬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기에 힙합과 여성주의라는 주제 안에서의 글쓰기의 시도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외 다양한 여성 남성 뮤지션들의 음악, 퍼포먼스에 대한 글들도 일다를 통해 많이 많이 접하게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소녀들이 상상에서나마 제한없이 자유로이 넘나들며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지평을 함께 넓혀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기에 남성작가들의 서적도 많이 읽어놔야하듯 남성뮤지션의 가사와 공연도 선입견 없이 즐기는것도 중요하지요. 다만 사막화 되어가는 이곳에서 오아시스 같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정체성도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 독자 2014/01/29 [08:19] 수정 | 삭제
  • 저는 약간은 다른 의견인데요. 주제의식에 꼭 끼워맞추는 음악컬럼은 진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요. 여성주의 뮤지션은 얼마되지 않는데 그 나물에 그 밥처럼 우리끼리 그러는 거보단, 힙합이든 다른 장르든 음악적인 질을 높이 평가받는 곡들 중에서 소개해주세요. 그것이 공감할 만한 곡인지 아닌지는 듣는 사람 몫으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가끔 불안불안 2014/01/28 [22:05] 수정 | 삭제
  • 기다려온 또는 신선한 코너이기에 블럭님의 글을 챙겨보고있습니다. 힙합 씬 안에 현실여성이 존재하길바라는것은 보다 많은 한국남성들이 여성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기를바라는것만큼이나 더뎌서 몇걸음 떼다 다시금 주저앉아버리는 돌배기를 보는듯하다보니 '힙합과 여성주의에 관한 글쓰기'는 일다의 다른 기사들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고 무리가 많은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기본적인 선은 있어야할듯합니다. 아이돌그룹 AOA와 비교해서 제리케이는 여성주의적 의식이 있는양 글쓰기를 하는것은 선을 넘은듯합니다. (지금 당장은 오빠,아저씨들에게 엉덩이를 흔드는듯이 보이는 걸그룹소녀가 시간이 지나 인지도를 형성하고 개인적인 인터뷰의 기회를 얻어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기시작할때가 온다면 제리케이보다는 그 여성이 여성주의적 화자가 될것이 분명합니다. 여성의 신체로서의 경험을 제리케이가 대신해줄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힙합과 아이돌그룹을 비교하지마시고 힙합 씬 남성들의 한계-고착화된 유치하고 오만한 착각-와, 세상과 관계에 대해 객관성이 있는 남성뮤지션들(예를 들어 김목인씨의 '한다발의 시선'앨범 등도 궁금하고요)과, 여성주의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여성뮤지션을 함께 비교하면 어떨지요. 힙합 씬 안에서 여성주의를 찾으려는 노력은, 2008년 조선총독부 표 호주제도 -드뎌!- 폐지됐다고 수컷닭벼슬 거세됐다고 한국이 여성우월국가됐다며 못견뎌하는 일부? 한국남성들에게 민주주의가 win-win임을 이해시키는것만큼이나 힘든 일이 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번과 같은 글은 일다에 존재하기에 부적합해보이기까지합니다. 이미 숙지하신듯하고 사과까지 해주신 점은 감사드립니다만, 앞으로는 주제가 선명히 전달되는 글쓰기를 부탁드립니다.
  • 블럭 2014/01/28 [16:38] 수정 | 삭제
  • 우선 훈계로 들리셨다는 점, 그리고 충분히 그런 여지가 있다는 점을 뒤늦게 인지했습니다. 더불어 하나의 여성상을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부분은 제가 고민했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줍잖은 변명을 하기보다는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세심하게 곡을 선택하고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피드백 감사합니다.
  • jodiemhy 2014/01/28 [15:09] 수정 | 삭제
  • 블럭씨가 쓰신바와 같이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을 북돋거나 여성들에게 남성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정의해보라고 말하는 곡들, 이제까지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표현을 써 왔던 사람들[은] 여성들"이었죠. 그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했고 해오고 있는 말을 남성인 제리케이가 했을 때 느낌이 좀 다르다고 하셨는데 그 다름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가 읽고 싶네요. 여성인 저에게 이 곡은 페미니즘적 연대라기 보다는 훈계로 들렸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이 형상화한 여성들을 "덜 컸다"고 정의하는 점이나 라이브 영상에서 "여기 오신 모든 여자분들, 다 멋있게 크세요"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모욕적이었고, 레이디라는 특정한 여성상을 여성들이 목표삼아야 할 이상으로 설정한 점 또한 껄끄러웠습니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면서 '여성들아 깨어나라' 류의 작품을 만든다면, 일단 어째서 스스로는 여성들에게 충고를 할 만한 지점에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랩퍼의 길을 걸으며 '자기 말고 자기'를 찾고 있는 제리케이씨의 용기는 멋지지만,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수가 여성인 현실에서 그런 용기 또한 남성인 제리케이씨가 가진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리케이씨 스스로 만약 블럭씨가 쓰신 것처럼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여성상들이 형상화된 모습 뿐이란 것을 알고 있다면 이렇게 여성들을 연민과 훈육의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발화를 했을까요. "나 없이 못 산다고 말하는 넌 매력없어 / 여자로 안 보여 아직 덜 컸어"라는 가사에서 제가 깨닫는 건, 이 노래는 듣고 있는 여성들보다 제리케이씨 본인의 자존감을 위한 곡이라는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