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알겠노? 겨우 솜털 벗겨진 나이인데”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8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3/17 [11:28]

“뭐 알겠노? 겨우 솜털 벗겨진 나이인데”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8화

김담 | 입력 : 2014/03/17 [11:28]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마을 한 귀퉁이에 있는 곳집에서 상여를 꺼내온다.

어려운 살림이고 또 상주도 없는 집안이니 그저 형식만 차릴 뿐 감히 꽃 한 송이 만들어 붙일 엄두를 못 낸다. 하지만 상여에 달린 나무 조각의 형형색색 도깨비상, 호랑이상, 물고기상, 심지어 극락조라 불리는 장닭이나 봉황이 꽃상여를 버금가게 장식하고 있다.

마을장정 두서넛이 장지에 지관을 대동하여 묘를 파고 태섭이 건넛마을에 있는 선소리꾼을 불러오고 하여서 삼 일째 되는 날 아침에 마당에 상여가 놓여졌다.

관이 들려서 방을 나오는데 그 뒤에 머리에 새끼줄을 쓴 창호어마이가 눈물 한 방울 없는 곡을 하며 따라 나오고 그 옆에는 창호가 흐느적거리며 장난기 가득하게 따라나선다. 만장도 없다. 죽은 자의 흔적은 적을수록 좋을까? 창졸지간에 당한 상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소향은 삽작 밖에서 상여틀에 올려지는 목관을 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느 목숨이 이제 저 틀에 묵이는구나. 그리고 그 성하지 못하다는 을순이라는 딸도 누가 씌워주었는지 머리에 새끼줄을 올리고 얼굴에는 히죽한 웃음을 머금은 채 봉당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자신도 이 천 리 먼 곳에서 온 삶이지만 저 죽은 목숨도 천 리 먼 곳으로 가고 있구나. 그리고 자기 또래의 성치 못한 을순이는 아직 천 리 먼 곳을 가야 하는구나. 측은한 마음이 든다.

소향은 그렇게 살고 죽기는 싫었다. 할 일이 많다. 동생들도 거두어야 하고 엄마도 돌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서 앞에서 넘어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있을 때 쏟아지던 뭇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리며, 또 모질게 춥던 날 염씨내외가 내뱉던 빨갱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내가 죽을 때는 그 빚을 다 갚고 죽을 것이라고. 저렇게 광목쪼가리에 꽁꽁 묶여서 죽지는 않을 거라고. 보이지 않게 어금니를 지그시 다무는 소향이다.

 

장씨와 장정들이 상여를 관이 묶인 틀 위에 올리고 다시 광목 끈으로 묶고 마감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어깨에 올리고 이웃에서 온 선소리꾼이 핑그랑을 치며 앞소리를 읊는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렬이다. 샘을 지나야 지름길이지만 마을의 샘을 지날 수 없는 일이기에 거꾸로 마을을 뒤로 돌아서 동구 밖으로 빠져나간다.

늘어진 앞소리는 제법이지만 뒷소리는 희미하다. 노제도 없다. 그저 상여를 내려놓고 상여꾼들은 쉬면서 목을 축인다.

-상주가 없으이 노잣돈도 없구만-

누군가의 말이다. 푸념이 아니라 안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니는 뒷소리도 안 하나?-

태광이 그 사내를 향해서 농을 한다.

-아, 행님도, 노잣돈이라도 내놔야 흥이 나서 소리를 하지 무슨 맛으로 힘든 상여를 집니꺼?-

앞소리꾼이 한마디 거든다.

-그래도 가는 양반 생각해서 뒷소리는 잘 메기야 한데이. 그래야 극락으로 가신다-

상여는 세 번을 쉬고 장지에 도달했고 창호와 어마이가 보는 앞에서 광목천에 둘러싸인 가느다란 시신은 땅속에 묻혔다.

할미의 무슨 부품과 관과 그리고 몇 가지가 태워지며 벌건 불길을 하늘로 날린다.

남은 몇몇의 장정들이 부지런히 삽질을 하며 분을 올린다.

-단디히 다지래. 그래도 빗물 들어가면 안 된다. 이래놔도 그 자슥이 오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할 자슥이다, 그 자슥은-

아마도 죽은 할미의 객지에 있다는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심 잃고 사는 자의 귀가 이날은 유난히 가려울 것이 분명하다.

 

안방에서 들여진 대발 사이로 간혹 들어오는 바람줄기를 기다리며 소반에 명심보감을 펼쳐놓은 태섭의 처는 눈만 책 위에 있을 뿐 마음은 구천을 헤메고 있다.

어수선한 마을의 대소사는 사람 사는 세상에 그저 있을 법한 일이지만 그렇게 처신이며 노릇을 종손처럼 하라고 영감한테 당부했지만 영감의 모습은 요새 날이 새면 사라지고 밤이 되서야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참이다.

샘 일은 시동생이 알아서 벌써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창호네 삼우제가 지난 지도 벌써 며칠인데 여태 발걸음도 한번 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비록 험한 사람들이라 해도 그래도 안에서 거두어야 뒤에서 모난 소리 나지 않는다는 것을 태섭이 처도 알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창호네도 종씨 아닌가?

또 저 아이를 어떻게 합방을 시킬 것인가? 영감의 꼴을 생각하면 밉기 짝이 없지만 슬하에 그 흔하다는 자식 하나 없는 처지니 이렇게라도 해서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또 지금의 자리를 지켜야 자기의 말이 누구에게도 먹혀들어갈 것이다. 까짓 씨받이 들여 자식 보는 것이 어디 우리 집뿐이랴? 오히려 대를 이으면 집안의 위신도 더 반듯하게 설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배불러 낳아야 되는 아이를 숨길 수도 없는 처지다. 배를 불리자니 합방도 시켜야 되고 합방을 시키자니 영감에게도 귀띔은 해두어야 하는데.

미운 영감에게 거의 딸 같은 아이를 안겨준다는 것이 마음 한편 은근히 편치 않다. 중치가 막힌 듯 가슴에 열만 치올라오고 눈에는 보지도 않은 문 닫힌 방안의 형상이 자꾸 어른거린다.

고개를 확 흔들어 상념을 떨쳐내며 상 위의 명심보감 한 장을 넘겨본다. 언문으로 쓰인 글귀가 오히려 자기 눈을 빤히 쳐다보는듯하여 태섭이 처는 책을 확 덮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발을 젖히고 대청으로 나온다.

-소향아-

부엌에서 인기척이 있어서 불러본다.

아무 대답 없이 손에 열무 한 움큼 잡은 채로 소향이 정기 밖으로 나온다.

-광수네는 어디 갔나?-

-좀전에 참 들고 샘에 갔심더. 와예?-

-아니다. 너, 나하고 같이 좀 가자. 이리 들어와서 광에서 쌀 한 말 꺼내고. 함지에 담아라-

큰아지매는 치마 속 찰쌈지 속에서 열쇠를 꺼내 쇳대를 연다. 나무로 만들어진 함지박은 아무것도 담지 않아도 꽤 무겁다. 소향은 함지를 광문 앞에 놓고 큰아지매가 퍼 담아주기를 기다린다.

-왜 그냥 서있기만 하니. 담으면 되지-

-지는 한 말이 울매나 되는지 모립니더. 아지매가 퍼 주이소-

-뒤주 속에 되가 있다. 그걸로 열 개만 퍼 담으면 된다. 파는 것도 아니니 대충 담아라-

소향은 한 번도 광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때가 되면 작은 아지매가 광에서 쌀을 가져오고 때론 비싼 반찬거리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을 뿐 항상 쇠뭉치로 잠겨있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

광속에 발을 들인 소향은 놀란다. 벽에 걸린 황태, 소쿠리에 수북한 멸치, 자루마다 무엇이 담겼는지 뭉치뭉치 쌓여 올려져있고 한 편에는 찬란한 금색의 제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비릿한 내음이 갑자기 삼천포 바닷가를 떠올리지만 소향은 뒤주의 뚜껑을 열고 나무됫박으로 쌀을 열 개 세어가며 함지에 담았다.

 

큰아지매는 앞서고 소향이 머리에 이고 그 뒤를 따른다. 아무 말 없이 앞서 걷는 큰아지매가 이제 거의 끝나가는 샘터 옆을 지날 때쯤 소향은 머리 위의 함지를 손으로 잡고 있는 통에 저고리 섶이 위로 올라간 것이 신경 쓰였다.

샘터에는 몇몇의 아낙들이 작은아지매와 함께 멍석에 참을 풀어놓고 일꾼들은 땀을 식히고 있던 참이다.

-행님 오데 갑니꺼?-

샘을 그냥 지나치려던 큰아지매가 광수에미의 눈에 띄인 것이다.

-수고하네 동서. 창호네 집에 잠깐 갔다 오려고. 내 오는 길에 들릴 걸세-

그리고는 그대로 발을 옮긴다.

-행수님이 그 집에 무울 끼라도 좀 갖다 주는 모양이다-

광수아바이가 한 마디 한다.

-안 그래도 짧은 살림인데 할마시 묻니라고 남은 기 없을 끼다-

누군가의 말이다.

-창호네가 내놓은 기 모있노? 다 동네서 했제-

-우짜든지 그렇다는 말이제-

-자는 이름이 모라 켔노?-

-광수야, 자는 일은 좀 하나?-

-알긴 모 알겠노? 인제 겨우 솜털 뱃기진 안데. 갈키야 되제-

그 귀하다는 시멘트를 구해 샘가를 넓게 단장하게 되어 한결 넓어 보인다. 인근 삼사십 리 근처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선 지가 이제 겨우 두어 해가 되는 참이나 구하기는 쉽지 않아 그나마 태섭의 백을 동원하여 필요한 만큼 구해다 사용한 것이다.

-오늘 씨멘트 일이 끝났으니 한 이틀 쉰 다음에 날 잡아서 샘을 칩시다. 그러면 일은 다 끝나고 남은일은 지목수님하고 제가 할 거고요-

장씨의 말이다.

-날 잡을 끼 모 있습니꺼? 당장 낼이라도 샘을 치면 안 됩니꺼?-

누군가의 말이다.

-한 이틀 틈을 주어야 씨멘이 굳습니다. 굳기 전에 올라서면 금이 가고 금이 가면 물이 새 들어갈 거구요-

-빨리 샘을 쳐야 묵지 마을에 물난리 난기 운제고?-

-우리가 샘을 잘 단도리 했으이 지목수님이 정각이나 잘 지어 주이소-

-정제는 운제 지낼 꺼고?-

누군가 태광을 향해 묻는다.

-정각을 짓고 하몬 되제. 지목수님 정각은 울매나 걸립니꺼?-

-글세 올씨다. 일은 벌이기 나름이지만 지난번에 영감님하고 말한 대로라면 한 달포는 있어야 할 낍니더-

나이로 치면 한참 위지만 지목수는 꼬박꼬박 태섭에게는 영감이라 하고 태광에게도 하소를 한다.

 

-창호네 있나?-

큰아지매는 마당 한가운데서 부른다. 방문은 열려있지만 보이지를 않다가 방에 누워있었는지 벌떡 일어난 창호 어마이가 머리를 고치며 나온다.

-아이구, 큰아지매 오셨는교. 햇빛이 심니더. 이리 올라 앉으이소-

하며 맨손으로 나무마루를 훔쳐낸다.

-소향아. 너는 그거 여 놓아라 무겁다-

소향이 마루 쪽으로 발을 옮기며 함지박을 내리려 하자 창호어마이가 선뜻 거들어 같이 내린다.

인기척이 궁금한지 보이지 않던 을순이가 닫혀져있던 아랫방 문을 빼꼼히 열어젖힌다. 불과 한 열흘 전만해도 할마시가 누워있던 방이지만 이제는 을순이 독차지가 됐다.

-문 닫아라-

창호어마이가 말과 함께 문을 콱 닫아버리자 닫힌 문이 내밀고 있던 을순이 머리에 냅다 받힌다.

-방안이 더울 텐데 문이나 열고 있도록 하지. 왜?-

마루에 엉덩이를 걸친 큰아지매가 을순이가 안됐다는 표정이다.

-자꾸 나올라 케서 안 됩니더. 나오민 밖으로 나돌라 하고 참말로-

그래도 시누이지만 창호어마이에게는 그저 골치덩어리 밥벌레일 뿐이고 일만 저질러대는 사고뭉치일 뿐이다. 하지만 산목숨이니 죽일 수도 없고 성치 않으니 쫒아낼 수도 없고 그저 눈에 띄지 않게 방안에만 가두어두고 있는 참이다.

-큰일 치루느라 고생했네. 창호아바이도 없이…. 허나 저나 아제는 추석에는 오겠지?-

제종간이니 그저 사내들을 아제라고 하는 큰아지매다.

-지 새끼가 있는데…. 추석에는 올낍니더-

서방도 미운 듯 봉당을 내려 보며 하는 한탄이다.

-내 바쁠 때 지나서 올라고 오늘 왔네. 서운해 말게나. 그리고 한여름 날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양식이나 있나 싶어서 쌀 한 말 가지고 왔으니 먹도록 하게-

-아이구 우짭니꺼?-

미안타는 뜻이지만 또 사양은 하지 않는 어정쩡한 말이다.

-큰아지매요. 그리고예. 일 있으몬 좀 불러 주이소. 지야 안 불러주이 일을 못 한다 아입니꺼?-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 여인네들이 우루루 모여 음식 수발을 하는 동안에 입도 호강시키고 눈치 보이지 않게 딸린 자식들 입도 들락거리며 거드는 것이 예사인데 창호네가 잃은 인심덕에 아무도 창호어마이를 불러주지 않는 통에 코에 흘러 들어오는 냄새만 맡을 뿐 마을에서 겉도는 것이 애타고 또 품앗이라도 걸려야 먹을 것이라도 구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도 불러주지 않아서 창호네는 지금 큰아지매한테 구걸하는 것이다.

-그런가? 사실 나는 관여하지 않으니 모르고 있었네. 내 동서에게 자네 말을 일러두겠네. 그리고-

발걸음을 서서히 몇 발짝 옮기다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이번에 아제가 오면 자네하고 상의해서 우리집 영감한테 땅이라도 부치게 해달라 하게. 이게 뭔가? 처자식이 있는데 밖에서 에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아랫방 문 속에서 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소향은 아까부터 그 속에서 더위에 찌들고 있는 을순이라는 처녀가 불쌍해서 큰아지매와 창호엄마가 주고받는 말에는 별 신경 두지 않고 그 방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드디어 무슨 희한한 소리가 날카롭게 문에서 흘러나온다.

창호어마이는 대수롭게 여기며 여전히 큰아지매와 말만 주고받고 있다.

-그래만 주신다민사. 지는 좋지예-

-시누가 뭐가 불편한가 보이. 내 이만 가네-

방문을 가리키며 큰아지매는 돌보아주라는 듯 들린 소리를 빗대어 불편한 모양이라고 한다.

-예, 가입시더.-

소향은 삽작을 나서며 다시 고개를 돌려 집안을 보는 사이 창호어마이는 아래채 문을 열고 그 속으로 사라졌고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담을 돌아서 샘터 쪽으로 반쯤 왔을 때 무슨 돼지 목 따는 소리가 들렸다. 소향은 흠칫하여 발을 멈출 뻔했지만 큰아지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냥 간다.

덕호마을에서 잔치가 있을 때 동네남자들이 네 다리 묶은 돼지 위에 올라타고 시퍼런 칼날을 목에 꽂을 때 돼지는 꺼억꺼억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벌건 피가 왈칵왈칵 밑에 받혀놓은 양재기 속으로 쏟아지던 것이 생각났다. 지금 그 소리가 들리는데도 큰아지매는 예사롭게 샘 쪽으로 걸어간다.

 

-고생들 하십니다. 지목수도 수고하시고-

큰아지매는 그동안 발걸음을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치마 앞을 감싸 쥐고 어수선한 샘가를 조심스레 디디며 일꾼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행수님이 여 우짠 일입니꺼?-

-서방님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우리 동네 사람인데-

큰아지매는 미소를 계면쩍게 띠우며 말은 하지만 사실 와보지 않았다는 태광의 속뜻이 반갑지 않다.

-목이라도 축이고 하십니까? 동서가 수고는 하는 줄 알지만-

누구에게 대놓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지나는 길에 멈추지 않을 수 없어서 발을 멈추었으니 인사치레를 하긴 하지만 뭇남정네들이 북적거리는 일터에 또 입 사나운 동네여자들이 모인 이런 장소가 큰아지매는 도대체 싫은 것이다.

-야야, 우리도 갈라꼬 하던 참이다. 소향이 니도 좀 들고 가재이-

할 수 없이 큰아지매를 따라 왔지만 소향도 낮선 사람들이 많은 샘가가 불편하던 참에 작은아지매의 가자고 하는 말이 반갑다.

-그래라. 너는 동서하고 집에 먼저 가거라-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여인네들이 샘가를 떠나자 태섭이 처가 광수애비를 부른다.

-서방님. 저 좀 보시지요. 지목수도-

일꾼들은 오후의 열기에도 땅을 한편 다지고 한편 시멘트를 이기거나 또 장씨는 그것을 골고루 펴 바르고 바쁘다.

태섭이 처는 장씨의 손놀림을 유심히 보며 전에 별채를 수리할 때 그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떠올린다.

-와예?-

태광이 흙손을 든 채 다가오고 지목수도 옆으로 왔다.

-제가 보니 이제 일은 거의 다 됐네요. 오늘 저녁에는 우리집에서 말고 읍내에 가셔서 수고하신 분들 술이라도 한잔 하시게 서방님이 주선하시라고요-

-예? 아, 그기야. 울매든지 하지요. 행수님!-

입이 대자로 벌어진 태광이 돌아서서 일꾼들을 향해 큰소리로 떠든다.

-오늘 저녁에는 한잔 하게 됐수다. 자, 자, 마무리 빨리 끝내고 가입시다- 하고는 성큼 하던 일자리로 간다.

-지목수도 수고했네요. 그나저나 지난번에 영감하고 나누었던 정각일은 곧바로 하실 겁니까?-

-예, 그럼요. 샘만 안 무너졌어도 골격은 벌써 세웠을 낀데. 샘 쌓니라 한 보름 늦어졌습니더. 그래도 정각일이야 물 먹는 것 하고 상관없이 할 수 있으이 걱정 안 하시도 됩니더-

-한 가지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태섭이 처는 나지막이 말한다.

-예? 예. 말씸하이소-

지목수도 한 발 가까이 다가서며 고개를 약간 숙여 큰아지매가 나직이 한 말의 뜻에 부화한다.

-정각을 세울 때 귀퉁이가 우리 집으로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것뿐입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말로 큰아지매는 주문을 한다.

말뜻을 금방 알아차린 지목수다.

-예? 아, 예. 알겠심다. 그리하지요. 예.-

다시 허리를 굽실하고는 뒤돌아선다.

큰아지매는 다시한번 곁눈질로 장씨의 거동을 훔치고는 -그럼 수고들 하세요- 발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저자를 우리집 머슴으로 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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