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저래 제 목숨 생각 않고 대들꼬?”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1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1/25 [23:56]

“어째 저래 제 목숨 생각 않고 대들꼬?”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1화

김담 | 입력 : 2014/01/25 [23:56]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지금 있는 버팀목으로는 두 사람을 못 올립니다. 다친 사람을 끌어올리려면 한 사람이 안고 올라와야 하는데 밧줄도 시원찮고. 도르래를 다시 걸어야 합니다-
줄을 잡은 채 영문도 모르고 장씨의 말을 들은 남정네는
-아니! 지금 사람이 다쳐서 죽어나가는데… 언제 밧줄을 갈고 나무를 댄단 말이요?-
눈을 부라리며 엎드린 채 역정을 낸다.


장씨는 허리를 펴서 주위를 보며 주문한 사다리며 서까래가 오는지 둘러보며 말한다.
-죽더라도 덜 죽게 해야 하고 다쳤더라도 더 다치게 하면 안 되지요-

지목수는 어깨 위에 나무 한 아름을 올리고 왔다. 또 어떤 남정네 둘이 긴 나무 사다리를 들고 왔다.
-목수님! 지반이 흔들리면 더 무너질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더 멀리 내몰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수님은 도르래를 저하고 같이 걸읍시다-


한 열 걸음 정도밖에 서서 초조해하던 태섭이 그 소리를 듣고 태광을 부른다.
-태광아! 니가 퍼떡 사람들 내보내라. 전부 멀리 나가서시오-
팔을 휘저어서 사람들을 향해 마치 까마귀라도 내모는 듯한 시늉을 한다.


-당신은 밧줄이 안 떨어지게 그대로 잡고 있으시오. 우리가 녹로를 다시 매야 합니다. 누구 힘쓸 사람 둘만 오시오-
장씨가 주위를 보고 소릴 지르자 남정네들이 들어선다.


지목수가 매여 있던 도르래를 풀고 장씨와 남정네들이 서까래를 고루 주위에 세우고 다시 밧줄로 동여맨 후 장씨가 지목수에게 한마디 한다.
-아무래도 줄을 겹으로 걸어야 되는데 줄이 모자랍니다. 샘이 깊어서. 우리에게 쓰던 것이 있지요?-


지목수가 몰고 다니는 달구지에는 모든 목수 장비와 연장들이 있었다. 대들보를 올린다든지 지붕 위로 흙뭉치를 올릴 때 쓰던 밧줄을 말하는 것이다. 지목수는 -있긴 있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낀데- 하면서도 황급히 자리를 뜬다.


샘 속에는 두 남정네가 있다. 늘어져있는 주섭을 팔로 안고 겨우 목만 물 위로 내빼고 서있는 또 다른 남정네는 소릴 지른다.
-모하고 있노? 사람 죽겠구먼!-
장씨는 엎드려서 조용히 샘 아래를 보고 말한다.
-내 말 잘 들으시오. 만일 우리가 위에서 일하는 동안이나 혹은 내려가는 동안 축석이 빠져 내리면 즉시 물속으로 몸을 숨겨야합니다. 그러니 항시 위를 보고 있으시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곧 내려갑니다-


몸을 일으킨 장씨는 이미 뒤에 밧줄을 들고 온 지목수가 있는 걸 보고
-목수님. 줄을 이어야 됩니다. 저 사람이 잡고 있는 줄 끝에 우리 것을 묶고 그 끝을 다시 도르래 속으로 넣어 내리면 두 겹이 됩니다-
남정네가 여전히 샘가에서 엎드린 채 한손으로 밧줄을 잡고 있는 동안 지목수와 장씨는 척척 일을 진행한다.



온동네 사람들이 샘을 주위로 골목을 메우고 담 너머로 다 모여서 보고 있었다. 한편 땅에 퍼질러 앉아 소리를 지르는 여인은 분명 샘 속에 잇는 남정네의 아낙이 분명하다. 서너 명의 여자들이 발광을 하는 여인을 진정시키느라 붙잡고 누르고 부둥켜안고 난리다.


-됐습니다. 목수님. 제가 내려가는 동안 밧줄이 안 무너진 쪽으로 내려가도록 당기면서 내려야 합니다-
허리춤을 추어올리면서 장씨가 지목수를 보고 말한다.

 

-자네가 내려갈라꼬?-
눈이 휘둥그레진 지목수가 한껏 걱정되는 눈치다.

 

어른 팔로도 한 팔은 됨직하게 한쪽 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작지도 않은 돌무더기를 어떻게 피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속에 장씨는 누구의 부름도 없이 자진해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아침에 그저 지목수를 따라 샘 위에 씌울 정각일을 하러 왔건만 샘가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황당한 사건에 처음에는 장씨도 지목수와 함께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입만 아우성이지 도무지 사람 목숨이 경각에 놓인 지경에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서 일을 지휘하기는커녕 무너지기 직전인 샘가에 너도나도 더 구경하겠다고 몰려드는 것이 장씨의 눈에 그저 한심하게 보였고 더 이상 방치만 할 수 없는 심정에 소릴 지르고 들어섰던 것이다.


-내가 다친 사람을 안고 올라와야 되니 무거울 겁니다. 목수님이 여기 장정들하고 같이 당겨야 합니다. 당길 때도 안 무너진 쪽으로 밧줄을 당겨서 올리고요. 자! 밧줄 잡으시오-
하고는 밧줄 끝에 매인 장작 마디 위에 발을 올리고 몸을 지탱하니 밧줄이 휘청거린다.


-천천히!-
같이 줄을 잡은 남정네들에게 지목수가 소리친다.


샘이 깊다. 중천에 뜬 해가 다행히도 속을 비추는지라 물속 사람들이 보인다. 가마 한 폭은 됨직한 돌이 빠져버린 석축은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위태롭지만 장씨는 이미 내놓은 목숨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무섭지도 않고 걱정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겪어보았던 그 많던 일들이 이미 목숨을 수없이 뺏어갈 수 있었는데도 지금 이렇게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이 순간까지 남겨 놓았으니 그저 담담한 마음이다.


-누고? 저 사람은?-
-이이고야~ 지발 아무 일 없구로. 부처님요…-
여기저기서 여자들 소리가 들리지만 남정네들은 숨을 죽이고 보고 있다.


서른 자나 됨직한 샘이다. 열 자나 내려왔을까 무너진 부분을 지나던 장씨는 위를 보고 소리친다.
-잠깐! 그대로 잡고 있으시오- 하고는 무너진 부분을 살핀다.


호박보다도 더 큰 돌 몇 개가 위태롭게 포개져 있다. 조금의 흔들림이나 충격에도 쏟아져 내릴 모양새다. 어쩔까? 이대로 두고 내려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인다. 그렇다고 돌을 안전하게 하기에도 줄에 매달려있는 자신의 몸이 불편한 것이다. 가만히 보니 그저 위에 걸려있는 큰 돌 두 개정도만 내릴 수 있다면 나머지는 그런대로 서로 맞물고 있어줄 것 같다. 장씨는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사람 하나를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말한다.


-반대쪽으로 옮기고 몸을 물속 깊숙이 숨기시오. 내가 돌을 떨어뜨릴 것이니 물속 깊이 앉아야 합니다-
숨을 헉헉대던 남정네는 황망해서 기가 차다는 듯
-누굴 죽일라카나? 돌을 떨쿠다이? 정신이 있나 없나?-
-시간이 없으니 내 말대로 하시오. 안 그러면 나도 당신도 다 죽습니다. 자! 돌 내립니다-
장씨가  한쪽 손으로 돌을 건드는 시늉을 하자 물속의 남정네는 더 이상 대꾸할 겨를도 없이 훌쩍 물속으로 몸을 감춘다.

 

최대한 사람을 피해 돌 두 개를 밑으로 떨어뜨리자 첨벙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시 남아있는 돌을 보니 아까보다는 덜 위태로워 보인다.


푸우 하는 소리와 함께 남정네가 올라오고 장씨는 위를 보고 다시 소리친다.
-줄 내리시오-
장씨의 발이 물 위에 닿자마자 남정네는 팔에 안고 있던 늘어진 주섭을 놓고 냅다 밧줄을 잡는다.
-지금 뭐하는 거요? 사람을 물속에 처넣다니!-


명줄 건지기에 급급한 남정네는 장씨의 소리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남자는 줄을 양손으로 잡고는 오들오들 떤다. 하기야 아무리 한여름이라 해도 차디찬 물속에서 한 시간 넘게 있었으니 오한도 들만도 하겠지만 장씨의 눈에는 지금 떨고 있는 것은 오한이 아니라 죽음을 목격한 필부의 두려움이라 생각하며 물속에서 건져낸 축 늘어진 주섭을 팔로 안고 위에대고 소릴 지른다.
-올리시오-
줄이 위로 올라가자 장씨가 말한다.
-석축은 건들이지 마시오. 그리고 위에서도 천천히 줄이 흔들리지 않게 당기고!-


장씨와 주섭을 뒤로 두고 올라가는 남정네는 마치 나뭇가지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장씨는 속으로 못난 놈! 다쳐서 늘어진 사람을 남겨두고 성한 자기가 먼저 올라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다시 줄이 내려오고 장씨는 가슴에 주섭을 안고 양팔로 감싸 안은 채 밧줄을 손으로 움켜잡아 밧줄이 주섭의 등 뒤에서 지탱하도록 자세를 잡고 장작토막에 걸터앉았다.
-올리시오-
줄이 오른다. 둘의 무게는 상당하지만 위에서도 지목수와 또 다른 장정 서넛이 함께 당기니 쉽게 쑥쑥 올라간다. 무너져 내린 부분을 지나고 또 몇 번의 멈춤과 올림이 반복된 후 드디어 환한 햇빛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왔다-
사람들의 아우성이 장씨의 귀에 들린다.
-와, 안있나! 그, 광수네 집 고칠 때 목수하고 같이 왔던 사람. 그 사람이네!-
-아이고야~ 우째~ 저리도 지 목숨 생각 않고 대들꼬! 참말로-
-참말로 다행이제. 그나저나 주섭이 아제는 괜찮아야 할낀데-


가까이 대들지 말라던 장씨의 호령 때문일까. 구경꾼들은 그저 밀치고 밀리고 하지만 감히 샘 주위로 몰려들지는 않는다. 한 무리의 남자들은 샘에서 올라온 주섭을 등에 지고 읍네 병원으로 황급히 떠나고 물에 흠뻑 젖은 장씨와 지목수 그리고 옆에서 거들던 몇몇은 샘가의 돌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빠진 혼줄을 잡아 챙긴다.


-자네 괜찮나?-
지목수의 물음에 젖은 바지를 툭툭 털어내며 장씨가 씩 웃는다.
-하늘이 도왔지 않습니까?-
-주섭이 오늘 운 좋았다. 아이다, 우리 동네가 운이 좋았제. 까딱 잘못 됐더라면 우리 동네 샘 파묻었어야 됐을 낀데-


끝까지 옆에서 밧줄을 챙기고 당기던 남정네는 하늘을 보고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한다. 만일 샘에서 누가 죽기라도 했더라면 아무리 좋은 샘이라도 메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렷다. 난간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우물에 종종 동네의 어린아이들이 빠져죽거나 또는 비록 흔하지는 않아도 한 많은 여자가 자살이라도 하는 날에는 영락없이 그 샘은 메워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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